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교수의 『공동서신의 신학』 : 베드로전서에 관한 이야기
채영삼 교수의 『공동서신의 신학』 : 베드로전서에 관한 이야기
  • 박진기 기자
  • 승인 2018.08.15 12: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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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양심'이 우리에게 남기는 숙제
△백석신학대학원 채영삼 교수/  『공동서신의 신학』(이레서원, |2017년)
△서울 방배동 백석대학교에서 채영삼 교수/ 『공동서신의 신학』(이레서원, |2017년)

베드로전서가 포함 된 ‘공동서신’에 관한 연구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채영삼 교수의 『공동서신의 신학』 은 책의 부제와 같이 “세상 속의 교회, 그 위기와 해법”을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과연 ‘베드로전서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신학적 의미를 발굴해 낼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채영삼 교수는 그의 책에서 베드로전서의 수신자가 그들의 본향인 하늘로부터 쫓겨나 이 세상에서 잠시 거주하는 외국인이요 낯선 자들이라는 것과 대체로 사회에서 소외되어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이는 곧 베드로의 편지를 수신하는 교회가 나그네임을 말한다.

 

1. 베드로전서의 배경

베드로전서 1:1에서 수신자들이 처한 배경으로 언급된 지역들은 대체적으로 헬라화가 많이 진행되었으며 로마의 행정력이 잘 유지되었던 지역들이다. 어쩌면 이 지역들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들이 주변 사회와 갈등을 빚은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지역과 교회가 겪은 갈등이 로마 당국의 공식적인 핍박의 시기를 암시한다고 볼 근거는 희박하다.

비록 네로 황제가 화재 사건의 희생양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지목하고 공식적으로 ‘범죄자’취급을 했을지라도 로마정부가 대대적으로 교회를 적대시하기까지 그 갈등 관계는 오랜 세월 동안 소강상태였기 때문이다. 채영삼 교수는 대략 3세기까지는 로마 정부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대응적인 자세로 일관했음을 지적한다. 또한 베드로전서가 전제하는 세상과의 갈등이나 핍박의 본질적인 성격은 대대적인 핍박의 상황이 아니라, 점증하는 일상적 차원의 갈등, 이질감, 충돌의 경우로 보는 것이 합당함을 전한다.

 

2. 베드로전서가 전하는 세 가지 본질로서의 교회

먼저 채영삼 교수는  ‘세상’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단어인 코스모스의 용례에 주목한다. 비록 2:10과 5:9 두 곳에서만 직접적으로 위 단어가 사용되었을지라도 용어의 개념이 베드로전서에 편만해 있음을 주목한다. 첫 째 단락에 해당하는 1:1-2:10은 성도의 구원과 교회의 사명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세상’에 관한 개념이 사용되며 특히 1:18-19과 2:3-10의 문맥은 ‘산 돌’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집으로 지어져가는 교회론이 펼쳐지는 점에 있어서 베드로가 전하는 교회론은 ‘세상’과는 다른 즉 구별 된 모습으로서 본질을 통찰한다.

베드로가 전하는 교회의 소속은 세상과 구별되는 것에 있다. 이는 교회가 부르심을 받아 따로 빼내어진 존재라는 사실로부터 온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는 말씀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임을 천명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요구하시는 것은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교회와 하나님 간에 갖는 이러한 생명적 관계를 베드로는 그들이 ‘썩지 않는 씨’ 곧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베드로가 수신자들을 묘사하면서, 교회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두 번째 특징으로 나그네라는 단어를 꼽는다. 세상이었다면 이제는 나그네인 것이다. 이 말은 하늘로부터 분리되어 구별 된 교회의 정체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교회는 언제나 세상에서 ‘낯설게’ 되어 있다는 점과 반드시 이 세상을 ‘지나가야’만 한다는 점에서 나그네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맞이해야 할 길은 행복이 넘치는 번영의 길이나 그 과정 가운데에는 반드시 고난과 죽음이 있는 부활의 길이다. 혹자는 이러한 길이 예수께서 먼저 걸어가신 고난과 슬픔의 길 즉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 한다.

