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채 목사_'위기 시대의 바른 목회' 발표논문 전문
정주채 목사_'위기 시대의 바른 목회' 발표논문 전문
  • 정주채 목사
  • 승인 2018.10.30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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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시대의 바른 목회'라는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는 정주채 목사​
▲​'위기 시대의 바른 목회'라는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는 정주채 목사​ ⓒ안명준 교수(평택대)

한국교회가 전반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시대적 사회적 환경이 부정적임과 동시에 적대적으로 급변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교회 자체가 타락하여 믿음의 역동성을 잃고 있는데다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고 욕을 먹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에 이미 시작된 양적인 쇠퇴가 앞으로 계속 가속되어 한 세대가 더 지나기 전에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될 전망이다.

이원규 교수는 한국교회의 쇠퇴에 기여한 그리고 기여하게 될 요인들로 경제성장, 정치적 안정, 복지수준의 향상, 인구증가율 급감, 고령화, 도시화 등을 들었다.1) 세계적인 추세 역시 만만치 않다. 이문장 목사는 21세기 기독교가 전례 없이 힘겨운 과제들을 안고 있다고 말하며 그 난제들을 다섯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세계 지성계의 흐름이 기독교에 적대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 위기를 맞고 있다.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과 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없다. 셋째, 기독교에 대한 그리스도인 자신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는데 곧 기독교 내부자들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일이 신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넷째, 기독교 진리에 대한 이해나 실천이 경박하고 피상적으로 되었다. 다섯째, 기독교의 지리적 확장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감지되고 있다는 것 등이다.2)

본 논문에서는, 이미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더욱 두드리러지게 드러나리라고 예상되는 목회의 환경적 위기와 어려움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간단히 살펴본 후 이런 위기적인 환경 속에서 목회자들이 어떻게 준비하고 사역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려 한다.

 

Ⅰ. 위기시대의 목회 환경

1. 외적 위기

1-1. 인구감소

인구감소와 노령화는 교인수의 감소와 노령화에 직결된다. 이원규에 의하면 교회성쇠에 영향을 미치는 인구학적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출생률과 개종이다. 그가 가진 통계에 의하면 2000년의 경우 세계 기독교인의 증가는 5,650만 명으로 증가율 2.79%를 보이고 있는데, 이 가운데 출생에 의한 증가는 3,660만 명(65%)이고 개종에 의한 증가는 1,990만 명(35%)이라고 한다. 이로 보면 기독교인의 증가는 개종에 의한 증가보다는 출생에 따른 자연증가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출생률에 의한 인구증가율은 교회성쇠와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있다"고 결론하였다.3)

위의 통계자료들을 한국교회에 연결시키면 한국교회의 미래가 아주 어둡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출생률이 낮은 나라이다. 7-80년대에 정부가 산아제한을 시작한 이래 교회들마다 주일학생수는 이미 거의 반토막이 났고4), 더 안타까운 사실은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들이 40%나 된다고 하며, 주일학교에서 자란 청소년들도 성년이 되면서 교회에 남는 수는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1-2. 경제상황의 변화

종교와 경제는 완전히 다른 분야 같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다.

이원규는 박탈-보상 이론을 소개하면서 이 이론은 어떤 사회경제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더 종교적인가하는 문제를 잘 설명해준다고 하였다.5) 곧 경제․사회 영역에서 박탈을 경험한 사람들, 경제적으로 가난하거나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이 더욱 종교에 의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수준과 교회성장과의 관계는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말하며 그 예를 들고 있다. 곧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년 기준으로 1,000달러 미만인 나라들(82개국) 가운데는 1900-2000년 사이에 교회가 성장한 나라가 76.8%나 되지만, 교회가 쇠퇴한 나라는 6.1%이 불과하다.

반면에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이상인 나라들(52개국) 가운데는 같은 기간 동안 교회가 성장한 나라는 26.9%인데 반하여 교회가 쇠퇴한 나라는 42.3%나 되고 있다. 따라서 그 동안 교회의 성장은 주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에서 이루어진 반면에,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들에서는 교회가 쇠퇴하는 경향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하였다.6) 이런 경향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드러난 사실이다.

최윤식 교수는 여기다 한 가지 더 보태고 있는데, 곧 경제가 발전하여 생활이 부요해지면 신앙이 식어지고 경제가 어렵고 불안해지면 헌신이 줄어드는 현상이다. 그는 앞으로 한국경제는 고용의 불안정성이 점점 커지고 일자리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면서 따라서 직업과 고용의 불안에 쫓기는 교인수는 늘어나고 교회사역에 헌신하는 교인수는 줄어들 것이며, 동시에 헌금이 줄어들어 앞으로 한국 교회 내에서의 가장 큰 갈등의 이슈는 재정집행과 부채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7)

 

1-3. 대체종교의 발달

이 역시 이미 시작되었지만 미래에는 다양한 형태의 대체종교들 - 레저산업이나 스포츠 등이 더욱 발달하게 될 것이고, 이는 기성종교에 대한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기계처럼 돌아가는 직장생활의 일상을 벗어나 잠시나마 열광하고 즐기는 일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들은 거기서 구속(救贖) 곧 해방과 자유를 체험하고 에너지를 충전한다. 필자가 시무하던 향상교회의 경우 주일이 포함된 연휴가 되면 평소 주일출석교인의 약 10-15%가 줄어들었다.

 

1-4. 과학의 교만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크게 편리하도록 향상시켰지만 이제는 아주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영역에까지 접근하고 있다. 동물복제가 일반화되면서 인간복제도 가능하다는 것이 공공연히 인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은 각 나라들이 줄기세포로 신체의 일부분을 복제하는 것까지만 허용하고 있지만, 이 시간에도 누군가가 감시의 눈을 피해 인간복제를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자연과학의 발달은 사람들이 미신을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지만 동시에 종교를 파괴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과학은 또 하나의 종교가 되어 많은 지성인들로 하여금 신의 존재에 대한 신앙과 구원의 소망을 포기하도록 몰아가고 있다. 낸시 피어시는 그의 책에서 과학자들은 “과학으로 종교의 종말을 돕는다면 과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여가 될 것이다.”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고 썼다.8) 이 시대는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실감나는 때이다.

