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사역에도 금수저?
목회와 사역에도 금수저?
  • 이진섭 교수
  • 승인 2018.08.1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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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수저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요셉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요셉

 

헬조선과 수저론

사회가 엉망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 지 오래다.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을 보는 게 일상이다. 정치지도자가 그 중 맨 앞에 있다. 사회 구성원의 부패와 타락도 여전하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치 문제만이 아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경제와 교육의 문제는 심각하다. 부동산은 여전히 쉽게 잡을 수 없는 문제다. 달라야 하는 종교계와 종교지도자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더 망가진 경우를 자주 본다.

청년 실업은 심각한 지경으로 치닫는다. 대학을 가기도 힘들지만,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다.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이다. 연애, 결혼, 자녀도 포기하는 세대이다. 노력해도 변화가 없다고 자포자기를 한다. 삶이 어려워도 변화의 소망과 미래의 희망은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희미하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말도 돈다. 부모의 배경이 결국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수저론이 먹힌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야 이 땅에서 어깨 펴고 살 수 있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배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교회에까지도 이런 수저론은 돌아다닌다. 신학생들 사이에서도 아버지의 신분에 따라 성골, 진골, 백골을 따지는 말까지 떠돈다. 대형교회의 무분별한 세습은 이미 도를 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모세도 왕족으로 자랐기에 지도자가 되었고 바울도 아버지의 재력 때문에 결국 큰 인물이 되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성경과 초대교회의 시각

성경은 과연 이런 수저론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까? 신약의 교회는 과연 이 수저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성경은 이곳저곳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할 뿐 아니라(삼상 16:7; 2:11; 3:22 ), 그리스도 안에서는 성별과 신분의 차별이 없다고 명확히 말하기 때문이다(3:28; 1:16-17 ). 신약교회의 존재 자체도 수저론을 무용화시킨다. 신약교회의 구성원들 대다수가 그다지 배경 좋은 인물들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주류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당시 이방 교회 중 가장 문벌이 좋아 보이는 고린도교회조차도 배경 좋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고전 1:26-28).

신약의 교회가 발전해가면서는 어떠했을까? 배경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해서 지도력을 유지하고 교회를 이어갔을까? 아니면 주님이 각 사람의 성품과 능력을 따라 세워가는 흐름을 따라갔을까? 신약성경은 후자가 적절한 답임을 잘 보여준다. 열두 제자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형태로 교회를 이끌지 않았고, 자기 자녀들과 친인척이 교회의 차기 지도자가 되도록 뒤에서 조정하지 않았다. 초대교회에 바울의 지도력이 급격하게 등장하는 점은 이를 잘 알려준다. 사실 바울은 시쳇말로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교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에게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주님과 함께 있었다는 배경도 없었고, 열두 제자들과 인맥도 없었다. 바울은 굳이 제자들과 인맥을 쌓아 힘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다(참조. 9:26-30; 1:18-24). 오히려 교회를 핍박했다는 안 좋은 꼬리표가 길게 따라 붙어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님께서 바울을 택하여 쓰셨을 때, 그는 주님을 향한 순종과 뛰어난 능력으로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로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바나바의 등장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예루살렘교회에 (사도들 외에) 장로들이 지도자로 등장한 것과 (추측건대, 주의 동생) 야고보가 지도력을 발휘한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15:6, 13-21, 22; 2:9 ). 베드로와 열한 사도는 자신들이 지도력을 독점하려하지 않았고 장로들과 함께 일했으며, 또한 새로 등장한 (주의 동생) 야고보의 지도력을 인정하였다. (한편으로 주의 동생 야고보의 등장은 배경의 힘으로 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예수의 다른 형제들이 모두 유사한 지도력을 갖지 않은 점이나 사도행전 15장에 나타난 야고보의 제안이 어느 정도 지혜롭고 설득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야고보의 능력이 적절히 인정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적어도 수저론이 자리를 차지할 여지가 없었다.

 

