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공동체로서의 기체교회에 대한 관심
“우리를 둘러싼 사회역사적 정황 우리의 각성을 제촉하고 있을 때 거기에 반응하는 이들의 자리가 ‘세속성자’의 자리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밀고나가려 할 때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이런 양상을 설명하는 신앙적 담론이 필요하다. 일차적으로는 신학적으로 규명해야 한다. 동시에 전적으로 전문화된 신학의 언어와 논리에 함몰되지 않는 신앙의 삶의 지평을 보여주어야 한다.” 청어람 ARMC의 양희송 대표의 말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내부적으로는 목회자들의 일탈, 설교 표절, 은퇴와 청빙과정에서의 세습문제, 재정의 투명성 문제, 성범죄 등으로 내홍을 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분열과 갈등 속에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일부 보수단체들은 교회문제를 오히려 이슬람, 동성애, 이단 문제 등으로 시선을 돌리려함으로써 200만명의 ‘가나안 성도’라는 탈 교회적 양상들도 보여왔다.
이들 중 70~80%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문제가 해결될 때, 교회로 돌아올 가능성이 타진되면서, 교회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한편 나머지 20~30%의 가나안 성도들은 새로운 페러다음과 또 다른 가능성들을 모색하며 실험적 모임들을 갖고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다시, 프로테스탄트』(복있는사람, 2012년 11월),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포이에마 , 2014년 11월) 등을 집필하며 복음주의 운동의 다양한 스텍트럼을 소개해온 청어람 ARMC의 양희송 대표가 지난 9월 『세속성자』(북인터갭)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다.
양희송 대표는 11월 22일(목) 오후 2시 다드림교회(담임 김병년 목사)에서 독서모임 ‘읽다익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가나안 성도라는 탈교회 현상의 역사·사회학적 각성을 넘어, ‘성과 속의 이분법을 넘어 교회 밖의 신앙’으로의 신학적 각성이라는 지적 깨달음과 대안적 삶으로 방향을 제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음은 이날 강의 내용과 질의문답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핵심키워드= ‘세속성자’라는 모순형용
양희송 대표는 먼저 “2013년 1월 주일에 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를 위한 수요예배가 필요하다가 ‘세속성자 수요모임’을 진행했다. 이 모임에서 5년간 상하반기 각각 12주 성경강해 설교를 갖고 교회와 신앙, 삶의 문제들을 논의해 오다, 2016년 가을부터는 ‘세속성자를 위한 12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보강해 『세속성자』를 집필했다.”고 서두를 열었다.
이어 “최근 몇 년간 주목받았던 ‘가나안 성도’라는 한국 교회의 교회이탈 현상을 통해 ‘그들은 왜 교회를 떠났는가?’, ‘교회를 떠나 신앙생활이 가능한가?’, ‘교회는 대체 무엇인가?’라는 교회론적 질문에 집중했다.”면서, “‘세속성자’는 가나안 성도가 촉발한 질문에 공감하는 이들이 결국 찾아나서게 될 신앙적 지향은 무엇인지에 대답하려는 노력이다. 이 논의를 통해 우리 시대 기독교 신앙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속성자’(a Secular Saint)라는 용어는 로버트 웨버가 쓴 ‘A Secular Saint’에서 처음 사용됐고, 『다시, 프로테스탄트』에서 몇 번 언급했다. 하지만 ‘세상 속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A Christian in the world)이라는 독창적인 의미로는 제가 처음 사용했다.”며, “‘성자’(a Saint)는 우리말 성경에서는 ‘거룩한 무리’, ‘성도’(Saint), 즉 신구약 성경에서 고르게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 백성 자체를 의미하는 표현”이라는 전했다.
양 대표는 “세속성자는 모순형용이다. ‘성자’(saint)란 글자 그대로 ‘거룩한 사람’을 뜻한다. 당연히 ‘세속’의 정반대에 있는 존재다. 기독교 신앙은 마땅히 세속적 가치를 거부하고 거룩의 영역으로 옮겨가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런데 그 모순형용을 잘 붙잡는데에 기독교 신앙의 본령이 있다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오히려 역설적 긴장 앞에 설 때라야 진정한 면모가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세속성자들의 각성과 깨어남으로의 ‘파상력’(破傷力)
서울대 김홍중 교수(사회학)는 『사회학적 파상력』(문학동네, 2016)에서 “부재하는 대상을 허구적으로 현존하는 능력이 상상력이라면, 기왕의 가치와 열정의 체계들이 충격적으로 와해되는 체험에서 비롯되는 인식론·윤리적·존재론저 역량을 파상력이라고 이름 붙이자”고 제안한다(세속성자, 221).