 

1-5. 다원화 사회

현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다원화되었다는 것이다. 현대는 각 나라와 민족들의 문화적인 다양성과 각 개인의 개성들이 인정받고 존중되는 사회이며, 수많은 종류의 상품들이 쏟아져 나와 선택의 폭이 아주 넓어졌고, 종교 역시 다원화되고 있다. 미신으로 취급받던 종교들까지도 오히려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고, 반대로 기독교의 교리는 독단적이고 배타적이라는 비난에다 거부감마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절대성보다는 상대성, 단일성보다는 다양성, 합리성보다는 감성 등이 더 강조되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과 다원주의는 분명히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양성은 다원주의를 격려한다. 글로벌 시대의 상황은 다양성과 다원성을 격려하는 흐름 속에 있고 이런 현대의 다원화된 문화는 종교 다원주의와 직접적인 관계 안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은 심대하다. 다원주의는 진리의 절대성을 부인하기 때문에 특히 유일한 하나님, 유일한 구세주, 유일한 복음을 믿는 기독교 신앙에는 가장 강력하고 직접적인 도전이 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는 현대사회로부터 세계평화와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해 독선적인 교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과격하고 위협적인 요구를 받고 있으며, 기독교 내에서까지도 배타적인 복음 곧 메시야의 유일성과 독특성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젊은이들에게 강한 유혹이 되고 있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강조되는 문화 속에서 그것들을 즐기며 사는 청소년들이 “왜 꼭 기독교만이 구원의 종교냐?”고 물을 때 그들 문화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을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 내적 위기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외적인 위기들을 간단히 살펴보았지만 가장 심각하고 결정적인 문제는 교회 내부에 있다. 한국교회가 타락하였고 이 타락은 당분간 가속될 것이며, 이로 인해 한국교회가 이미 사회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전도와 직결돼 있고 교회의 미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다.

이문장은 “기독교에 대한 한국인들의 배타적인 정서가 서서히 형성되고 있고 또한 확산되고 있다. 민심을 끌어당기는 감화력은 점점 상실되고, 오히려 교회가 일반인들에게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9)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평가도 이미 10여 년 전의 평가라서 오늘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온정적인 평가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차츰 증오의 대상이 돼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불신이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한국교회가 물량주의적인 성장주의에 휩쓸리면서 기독교신앙의 동력이 상실돼왔는데, 이 영적인 쇠약이 윤리적 타락으로 이어져 오늘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회적 불신은 교회의 불신앙에서 비롯되었다. 교인들의 신앙이 약화되면서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불신은 강해졌다.

그런데 더 답답한 일은 한국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스스로 자해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혹은 인식은 하고 있지만 어떻게 이를 극복해야 할지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고, 그러면서 무력감에 빠져 있는 지도자들도 많다.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추락시키고 있는 요인들이 무엇인가? 이미 대부분 상식처럼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확인하는 차원에서 몇 가지만 정리해보려 한다.

 

2-1. 목회자의 과잉배출과 질적 저하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신학교의 난립이다. 그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10) 결과 목사의 양산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짐과 동시에 목사의 도덕적 영적 성품과 자질은 심각하게 저하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 이런 상황을 알고 있지만 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나 자정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교파분열로 신학교가 계속 세워지고 있는데 이를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는 그 어떤 기관도 없을 뿐 아니라 방법도 없다. 교파분열이 교리나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패싸움(?)의 성격이 크기 때문에 자파의 신학교를 따로 설립할 이유가 없는데도 교파주의의 연장으로 신학교를 세운다. 둘째는 일단 신학교가 설립되면 "유지관리를 위한 재정자립"이라는 현실적인 요구에 매여 학생 수를 조절하거나, 자격자를 선발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설사 규모 있는 신학교에서 학생을 선발한다 해도 낙방한 학생들이 목사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어느 신학교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몇몇 신학교가 학생을 선발한다 해도 한국교회 전체로 보면 선발이 아무 의미가 없다.11)

결국 자격이 없거나 질 낮은 목사들이 계속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그리고 교회는 영적인 공동체임으로 교회갱신은 제도나 법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구성원들의 영적인 성숙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의 자질 저하는 교회의 타락과 직결된다.

이와 같이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자격이 없는 목사의 양산이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제도나 법의 문제를 뛰어넘는 근원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참으로 답답한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그 가능성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 교파의 분열을 막고 신학교의 난립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현재 무임목사나 미자립교회의 목사들에게는 복음전도와 하나님나라를 위한 헌신이라는 사명감을 새롭게 하거나 목회자로서의 영적 권위의 회복을 논할 여유가 없다. 거의 60% 이상의 목회자들이 생존을 위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있고, 이런 목사회자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요즈음은 복음전도의 사명보다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 되고 있는 "생계형" 목회자들이 늘고 있다.

 

2-2. 계속 터져 나온 대형교회 목사들의 대형사고

한국교회 신뢰도 추락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교회 내에서 일어난 윤리적 대형 사고들이다. 목사들의 성적인 비리들, 재정사고 곧 횡령과 배임으로 입건되거나 구속되는 목사들, 담임목사직 세습12), 총회장이나 어떤 직책을 맡겼다고 정치인들 이상으로 타락한 선거운동을 벌이는 목사들, 남의 설교를 그대로 베껴서 설교한 목사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아무 다를 바 없는 신자들의 행태가 한국교회의 윤리성에 먹칠을 해왔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불신자들은 기독교에 대한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대했던 것들에 실망하게 되면 분노한다. 불신자들은 교회 밖에 있지만 그래도 기독교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있다. 그들은 교회를 바라보며 “진리체득의 치열함, 자기를 부정하는 모습, 이타적인 사랑의 실천, 세상 가치관을 뛰어넘어 사는 사람들, 이 세상에서 누리는 재물과 명예와 권세에 초연한 모습,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는 자세 등”13)기대한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는 정반대되는 사고들이 터지게 되니 실망을 넘어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대형 사고를 낸 목사들은 소수다. 그런데도 한국교회의 신뢰도에 미친 영향은 측량키 힘들 정도다. 한국교회에도 “숨겨진 7천명” 같은 선량한 목사들이 많이 있지만 이들의 존재는 드러난 소수 목사들이 저지른 사건들에 함몰되어 버리고 만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소수의 나쁜 사건들이 가져오는 악영향에 대해 이원규 교수는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존경과 신뢰에 대한 보다 중요한 척도는 친사회적 행위를 얼마나 하는지가 아니라, 반사회적 행위를 얼마나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타주의와 같은 행위가 종교인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일탈과 같은 행위는 철저하게 하지 말도록 요구되는 사항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 따라서 종교의 도덕성 수준 평가는 긍정적 기준보다 부정적 기준에 더 의존하는 것 같다. 즉, 종교인에게 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도덕성은 좋은 일을 하는 것보다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다.”14)라고 말했다.