마가와 디모데: 은수저와 나무수저

마가와 디모데는 초대교회에 수저론이 작동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두 사람은 어찌 보면 묘한 관계에 있다. 마가가 바울의 제 2차 선교여행 팀에서 탈락하고(15:36-40, 물론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선교 여행을 가지만, 바울은 마가를 탈락시킨다.), 디모데는 마가가 탈락된 그 선교 팀에 곧 이어 선발된다(16:1-3). 마가가 탈락된 자리에 디모데가 들어간 셈이다. 어쩌면 이런 구도 자체가 두 사람에게 묘한 긴장 관계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마가는 여러모로 판단할 때 어느 정도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것으로 보인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은 사도들이 모이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참조. 12:12), 특별히 그 집의 큰 다락방은 예수님의 최후 만찬 자리이자 교회가 처음 시작한 장소로 보통 추측된다(참조. 14:15; 22:12; 1:13-14). 마가의 삼촌인 바나바는 자기 재산을 팔아 교회에 헌납한다(참조. 4:10; 4:36-37). 이런 점들로 보건대, 마가는 어느 정도 부유한 배경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교회의 배경이란 측면에서 볼 때 마가는 유리한 자리에 있었다. 자기가 사는 집이 예수님과 사도들이 모이는 본거지 중 하나였고 또한 교회가 시작되는 장소였다. 쉽게 사도들을 볼 수 있었고, 교회 일에 관여되기 쉬운 처지에 있었다. 그는 바나바와 바울의 1차 선교여행에 동참하는 특권을 누린다. 마가가 가진 배경은 요즘 말로 할 때, 금수저까지는 아닐지라도 은수저 정도는 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디모데는 달랐다. 좋은 배경으로 볼 수 있는 게 그다지 없다.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고(16:3),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에게 신앙을 물려받았다(딤후 1:5; 3:15). 아마도 어렸을 적에 아버지를 여읜 후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함께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고대 사회 과부의 삶을 고려할 때 디모데는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 완전한 흙수저는 아닐지라도 나무수저 수준을 넘을 것 같지는 않다. 교회의 배경이란 측면에서도 그에게 특별한 혜택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2차 선교여행 팀에 마가가 떨어지고 디모데가 들어온다. 바울의 눈에는 은수저인지, 나무수저인지가 중요하지 않고 현재 그의 사람됨이 어떠한지가 중요하다.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지가 중요하지, 얼마나 좋은 배경을 가졌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디모데는 처음 발탁될 때도 그렇고(16:2),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칭찬받는 인물이었다(고전 16:10; 2:22; 딤전 1:2 ). 은수저인 마가는 떨어졌고, 흙수저나 나무수저인 디모데는 붙었다.

 

계속 된 이야기: 두 사역자의 동역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은 아니다. 바울의 마지막 자리에 마가와 디모데는 함께 다시 등장한다.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교회의 어려움을 내다보며 자기가 죽은 후에 교회를 이끌어가야 할 디모데를 격려한다. 디모데를 굳건히 세워서 교회의 차기 지도자로서 일을 잘 감당하게 하려 한다. 그런데 바울은 그때 디모데와 함께 마가를 부른다(딤후 4:9, 11, 21). 마가를 데리고 자기에게 오라고 말하며, 마가가 바울의 일에 유익하다고 특별히 말한다(딤후 4:11). 그렇다. 이미 마가는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고, 다시 사역자의 자리로 왔다. 마가가 금수저, 은수저였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성장해서 사역을 잘 감당할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마가와 디모데는 역사의 중요한 자리에 같이 등장한다.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와 동역자로 바울 앞에 모인다.

마가는 베드로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베드로의 전승과 가르침에 기초하여 나중에 마가복음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마가복음서는 다른 복음서가 쓰이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 교회가 사도들의 전승을 이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셈이다. 디모데는 바울의 수제자로서 바울의 교회들을 이어서 책임지고 이끌어갈 인물이다. 베드로와 바울이 초대교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두 기둥이었다면, 이제 두 사람 사후에 교회를 이끌고 갈 중요한 인물은 마가와 디모데라 말할 수 있다. 그 두 사람이 바울의 마지막 자리에 함께 온다. 아름다운 협력이자 동역이다. 이후 교회를 이끌고 가는 쌍두마차이다.

 

수저론의 붕괴

마가와 디모데가 사역자로 서는 자리에는 수저론이 통하지 않는다. 마가는 은수저의 배경을 가졌음에도 적절한 모습을 보이지 못할 때 중요한 자리에서 탈락한다. 반면 디모데는 좋은 배경이 없는 듯 했지만, 스스로를 잘 가꾸었을 때 역사적인 선교팀에 이름을 올려 중요한 일을 계속 감당한다. 떨어진 마가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마가가 잘 준비되었을 때 그는 자기에게 맞는 중요한 역할을 다시 감당할 수 있었다.

마가와 디모데의 이야기는 우리시대 팽배한 수저론을 무색케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고, 교회는 사람의 배경에 좌우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을 얼마나 잘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배경은 필요하고, 유익하며, 영향을 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배경을 뛰어넘어 일하신다. 필요하면 배경을 만들기도 하시고, 허물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자를 찾으신다. 배경을 만드는 자도 하나님이시고, 배경을 활용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중요한 것은 수저론이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집중하느냐이다.

이 땅에서의 삶은 분명 고단하다. 하지만 우리는 공평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하고, 교회는 세상의 수저론을 배격해야 한다. 공평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교회와 사회를 꿈꾸어야 한다.

 

이진섭 교수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www.ezra.ac.kr], 성경삶사역연구소 소장[www.BibleMinist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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