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화 저, 『교사 진심이면 돼요』 북리뷰
오선화 저, 『교사 진심이면 돼요』 북리뷰
  • 박진기 기자
  • 승인 2018.08.14 11: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선화 저, 『교사 진심이면 돼요』 (좋은씨앗, 2018)
오선화 저, 『교사 진심이면 돼요』 (좋은씨앗, 2018)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다.

“다음세대가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혹은 “다음세대의 희망은 교사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 법한 말일 것이다. 온방각처에 흩어져 있는 여러 교파의 교회들이 다음세대를 살리고자 하는 몸부림 속에서 내거는 슬로건이다. 이와 같은 슬로건 아래 교단을 위시한 교회에서 행해지는 교사 세미나와 교육은 저마다 특성이 있을 것이나 처음 슬로건을 내밀었을 때와는 다르게 대부분 강사 한 사람의 ‘자기 자랑’으로 끝나고 만다. 적당한 ‘자기 자랑’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과한 자기 자랑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앞에 서 있는 강사 당신과 앉아 있는 교사 개인의 역량이 비교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교사의 사명과 역할이 무엇인지 가르치려다보니 다소 과한 모습으로서의 교사의 역할과 책임을 제시하게 되는 것에 있다. 그래서일까? 사역자는 저마다 1년을 지나보내며 연말이 가까울 때쯤 때 아닌 두려움과 초조에 휩싸이게 된다. 교사 한 사람이 그만 둘까봐 오는 염려와 불안인 것이다. 제 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사역자라 할지라도 교사 한 사람의 자리가 비게 될 때 이 자리는 누군가가 매꿔 줄 수 없을 만 큼 공허하다는 것은 사역하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교사 한 사람이 그 만 큼 중요한 것이 교회의 현실이다. 교회의 교사는 세상의 교사와 기준이 다르다. 제 아무리 명문대를 나온 사람일지라도 교회의 신앙생활을 수십 년 간 해온 초졸의 권사라 할지라도 모두가 교사가 될 수 있는 곳이 교회이다. 저자는 이러한 면에서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는 점을 서술한다.

진심, 사랑, 마음은 모두 진실 된 마음으로 통한다.

책의 3부는 각각 진심이면 된다는 것과 사랑이면 된다는 것 그리고 마음이면 된다는 것으로 서술된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교사 한 사람의 마음에 대한 문제임을 본다. 진심과 사랑 모두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만약 교사를 하는 것에 있어 지치고 힘든 이들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라! 그 어떤 책보다도 교사를 위로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필자는 이 책을 높이 평가한다.

앞 서 언급한 대로 교회의 교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구나 자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상 교회의 교사로 헌신하려 하지 않는 젊은 세대를 향해 교회의 어른들은 “우리 때는 안 그랬다며 옛날 옛적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한다.” 마음 아픈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이 말하는 옛날 옛적과 지금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사고'의 차이 즉 생각의 관점이 달라진 것으로부터 오는 차이인 것이다. 작금의 젊은 세대 만 큼 실속 있게 판단하며 생활하는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과거 어른들은 자신의 것을 희생하며 헌신하였지만 이것은 비단 젊은 세대에게는 어리석은 짓으로 보일 뿐인 것이다. 바라기는 무조건적인 헌신을 강요하던 그 옛날 모습이 이제는 보다 나은 모습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책 속에 서술 된 저자의 말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대부분 세상의 가르침에 지쳐 있어요.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는 진정한 평안과 사랑을 담은 진심을 선물해야죠.” 이 말은 더 이상 아이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어른인 교사에게도 해당된다. 세상의 가르침이 아닐지라도 세상의 일에 지쳐 있기 때문에 교회의 일이 버거운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사역자들이 더 이상 교사 대하기를 막 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필자부터 노력해야겠다.

과거 필자는 청년기를 보내던 교회의 교사가 되고자 4년의 시간을 ‘보조교사’라는 것으로 섬겼다. 당시 일했던 것을 지금의 말로 표현한다면 말 그대로 ‘열정 페이’였다. 소처럼 일했던 것 같다. 때려 칠까? 하는 유혹이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생각으로 버텼다. “하나님이 나 한 사람도 바꾸셨는 데 이 은혜를 꼭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사 한 사람의 노력 그러니까 인내로 18살 나이에 필자의 인생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었기에 필자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4년의 시간은 1년의 교사 생활 경험으로 끝났다. 그리고 지금 어느 한 교회의 전도사로 사역을 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쉬키루’라는 표현은 저자만이 사용하는 독특한 표현이다. ‘새끼’라는 말 품 안에 품는다는 뜻에 이 단어가 애석하게도 비속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쓰는 그 만의 표현이다. 저자의 사역은 청소년 반 그 중 문제아로 낙인찍히던 아이들과 소외 된 이들을 향한 사랑의 지속이다. “하나님이 저에게 영혼을 맡기시면 내 새끼인 거죠.”라는 말 속에서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태 속에 아이를 잉태하였을 때의 감정을 필자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저자의 다음과 같은 표현은 아이를 잉태함에 기쁨이 얼마나 큰 지 짐작 가능하게 한다. “아주 작은 점을 내 새끼라고 했을 때 아무런 의심이 없었던 것처럼 어떤 모습의 아이든 내 새끼로 주시면 내 새끼인 거죠. 의심할 여지가 없잖아요.”