 

2-3. 교회 분열

교회가 사회로부터 불신을 당하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문제는 교회의 분열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계속되어온, 그러기에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문제이지만 복음의 영광을 가리고 전도의 문을 막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이다.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한국교회의 교파 수는 대략 4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열의 역사는 갈등의 역사이다. 교회의 갈등은 교회 내의 영적 에너지를 고갈시킬 뿐 아니라 교회 밖으로부터 온갖 비판과 조롱을 당하게 만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니 교회의 본래적 정체 회복 곧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일을 위해 연합운동은 계속돼 왔지만 그런 운동이 오히려 역기능을 한 경우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다. 근년에 와서 한기총이 교회 안팍에 끼친 해악은 이루다 말할 수가 없다. 한기총은 목회자들의 세속화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백일하에 드러나게 만든 연합체였다. 거기다 한기총을 대신하겠다고 조직된 한국교회연합회(한교연)와 한기총과 한교연을 묶어 하나로 만들어보자고 조직한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는 결국 연합기관을 세 개로 만드는 결과만 가져왔다.

교회의 분열은 교회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영적인 힘을 고갈시켰으며, 사회적 불신을 자초하고, 이단이 창궐할 수 있는 온상을 만들었다.

 

2-4. 이단 종파들의 득세

우리나라의 기독교인 수는 870만 정도인데, 이 중에는 이단 종파의 신도들도 포함돼 있고 그 숫자는 대략 150-250만 명이라고 한다.15) 최하 150만 명이라고 가정해도 17.2%나 되는 큰 숫자이다. 이들이 한국교회의 공신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역시 심대하다. 불신자들은 기독교와 이단종파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단들이 저지르는 반사회적 행태는 그대로 기독교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가장 생생한 예가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난 기독교복음침례회란 이름의 구원파이다. 세월호의 침몰로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 참혹한 사건이 한국교회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은 이루다 헤아릴 수가 없다. 특히 구원파의 거두 유병언과 그 일가가 세월호 사건의 배후 인물들이고 실제적 도의적 책임자들인데, 이들이 검찰의 수사를 피해 도주함으로써 그들의 반사회적 행태는 몇 배나 더 부각되었었다. 구원파와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한국교회가 덧입게 된 부정적인 이미지는 국민들의 가슴속에 지어지지 않는 기억으로 계속 남을 것이다.

 

2-5. 더 근원적인 문제들

교회가 당면한 위기의 더 근본적인 원인은 지도자들의 잘못된 사상과 신앙이다. 그 첫째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신앙고백의 허약함이요, 다른 하나는 교회의 물량적 성장주의다.

 

2-5-1. 그리스도의 주되심(the Lordship)에 대한 신앙고백의 허구

그리스도가 만유의 주시며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의 바탕이요 기둥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경우 입으로는 “주여, 주여”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주되심을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셨다고 말하면서도 삶의 현장에서는 모든 일의 주관자가 자기 자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님을 마음의 어느 한 곳에 모셔놓았을 뿐 모든 일의 최종적인 결정은 자신이 한다. 개인도 교회도 범사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찾지 않고 사람들의 의견과 주장을 찾아 따른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신앙 약화는 모든 악의 근원이 되고 있다. 인본주의, 현세주의, 물질주의가 모두 여기서 나온다. 특히 이것은 교회의 영적 권위를 추락시켜버렸고 신자들은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권징이 사라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교회의 치리회가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을 따라 선악을 분별하려는 의지가 없는데다 영적 분별력도 잃어버렸다.16) 그리고 교회의 결정이 신뢰를 받지 못하므로 아무런 권위가 없다.

그래서 신자들뿐 아니라 목회자 자신들도 교회의 판단과 치리를 신뢰하지 않는다. 지금은 교회도, 신자 개인들도 모든 문제를 국가의 사법기관으로 가져간다. 따라서 지금 한국교회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일반 법정의 판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7)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경외하는 일이 얼마나 허약하며 허구에 차 있는지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2-5-2. 물량적 성장주의

교회의 본질적 특성을 변질시키고 훼손하는 악한 사상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한국교회의 경우 가장 현실적이고 대표적인 것으로 성장주의를 들고 싶다. 성장주의가 한국교회에 미친 악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장주의가 한국교회를 이렇게도 깊이 병들게 만들었음에도 사람들이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교회 성장 자체는 선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고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목회자들이 이를 명목으로 삼아 교회성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나아가 자신들의 공로를 자랑하고 세속적인 명예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러면서 성장주의가 교회의 교회됨을 파괴하고 부흥을 왜곡시키며 진정한 성장을 가로막는 악이 되었다. 곧 교회성장 운동이 바벨탑 운동이 된 것이다. 바벨탑 운동은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는 운동이다. 즉 ‘교인들을 많이 모으고 교회당을 크게 짓고 유명해지자’는 운동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자기 목회의 성공과 명예를 위해 혈안이 되어있고 성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해 설교나 전도를 장사하듯 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목사나 교회들이 교인 수를 과장한다. 더구나 회개도 없고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세례(침례)를 베풀고, 헌신과 충성을 바라며 교회 직분을 매매하듯 한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사역"은 말뿐인 경우가 많고 속내는 큰 교회로 성장시켜 유명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유명함에 따라붙는 것은 권력이다. 일부 교회의 목사들 중에는 교회의 주이시며 동시에 만유의 주이신 그리스도보다 더 큰 영광과 힘을 과시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Ⅱ. 바른 목회

대략적으로 살펴보았지만 한국교회는 안팎에서 몰락의 위협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여기에 대해 뜻 있는 교계지도자들의 생각은 아주 비관적이다.

