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싸울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 이진섭 교수
  • 승인 2018.10.08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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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기술
▲에돔과 모압을 통과하는 고대(古代) 길 왕의 대로에서...뜻밖에 눈(雪)을 만나다.  ⓒ윤지숙
▲에돔과 모압을 통과하며 요단강(江) 동쪽에서 남북쪽으로 뻗어 있던 고대(古代)의 길,
왕의 대로(King's Highway)에서 뜻밖에 눈(雪)을 만나다.  ⓒ윤지숙

살다보면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그 갈등이 커져 싸움이 되기도 한다. 가정에서도 그럴 수 있고, 직장에서도 그럴 수 있다. 사회에도 갈등이 일어 싸움이 생긴다. 나라 사이에 생긴 갈등과 싸움은 전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느 시대에도 갈등과 싸움은 있을 수 있다. 우리 시대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시대 누구든 이러한 갈등과 싸움에 직면할 수 있기에 이에 대처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다.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판단하며, 어떤 식으로 대처하며 살아야 하는지 잘 알아야 그 갈등과 싸움을 제대로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대응과 대처가 그다지 쉬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시대의 싸움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를 휩쓸고 간 논쟁과 싸움이 여럿이다. 그 중 하나는 표절 논쟁이다. 기독교계 뿐 아니라 문학과 다른 학문 분야에까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 교계와 학계의 치부이자 아픈 부분이다. 지적하려는 측과 정죄하려는 측, 변명하려는 측과 변호하려는 측이 날카로운 언어로,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논쟁하며 싸운다. 정의도 나오고, 망신주기도 나오고, 상황논리도 나온다.

역사 논쟁의 싸움도 있다. 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건지를 가지고 논쟁하며 싸운다. 논쟁을 넘어 벌써 큰 싸움이 되어버렸다. 한쪽이 힘과 권력으로 밀어붙였다가 다시 그 반작용 현상이 나타나는 중이다. 토론과 논의가 들어서야 할 자리에 권력과 힘과 정치의 싸움이 덥석 자리를 깔았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우리 사회를 온통 뒤덮고 있다. 진보와 보수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두 가지의 시각이다. 이 두 가지는 각기 장단점이 있어 상호 보완되어야 스스로의 장점과 역할을 잘 실현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는 제대로 토론하고 적절히 논쟁할 때 다양성은 진가를 발휘한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진정한 의미의 보수와 참 의미의 진보를 보기 힘들다. 진보와 보수의 극단적 싸움과 힘겨루기만이 거세다. 진정한 의미의 보수가 희박하고, 참 의미의 진보가 잘 안 보인다. 모두가 자기 진영 논리 싸움으로 밀고가기에 획일적 싸움이 판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문화 충돌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게 진짜 문화 충돌인지 뭔지 분명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자기들의 이익 극대화 때문에 벌어진 극단적 행동이 아니라고 누가 쉽게 말하겠는가. 이 볼썽사나운 싸움이 점점 커져가는 듯하다. 도대체 왜 이런 싸움을 해야 하고, 이 싸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극단적 싸움을 피할 수는 없는가?

 

어쩔 수 없는 싸움

사실 우리 인생에서 갈등과 싸움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생각이 다르면 방향과 길이 다르고, 길이 다르면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물론 방향과 길이 다르다고 굳이 갈등하며 날을 세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갈등이 되고, 또 그 갈등이 싸움으로까지 갈 공산이 있다. 갈등과 싸움이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일 수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갈등과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정체성을 지닌 존재이다. 예수님은 새로운 나라를 이루러 오셨고, 새로운 통치를 실현하려 오셨다. 이 세상 사람들과 이 세상 나라들이 결국 실현하지 못하는 걸, 주님께서는 이루신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실현하여 그분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세상 사람들은 이 나라를 싫어하고 대적하기에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세상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다. 싸움이 태생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싸움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싸움은 세상에서 생각하는 그런 싸움이 아니다. 색다른 싸움이기에, 싸움의 방법과 기술도 색다르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결정은 싸울까 말까가 아니라, 어떻게 어떤 식으로 싸울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싸움의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바르게 싸워야 진짜 싸움이 되고, 그래야 그 싸움에서 진짜 승리할 수 있게 된다.