베드로가 교회를 묘사함에 있어서 제시하는 교회의 본질로서 세 번째는 ‘흩어진 자’라는 것에 있다. 교회가 불러냄을 받은 것과 체류하는 외국인과 같은 정체성을 가졌다는 사실이 사회적, 문화적 관점에서 이해가능하다면 이제는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 교회는 반드시 흩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들이 포로 됨으로써 흩어진 나그네로서의 삶을 반복해왔음을 증명해준다. 따라서 교회 역시 흩어진 나그네로서 이방 열국들 가운데로 흩어짐으로써 그 가운데에서 ‘꽃 피어 남’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흩어진 이라는 단어 디아스포라가 전하는 뜻이다.

 

3. 예수의 순종 따라 교회 역시 순종해야한다.

교회는 세상을 반드시 지나가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어떤 방법으로 지나가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좋은 표본으로써 예수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본다. 이 흔적은 2천 년 전 교회와 세상을 위해 이 땅에 임하신 성자 하나님 곧 예수의 성육신의 모습이며 십자가 매달리심으로 우리에게 임한 신적인 영광이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무수히 많은 선교학자들로부터 선교의 시작이라 일컬어진다.

예수께서 세상의 오심이 아버지로부터 온 명령에 대한 순종이라면 교회가 따라야 할 순종은 베드로전서에 진술 된 것과 같이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채영삼 교수는 베드로전서 1:2에 나타나는 '거듭남', '그리스도의 사역', '복음을 들음/순종', '성령의 역사'와 같은 모티브들이 22절에서 새롭게 반복된다고 말한다. 이제 22절에서 서술되는 ‘진리를 순종함으로 거룩하여진’이라는 표현은 2-3절에서 표현 된 것과 같이 중생을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의 말씀을 통해 역사한 결과로 다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채 교수는 베드로는 끝까지 견디는 사랑을 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거룩하여진 사랑을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쩌면 끝까지 견디는 사랑이 필요함은 세상의 유혹과 핍박을 견디게 할 힘이 사랑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 모른다. 과연 지금의 교회는 베드로의 가르침대로 예수의 순종과 같이 순종하는 것 곧 말씀으로 거듭나고 있는지 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4. 세상 안의 교회는 누구의 교회인가?

책의 저자는 교회가 세상 속에 있음을 말하지만 필자는 교회가 세상 안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세상 속에 있는 교회라고 할 경우 교회와 세상간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필자는 세상 안의 교회가 누구의 교회인지로 논하고자 한다.

우리는 저자가 강조하는 것과 같이 2:9에서 베드로가 선포하는 교회란 무엇인가와 같은 주제가 어떤 상황에서 전해진 것인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이와 관련해서 이 주제가 로마 주변 사회에 흩어진 교회가, 그 거대하고 화려하고 매혹적인 로마라는 세상을 상대해서 선포한 내용임을 먼저 알아야한다. 이어서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는 점과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은 ‘말씀’안에서 자라나는 성도들을 가리킨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2:1-3).

베드로는 세상 안에 속해 있는 교회가 ‘살아 있는 돌(2:4)’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져 가는 살아 있는 성령의 전임을 선포한다(2:5-7). 그리스도는 살아있는 돌임과 동시에 거치는 반석 즉 부딪치는 돌이 되셨다.(2:8; 사8:14-15). 그를 거부한 백성은 돌에 걸려 넘어질 것이며 그를 믿고 순종한 자들은 ‘베드로’ 자신을 포함해서 이 반석 위에 선 교회가 되는 사명을 부여 받을 것이다. 이 말은 곧 택하심은 언제나 사명과 함께 주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택함 받은 것 즉 택하심은 더 이상 혈통으로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혈통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하나 됨 곧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한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실패가 전제되며 이제는 새 이스라엘로서 흩어진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택하신 족속’이라 할 수 있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된 한 족속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출애굽기 19장의 본문을 인용하며 교회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 안에 속한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을 받은 제사장 나라인 것이다.

 

5. 제사장 나라는 선한 양심 따라 움직인다.

베드로가 정의한 교회란 이미 ‘세상 속의’교회이다. 이는 곧 세상 안에 속한 교회라는 것이다. 이 교회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열방 민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사명을 받은 ‘제사장 공동체’(2:5)이며, 세상의 여러 민족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 따라 살아가는 ‘거룩한 민족’(2:15-18)이며, 하나님의 소유였으나 잠시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러나 성령의 거룩하심을 입어 구별 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1:2).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분리되어져있는 교회는 선한 양심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한다.