경동교회 채수일 목사는 지난 7월 17일 ‘한국교회의 위기와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 발표회에서 “한국교회의 이 위기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한국교회를 어떻게 개혁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며 “알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성령훼방죄다.”라고 한탄했다.

같은 발표회에서 손봉호 교수는 “이런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번하다. 위기를 느끼고 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번한데도 그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위기가 온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것은 죄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죄인이 자신의 죄를 의식하게 하는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위기를 해결할 방안도, 목회자들로 하여금 위기를 느끼게 할 인간적 방안은 없다고 하는 것이 정답이다.”라고 했다.18)

그리고 이어진 토론회에서 그는 “한국교회가 모든 것을 다 잃고 폭망(완전히 망했다는 신조어)했을 때에야 살 길이 생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회복의 길은 전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람에게는 길이 없으나 하나님께는 있다.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으나 하나님께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고후 1:18). 그리고 위기의 때에도 남은 자들은 있다. 또 위기의 때일수록 정공법으로 정면 돌파해야 한다. 2000년 이상의 교회역사 가운데는 수많은 외적 내적 위기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교회는 다시 일어섰고 복음의 역사는 계속돼 왔다.

이문장 목사는 기독교가 처한 오늘날의 상황은 초대교회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첫째, 기독교를 감싸고 있는 환경이 호의적이질 않았다. 둘째, 초대교회는 종교적 다원적 상황이었다.”19) 사실 초대교회의 사회적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았을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적대적이었다. 물론 초대교회는 타락하였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적대적인 대우를 받은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유는 반대였지만 그들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당하고 있는 일반사회의 적대적인 시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폭력적인 위협을 당했다. 생사여탈의 위협 그 자체였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런 위협적인 환경에 압도되지 않았다. 초대교회는 그런 상황을 극복했을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정복하였다. 당시 기독인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었고(히 11:38a), 그들에 의해 복음은 요원의 불길처럼 온 세계로 퍼져나갔다. 기독교를 누르고 핍박하던 세속적인 모든 권세의 집합이고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제국은 어느 날 기독교 나라로 바뀌어있었다.

필자는 이런 초대교회의 역사에서 한국교회의 미래목회의 희망과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대책은 오히려 단순해진다. 정공법으로 나가는 것이고 정로를 따라 걷는 것이다. 본질을 찾고, 기본에 충실하고, 그리고 단순해져야 한다. 필자는 이런 관점에서 우리 목회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들을 몇 가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1. 복음의 재발견

바울 사도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18a)이지만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21b)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고 거듭 다짐하였다.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일은 복음의 능력을 알고 체험하고 확신을 갖는 것이다. 복음이 죄로 인해 모든 비참과 저주에 빠져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확실하고 완전한 대책임을 믿는 것이다. 이런 확신이 있어야 종교 다원주의와 인본주의를 이기고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세울 수 있다. 초대교회가 오늘날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에 있었지만 결국은 세상을 이기고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복음자체에 다이내믹한 능력이 있었고, 복음사역자들에게는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확신이 있어야 헌신이 나온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2. 소명의 재확인

목회자는 소명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복음사역자로서 의식주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믿음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이는 목회자들에게 아주 당연하고 평범하게 요구되는 내용이지만, 시대와 환경이 하수상하기 때문에 자타가 이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 덩이 떡을 위하여 예언했던 선지자들처럼 생계를 위하여 목회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앞으로 이런 자들은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생계수단으로서의 목회는 생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목사가 되겠다는 사람들은 초대교회의 복음전도자들처럼 전적인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서구의 많은 교회들처럼 한국교회도 문 닫는 교회들이 많아질 것이고, 전도는 어려워질 것이며, 목사는 사회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가 되려면 안정된 생활이나 성직자에 대한 교인들의 합당한 예우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야말로 산제물이 된다는 헌신과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소박하고 다소 낭만적인 소명감은 이제 발붙일 자리가 없어졌다.

 

3. 하나님나라의 가치 재확인

개인이나 공동체나 혼란과 위기의 때에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목회현장이 어려울수록 먼저 해야 할 일은 사역의 우선순위를 확인하는 일이다. 목회자는 “이 세대”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20) 이 세상의 가치관, 즉 전통과 관습과 철학을 따라서는 안 된다. 그리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고 그것을 따라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우선적으로 가르치신 가치는 사람이다. 사람의 생명과 인격(인권)이다.21) 따라서 목회자는 교회의 양적 성장보다는 한 사람의 영혼을 우선해야 한다. 한 영혼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도록 하는 일에 먼저 헌신해야 한다. 나아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따라 이 땅에 하나님나라의 통치이념인 사랑과 의를 실현하는 일에 충성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가치실현의 방법은 섬김이다. 세상에서는 섬김 받는 자가 위대하다고 하지만 하나님나라는 그렇지 않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2-44)

이 섬김은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개인을 넘어선다. “속량의 복음”을 넘어 세상에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보여주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인데, 그리스도는 섬김을 통하여(막 10:45) 이를 이루셨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목회는 주로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져 왔는데 미래목회는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로 확장되어야 한다. 곧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사회적 책임에 목회적 방점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4. 교회의 재발견

성경적 교회론이 정립되어야 한다. 연구자가 부목사로 사역을 시작했던 잠실중앙교회는 교회의 분열과 갈등으로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그 때 필자는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 새삼스럽게 의문을 가졌다. 신학교에서 교회론을 공부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배운 내용들은 너무나 이론적이고 추상적이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 그리스도의 몸, 가시적인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등등의 내용들은 목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목회는 교회 안에서의 사역이고 교회를 섬기는 사역이다. 그런데 교회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목회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많은 젊은 목사들이 교회를 제대로 모른다. 필자가 바로 그러했다. 필자는 담임목사가 된 후에야 비로소 교회론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습으로 충분치 않아서 목회학 박사과정에 들어가 교회론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소그룹교회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교회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필자의 마음에 교회에 대한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졌을 때 그런 교회를 세우고자하는 열망이 불타올랐고, 목회의 구체적인 목표도 설정할 수 있었다.22)

교회론이 정립돼 있지 않으면 누구나 쉽게 성장주의 곧 바벨탑세우기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바벨탑운동의 이념이 무엇인가? 창 11:4, 이 한 구절에 답이 나와 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한국교회가 오늘에 이른 것은 바로 이 바벨탑운동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해서다.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교회를 재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는 교회를 세속으로부터 지키고,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필자는 “목회를 위한 교회론”을 주제로 소논문을 써서 발표한 적이 있다.23) 필자는 교회론의 본질적인 내용을 세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곧 멤버십(membership)과 리더십(leadership)과 펠로우십(fellowship)이다. 이것들을 성경에서 분명하게 찾아내고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 이런 내용들이 분명치 못하면 교회의 거룩성 - 교회의 교회됨 - 은 상실된다.
 

