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람을 키우는 기도(엡 3:14-21)
속사람을 키우는 기도(엡 3:14-21)
  • 김병년 목사(다드림교회)
  • 승인 2018.10.2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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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드림교회 2018년 10월 28일 주일설교
다드림교회 김병년 목사
▲다드림교회 김병년 목사

들어가며 - Meteora Summit 2018(알바니아 선교수련회)

2주동안 알바니아에 거주하는 선교사님 5가정 13명의 선교사님과 11박을 보냈고, 그 중에서 2박3일은 현지인 목회자들과 7가정 14명의 목회자들과 같이 수련회를 했다. 선교사님들과 같이 지내면서 살펴보면 선교사님들은 드러내놓고 기도하는 경우가 드물다. 기도하는 모습을 잘 보지 못한다. 언제나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이 기도하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참 궁금하다. 


그러나 선교사님은 우리들에게 기도부탁을 많이 한다.  기도 부탁이 많다는 것은 그들이 기도하기 때문이다. 기도하기 때문에 그렇다. 선교의 역사는 기도로 그들을 품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기도로 그들을 계속 품는 과정이다.  사도신경은 우리가 믿을 내용이고, 십계명은 우리가 행동할 내용이고, 주기도문은 우리가 바랄 소망을 담고 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믿음과 십계명을 살아내는 순종이 있고, 우리의 갈망을 나타낸다. 

 

기도는 참된 갈망을 넘어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그 사람의 갈망을 알려면 그가 무엇을 기도하는지, 얼마나 기도하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갈망을 넘어서 우리의 정체성을 기도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눅 12;29-30). 


예수님은 기도의 내용을 보면 우리의 갈망을 파악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가 어떤 세상에 속하여 사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세상에 속한 사람인지,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인지를 자가 진단할 수 있다. 나의 기도는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내고,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드러낸다.


사람들은 갈망한다. 누구든지. 제가 병원에 가면 불신자인데 기도를 부탁하는 분들이 있다. 제가 ‘믿으세요’라고 물으면 안믿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다급하기에 기도를 부탁한다. 인간은 자신의 필요가 갈망이 되면 언제든지 기도를 부탁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필요로 우리들이 기도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는다. 기도의 기초가 우리들의 절박한 절대적인 필요에 근거하지 않는다. 사실 기도는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 알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도들은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러므로”. 이런 이유로 기도한다. 첫째는 기도는 새로운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이다. 우리는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은혜의 통로가 되어 선하게 지으심을 받았다. 우리는 성령안에서 지어져 가는 성전이다. 성전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 제사였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그것이 기도이다. 성도들은 성전이다. 성전이 된 우리들의 기도는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우리를 성전으로 삼으신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기도이다. 기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을 갈망하게 한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무뤂을 꿇게 한다’. 기도함으로 모든 민족이 아버지의 주권에 복종한다. 모든 민족이, 하늘에 있는 족속이든지, 땅에 있는 족속이든지. 영적이든지 인간이든지. 다 하나님 앞에 무릎꿇는 것이 기도이다. 우리의 갈급함이 아니라 그분이 누구이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 때 기도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기도를 잃은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었고,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기도는 새로운 성전된 교회, 곧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이다. 

둘째는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응답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대한 실질적인 이유는 20절을 보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여기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셔서 우리의 간구와 생각을 아시고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넘치도록 응답하신다. 그분의 응답은 항상 넘친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서. 기도응답의 풍성함과 더불어서 그분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과 그분이 역사하시는 능력을 우리에게 행하시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에서 자주 언급하는 ‘영광의 풍성함’이 기도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넘치도록 채우시는 능력을 베푸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런 능력을 알면서도 실제로 기도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우상숭배자들이다. 심지어 우상숭배자들도 필요하면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 나가서 기도하다. 그때마다 선지자들이 조롱한다. 너희 신이 들으시는가 더 간절히 구하라고 한다. 들을 귀가 없는 우상들, 죽은 신들은 기도의 응답이 없다. 나처럼 아픈 아내를 두고 간절히 기도했어도 원하는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기도를 그만 두는 사람들은 여전히 내 경험으로 하나님을 규정하기 때문에 그렇다. ‘내 아내가 일어나지 못했어도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내 필요가 충족되지 못해도 하나님은 다른 것으로 응답하신다. 

