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여기가 좋사오니... 안된다! 내려가자.
#21. 여기가 좋사오니... 안된다! 내려가자.
  • 김재식 작가
  • 승인 2019.01.0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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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과 믿음의 먼 거리

축하합니다! 당선되신 분들은 아래 전화로 연락주세요. 

한 주에 한 번씩 가는 빨래방에 붙은 이벤트 추첨 발표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세상에! 나와 아내는 수십 년 동안 흔한 슈퍼마켓 경품도 한 번 안 되어 평생 행운이나 당첨은 기대를 접고 살았다. 그런데 딸래미는 나를 따라왔다가 심심하다고 재미로 써넣은 추첨권이 한 번 시도에 단박에 당첨되었다. 그것도 1등으로! 신기하기도하고 재미도 있어서 그 시간에 멀리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로 돈 벌고 있는 딸에게 사진을 찍어보냈다. “딸! 너 우리 집 유전자가 아닌가 봐? 어떻게 이벤트 1등에 당첨이 되냐? 크크크!” 

 

‘수박’이라는 드라마에서 행운이 괴로울 수도 있더라는 장면
‘수박’이라는 드라마에서 행운이 괴로울 수도 있더라는 장면

 

“제발 이번에는 꽝! 이 나오게 해주세요.”   

<수박>이라는 일본 드라마에 여주인공이 얼음하드를 사먹는 장면이 나온다. 이 하드의 나무 스틱에 '당선'이라는 글자가 나오면 하나를 더 준다. 그런데... 희한한 그 행운이 여주인공에게 일어났다. 문제는 바꾸어 온 하드에서 또 ‘당선’ 이라는 글자가 나온 것. 두 번째, 세 번째 까지는 신이 나서 땀 흘리며 가서 바꾸어오고 했는데. 계속 당선되고, 또  당선되고 하면서 주인공은 너무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그 더운 날에 돌아오자 또 가고, 또 가고... 얼마나 지칠까? 마침내 여자 주인공은 이렇게 빌었다. “제발... 신이시여. 이번에는 꽝이 좀 나오게 해주세요!” 

곁에서 그걸 지켜본 친구가 딱하다는 듯 말했다. “야! 이 바보야, 그냥 버리면 되잖아! 아니면 나를 주던지,”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안 된다. 아깝다는 이유로 바꾸러 가기도 하지만, 어쨌든 자신에게 온 이 이상한 행운의 괴로움을 자신의 손에서 처리하고 싶었던 거다. ‘왜 끝이 안 날까?’ 하면서...

대부분의 사람은 행운을 걷어 차버리고 자유를 누릴 대범한 속성보다는 공짜로 생기는 행운에 발목 잡히는 본성이 더 많다. 하여 행운이 계속되는 사람은 점점 자율적인 선택의 능력과 해방감은 사라지고 뭔가 자기 주동적 힘이 아닌 외부의 운에 삶이 끌려가게 된다. 고귀한 독립체에서 안 보이는 어떤 힘에 노예가 되는 기생체로...  

여주인공은 울상이 되어 지쳐 집과 매장 길을 되풀이하다가 마침내 꽝! 이 나왔다. 무지막지하게 계속되는 ‘당선’ 글자에 불안해져서 나무 스틱을 실눈으로 조마조마 보던 여주인공은 비로소 만세를 부른다. '야호!' 이제 끝났다! 개운하다!‘ 하면서~ 세상에 행운이 괴로운 경우도 있다는 걸 알았다. 

 

‘행운’ – 때론 자유를 점점 갉아먹는 달고 단 독배다.

2019년 올해는 돼지 해다. 그것도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황금돼지의 해'라고 사람들이 뭔가 기대를 많이 하며 맞이하는 분위기다. 사람들은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횡재 같은 행운을 기대하기도 한다. 2019년 기해년 새해는 60년 만에 찾아온 황금돼지의 해라는데 사실일까? 

기해년은 己가 음양으로는 음, 오행으로는 토(土), 색깔은 황색이다. 그래서 2019년이 황금돼지의 해가 된다는 풀이다. 그러나 亥 역시 음양으로는 음(사주에서는 양), 오행으로는 수(水), 색은 검정으로 독자적인 형태와 의미를 지닌다. 아무런 문헌적, 과학적 논리 없이 굳이 천간(10간)인 己의 색을 지지(12지)의 돼지(亥)에 입혀 황색돼지를 만들어 황금돼지로 주장한다.