4-1. 교회의 회원(membership)

멤버십이란 “누가 신자인가? 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냐?”는 것을 규정하는 용어이다. 곧 교회 회원인 신자들의 자격과 수준을 말한다. 교회론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교회는 그 정체성(identity) 자체에서부터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현하 한국교회는 멤버십이 분명치 않다. 이것은 교회의 건강문제 정도가 아니라 교회의 교회됨 자체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이다.

교회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가리켜 “양의 문”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7-9)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를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만이 신자이고 교회의 회원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이름으로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전도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양의 문” 관리이다. 문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신자와 불신자의 구별이 없어지고 교회는 거룩성을 잃고 만다.

필자는 한국교회 타락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신앙고백이 분명치 않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 진정한 회개의 표도 없고 믿음의 증거도 없는 사람에게 - 단순히 “이제부터 신앙생활을 해보려 한다.”는 정도의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어 그런 사람을 교회에 들이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문을 철거해버리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중세 천주교가 교구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세를 베풀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선언했다. 그래서 세상과 교회의 구별을 없애버렸다.

오늘날도 수많은 목회자들이 복음을 얼마나 “값싼 은혜”로, “손만 들면 나누어주는 천국티켓”으로 바꾸어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세례는 회개의 열매가 있고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믿음을 가진 자에게 베풀어야 한다. 교회갱신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으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교회가 교회답지 못할 때 모든 영광과 권위와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위기시대의 목회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하고, 전도하고, 양육하고, 살피는 목회여야 한다. 그래서 멤버십이 분명해지면 교회의 영광과 권위와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필자는 멤버십을 분명히 하기 위해 세례(침례)를 받기까지의 준비를 비교적 엄격하게 시켰다. 먼저 예수님영접모임24)에 참석하여 예수님을 소개받고 그를 구주로 영접하도록 이끈다. 이어 12주 동안 담임목사에게 새신자교육(세례준비)을 받는다. 또 성경을 한 번 이상 통독케 한다. 가장 중요한 절차는 신앙고백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인데, 이 고백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수세준비가 끝난다.

 

4-2. 교회의 직분(leadership)

리더십이란 곧 직분자들의 자격과 그 수준을 일컫는 말이다. 교회의 주이신 그리스도는 교회에 직분자들을 세우시고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섬기게 하셨다. 그러나 오늘 날 한국교회는 직분과 그 사역에서 크게 타락하였다. 교회의 직분이 인본주의화 되고 세속적인 리더십으로 왜곡되어 버렸다. 한국교회의 타락은 중직자들이 이끌었다. 이제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직분의 본질적인 특성을 바로 찾아 세우는 것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두 번째 과업이라고 본다.

교회 리더십의 중심은 역시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교회의 사역자들을 그리스도가 부르시고 세우신다(엡 4:11)는 믿음과 섬기는 자가 위대하다는 그리스도의 교훈, 그리고 직분은 은사이므로 그가 공급하시는 힘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벧전 4:10,11)는 신앙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 목회자가 이런 성경적인 직분관을 분명하게 알고, 교회 일꾼들을 확실하게 교육하고 훈련해야 한다.

 

4-3. 공동체로서의 교회(fellowship)

펠로우십이란 교회가 얼마나 서로 일치하고 연합돼 있느냐는 것이다. 즉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인들이 영적인 가족으로서의 삶을 얼마나 공유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교회의 공동체성은 교회의 교회다움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교회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자들은 그 지체이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초대교회의 원형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사도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였고, 믿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여졌다. 그들은 성전에서 함께 모이기도 하였고, 각 집에서 모여 떡을 떼고 삶을 나누면서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소그룹교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교인들이 대부분 집에서 모였다. 신약성경에는 "0000의 집에 있는 교회"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집을 개방하여 교회를 시작하였고 거기서 전도와 예배와 양육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가정교회(the house church)였다.

유의해야 할 것은 이런 가정중심의 소그룹교회가 초기 교회의 잠정적인 형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선교초기의 환경적 요인 때문에 일시적으로 존재했던 교회가 아니라 이는 교회가 가진 본질적인 형태라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 시에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가정을 만드셨다. 하나님이 완전한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분이심으로 사람을 만들 때도 개체로 만드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만드신 것이다(창 1:26,27).

가정은 창조질서에 속하며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이다. 교회는 영적인 가정으로서 그리스도의 공동체이고 이 공동체의 기본단위는 소그룹으로 이루어진 가정교회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가정교회는 특수한 상황에서 시작된 일시적인 교회형태가 아니라 신약교회의 원형이다. 그리고 성도는 부정모혈이 아닌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형제자매이고 한 가족이다. 이것이 말로 아닌 삶으로 고백되고 확인되어야 하는 곳이 바로 가정교회이다. 시편 133편은 구약의 아름다운 교회론이다.

 

5. 교회분립개척 - 건강한 중소형교회 세우기

한국교회가 성장주의로 인해 타락과 침체에 빠지게 되었으므로 이를 극복하고 교회의 진정한 부흥을 이룰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대형교회를 지양하고 분립개척을 통하여 건강한 중소형교회를 많이 세우는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대형교회들이 많이 생길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대형교회로의 쏠림현장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교회분립을 통하여 대형화를 막고 교회의 건강성을 회복해야 한다.