양희송 대표는 “파상력은 구성이 아니라 파괴의 방향으로, 질서가 아니라 카오스 방향으로 활동한다. 상상력의 최고치가 꿈(dreaming)이라면, 파상력은 깨어남(awakening), 즉 각성의 순간”이라며, “파상력의 주체는 행위작 아니라 그것을 당하고 겪는 자다. 마치 각성하기 직전의 체험, ‘가위눌림’ 같은 것, ‘깨어남의 과정’이라고 하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의 시간 속에서 몸부림칠 때, 솟구치는 미약하지만 필사적인 힘의 총체, 이 마비적 몽환의 장을 벗어나겠다는 몸부림”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는 대표지도자들이나 초대형교회들이 교회 세습을 강행하거나 재정비리 혹은 성추문에 휩싸이거나, 정치권력에 야합하는 언행으로 지탄을 받거나, 교회·교단·신학교의 분쟁이 터져나오는 양상으로 2007년 초반부터 대대적인 붕괴 현상이 나타났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와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을 통해 사회붕괴 현상을 경험했다. 하지만, 개신교회는 고통과 고난에 답을 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면서, “오히려 내부적으로는 목회자의 일탈, 설교 표절, 은퇴와 청빙, 재정 투명성, 교회 건축 등의 사안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매우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왔다.”며 지적했다.
양 대표는 “정서적 스트레스와 멘붕의 시대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5년 전, 세속성자 수요모임을 시작하면서 『다니엘서』를 함께 읽었다.”면서, “어떠한 도움을 기대할 수 없고, 세상의 모든 소망이 사라져 절망을 직시할 때, ‘묵시’(apocalypse)는 비로서 하늘이 열리고 위를 올려다 볼 수 있게 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2014년 세월호와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를 통해 자신의 양심적 판단에 따라 행동하다 신앙적 이해를 새롭게 하는 각성의 계기가 됐다.”면서, “파상력은 다 망해버린 것 같은 세상을 우회하지 않고 통과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권력의 향배를 넘어서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날 것 그대로의 문제의식을 갖고, 각자의 내면을 보살피며, 세상을 읽어내며 결국 우리를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세속성자는 이런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파상력에 사로잡힌 이들”이라며, “그 질문들의 핵심에는 사회를 보는 관점과 세상과 관계맺는 방식이 해명되어야 한다는 것도 인식한 이들”이라고 덧붙였다.
◇보이지 않는 영향력 가진 '기체교회'에 대한 기대
양희송 대표는 “종종 교회에서 분쟁을 겪다 떨어져나와 예배드리는 분들에게 부탁을 받는 경우가 있다. 중장년 성도 30여명 성도가 피아노 교습학원에서 임시로 모인 곳에서 설교를 했다.”면서,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하던 중 한 권사님이 ‘나중에 진짜 교회를 할 때 다시 와서 설교해달라’고 했다. 제게는 그날 예배가 아무런 하자나 결함이 없었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장의자도 없고, 강대상도, 파이프 오르간도 없는 교회는 아직 교회가 아닌 것”이라고 짚어냈다.
이러한 교회를 양 대표는 “고체 교회”(solid church)로 표현하며, “한국 교회의 대부분 신자들은 이런 물질적 관점이 를 신봉한다.”고 일갈했다.
반면, “교회의 본질을 ‘성도들의 모임’(congregation of saints)에 있다고 보는 상당히 유연한 교회론을 저는 액체 교회(liquid church)라고 부른다.”며, “내용물만 유지될 수 있다면, 그것을 담는 용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있다. 해변에서 서퍼들을 위한 해변 교회(beach churc), 산에서 모이는 산정교회(mountain top church), 바이크 타는 사람들이 모인 노변 교회(Roadside church)도 무방하다.”는 것.