이와 같은 원리는 세속 국가 통치자들에 대하여 순복할 때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국가권력을 ‘그 자체로’ 부인하지도 않으며 반대로 그 자체를 적극적으로 우상시하지도 않는 점에서 바울과 베드로의 가르침은 서로 상반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보다, 베드로의 경우가 국가 권력을 인정하는 정도에 있어서 훨씬 더 소극적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로마서의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는 선명한 강조가 베드로전서의 본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선한 양심’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길이 된다. 채 교수는 3:8-22이 베드로전서에서 세상 속의 교회라는 주제에 관련해서 가장 웅장하고 가장 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본문임을 말한다. 또한 선한 양심에 관해 설명하며 그리스도와 방주 그리고 세례를 삼중 구조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교회가 가야 할 길의 선한 양심의 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방주를 통한 심판과 구원 그리고 세례를 통한 심판과 구원이 있은 후에 있을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확고해짐을 설명한다.우리는 이와 같은 저자의 설명을 통해 교회라는 방주는 선한 양심 따라 움직인다는 원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갈무리 하며

베드로전서의 처음 1:1은 ‘흩어진’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편지함을 서술하였다. 또한 베드로는 그의 편지를 통해 교회가 나그네임을 말하였다. 어떠한 이유에서 나그네라 하였을지는 아직까지도 많은 논쟁 중에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늘의 본향으로부터 잠시 분리되어져 나온 교회에 우리 모두가 성도로 속하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베드로는 세상과 종말, 그리고 교회에 관해 ‘이미’ 성취된 종말론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너무나 분명하게도 ‘소망’되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존재한다.

종말에 처한 교회는 ‘하나님의 은사와 능력’의 임재 가운데 거하며,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한다(4:7-11). 채영삼은 베드로전서의 종말론이 세상의 특징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라는 특징으로 죽음과 죄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강력히 대조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공통 된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 이루어진다는 것에 있다.

‘나그네’로서 세상을 지나가는 교회는 과연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수 많은 나그네들이 거할 만한 처소가 되고 있는가 우리는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가 접할 일들과 과정은 고난일 수 있다. 그렇지만 베드로가 전하는 고난의 때는 잠시 남은 때이며 이 기간이 결코 길지 않음을 강조하며 상기시킨다.

믿음의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한 교회인지 아니면 믿음의 세례 곧 선한 양심과 상관없는 교회로서 세상의 사명을 마치고 갈 것인지에 대한 숙제가 우리에게 남아있다. 베드로전서를 통해 책의 저자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쩌면 제사장 나라로서 교회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와 나그네임을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이지 않을까?

채영삼 교수의 말대로 교회가 제사장 공동체로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 곧 선한 양심의 길을 따라갈 때, 그 길은 세상으로부터 낯섦을 경험하는 고난의 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길을 걸어가셨건만 교회가 주저하고 있음은 어찌함인가! 잠시 때의 고난을 즐겨 받으며 영광의 영 되시는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심은 교회에 대한 기대와 사명이 잘 감당되어 질 때 일 것이다. 최후의 누릴 안식을 기뻐 맞이하는 지상의 모든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


한편 채영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총신대 신대원에서 목회학(M. Div.), 미국 미시간 주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Th. M.)을 전공하고, 시카고에 있는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마태복음을 연구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Jesus as the Eschatological Davidic Shepherd>는 독일 튀빙겐에서 분트 시리즈(WUNT 2/216, 2006; Mohr Siebeck)에 선정 출판됐다. 현재는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신약의 이해 시리즈 첫 번째 저서 『마태복음의 이해: 긍휼의 목자 예수』(2011년 기독교출판문화상 신학부문 우수상)를 시작으로, 한국 교회를 향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와도 같은 보배로운 저서인 『야고보서의 이해: 지붕 없는 교회』, 『베드로전서의 이해: 십자가와 선한 양심』(2014년 기독교출판문화상 목회자료부문 우수상)을 펴내며 꾸준한 저작활동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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