 

5-1. 교회분립개척의 의의25)

5-1-1. 성장주의 극복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한국교회를 이렇게 타락시키고 쇠퇴하게 만든 주원인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성장주의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성장을 추구하는 성장주의가 한국교회를 병들게 만들었고, 교회를 쇠퇴케 만들었다.

교회가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지만, 이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이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세속주의에 오염되면서 역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영혼구원보다는 교회성장에, 생명보다는 숫자에 관심이 더 집중되었다. 그리고 목회자들이 교회성장 자체보다 이를 통하여 주어지는 세속적인 명예와 권세에로 경도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교인, 큰 교회당”은 우상이 되었다. 필자는 이런 잘못된 성장주의를 극복하고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목적에 충실하려는 방법 중 하나가 교회분립개척이라고 생각한다.

성장주의는 일부 목회자들이 가진 사상이 아니다.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여기에 휩쓸려있다. 필자도 담임목사로서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내적 외적으로 압박을 받았던 것이 바로 교회성장 곧 교회의 양적인 부흥이었다. 교인수에 대한 관심이 항상 필자를 압박했다.

겉으로는 필자가 말하는 부흥이 단순히 양적인 부흥이 아니라 영적인 부흥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마져도 결국 양적 부흥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해야 했다. 따라서 필자가 교회분립개척을 주장하게 된 첫 번째 동기는 필자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 목회를 조종하고 있는 이 성장주의를 극복해보자는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필자는 교회분립개척을 실행하면서 이것이 가진 좋은 점들을 더욱 많이 발견하였다.

 

5-1-2. 안정적인 교회개척

교회분립이 교회개척의 안정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지금은 예배 장소를 준비하고 교역자를 파송한다고 해서 교회가 세워지는 때가 아니다. 특히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고 큰 위기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옛날식의 교회개척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성신자든, 초신자든, 구도자든 누가 썰렁한 자리에 앉아 제대로 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모교회는 재정지원뿐 아니라 교역자와 교회개척에 뜻을 가진 교인들을 함께 파송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처음부터 안정된 가운데 시작하여 본래의 사명에 충실할 수 있다.

교회개척을 그야말로 맨바닥에서 시작하게 되면 교회가 자립이 될 때까지는 오직 서바이벌 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립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어 비신앙적인 것은 물론 비윤리적인 일들까지 많이 저지르게 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자칫 교회개척이 영구적인 미자립교회를 설립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목회자들을 성직자가 아니라 생계형 직업인으로 내몰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 목회자와의 개인적인 관계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 개척교회에 참여하게 된 소수의 교인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영육 간에 탈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회분립개척은 이런 부작용을 막고 처음부터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

 

5-1-3. 교회 건강성 제고

교회분립은 교회개척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임과 동시에 교회를 더욱 건강하게 가꾸어가는 방안이기도 하다. 대형교회라고 해서 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대형화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위험이 동반된다. 가장 첫 번째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터요 기둥인 그리스도의 주되심(the Lordship)에 대한 신앙고백이 약화되거나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의식하는 목회자도 교인도 많지 않지만, 필자는 성장주의와 함께 이것이 한국교회를 타락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목회자의 탁월한 리더십과 카리스마에 의해 대형화된 교회에서는 담임목사가 - 때론 담임목사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 교회의 로드십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가 가진 영적 권위는 동시에 실제적인 권력을 수반하게 되는 데, 이런 중에서도 끝까지 겸손을 견지할 수 있는 목사들은 많지 않다. 담임목사가 주님처럼 떠받음을 받는 교회에서 목사가 스튜워드십(stewardship)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다. 리더십에서 스튜워드십이 약해지면 교회의 건강도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대형교회가 갖기 쉬운 문제 중 하나는 성도의 교제가 현저히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서로를 알고 사랑하며 섬기는 삶의 공유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성도들의 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바로 하나님의 권속이요 영적인 가정이다. 이것은 교회가 가진 본질적 특성이요 교회의 정체성이다. 구원이란 개개인이 새 생명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것이요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인들이 이것을 교리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삶으로는 고백하지 못한다.

교회들마다 소승불교인들처럼 홀로 신앙생활 하는 익명의 교인들, 주일예배에만 참석하는 교인들이 많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산업화와 도시화로 급변하면서 한국교회 전체가 이미 오래 전부터 당면하고 있는 교회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내적으로도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교회는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공동체인데 오히려 세상이 좇는 물량주의에 휩쓸려 공동체성이 약해져버렸다.

기계에서 기계로(machine to machine)의 사회일수록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face to face) 인격적인 만남이 더욱 중요하고 필요한데 교회가 이를 잃어가고 있다. 교회의 교회됨 곧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건강한 중소형교회를 많이 세워야 한다. 교회분립은 이를 위해서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대형교회들은 교회분립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성의 제고를 도모해야 한다.

 

5-1-4. 평신도 사역자 개발

교회분립개척은 잠자는 일꾼들을 깨워 분발시킬 수 있다. 어느 교회나 여러 가지 이유로 잠자는 일꾼들이 있다. 리더십에 대한 불만 때문에, 다른 교우들과 깨어진 관계 때문에, 혹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없어서 뒷자리로 물러나 있는 교인들이 있다. 교회분립은 이런 사람들을 일깨워 열심 있는 봉사자들로 서게 할 수 있다.

그리고 큰 교회들에서는 새로운 일꾼들을 개발하여 세우는 일도 쉽지 않다. 교인들끼리 서로 얼굴도 잘 모르니 각자가 가진 은사들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다보니 직분자를 선택하여 세우는 일도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이런 분위기가 오래 가면 교회직분을 세속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타락이 보편화될 수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이 문제에서도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중소형교회에서는 교인들이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서로 잘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자들을 분별하여 합당한 자들을 세울 수 있다.

