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삶은 낡아져도 고백은 깊어지기를
#22. 삶은 낡아져도 고백은 깊어지기를
  • 김재식 작가
  • 승인 2019.01.14 1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는 날 동안 함께하는 말씀

무서워, 무서워!”

왜 그러세요? 할머니?”

아이구, 벽에 불이 날까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어!”

어디가 이상한데요, 할머니?”

저어기... 불나겠네, 무서워!”

 

그러더니 기어이 간호사실에 가서 "불난다!"고 일러바쳐서 한 분을 데리고 왔다. ‘뭐지?’ 오신 간호사가 살펴보니 핸드폰 배터리 충전기의 작은 전원 불빛이다. 기가 막혔다. 그걸 불이 난다고 병실에 자는 사람들 열 명이나 깨우다니...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넘었다.

 

내 방이여! 여긴 내 방이라고

알았으니 제발 좀 주무세요!”

근데 내 자리가 없어...”

미치겠네. 저기가 할머니 자리잖아요!”

 

성질 급한 한 아주머니가 짜증 섞인 소리로 할머니께 타박을 한다. 갑자기 지난 일이 생각이 난다. 얼마 전 퇴원한 할머니가 아침 동이 틀 때까지 밤새 사람들 잠 못 자게 중얼거린 게 떠올랐다. 며칠을 그렇게 밤새 집에 가자!’ ‘나 집에 보내줘!’ 라고 하면서, 그러고 보니 우리 병실 사람들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다. 벌써 더 심한 경우를 겪어본 베테랑 환자와 보호자들이다! 흐흐흐!

사람이 나고 자라고 사라지기까지 많은 일들과 많은 관계를 거친다.
사람이 나고 자라고 사라지기까지 많은 일들과 많은 관계를 거친다.

이상하게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면 이런 어르신들이 증상이 더 심해지신다. 마치 신경통이 있는 분들이 비 오는 날엔 더 쑤시듯, 마음의 신경통인 치매도 그러신가 보다. 그런데...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짠하게 아프다. ‘집에 가자, 나 집에 보내줘하셨던 할머니가 잠시 정신이 맑아졌을 때 털어놓은 말이 가슴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아들이 고생이 많아, 내 병원비가 많이 나올텐데 그거 버느라...‘

 

늙음 - 삶이 낡으면 비 오는 날은 마음도 앓이를 한다. 숨기고 억누르던 걱정과 사랑이 튀어나온다.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는 것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고, 영화를 누리다가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더라도,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것 또한 인생이라는 것을 담담하게 표현한 영화가 있다. 공리가 주연하고 장이머우가 감독한 중국의 <인생> 이라는 영화다. 본 제목은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뜻의 ‘TO LIVE'.

 

원 제목은 'TO LIVE' , '살아 간다는 것'이었다
원 제목은 'TO LIVE' , '살아 간다는 것'이었다

도박으로 남았던 집 한 채마저 날리고 홧병으로 아버지까지 돌아가시자 남자 주인공 부귀에게 남은 것은 노모뿐이다. 이미 부인(공리역)은 딸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 버렸다. 하지만 천우신조 아내가 아들을 낳아 돌아오자 부귀는 마음을 다잡고 새생활을 시작한다.

그림자 극단,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하지만 유일한 밥줄이니 힘들어도 행복했다. 그러나 국민당의 포로가 되고 다시 공산당의 포로가 되면서 부귀는 세상에 떠밀려 이리저리 채인다. 눈치 빠른 부귀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공산당을 찬양하며 가족 곁을 지킨다.

하지만 어이없는 아들의 죽음과 딸의 죽음에 분노하면서도 세상이 아닌 자신의 무능을 탓한다. ‘왜 그 때 그랬을까?’ 라며 말이다. 시간이 약 이라고 했던가. 깊은 슬픔은 시간이 지나자 옅어지고 산 사람은 산 사람대로 그렇게 살아지게 된다. 소소한 행복이 찾아오고 또 그렇게 삶은 살아진다. 남겨진 사람들 덕분에 말이다. 그런 게 사는 것이고 인생이라고 담담히 얼굴표정에 담으며...

 

또 다른 인생에 대한 영화가 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얼마 전 생을 마감한 일본의 유명한 배우 키키 키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영화 <인생 후르츠>.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안과 미소를 잃지 않는 것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안과 미소를 잃지 않는 것

노부부의 일상을 좇는 다큐멘터리영화다. 90세 쓰바타 슈이치 할아버지와 그의 아내 쓰바타 히데코는 마른 몸과 굽은 등을 하고서도 좋은 재료로 밥을 짓고 건강한 디저트를 만든다. 그들이 살아가는 15평 남짓의 집은 건축가인 슈이치가 직접 지었으며, 정원에는 70종의 채소와 50종의 과일이 영글어가고 있다.

이들이 함께 살아 온 시간은 65. 그 긴 세월 동안 부부는 가장 자신들다운 삶을 살아왔다. 자연과 사람을 중요시 여기는 쓰바타 부부의 삶을 철학은 이미 온 몸에 배어있다. 누구를 가르치거나 훈계하지 않아도 철학적 삶을 몸소 보여주는 이 영화는 모든 장면이 감동 그 자체다.