새로운 성전이 된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위이요, 그분의 풍성함을 누리는 삶으로 초청이 바로 기도이다. 기도해야할 이유를 알고 그 결과를 알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도가 억지가 되는 것은 바로 나의 정체성을 상실한 이유이고, 그분의 성품을 잊기 때문이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찬송가 346장. 이것은 슬픔이 없다거나 고통이 없기 때문에 기도시간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계시고 그분이 응답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이 가사처럼 응답이 없어도 위로는 있다. 삶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지만 하나님만이 주시는 위로가 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바울 사도는 이렇게 기도했다.  

첫째는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하여 기도한다. 속사람은 새사람이다. 거듭난 사람을 말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속사람과 마음은 같은 말이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속사람은 성령의 지배를 받음으로 강건해진다. 믿음으로 마음에 그리스도가 주인 되어 계시면 내 마음의 주인은 그리스도가 된다. 계신다는 뜻은 정착하여 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은 성령과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에 주인이 된다. 이것이 속사람의 강건이다. ‘너희’는 거듭난 사람들이다. 그들의 마음속에 거하시는 성령님과 그리스도가 언제나 그들의 주인 되는 것이 강건함이다. 내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가. 내 마음의 주인이 그리스도인가, 그리스도인인가?. 바울 사도는 기도한다.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에 주인이 성령이기를, 그리스도이기를. 그리스도와 항상 연합하여 살기를 간구한다. 거듭난 사람은 항상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으려고 한다. 


가을이 오면 굴러다니는 낙엽처럼 모든 감정을 느끼며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순간에 감정의 주인이 그리스도가 되게 하라. 마음 가는 데로 끌려가지 말고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며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둘째는 성도들과 사랑 가운데 자라길 기도한다. 바울 사도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두 번째는 바로 성도들의 관계를 위함이다. 성도들의 관계 속에는 사랑으로 서로 뿌리가 내려야 한다. 여기서 사용하는 두 단어가 중요하다. ‘뿌리가 내리고, 터가 굳어져서’라는 두 단어는 아래로 견고하게 서는 것을 말한다. 


성도들은 사랑이 그들의 삶의 뿌리이다. 성도들 관계는 사랑으로 뿌리내려야 한다. 성도가 자라는 것은 그가 맺는 관계의 기조를 보면 안다. 사랑만이 우리를 자라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성도 간에 사랑이다. 지난주 두 번의 장례식이 있었다. 부모님을 잃은 성도들의 아픔에 참여하는 것이야 말로 큰 위로이다. 장례식장에 가는 것이 위로이다. 슬픔의 자리에 함께 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목사인 나도 조의금이 없을 때가 있다. 축의금이 없을 때가 있다. 그래도 미안한 맘을 가지고 간다. 왜 성도의 교제가 중요하니까. 돈보다 만남이 더 중요하다. 

세 번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기를 기도한다. 두 번째 기도와 세 번 째 기도가 다른 점에 두 번째는 성도간의 사랑이고 세 번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와 길이와 넓이와 높이를 깨달아 알도록 기도한다. 우리의 교만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다는 확신이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아요.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를 알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죽음에까지 내려갑니다. 스스로 죽음을 맛봅니다. 죄인들에게 찾아갑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낮은 곳으로 ㅅ흘러갑니다. 

그리스도 사랑의 길이를 묵상해 보십시오. 이 사랑의 길이는 어느 세대이든지 다 경험합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노아에게도, 그리고 다윗에게도 누구든지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는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기를 간구합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그분의 사랑 안에서 자가길 간구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갑니까?. 

네 번째는 성도들의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다. 충만이라는 것은 사랑이 가득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에서 하나님이 주격이면 하나님의 성품, 곧 거룩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목적격이면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들을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자체이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든지 그것들이 풍성하도록 바울은 기도합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범사가 사랑으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한다. 사랑의 일상화가 성도들의 삶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 바울의 기도이다. 사랑이 자라가고, 하나님의 성품이 자란다.  

 

나가며 -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기도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철저하게 삼위 하나님의 내주하심과 그분을 닮아가는 삶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성령으로 강건한 사람들은 속사람이 자라고, 내면에서부터 그리스도를 닮아간다. 참된 기도는 자신을 그리스도를 닮게 하고 하나님을 닮도록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어떤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과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하나님의 충만하신 성품을 구한다. 


사람은 구하는 것이 자신을 지배한다. 생각하고 구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의 목표가 된다. 구하여 받은 응답이 응답을 주시는 분보다 더 강력하게 마음을 지배할 때 그것을 우상이라고 한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갈망하라고 기도하고 있다. 삼위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이 되라. 이것이 우리의 갈망이 되길 원한다. 

성찬을 나누고 있는 김병년 목사와 교인들
▲성찬을 나누고 있는 김병년 목사와 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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