 

5-1-5. 모교회의 영적 쇄신

분립개척은 분립되는 자매 교회뿐 아니라 분립하는 모교회도 영적인 쇄신과 부흥을 이룰 수 있다. 교회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나 몇몇 장로들의 독특한 리더십 때문에 교회가 영적으로 정체되거나 심한 경우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교회분립은 이런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국교회의 지난 역사는 분립이 아닌 분열의 역사로 점철돼왔다. 싸우다가 분열하는 것은 많은 교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고 밖으로는 전도의 문을 막는 비극이 된다. 교회를 설립하는 적극적인 믿음과 복음전도의 열정으로 교회를 분립할 수 있다면 이는 일석삼조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5-2. 교회분립개척의 준비과정

5-2-1. 교인들의 합의

교회가 무슨 일을 하든 교인들의 합의가 중요하다. 당회원 곧 목회자와 장로들이 분립개척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이를 교회에 알려 기도를 시작함과 동시에 교인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것은 분립 여부에 대한 교인들의 의견을 모으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회 분립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나아가 실제로 분립을 하게 될 경우 분립에 참여토록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분립이 결정되면 분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간다.

 

5-2-2. 당회의 분립

분립준비에서 첫 번째 할 일은 당회를 분립하는 것이다. 교회 분립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당회원들이 앞장서야 한다. 새로 시작되는 교회에 최소한 시무장로들의 1/3 이상이 참여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여기에 합의가 이루어지면 먼저 자원을 하도록 하고 만약 자원자가 1/3에 미치지 못하면 제비뽑기로 그 수를 채울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시무장로들이 분립 교회에 참여하는가에 따라 교인들의 참여가 큰 영향을 받는다.

 

5-2-3. 담임목사 청빙

당회가 분립되면 바로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담임목사 청빙이다. 새 교회의 담임목사는 현재 교회에서 시무 중인 목사들 중에서 청빙할 수 있다면 좋겠고, 혹은 밖에서 청빙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쨌든 어떤 목사가 담임으로 청빙되느냐 하는 것은 교인들의 호응도에 역시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약 참여하려는 교인수가 너무 적을 경우 현재 시무 중인 담임 목사를 파송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분립의 경우는 아니지만 초대 안디옥교회는 오늘날의 담임목사와 같다고 할 수 있는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5-2-4. 지역선정 및 교회당 준비

의외로 이 과정이 힘들다. 교회가 바라고 의도하는 대로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일단 모교회 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것이 좋다. 가능한 단독 건물을 마련할 수 있으면 한다. 상가에 있는 교회들은 전도하기가 아주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채를 안으면서까지 무리하게 교회개척을 시작하다가는 존립은 물론 다시 회복이 불가능한 상항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리고 대상이 되는 지역의 인구나 교회들의 수를 파악해서 가급적 기존 교회들이 적은 곳을 택하도록 한다. 분립개척의 유리한 점은 이미 참여한 교인들이 있기 때문에 인구밀집 지역에서 다소의 거리가 있어도 전도에 큰 지장은 없다는 점이다.

 

5-2-5. 교인들의 분립

새 교회에 참여할 교인들을 정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자원에 의해서 결정되겠지만, 좀 더 구체적인 독려가 없으면 참여하는 교인들이 의외로 적을 수 있다. 그래서 필자의 경우 세 가지 방법으로 독려하였는데 첫째는 분립되는 교회와 가까운 지역의 교인들은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권장하고, 둘째는 첫 번째 지역보다 약간 떨어진 지역의 교인들은 가능한 많이 참여하도록 독려하였으며, 셋째는 위 두 지역 밖에 사는 교인들은 자유롭게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각자가 개인적으로 자원할 수 있지만 목장[구역] 단위로 참여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가족 같은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전도하는 일이 매우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의 전도는 관계전도라야 가능하고 열매도 맺게 된다.

 

6. 교회의 이웃 섬기기

보수적인 교회일수록 주로 개인구원 곧 회개와 중생과 성화 교리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가 하신 설교의 핵심 주제인 하나님나라의 복음에 대해서는 무지한 경우가 많다. 필자 자신이 그러하였다. 따라서 교회의 공적·사회적 책임에는 다소 무관심하였다. 교회의 속성 중 하나는 사도성이다. 교회는 세상으로 보냄 받은 섬김의 공동체다.

교회와 하나님나라의 관계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대리점(agent)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나라의 통치이념인 사랑과 공의를 이 땅에 실현하도록 세움 받은 기관이다. 그러므로 전도를 통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교회의 핵심 사역이지만, 이런 사역의 결과가 이 세상의 불의에 저항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사역과 연결되지 않으면 기독교는 기복적인 신앙으로 경도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기복주의적인 경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게 된 매우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다.

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인류의 부패를 막아야 하는 사명을 가진 하나님나라의 기관이다. 교회는 지역사회를 섬겨야 하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되 하나님나라의 이념인 사랑과 공의를 실현하기 위한 선지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과 불신을 당하고 있을 때에는 거대 담론에 속한 정치적인 참여나 사역보다 사랑의 나눔이라는 소박한 섬김으로 시작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진보 쪽이나 보수 쪽이나 다 마찬가지다.

 

Ⅲ. 결론

위기 시대의 목회는 더 이상 사람의 능력과 지혜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성경으로 돌아가 근본을 찾아 세우는 목회여야 한다. 복음의 능력과 교회의 원형을 재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는 성 삼위 하나님의 역사에 겸손히 자신을 드리며,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찾아 그 뜻을 이룸에 충성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미래 목회에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는 복음을 확실히 알뿐 아니라 그 능력을 자신이 체험함으로써 확신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많은 숫자가 아니라 한 생명 한 영혼에 집중하고, 대형교회를 지양하고 중소형교회를 지향하며, 특별히 교회 안의 교회로든 아님 독립된 교회로든 소그룹교회를 세우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소그룹은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이며 아울러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이며 방법이다. 또한 소그룹목회는 시대적 요구에 적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사역이다. 다음 세대에는 현대 문명에서 이탈되거나 탈락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machine to machine이 아닌 face to face의 교제와 고감도의 터치에 대한 내면적인 요구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본질로 돌아가자.”

 

한편 정주채 목사는 고려신학대학 및 대학원(M.Div), 총회신학대학원(Th.M), 풀러신학대학원(D.Min)을 졸업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는 <교회 공동체를 위한 소그룹 목회 전략>이 있다. 향상교회 담임목사, 국제기아대책기구 이사, 남북나눔운동 이사, 바른교회아카데미 이사장, 사단법인 여명학교 이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크리스찬은 무슨 재미로 사는가>(규장), <룻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파격>)(PA), <선한 목자의 꿈>, <기도를 배우자>(이상 생명의양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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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이원규, 『한국교회의 위기와 희망』도서출판 KMC, 2010년. p.193.

