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 아닌 예배 문헌
요한계시록,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 아닌 예배 문헌
  • 윤지숙 기자
  • 승인 2018.08.13 1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이클 고먼의 『요한계시록바르게읽기』 리뷰
ⓒ마이클 고먼(Michael Gorman) 페이스북 갈무리/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새물결플러스, 2014)
ⓒ마이클 고먼(Michael Gorman) 페이스북 갈무리/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새물결플러스, 2014)

요한계시록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선입견 뿐 아니라 잘못 해석하면 ‘이단’이나 ‘사이비’라는 오명을 쓰기 쉽기 때문에 한국교회 강단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설교 본문 중의 하나다. 마이클 고먼의 『요한계시록바르게읽기』1) 는 “기본적으로 요한계시록이 밧모섬을 떠난 그날부터 문제가 되어 왔다”(p.137)고 할 만큼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게 한다.

고먼은 그의 책에서 각 장과 절을 상세하게 주해한 것은 아니지만 ‘시민 종교2)를 거부하는 참된 예배와 증언’이라는 일관된 주제 아래 그동안 가져왔던 편견이나 선입견에 대해 우리의 상상력을 회개(conversion of our imaginations)3)시켜 준다. 특히 1-22장까지 삶으로 담아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개인과 크리스천 공동체가 하나님의 어린 양을 따라 새 창조로 나아가게 하는 큰 흐름과 방향을 잡아줘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게 하는 렌즈를 제공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1.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흔히 저지르는 6가지 실수

마이클 고먼은 『요한계시록바르게읽기』에서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흔히 저지르는 여섯 가지 실수를 나열한다. 첫째는 요한계시록이 묵시적 성경을 가진 점, 그리고 묵시문학4)의 성격과 기능을 인식하지 못한다. 둘째, 요한계시록을 그 시대의 산물이자 그 시대에 주는 메시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셋째, 예언과 역사는 현재 틀림없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의심스러운 가설을 토대로 묵시가 말하는 상징과 환상이 이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제멋대로 생각한다.

넷째, 장차 일어날 사건을 이해한답시고 성경을 짜 맞춰야 할 조작들로 이루어진(여기 이 책에서 가져온 본문과 저기 저 책에서 가져온 본문 등으로 구성 된) 퍼즐처럼 다룬다. 다섯째, 요한계시록에 나온 짐승의 정체, 아마겟돈, 천년왕국의 길이와 임할 날처럼, 요한계시록에서 확실히 알 수 없는 것들이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요소들의 의미가 뭔지 묻는 물음(때론 그릇된 물음)에 집착한다. 예를 들면, 천년왕국에 관한 특정 견해를 축으로 삼아 요한계시록 전체를 읽어내는 경우도 이런 실수에 속한다. 여섯째, 요한계시록을 더 커다란 기독교 전통과 이 시대 학문 연구에 비추어 듣지 못한다는 점을 들었다.

오늘날 신천지 등 이단과 사이비들이 즐겨 사용하는 본문들은 종말(마지막), 휴거, 심판, 말을 탄 네 사람, 적그리스도, 일곱(7), 666, 14만4천 등의 숫자와 천년왕국 등에 대한 해석에 있어 고먼이 지적한 실수를 그대로 범하고 있다. 특히 극단주의적 세대주의자들은 성경(특히 요한계시록)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배제한 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만 집중한다. 이민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복음서와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이미지들은 전쟁과 폭력, 기근, 박해, 고난, 배교를 암시한다. 여기에서 이미지로 이루어진 하늘의 징조들과 땅의 재앙들은 유대 문화에서 익숙한 묵시문학의 상징들이다. 이것은 절대 교회사에서 일어난, 혹은 일어날 특정 사건에 대한 예고가 아니다. 이 이미지들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핍박, 세상이 승리할 것처럼 보이는 암울한 현실,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를 묘사하는 강력한 ‘그림언어’다.”5)

그렇기 때문에 고먼이 언급한 것처럼 “읽는 사람에 따라 성경에서 제거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요한계시록을 교회로부터 쫓아내버린 경우가 있었다.”(p.137)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2. 극단주의적 세대주의적 해석의 오류

