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진섭 교수
  • 승인 2018.09.0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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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그러진 욕망
사진작가 박재광(전공, Man of Action Studios)
ⓒ사진작가 박재광(Man of Action)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종종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수고한 지도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하는 말이다. 수고한 목사와 장로에게 하는 말이고, 성심껏 양떼를 돌본 리더에게 주는 감사카드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언뜻 보면 고마움을 겸손하게 전한 말인 듯 보인다. 하지만 이 말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런 뜻과는 정반대의 요소가 숨어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겉으로는 겸손한 감사의 말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의 중심에는 교만함이 한편에 똬리를 틀고 있는 말이다. 내가 주인이고 당신은 종인데, 당신이 종의 역할을 잘해주어 고맙다는 말이다. 모양과 행세는 겸손함으로 치장했지만, 속마음에는 내가 주인이고 당신은 종이라는 명제를 분명하게 새겨놓은 불편한 말이다. 심하게 생각하면, 상대가 나보다 낮은 사람임을 은근하게 규정하는 정치적인 의도가 내재된 말로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대부분 보통 사람은 이 말을 이런 의도로까지 쓰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을까? ‘섬기는 지도력이란 생각이 잘못 활용된 것일 게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 지도자처럼 자신을 높이지 말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참조. 23:1-12; 10:42-44; 22:24-27 ). 이런 가르침 때문에 교회는 섬기는 지도력을 강조했다. 리더는 섬기는 지도력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섬기는 지도력은 상식이 되었다. 그래서 쉽게 이 개념을 갖다 쓴다. 우리에게 섬기는 지도력을 발휘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런 생각이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로 표출되었다.

혹자는 이게 뭐 문제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분명 문제다. 상황의 앞뒤를 분간하지 못한 거친 말이고, 지도력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말이다. 몇 가지 예를 생각하면 이 말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예를 생각하자. 부모는 자녀를 돌보는 데 헌신적이다. 힘들고 천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느라 무릎 꿇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마치 종처럼 험한 일을 한다. 희생하며 섬기는 지도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어버이날에 자식이 그런 부모에게 저를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없다. 당연히 없다. 자식이 어찌 부모가 자기를 섬긴다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섬기는 지도력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그 섬김의 진정한 본이 되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22:27).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주님께 주님, 나를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럴 수 없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종이고, 주님은 주인이고 왕이시다. 낮은 자리에 있는 우리가 어찌 감히 주님이 우리를 섬긴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며, 다스리고,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당연하다.

교회 리더에게도 마찬가지다. 섬기는 지도력을 발휘하는 리더에게 어떻게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나? 오히려 우리를 잘 이끌어주고 돌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뭐가 잘못된 걸까?

(1) 입장의 혼동

뭐가 문제일까? 감사를 표현했는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문제는 입장을 혼동한 것에 있다. ‘너희 중에 섬기는 자로 있다.’라고 말씀한 분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를 섬기는 분이다.’라고 내가 떠들 수는 없다. 교회 지도자가 스스로 나는 성도를 섬겨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건 마땅하다. 하지만 교인이 우리 교회 목사는 나를 섬기는 게 당연하다.’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목사의 입장과 교인의 입장이 다르고, 예수님의 입장과 우리의 입장이 다르다. 내 입장에서 말해야 하는데, 리더의 입장을 내 말에 끌어들이면 안 된다. 우리 입장에서 말해야 하는데, 주님의 입장을 내 말에 넣어 버리면 안 된다.

(2) 부적절한 적용

또한 이는 부적절한 적용의 문제다. 내가 적용해야 할 자리에 남의 것을 넣어 발생하는 문제다. 내 입장에서 받은 것을 말해야 하는데, 상대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내 말에 넣는 오류에 빠진 거다. 나에게 적용하지 않고, 남에게 적용하는 오류에 빠진 경우와 유사하다. ‘나를 이끌어 주셔서, 도와주셔서,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상대가 해야 할 바를 내 말에 넣어 감사하다고 말하는 게 문제다. 철저하게 나를 돌아봐야 하는데, 철저하게 상대가 해야 할 바에 집중해서 생긴 문제다.

이와 유사한 문제는 곧잘 일어난다. 기독교인 경영자는 종종 그리스도인 직원들에게 헌신적으로 직장에서 일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인은 주님 앞에서 직장 생활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는 명목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것도 적용의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경우다. 그리스도인 경영자라면 경영자로서 자기가 어떻게 직원들을 잘 보살펴 줄 지를 고민하고 적용해야 한다. 직원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적용하는 것은 직원들 자신의 판단과 선택의 몫이다. 경영자가 신앙의 논리로 직원의 마땅한 입장을 말하는 순간, 그것은 힘의 논리가 된다. 소위 갑질의 논리가 될 수 있다. 자기 것을 말해야지, 남의 것을 말하면 안 된다. 아내와 남편에게 주는 바울의 두 가지 권면(5:22-24, 25-33)도 마찬가지다. 아내와 남편은 각각 자기 것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거꾸로 듣는다. 남편들은 아내 본문을 주목하고, 아내들은 남편 본문을 읽는다. 남편은 왜 아내가 이런 식으로 살지 않느냐 따지고, 아내는 왜 남편이 이런 점을 실천하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모두 적용의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3) 나 중심적 사고

궁극적으로 이 문제에는 나 중심적 사고가 그 밑에 깔려 있다. 오류의 근저에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습성이 있다.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부적절한 적용을 넘나들게 하고, 입장을 혼동하게 한다. 내가 취해야 할 입장을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데 자꾸 남이 해야 할 것이 커 보이는 건,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려는 잘못된 습관 때문이다. 나 중심적 사고는 입장을 쉽게 혼동하게 만든다. 그래서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의 문제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사라지고, 대신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입에 밴다.

정리하자.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나 중심적으로 사고하려는 욕망이 잘못된 적용 방식을 통해 입장의 변화를 교묘하게 감추게 한 채 나의 교만함을 포장하게 한 희한한 말이다. 이런 말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심심치 않게 쓰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감사를 표하는 말에 까지 우리의 잘못된 욕망이 은근히 반영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한국교회의 판단 능력이 이만큼까지 정상에서 멀리 벗어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말투 하나로 우리 모습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감사의 말 하나에도 우리의 잘못된 모습이 이렇게 은근하게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지경이 어디쯤 와 있는가를 가늠하게 하는 지표가 될 수는 있다. 이런 점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부디 감사의 말을 제대로 쓰자. 감사의 말을 잘 써서, 감사가 진짜 감사가 되게 하자. 그래야 감사가 진정한 감사로 살아날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이진섭 교수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www.ezra.ac.kr], 성경삶사역연구소 소장[www.BibleMinist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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