더불어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교회당은 텅텅비고 윤리나 종교적 가치는 경시됐다고 지적되지만, 핀란드와 덴마크 등은 사실상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결과물로 국가의 사회적 토대에 기독교적 가치와 영향력이 강하다.”면서, “선교사의 무덤이라고 악명 높은 일본(개신교 0.4%, 가톨릭 0.4%, 그리스도인이 인구의 1%)에서도 우찌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와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노동운동의 대부, 신협과 생협운동의 선구자)의 영향으로 일반인들의 기독교 이해 수준이나 기독교의 사회적 위상이 결코 낮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교회를 “기체 교회”(vapor church)라고 지칭하며, “고체-액체-기체교회는 교회의 존재방식을 더 다양하게 상상해볼 수 있는 하나의 유비다. 이것을 현실화하는 것이 기독교의 앞으로의 과제”라고 주지키셨다.
◇공공선(公共善)을 위한 인식전환 필요
양 대표는 “예수 공동체는 배제와 혐오를 거스르는 공동체였다. 예수는 문둥병자, 혈루증 환자, 세리, 창녀, 열심당원, 바리새인, 랍비 등을 내치지 않았다.”면서, “신약 공동체는 율법에 의해 정죄된 자, 부정한 자, 부폐한 자, 무식한 자 등을 다 새로운 가족의 범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우리가 그려볼 수 있는 사회적 이상의 최대치. 공공선이다. 공공선은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최저선”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회는 야훼의 전쟁(War of Yahweh)를 묘사한 가나안 정복전쟁 본문(수 8:24-28)의 맥락을 ‘진멸하라’(신 7:1-5)는 맥락에서 읽어가면서, 하나님의 백성은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충실히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할 것인가란 양자택일에 다다른다.”는 것.
그러면서, “이러한 성속이론의 핵심 가르침을 따라 결단의 엄중함과는 별개로 거룩함과 속됨을 나누는 기준을 과연 어디서 취하느냐에 따라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오늘날 동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인도적 인종 청소(ethnic cleansing)같은 범죄가 이런 본문으로 정당화되거나 부추겨지지는 않는가?”고 반문했다.
또한 “개신교회는 안팎의 위기상황을 다룰 염두가 나지 않자, 이단·무신론·종북·이슬람·동성애 등을 적대세력으로 지목하며 십자군 전쟁하듯 대결의식을 부추기고 있어, ‘이게 나라냐?’라는 쓰라린 반문에서 ‘이게 교회냐?’라는 사건사고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한국 사회와 개신 교회도 난민 문제를 놓고 사회적 합의의 수준과 근거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실망스럽게도 난민들 개개인의 얼굴보다는 그들의 인종, 종교, 성별, 언어, 문화 등을 집단화하고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악마화 했다.”면서, “난민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부정적인 모습은 ‘세속성자’ 논의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사회적 이상이 이 사회에 얼마나 부족한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도 자신과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데, 타자를 개인으로 여길 가능성이 하늘에서 떨어질 수 없다. 한국 사회와 개신교가 만나온 책임회피의 여러 방식들은 정당화 되기 어렵다. 이런 무기력과 무정함이 계속되서도 안된다.”고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양 대표는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모호하고, 대책은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목회자, 사역자, 지도자란 자리 말고, 성도로서 개인의 자리에 서보는 인식론적 전환완이 있지 않고서는 잘 이해 안 될 수 있다.”면서, “한국 개신교 내의 변화 양상을 잘 파악하려면 인식론적 자리 이동이 꼭 필요하다는 것만 기억햊면 좋겠다.”며 갈무리했다.
한편, 양희송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브리스톨의 트리니티 칼리지(BA)와 런던 신학교(MA)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월간 『복음과상황』 편집장과 편집위원장을 지냈고, 한동대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다.
한국교회와 사회의 다음 세대를 위한 인재발전소인 ‘청어람아카데미’의 대표기획자로 인문학, 정치사회, 문화 예술등의 분야에서 500여 회가 넘는 대중강좌를 기획·운영하고 있다. 2011년에는 CBS TV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을 공동기획했으며, 2013년부터 ‘세속성자 수요모임’을 진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