종말에 대한 오해들은 ‘마지막’이라는 문자에 대한 집착과 예수님께서 재림할 시점에 일어날 ‘특정한 일’들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부터 시작된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종말의 일자를 정한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상징이나 비유를 지나치게 현시대에 끼워 맞춰 해석함으로써 자신들만이 말세의 비밀을 안다고 주장하거나, 검증 불가능한 황당한 음모론으로 공포심을 조장해 교인들을 통제하는 것이 종말론 이단이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요한계시록과 성경적 종말론을 체계적으로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한국에 종말론 이단이 유독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세대주의 성향을 가진 선교사들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1971년 말 미국에서 출간된 홀 린지(Hall Lindsey)의 『대유성 지구의 종말』(Late Great Planet Earth)이래로, 영국의 존 다비(J.N. Darby, 1800, Scofield, 1843-1921)의 『Left Behind』(휴거 후에 남겨진 사람들)를 설명한 스코필드 주석 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 1909, 1917년)을 통해 세대주의-환란 전 휴거 신학이 대중화 됐다(p.70).

마이클 고먼은 이에 대해 “세대주의는 종말론에 휴거 교리, 곧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전에 참 신자들이 하늘로 들림을 받는다는 교리를 포함시킨다. 19세기 이전만 해도 기독교는 이런 가르침을 알지 못했다.”(p.69) 고 언급한다. 또한 “세대주의 성향의 독자들은 요한계시록이 그리스도의 부활(1장), 사도들로부터 오늘까지 이어지는 교회 시대(요한계시록 2-3장), 참 교회가 역사로부터 벗어나 땅으로부터 들림을 받음(4:1). 하늘에 있는 교회(4-5장에서 시작), 땅에 임한 7년 대환난(6-18장),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스도가 문자 그대로 천년을 통치하심, 마지막 심판(19-20장),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21-22장)을 묘사한다고 본다.”(p.70)는 설명이다.

고먼의 지적대로 교회와 이스라엘의 철저한 구분이 세대주의자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6) 그 결과 달라스 신학교를 포함해 수많은 크리스천 교육기관에서 '휴거'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했고, 강대상에서는 세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전후 무후한 임박한 휴거(imminent rapture), “적그리스도의 출현”, “추수 때다.”, “말세지말(末世至末)에 살고 있다”는 설교가 확산됐다. 게다가 보수신학 세대주의자들인 팀 라헤이, 제리 젠킨스 공동저작 『Left Behind』는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출간된 총 16권의 베스트셀러 소설로 “지구 종말의 때에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공중으로 들려올라가 구원을 받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세상에 남아 재앙을 겪는다”는 플롯을 따라 3편의 영화로까지 제작됐으니 파급력은 컸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길선주 목사가 1938년과 2002년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며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도 대표적인 세대주의자로 70-80년대 다니엘서와 2000년에는 요한계시록을 강해했다. 90년대 초반, 필자가 고등학교에 재학할 당시만 해도 유럽연합(EU)을 10세기~19세기까지 지속된 신성로마제국이 다시 부활하려는 전초 작업으로 보고, "온 세계를 지배할 적그리스도가 로마 가톨릭 교황"이라는 설도 제기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시기에 어네스트 앵글리의 『휴거』라는 소설은 휴거 후 7년간 대환난과 사탄(적그리스도)의 득세, 요한묵시론의 실현, 예수의 재림까지 다뤘다. 이 책은 감리회의 이장림 목사에 의해 미국에서 유입된 신학서들과 여러 종교 관련 책자를 읽던 중 ‘Rapture’를 ‘휴거’로 번역됐다. 이후 1980-1990년 개신교 교단을 가리지 않고 휴거에 대한 열풍을 가져왔다. 또한 주님의 공중재림 시점과 관련해 적그리스도에 의한 7년 환난 전 휴거설, 전 3년 반 통치 후 휴거설, 7년 환난 통과설 등이 언급됐던 것을 기억한다.