지나온 나날들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갔다. 13살 시작 된 마음 속의 방황이 18살의 나이까지 지속 될 동안 수 없이 많은 눈물들이 있어왔다. 물론 필자의 눈물이 아닌 뒤에서 필자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부모와 부모의 간청으로 거절 못해 기도하던 성도님들의 기도이다. 소주 한 병 원 샷하며 예배는 드리겠다고 금요 저녁 예배에 가던 모습과 예배 마치면 담배를 태우고자 바로 튀던 모습 등. 그 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이유는 단 한 가지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수 많은 사례 중 어떤 아이의 고백, “선생님은 제 말을 들어주잖아요. 그러니까 교회에 오는 거에요.” 라는 아이의 말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이것은 어쩌면 필자가 집 안에서는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일 지라도 교회에 오면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이유이기도하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준다는 그 진심 하나가 아이들에게 흘러 들어가기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진심의 관계가 전달되기 위해서 공감과 신뢰 그리고 포용과 시간과 물질이 필요함을 저자는 줄 곧 말한다. 이 말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의 사람들이 교사에 대한 사명을 훗 날로 미루기도 한다. 그러나 작은 것 하나라도 베풀기 시작한다면 그 아이들은 표현하지 않으나 분명히 알고 있다. 선생님의 사랑을. 세상이 줄 수 없지만 교회가 줄 수 있는 분명한 것은 사랑이다. 이 사랑은 무조건적인 수용이며 다른 말로 포용이다. 이러한 것들이 교회만이 가능한 것은 교회 역시 예수를 통해 무조건적인 수용의 은혜를 수여받은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한 진심과 사랑은 모두 진실 된 마음으로 통한다. 교사에 1년의 수고는 결코 헛 되지 않다. 처음 교사로 임명 받던 때를 상기시켜보시라! 아이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생각해보시라! 힘이 들 때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교사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 그리고 마음이 너무 힘들 때 교사 개인의 기도 제목을 다른 교사와 교역자와 함께 나눈다면 마음의 고통의 짐이 덜어질 것이다. 이것은 적은 나이의 필자가 신앙생활을 견뎌 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하다. 누군가 나의 말을 들어주고 기도제목을 나눌 수 있다는 은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른다. 교사로 임명 된 교회의 모든 동역자들의 신앙이 늘 서로에 대한 위로가 넘쳤으면 한다.

갈무리하며

책 속의 저자는 교사에 대해 말하며 어떻게~ 어떻게 하라는 방법을 말하지 않았다. 책의 구성 된 3부는 모두 ‘진심’을 강조했다. 비록 저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비전반을 만듦으로써 아이들을 양육하였으나 그녀의 사역은 결코 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 안에 고아와 과부가 없는 것과 가난하며 소외 된 이웃이 없는 것을 연민하며 잃은 양을 찾아 다녔다. 저자의 이러한 열정 앞에 사역자인 필자는 몹시 부끄러웠다.

예수의 가르침 안에 누가 내 이웃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대목이 너무나 많았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이르는 목회와 사역 안에 과연 이웃의 자리가 남아있는지 끝까지 고민해 가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교회’를 생각하며 필자가 고민하게 되는 작금의 교회의 모습들 그 중 부정적인 현상들은 ‘신학’을 잘못 이해 한 것에 있다고 본다. 신학은 너무나 분명히 간결하게 서술되며 진술되었다. 그러나 그 뜻을 잘못 이해하며 전한 필자를 포함한 이 땅에 모든 ‘교사’들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사실 남 탓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제 서른도 채 되지 않는 필자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나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 따라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의식’을 가져야 하기에 필자의 잘못 역시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남은 생에 만나게 될 수 많은 인연들과의 교제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연해 있는 개인주의로 인한 잘못 된 인식들이 하나하나 깨뜨려지기를 성령께 간구하고자한다. 물론 필자 스스로 먼저 깨뜨려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자기부인’이 있을 때 ‘다음세대를 살리는 교사’가 될 것이며 이러한 교사들로 인해 교회는 희망이 넘칠 것이기 때문이다!

 


  •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18-1 401-51호(예관동, 비즈헬프)
  • 대표전화 : 010-7551-3091
  • 팩스 : 0540-284-309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지숙
  • 법인명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제호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03
  • 등록일 : 2018-06-15
  • 발행일 : 2018-07-01
  • 발행인 : 윤지숙
  • 편집인 : 윤지숙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oshuayoon72@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