2) 이문장,앤드류 월즈 등 6인 공저, 『기독교의 미래』청림출판, 2006년. pp.4-6. 머리말

3) 이원규, op.cit. p.152. ※수치계산이 잘못돼 있어 수정하여 인용함. 기독교인의 증가가 5,560명이라고 했으나 출생에 의한 증가와 개종에 의한 증가를 보태면 5,650명이다.

4) 박상진 논문, “한국 교회교육 위기 극복을 위한 기독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기독교교육논총 20집 p.53.

이 논문 자료에 의하면 통합측의 경우 중고등부는 1997년부터 2002년 사이에 31.9%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해마다 가속화되고 있어 앞으로 한국교회도 유럽 교회처럼 큰 교회당에 3-40명의 노인 교인들만 남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5) 이원규, op,cit. p.148.

6) Ibid. p.150.

7) 최윤식, op.cit. p.134.

8) 낸시 피어시, 『완전한 진리』(복 있는 사람, 2009년) p.323.

9) 이문장 외 op.cit. p.90.

10) 한국에 신학교가 몇 곳이나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교파별로, 혹은 개인이 설립한 소위 무인가 신학교가 대부분이어서 통계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교파 수를 가지고 대략 추산하면 400곳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한국의 종교현황』 (문화체육관광부, 서울 2008)에 보면 개신교가 운영하는 일반대학이 49곳, 대학원 대학교가 20곳, 전문대학이 27곳, 각종학교가 3곳으로 나와 있다(p.117). 여기에 모두 신학과가 있다 하더라도 집계 가능한 숫자는 100곳 이하이다. 그러나 대한예수교장로회란 명칭을 가진 교파만 해도 240곳이며(pp.38-55), 한국기독교장로회와 감리교 등 다른 교파들과 합하면 교파(교단)만도 291곳이다. 여기에 파악이 안 된 교파들도 있고, 또 한 교파에 신학교가 둘 이상인 경우들도 있고, 초교파적인 사이버신학교들도 있기 때문에 신학교의 전체수는 대략 잡아도 400여 곳이 넘는다.

11) 필자가 국내의 대표적인 신학교들(감신대, 고신대, 장신대, 총신대 등)의 당국자들에게 알아본 대로는 근년에 이르러 신대원 입학지원자들의 수가 줄고 있는 것은 물론 지원자들의 학력도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무인가 신학교들에서는 학교의 존립과 운영을 위해 "아무나 오게"식으로 학생들을 받아 지극히 허술한 신학수업을 받게 한 후 졸업시키고 있다.

12) 세습과 관련하여 필자가 알게 된 하나의 사건이 있다. 어느 지방도시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 도시에서만 평생을 목회해온 어느 감리교 감독이 있다. 그는 그 지방에서 교계는 물론 불신 사회에서까지도 알아주는 유지였다. 그런데 은퇴할 무렵 그는 감리교 총회에서 담임목사세습금지법안이 통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교단총회 직전에 전격적으로 교인총회를 열어 아들을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것을 결의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는 그 지방에서 평생 쌓아온 덕망과 존경을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13) 이문장, op.cit. p.96.

14) 이원규, op.cit. p.237.

15) 최윤식, op.cit. p.39.

16) 장신대의 [명성교회 세습철회와 교회개혁을 위한 장신대 교수모임]에서 발표한 성명서에 보면 “총회재판국은 통합교단 총회가 결의한 헌법 제28조 6항을 버젓이 위배한 교회를 공교회의 이름으로 치리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저들이 합법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비양심적 판결을 내렸다.”며 개탄하고 있다.

17) 2018. 4. 1. 대법원에서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자격에 대한 고등법원의 무죄(관계없음)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이를 환송한 판결이 있었다. 이 판결의 옳고 그름을 떠나 국가의 사법기관이 목사의 자격여부를 판단하였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18)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 자료집(2018.7.17.) p. 39

19) 이문장, op.cit. p.66.

20) “이 세대”를 NIV에서는 “the pattern of this world"라고 번역했다.

21) 요 10:10, 마 5:21-22, 18:5-8 등 참고.

22)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회막을 지으라고 하시면서 그 설계도와 조감도를 보여주셨다.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개역판에서는 “식양을 따라”라고 했다)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 25:9) 이와 같이 성경에는 교회의 설계도와 조감도가 있다. 연구자는 목회를 하면서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인 회원(membership), 직분(leadership), 공동체(fellowship)를 성경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현장에 적용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를 통해 교회의 갱신과 진정한 부흥을 어느 정도나마 이룰 수 있었다.

23) 2013년 11월12일 백석대학교에서 열린 제12회 개혁주의생명신학 학술대회에서 발표하였고, 백석신학저널 2013년 가을호(통권 제25호)에 수록되었다. 여기서는 그 요점만 간단히 소개한다.

24) 교인들에게 태신자를 데려오게 하여 담임목사가 직접 복음을 전하는 전도모임이다. 구도자들에게 매우 유익한 프로그램일 뿐 아니라 목회자에게도 매우 보람 있는 전도 프로그램이다.

25) 이 장의 내용은 2018. 8.20-22. 제주에서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의 주최로 개최된 목회자컨퍼런스에서 필자가 강의했던 “교회분립개척이야기”의 일부를 전재한 것이다.

 

[참고서적]

이문장 외 5명. 『기독교의 미래』 서울: 청림출판, 2006.

이원규. 『한국교회의 위기와 전망』 서울: KMC, 2010.

정재영. 『한국 교회의 사회학적 이해』서울: 열린출판사, 2012.

정주채.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인가?』 서울 : 생명의 양식, 2018.

최윤식. 『한국교회 미래지도』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3.

Gibbs Eddie. 『넥스트 처치(Next Church)』 임신희 역, 서울: 교회성장연구소, 2010.

Snyder Howard A. 『그리스도의 공동체(Community of the King)』 김영국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2.

(논문)

정주채.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위한 소그룹 목회전략」 1994.

______, 「목회를 위한 목회론」 백석신학저널 통권 제25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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