기사 (6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바울의 목회: 바울서신에 나타난 바울 목회의 윤곽 ① 바울의 목회: 바울서신에 나타난 바울 목회의 윤곽 ① 1. 들어가는 말바울이 교회 역사에 주는 영향력은 크다. 바울이 기독교의 실질적인 창시자인가 하는 논의가 나타날 정도다.1) 그만큼 교회에 미치는 바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영향력은 종종 바울서신이 기독교 신학과 교리에 점유하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무게로 나타난다. 특별히 루터 이후 개신교 신학과 교리는 바울서신에 큰 무게를 두고 있는 듯 보인다.2) 그리고 이런 무게는 바울서신을 쉽게 교리 서신으로 보는 시각으로 발전되기도 한다.하지만 바울서신이 교리를 전하기 위해서만 쓰인 글은 아니다. 바울을 신학자로 볼 수 있고, 이진섭 | 이진섭 교수 | 2019-02-28 09:00 어떻게 싸울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살다보면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그 갈등이 커져 싸움이 되기도 한다. 가정에서도 그럴 수 있고, 직장에서도 그럴 수 있다. 사회에도 갈등이 일어 싸움이 생긴다. 나라 사이에 생긴 갈등과 싸움은 전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느 시대에도 갈등과 싸움은 있을 수 있다. 우리 시대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시대 누구든 이러한 갈등과 싸움에 직면할 수 있기에 이에 대처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다.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판단하며, 어떤 식으로 대처하며 살아야 하는지 잘 알아야 그 갈등과 싸움을 제대로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진섭 | 이진섭 교수 | 2018-10-08 04:15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우리를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종종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수고한 지도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하는 말이다. 수고한 목사와 장로에게 하는 말이고, 성심껏 양떼를 돌본 리더에게 주는 감사카드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언뜻 보면 고마움을 겸손하게 전한 말인 듯 보인다. 하지만 이 말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런 뜻과는 정반대의 요소가 숨어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겉으로는 겸손한 감사의 말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의 중심에는 교만함이 한편에 똬리를 틀고 있는 말이다. 내가 주인이고 이진섭 | 이진섭 교수 | 2018-09-04 15:23 목회와 사역에도 금수저? 목회와 사역에도 금수저? 헬조선과 수저론사회가 엉망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 지 오래다.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을 보는 게 일상이다. 정치지도자가 그 중 맨 앞에 있다. 사회 구성원의 부패와 타락도 여전하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치 문제만이 아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경제와 교육의 문제는 심각하다. 부동산은 여전히 쉽게 잡을 수 없는 문제다. 달라야 하는 종교계와 종교지도자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더 망가진 경우를 자주 본다.청년 실업은 심각한 지경으 이진섭 | 이진섭 교수 | 2018-08-13 09:48 부패한 한국교회에 주는 집행유예? 부패한 한국교회에 주는 집행유예? 양적 성장 vs. 질적 성장‘한국교회가 양적으로 이만큼 성장했으니, 이제는 질적 성장을 해야 할 때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한국교회의 잘못된 모습과 문제를 고민할 때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다. 언뜻 들으면 이 말은 교회 개혁을 주장하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좀 다르다.일반 사회의 조직, 예컨대 어떤 기업이 ‘외형’을 먼저 키운 후 나중에 내실을 기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있다. 이익을 사원들에게 적절히 분배하거나 사원들의 복리후생에 사용하기보다는 재투자에 몰두하여 우선 회사의 외형을 키운 후, 외 이진섭 | 이진섭 교수 | 2018-07-11 10:20 성경과 세상을 잇는 다리: 삶과 사역 성경과 세상을 잇는 다리: 삶과 사역 2011년 7월 존 스토트 목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깝고 슬퍼하며 그분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을 떠올렸었다. 1992년 영국으로 유학 가서 All Souls Church에 출석할 때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던 모습, 설교 전에 강대상 뒤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시던 모습, 런던연구소(LICC, The London Institute for Contemporary Christianity)에 방문했을 때 ‘형제여’(brother!)라고 부르시며 다정하게 반겨주시던 모습, 필자가 London Bible College에 재학하던 시 이진섭 | 이진섭 교수 | 2018-07-02 16:20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