 

사람들은 오래 살면 행복한 걸까?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최고의 복일까?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90:10)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삶 전체에 대한 고뇌를 수고슬픔이라는 단 두 단어로 함축해 읊조렸다. 모세의 말대로라면 결코 길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리 가볍지만은 않아 보인다. 모세는 12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969세를 산 노아의 조부 므두셀라다. 그러나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주에게는 천 년도 지나간 하루 같고 밤의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시편 90:4)찰나’[刹那]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산스크리트의 '크샤나', 즉 순간(瞬間)의 음역인데, 1찰나는 75분의 1(0.013)에 해당하는 극도로 짧은 시간을 뜻한다. 천년도 지나간 하루, 또는 더 짧아서 밤의 한 순간에 불과하다면 기껏 120년 수명인 우리 인생은 진짜 찰나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0.013초라니...

그래서일까? 모세는 "우리의 일생이 얼마나 짧은지 헤아릴 수 있게 하셔서 우리가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라고 말하면서 "주께서 우리를 힘들게 하신 날들만큼, 우리가 고통을 당한 햇수만큼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시 90:15)라고 하나님께 빈다. 결코 길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인생의 본질과 내용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밥은 뜸을 잘 들여야 맛있다. 밥 짓기의 긴 수고가 마지막에 결실을 맺는 것은 어쩌면 뜸에 달렸다. 그런데 밥만 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말도 뜸이 필요하다. 수증기가 무거운 뚜껑에 눌려 밥솥에 남았을 때 더 맛있는 밥이 되듯, 때로는 아직 남은 말들이 가슴속에 남겨져 뜸이 들 때 더 진심이 되기도 한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내 소원을 단 한 가지도 남기지 않고 끝까지 내놓는 것만이 좋은 믿음이 아니다. 때로는 다 말하지 않은 남겨진 소원을 속에 담고, 침묵하며 하나님의 말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뜸도 들여야 하나님과 우리가 같이 기뻐하는 소원이 되기도 한다.

내가 드리는 기도를 어느 날 돌아보면서 알았다. 소원을 들어주신 것들에 감사하다는 기도와 원치 않는 일들이 생긴 것에 대한 의문과 원망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두 곳의 두 분에게 드리는 기도도 아니고 기도를 하는 사람도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인데 왜 그럴까 궁금했다.

 

질리도록 좋은 하나님이 질리도록 좋은 아내와 질리도록 좋은 자녀들을 주셨다. 그런데도 왜 내 속의 풍랑들은 쉬지 않고 작은 고통들에도 이리 흔들리는 걸까? 혹시 내 삶에 주시는 풍랑과 고난들은 질릴 정도로 주신 선물들에 권태내성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라고 챙겨주시는 또 다른 은총일까? 수족관속 관상어들의 건강을 위해 투입되는 긴장 용도의 날카로운 상어 몇 마리 같은 것일까?

길지는 않은 지난 세월들을 열심히 밥 짓기처럼 살았다. 뜸을 들이는 가장 좋은 비결은 필요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무거운 솥뚜껑을 살며시 밀어내며 김이 새어나올 때까지, 너무 일러서 설익거나 너무 게을러서 태워버리지 않도록 차분하되 눈을 돌리지 않는 것. 기도도 맛있는 밥을 얻기 위해 뜸을 들이는 것처럼 성급하게 솥뚜껑을 열었다 닫았다하며 안달하지 않아야한다.

한 세상을 청춘과 심신을 다 낡도록 자녀들을 위해 사신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서조차 자식을 위하던 마음, 비싼 병원비와 애쓰는 자식이 안쓰러워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도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말을 달고 사시던 깊은 사랑을 떠올려본다. 육신의 인생에서도 사랑은 이렇게 삶이 낡고 수명이 끝에 이르도록 변함없이 아름다운데, 하물며 영혼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부모자식 사이는 더 귀하고 빛나게 엔딩을 해야지 않을까?

남은 고백 받은 사랑도 받지 못한 사랑도 감사하다는 진짜 깨달음을 주소서!

2016년 6월 27일 아르헨티나의 가르멜 수녀원의 세실리아 마리아 수녀는 폐암투병과 임종의 고통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그의 유언은 "기도를 많이 해주세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 큰 축하연으로 해주세요. 기도와 축하 둘 다 잊지 말아주세요!' 였다.
2016년 6월 27일 아르헨티나의 가르멜 수녀원의 세실리아 마리아 수녀는 폐암투병과 임종의 고통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그의 유언은 "기도를 많이 해주세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 큰 축하연으로 해주세요. 기도와 축하 둘 다 잊지 말아주세요!' 였다.

 

 


  •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18-1 401-51호(예관동, 비즈헬프)
  • 대표전화 : 010-7551-3091
  • 팩스 : 0540-284-309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지숙
  • 법인명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제호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03
  • 등록일 : 2018-06-15
  • 발행일 : 2018-07-01
  • 발행인 : 윤지숙
  • 편집인 : 윤지숙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oshuayoon72@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