이장림은 1992년 10월 28일이라는 특정날짜를 명시한 시한부 종말론을 만들어 냈다. 이 당시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멸망설’까지 더해져 사회적 불안이 가중됐었다. 그러나 이장림은 휴거 예정일인 한 달 전 신도들의 재산 34억 원을 헌납 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고 시한부종말론은 불발에 그쳤다.7) 

당시만 해도 악마의 표식인 666과 베뢰칩, 바코드 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누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거나 남겨지게 될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세계는 말 그대로 공황상태로 밤잠 못 이룬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김종철 감독의 영화 <회복>과 <제3성전>은 이스라엘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제3성전>은 극단적인 세대주의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1948년 5월 이스라엘 재 건국 이후 성전을 세우고자 열망하고 있다. 성전 재건이 7년 대환난이 있기 전에 일어날 징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필찬 교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렇게 세대주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국 교회는 100년 동안 아무런 반성 없이 지금까지 흘러오고 있다. 목회 현장과 신앙의 현장에서 너무나도 뿌리 깊게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한국 교회의 슬픈 자화상이다.”8) 

마이클 고먼은 “역사적으로 적그리스도라 불린 유명 인사 중에는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 흐루시초프, 사담 후세인을 물론, 머리에 총상을 입었던 케네디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있었다.”(p.241)고 말한다. 분명 이런 식으로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규정한 사례들은 그릇된 성경해석 과정에서 생겨난 어처구니없는 주장일 때가 많았다. 결국 Left Behind 접근법은 고먼의 지적대로 요한계시록을 잘못 읽어내게 함으로써 영적, 신학적, 정치적 차원에서 문제를 양상 시켰다고 볼 수 있다.

 

3.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하는 본연의 문제

그렇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하는 본연의 문제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고먼은 『요한계시록바르게읽기』에서 요한계시록의 주된 목적을 “그때와 지금의 하나님 백성에게 위로와 도전이 담긴 말을 주는 것이지, 미래 일을 예언하든지 심지어 그런 일을 아주 세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님을 이해하며, 명심할 필요가 있다”며 “미래를 보여주는 환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단지-경고하고 위로하는 데 사용하는-수 단일 뿐”(p.72)이라고 한다.

그는 ‘예언’을 미래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세대주의-환란 전 휴거 신학’을 대신해 요한계시록을 “여러 가지 계시의 형식을 띠고 나중에 글로 기록되지만, 때로는 환상이 주어질 때도 있었고, 종종 시어(詩語)나 상징 언어로 주어질 때도 있었다”고 설명한다. 특히 “시(詩) 또는 신학시(神學詩: 예배), 하나님의 정치(神政: 시민 종교를 거부함), 목회-예언(증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접근법”(p.166, 330, 332)을 제시한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요한계시록 안에 담긴 7가지 신학적 주제를 ①‘보좌: 하나님과 어린 양의 통치’, ②‘현실로 존재하는 악과 제국’, ③‘우상 숭배와 부도덕으로 유혹함’, ④‘언약에 신실할 것과 저항을 요구함’, ⑤‘예배와 다른 시각’, ⑥‘신실한 증인: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모범’, ⑦‘임박한 심판과 구원·하나님의 새창조’로 제시한다(pp. 161-164). 이 7가지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과 어린 양만이 참 주권자요, 모든 복의 근원이시며,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분명히 밝힌다(p. 106).

또한 요한계시록이 최초 맥락(처음 기록 당시 정황)에서 “1세기 교회 공동체가 당면해야 했던 로마 제국과 황제 숭배로 인한 여러 종류의 핍박과 현실에 순응하라는 유혹이 강력했다”는 점(p. 184)을 시사한다.

특히 로마제국의 정치, 군사, 경제 권력들을 ‘시민종교’로 규정하고, 그러한 시민종교가 ①이데올로기/신학: 국가를 신성한 존재로 만듦. ②헌신/관습: 국가를 섬기고 충성할 것을 신성한 책임으로 요구, 공공 의식에서 표현할 것을 요구. ③혼합주의: 그 문화를 지배하는 종교 전통(들)을 재해석해 국가를 신성한 조재로 만드는 것과 국가에 엄숙히 충성하는 것을 경합하는 것. 종교의 신앙 및 관행과 정치적, 민족적 주장, 관행을 혼합시켰다(pp. 112-113)는 설명이다.