사람들은 끝없이 부와 장수 안락함, 성공 출세에 대한 욕망을 움켜쥔다. 그래서 작은 이유라도 생기면 철썩 같이 믿는다.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도 초월해서 동서고금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그 욕망이 사라진 적이 없고 지위나 신분에 상관없다. 하물며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에게서 조차 그 그림자를 본다.
 

변화산의 세가지 입장. 세상의 사람들은 괴로움으로 바라보고 중간의 신자들은 영광으로 가고 싶지만 예수님은 내려가자시니...
변화산의 세가지 입장. 세상의 사람들은 괴로움으로 바라보고 중간의 신자들은 영광으로 가고 싶지만 예수님은 내려가자시니...

“예수님! 여기가 너무 좋사오니 우리가 여기 초막 셋을 지어 영원히 살아요!” 환상적인 빛과 말로 할 수 없는 우월한 기분을 맛본 제자들이 예수를 졸랐다. 저 아래 세상의 별별 볼꼴 못 볼꼴 보며 사느니 여기 변화산에서 유유자적 사는 게 정말 좋을 거 같았다. 그러나 예수는 길게 고민도 하지 않고 잘라 말했다. “아니다. 내려가자!”
 
좋은 곳에서 쭉 살자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아마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평소의 예수의 주장에서 미루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족들이 저 아래 신음의 세상에 살고 있는데 빛나는 산위에서 우리만 편하자고 영원히 살 수 없다. 그러니 내려가자!” 고...
 
2천년도 더 지난 지금 여기 이 땅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아픈 중이다. 또는 슬프고 외롭고,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속에서 서로를 돌보라는 말만 던지고 무심하게 뒷짐을 지셨다. 서로에게 기댈 등짝이 되고 안아주는 품이 되어 함께 헤쳐 나가라는 교과서 같은 말만 하신다.
 
진짜 믿음이 좋다는 것은 그 터무니없어 보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아픈 중이고 사람은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직접 팔 걷고 구체적으로 소원을 다 들어주는 그런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진심을. 
 
탄식하는 사람 곁에서 같이 탄식하고, 악한 사람들에게 당하면서도 복수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견디고, 또 견디면서 하루씩을 살아 내는 것. 그 훈련과 수용 속에서 싹틀지 모를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것이다. 그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고 그게 사람에 대한 사랑일지도... 


 
맡김 – 좋은 곳에서 머무르지 못할 때도 참고 사는 것

그룹 퀸의 노래 중에 <I was born to love you> 라는 가사가 있다. 나도 가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세상에 왔어요!' 어쩌면 말하다가 울먹거리게 될지도 모를 그 고백을. 그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조금 대상도 바꾸고 수준도 낮추어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다. '아내여,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세상에 왔어요!' 그 정도나마 할 수 있기를 바랬다.  

하지만 나는 믿는 것도 사랑하는 방식도 너무 서툴렀다. 하나님에게는 고작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했고, 아니면 '왜 내게 이래요? 왜 아무 말 안 해요?' 가 고작이었다. 아내에게는  군림하는 왕처럼 살다가 간신히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고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만하니까 이미 늦었다. 내겐 많은 것들이 사라져가고 있었는데 몰랐다. 나의 시간도 건강도 열정도,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의 생명도...

그런데 그런 나를 이전보다 더 사랑하는 하나님은 끝내 이렇게 말하신다. "너를 사랑하려고 세상을 만들고'너를 사랑하려고 내가 존재한다!"  그 사랑에 많은 좌절을 멈추고 그저 고마움을 가슴에 담는다. 아내마저 나보다 먼저 내게 비슷한 말을 했다. “고마워요! 당신이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데...” 아내는 자기 목숨을 내게 믿고 맡긴다. 나는 하나님께도 아내에게도 그러지 못하는데.

아프다가 잠든 아내를 때론 멍하니 쳐다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아내야, 당신이 오래 아프니 내 마음도 많이 아프다. 이 세상을 지나가느라 우리가 몹시 고단하구나. 그래도 서로가 위로를 나누며 견디고, 또 견디자.“ 

사랑 - 누가 누구를 먼저 사랑 했는지, 누가 먼저 그 한마디를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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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식 작가의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위즈덤하우스, 2013)는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곁에서 남편이 써내려 간 6년 동안의 일기를 모은 에세이로 살아 있는 지금 시간이 기적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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