 

싸움의 기술(1): 싸움 대상과 영역의 인식

싸우는 기술의 첫째는 누구와 싸우며 무엇과 싸우는가를 정확하게 규명하는 일이다. 싸움의 대상과 영역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싸울 대상과 영역이 잘못되면 싸움의 부작용만 커지고 싸움은 미궁에 빠진다. 피아(彼我)를 혼동하면 내가 당하고 오히려 패하기 일쑤다. 그냥 쉽게 내 앞에 있는 적과 싸우는 게 아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 되고 나와 함께 하지 않으면 다른 편이 되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간편하게 적을 가려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진리가 아닌 것과 싸우고, 공의가 아닌 것과 싸운다.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를 따르지 않고 싫어하는 세력과 싸운다. 영적 실체로는 사탄의 세력과, 현실에서는 진리를 버리고 불의를 행하는 자와 싸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비()진리와 불의가 꼭 상대편에게만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이다. 상대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다. 보수에게도 있고 진보에게도 있으며, 이 단체에도 있고 저 단체에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있고 다른 나라에도 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 자처하는 교회의 현실에도 있다. 하나님의 진정한 다스림을 거부하는 모든 것, 모든 곳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쉽게 싸움의 대상을 한 방향으로, 한 세력으로, 한두 단체로 규정하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 ‘

과 싸우는 건 분명하지만, 그 악을 단순한 몇 가지 규정과 설명만으로 간편하게 단정하는 건 위험하다. 악의 문제가 우리나라에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일하는 직장과 단체에 있을 수 있으며, 또 내가 속한 교단과 우리 교회에 있을 수 있다. 내 안에 악의 유혹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 나를 잠식해가고 있을 수 있다. 싸움의 영역과 대상이 이렇게 복잡하기에 그 대상과 영역 규정 또한 단순하게 땡처리할 수 없다. 싸움의 대상과 영역을 일마다 때마다 명확히 규명해야 진짜 싸움을 할 수 있고, 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싸움의 기술(2): 사랑의 선한 싸움

그 다음에 필요한 기술은 싸우는 방법과 모습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싸움의 대상과 영역이 특별할 뿐 아니라 싸우는 방식과 모습도 특별하다. 세상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과 다르고 세상이 싸우는 방식과도 구별된다. 그리스도인이 싸우는 방법과 모습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싸워 승리한다. 대적을 짓밟아 승리하는 게 아니다. 힘과 권력으로 억눌러 이기는 게 아니다. 상대에게 망신을 주고 상대를 비하해서 취득하는 게 아니다. 더 큰 악에 조그만 악으로 맞서 이기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싸움 방법은 세상 사람들이 취하는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우리를 한꺼번에 모두 멸하심으로 승리를 이루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힘과 권력이 없어서 십자가의 길을 내신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힘이 없고 약해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게 아니다. 참 힘과 능력이 있기에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다. 모든 영광과 힘을 가진 분이시지만 인간의 몸으로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이 모든 건 사랑으로 승리를 이루려하심이다. 예수님의 사건은 (, 성육신, 십자가와 부활 등 그분이 역사 속에서 이루신 모든 사건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승리하신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분은 사랑으로 승리하시고 사랑으로 통치하는 나라를 이루신다(1:13). 주님은 사랑의 계명을 주시며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 하셨고(5:43-44),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비난하는 자들의 죄 사함을 위해 기도하셨다(23:34).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승리하는 길을 이루셨고, 우리에게 동일하게 그 길을 가라 하신다. 그 길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싸움의 길이다. 열두 사도가 이 길을 걸었고, 사도 바울도 이런 사랑의 싸움을 하였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이 길을 사모하며 걸어갔다. 선으로 악을 이기며, 사랑으로 승리를 이루어갔다.

 

21세기의 그리스도인의 싸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이 길을 걸어야 한다. 진짜 싸워야 하는 싸움의 대상을 명확히 하고, 그 싸움에서 사랑으로 승리하는 길이다. 내 입장을 살리려고, 내 편에 유리하게 하려고 논리를 짜 맞추려는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 나와 우리 무리의 진영 논리로는 진짜 싸움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의 길을 미화하여 정의라고만 추켜세우는 걸 조심해야 하고, 권력과 힘으로 상대를 억누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미디어를 불의한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망신주기로 반사이익 얻는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경고를 깊이 새겨야 한다. 사랑과 선으로 불의와 악과 싸워야지, 불의와 불의가 싸우고 악과 악이 싸우게 해서는 안 된다.

21세기 그리스도인에게는 행동 하나, 태도 하나가 조심스러워야 한다. 권력과 폭력이 이기는 힘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리적 폭력과 언어폭력이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된다. SNS에 함부로 말하는 걸 조심해야 한다. 나를 드러내며 나의 정의를 과시하려는 욕망과 배경을 억누를 줄 알아야 한다. 사랑으로 불의를 이기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이 얼마나 고단하며 힘든 일인지 깊이 새겨야 한다.

승리는 쉽게 오지 않는다. 악은 쉽게 쓰러지지 않고, 불의는 그렇게 쉽사리 망하지 않는다. 온 우주의 하나님께서 이 땅 험악한 악의 현장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고단하게 사시고 사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하는 이유를 우리는 깊이 새겨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십자가의 예수님을, 그런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싸움은 사랑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사랑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다. 사랑으로 이기지 않는 승리는 모두 가짜일 뿐이다. 사랑으로 이길 때 진리가 승리한다.

이진섭 교수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www.ezra.ac.kr], 성경삶사역연구소 소장[www.BibleMinist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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