 

4. 시민종교를 거부하는 참된 예배와 증언

고먼이 제시한 7가지 신학적 주제를 통해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면, 당시 1세기 교회공동체가 당면한 문제 중 가장 두드러진 형태는 여러 잡신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p. 184)이었을 것이다. 이는 그 시대의 문화가 요구하는 규범으로 당연한 일이었으며, 정치 현실과 사회 현실을 인정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행위로 보인다.

요한은 이런 개인과 그룹에게 상징성을 지닌 이름을 붙여, 버가모 교회에선 발람 추종자요 니골라당(2:14-15), 에베소 교회에선 니골라당(2:6), 두아리다 교회에선 이세벨과 그 추종자(2:20-25)로 붙였다. 이 운동을 이끈 이들이 거짓 선지자(2:2, 20)라 부르며, 우상 숭배를 영적 음행이요 간음(2:14, 20-22)으로 본 것과 일맥상통하다.

서머나와 빌라델비아에서는 비방을 받고 경제와 사회분야에서 핍절한 처지로까지 내몰리고, 버가모에서는 괴롭힘을 당하고 심지어 폭행으로 목숨까지 잃었다(2:9, 13, 24; 3:9)는 기사들은 요한계시록의 12장과 13장의 사탄 및 사탄의 짐승을 묘사한 내용과 일치한다. 이들이 바로 고먼이 말하는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예배에 참여하며 실실한 증인(p. 193)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에 순응하는 거짓 교사들과 괴롭히는 이웃이 들끓는데도 에베소의 성도들은 분명 하나님께 충성하고 사랑했다(p. 186)는 언급은 의미를 더한다.

고먼은 요한 저자가 1세기 교회 공동체에게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선언이자 시민 종교에 맞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증언하라는 명령이다.”(p. 125)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1세기 공동체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예배’에 참여하며 신실한 증인이 됨으로써 승리할 것”과 “오직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을 중심으로 삼고 십자가를 본받아 기꺼이 고난에 참예하며 공중(公衆) 가운데서 예배하고 제자도를 실천하라”(pp. 165-169)는 메시지로 십자가를 본받는 전략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점에서 요한계시록을 잘못 읽어내는 것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하고 올바른 출발점(p. 159)으로 인식된다.

『요한계시록바르게읽기』에서 가장 임팩트 한 것은 “요한계시록 4장의 하나님의 현현과 5장의 그리스도의 현현을 하나님과 어린 양의 완전한 기록론으로 재구성해 보좌와 어린 양이라는 이미지로 요한계시록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고 한 부분이다(p.207-9, 234-5).

또한 “신약 성경의 정점으로서 요한계시록 21-22장은, 나사렛 사람 예수 안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이 이제는 인류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는 하나님과 어린 양으로서 영원무구토록 다시 나타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예수님의 오심과 죽음과 부활에서 시작한 하나님이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며, 이를 상징하는 것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p. 302)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고먼은 “성경의 모든 예언처럼 요한계시록도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권면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 숭배를 떠나라! 부도덕을 떠나라!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들이 줄기차게 전한 근본 메시지 중 하나였다.”며 “이 메시지를 요한계시록이 쓴 말로 표현하면, ‘거기서 나오라’(18:4)”고 강조한다. 이런 점들은 그동안 우리가 강단에서 배우고 들어왔던 것들과는 다른 차원의 해석들이라는 데 놀랍기까지 하다.

 

5. 마지막 전투는 없다.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경우가 다섯 번 나온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가 흰 말을 타고 싸우시는 것인데, 그리스도 자신이 흘리신 피가 두드러진다. 그런데 마이클 고먼은 이 전투에서 실제 싸움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예견한다(p. 292). 그는 “전투를 묘사하는 이미지들은 하나님이 악을 격파하시리라는 것을 약속하고 또 이 격파가 사실임을 일러줄 요량으로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지, 실제로 하나님이 악을 격파할 때 사용하시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pp. 292-293)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9장의 전투에서 하늘 군대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행동은 그리스도가 가지신 무기 오로지 그의 말씀이라는 ‘칼’로 하신다.”(p. 293)는 대목은 사실 충격적이다. 날과 장소를 짜 맞춰져 어디에서 언제라고 해석해오던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탓이다. 이는 오늘날 교회에도 그 연장선상에서 현실과 하나님의 역사와 윤리를 해석할 때 열쇠 역할을 하는 본문으로 요한계시록의 ‘심판 환상’을 올바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한다고 하겠다.

 

갈무리 하며 

마이클 고먼의 『요한계시록바르게읽기』는 무엇보다 요한계시록을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하나님의 정치(神政)라는 차원에서 예배 문학, 예전(禮典) 문헌”으로 강조하며,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하나님으로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극단적 세대주의적 해석법과 차원이 다른 해석의 지평을 열어주었다는 평을 하고 싶다.

이 점에서 고먼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과 어린 양이 모든 족속과 백성과 나라로부터 온, 구속 받고 회복된 사람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소망을 현실로 이루는데 필요하다”는 부분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끊임없는 찬송과 예배로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요(4:8), 창조주(4:11), 세상을 다스릴 힘을 가진 분은 진정 하나님(4:11)으로서 예배를 받으실 분으로 찬미한다는 점에서 교회가 끊임없이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요한 저자는 세상 권력-군사력, 정치권력, 경제력으로부터 그 신성함을 계속 벗겨내고 하나님과 어린 양을 신성함을 주장하며 복음을 전할 소망을 가진 공동체로 일곱 교회에게, 시민 종교를 숭배하고 싶어 하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각심을 갖도록 써 보낸 것이 아닐지.

-----------------

<각주>

 1) 정확히 ‘요한계시록 책임 있게 읽기’(Reading Revelation Responsibly)

 2)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 p. 14. 재인용: “‘시민 종교’는 한 국가의 시민이 공통으로 따르는 신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개념을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이다. 그는 그의 주저 『사회계약론』 4편 8장에서 시민 종교를 논하면서 어떤 특정한 나라의 국민들이 교의, 의식, 법을 통해 숭배하는 종교가 시민 종교라고 규정한다.” 

3) Hays, The Conversion of the Imagiation; 마이클 고먼,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새물결플러스, 2014), p. 44. 

4 )묵시문학이란 메시아의 도래, 악이 만연한 시대의 종말, 최후 승리 같은 종말론적 주제를 환상 등을 이용해 묘사한 문학 장르다. 구약과 신약  사이의 400여 년, 즉 신구약 중간기에 유대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5) 이민규, 『신앙, 그 오해와 진실』(새물결플러스, 2014), p. 322.

6) 세대주의의 가장 큰 특징인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부에 대한 비판은 이필찬 교수의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새물결플러스, 2014)를 참고. 

7) 《동아일보》 1992.10.29. 기사. “‘10.28 휴거는 역시 소동’ 헌납재산분쟁 후유증 클 듯”: 이 소동이 끝난 뒤 다미선교회는 11월 2일 각 신문사에 사과 광고를 게재했다. 그 달 10일까지 헌금 반환 신청을 받겠다고 밝혔다. 해산 당시 이 선교회 신도 숫자는 약 8천명 정도였다. 보관하고 있던 헌금도 무려 25억원 가량이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휴거 예정일을 한 달 앞둔 그해 9월 24일 이장림은 마약 복용 혐의로 검찰에 붙잡힌 후(《동아일보》 1992.9.25. 이장림이 체포됐다는 기사), “사실은 나도 10월 28일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지는 않다.”라고 실토한 점이다.

8)  [이필찬 칼럼] ‘한국교회와 세대주의에 대한 단상(1)’


  •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18-1 401-51호(예관동, 비즈헬프)
  • 대표전화 : 010-7551-3091
  • 팩스 : 0540-284-309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지숙
  • 법인명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제호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03
  • 등록일 : 2018-06-15
  • 발행일 : 2018-07-01
  • 발행인 : 윤지숙
  • 편집인 : 윤지숙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oshuayoon72@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