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신학자] #6.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일상 속 신학자] #6. 니체, 이 사람을 보라!
  • 김서연 기자
  • 승인 2019.02.11 22: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니체를 다시 생각하다
▲니체전집15 『이 사람을 보라』(프리드리히 니체, 백승영옮김, 책세상, 2002)/ 니체전집1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14)
▲니체전집15 『이 사람을 보라』(프리드리히 니체, 백승영옮김, 책세상, 2002)/ 니체전집1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14)

“내 작품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도대체 다른 책들을 더 이상은 견뎌낼 수 없게 된다. 내 책보다 더 긍지에 차 있으면서 동시에 더 세련된 종류의 책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독자의 모습을 내 머리 속에 그려보면 용기와 호기심이 어우러진 하나의 괴물이 되고 만다. 게다가 그는 탄력 있으면서도 꾀가 많은 신중한 자이며, 타고난 모험가이자 발견자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근본적으로 누구에게만 말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 나는 차라투스트라가 말한 것보다 더 표현을 잘할 수는 없다. 차라투스트라가 누구에게만 자기의 수수께끼를 던지는가? 너희, 대담한 탐험가, 모험가들. 그리고 언젠가 영민함의 돛을 달고 위험한 바다를 항해한 적이 있는 자들에게, 너희, 수수께끼에 취해 있는 자들, 불투명함을 즐기는 자들, 피리 소리로도 온갖 미궁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그런 영혼의 소유자들에게. 그것은 너희가 겁먹은 손으로 한 가닥 실을 찾아보려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추측할 수 있는 곳에서는 추론하려고 하지 않는다.”

-니체전집15 『이 사람을 보라』(프리드리히 니체, 백승영옮김, 책세상, 2002, 321-388) 중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에서-

 

‘어떻게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자전적 고백록이자 마지막 저작인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에서 보여주는 그의 놀라운 자신감을 보십시오. 루터교 목사의 아들답게 제목도 성경의 요한복음 19장 5절에서 빌려왔습니다. 채찍을 때린 후 가시관과 자색 옷을 입힌 예수를 유대인들에게 내보이면서 ‘정말 이 사람을 죽이라는 말이오?’ 라는 빌라도의 속내가 담긴 말이 "보시오, 이 사람이오." 입니다.

이 책을 쓸 당시 44세의 니체 역시 자신이 사랑한 철학에 배신당한 상처로 스위스의 산골에서 쫒기 듯 글을 썼습니다. 한 마리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처럼, 평생을 철학의 전투장에서 싸우다 병 들었지만 철학사의 위대한 인물이라는 긍지를 갖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쓴 책이라고 합니다.

 

니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책이면서 손에 들게 되는 책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정동호 옮김, 니체전집13, 2014)입니다. 끝까지 읽어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책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대학교 때 손에 집어본 기억은 있지만, 제목만 기억하는 책입니다. 그런 니체를 수십 년이 지나 주목하게 된 계기는 유튜브에 올려진 EBS <인문학 특강> 이진우 교수님의 명쾌한 니체강의 덕분입니다.

“나에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으로 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물을 안겨주었다.”는 차원을 뛰어넘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다음의 제5복음서이자 미래세대를 위한 새로운 성경이라고까지 언급할 정도로 니체에게 있어 이 책의 자부심은 대단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감히?”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그만큼 니체에게는 자기 사상의 결정판인 것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의 독일어 명칭으로, 당시 기독교에 도전한 이단인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이자 예언자입니다. 김응교 교수님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라는 이단의 이름을 빌려 예수 정신을 왜곡한 당시의 잘못된 기독교 사상을 전복시키려 했다고 해석합니다. 「반시대적 고찰」과 「안티크리스트」 역시 예수를 이용한 당시 종교 장사치들과 잘못된 기독교 정신에 대항한 니체의 전면전으로 보았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는 재미난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1부에서 4부까지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가 나중에 합본이 되었습니다. 총 4부의 구성에 각 부마다 10개에서 20개 정도의 주제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을 담았습니다. 김응교 교수님은 1-3부는 순서를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읽되, 3부까지 읽은 후에 4부를 읽어야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1부에는 세 변화에 대하여, 배후 세계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죽음의 설교자들에 대하여,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늙은 여인들과 젊은 여인들에 대하여 라는 흥미로운 주제들이 보입니다.

2부에는 연민의 정이 깊은 자에 대하여, 잡것에 대하여, 자기극복에 대하여, 고매하다는 자에 대하여, 세상살이를 위한 책략에 대하여 라는 질문이 있고, 3부에는 왜소하게 만드는 덕에 대하여, 감람산에서, 배신자에 대하여,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란 질문이, 마지막 4부에는 실직, 더없이 추악한 자, 제 발로 거렁뱅이가 된 자, 최후의 만찬, 과학에 대하여 란 질문이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을 기다립니다.

 

니체에 푹 빠져있는 몇 주간, 새롭게 알게 된 음악이 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곡입니다. 독일 작곡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니체의 장대한 철학 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큰 감명을 받은 후 8개의 에피소드를 선별해 교향시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이 곡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철학의 음악화’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비난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네이버에서 1분씩 잘라놓은 네 편의 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를 읽으면서 동명의 곡을 함께 듣는다면 특별한 경험이 되실 것입니다.

 

니체는 인간의 정신이 세 가지 변화를 겪는다고 말합니다. 아니 세 가지 단계로 질적인 변신을 하라고 우리를 도전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핵심 사상이자 니체의 첫 독자와 열혈 독자 모두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주제입니다.

“나 이제 너희에게 정신의 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련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가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닌 억센 정신, 짐깨나 지는 정신에게는 무거운 짐이 허다하다. 정신의 강인함, 그것은 무거운 짐을, 그것도 더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자 한다. 무엇이 무겁단 말인가? 짐깨나 지는 정신은 그렇게 묻고는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짐이 가득 실리기를 바란다.”

제일 낮은 단계의 인간의 정신을 ‘낙타적 정신’이라 칭합니다.

이윤호 교수님은 낙타가 주인에게 한 번도 “아니오”라고 말해본 적이 없고, 자주 무릎을 꿇는 예의바르고 착한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인의 자존심은 높이 세우지만, 자신의 자존심에는 크고 많은 상처를 입는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낙타는 공경과 공포심에 무릎을 꿇고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진 채로 살아가는 인간을 비유합니다. 자신의 세계를 사막으로 만들어 희생하고 체념하며 죄책감으로 살아가는 사람, 무엇보다 당위의 정신인 “You should!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라는 형식주의와 노예도덕의 의무에 묶여 살아가는 인간을 통칭합니다.

두 번째 단계의 인간은 ‘사자’입니다.

“짐깨나 지는 정신은 이처럼 더없이 무거운 짐 모두를 짊어진다. 그리고는 마치 짐을 가득 지고 사막을 향해 서둘러 달리는 낙타처럼 그 자신의 사막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그러나 외롭기 짝이 없는 저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정신이 사자로 변하는 것이다. 정신은 이제 자유를 쟁취하여 그 자신이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그는 여기에서 그가 섬겨온 마지막 주인을 찾아 나선다. 그는 그 주인에게 그리고 그가 믿어온 마지막 신에게 대적하려 하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그 거대한 용과 일전을 벌이려 한다.”

드디어 낙타적 인간은 의무를 벗어던지고 자유를 쟁취하여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분연히 일어섭니다. 사자처럼 남의 말을 안 듣는 동물이 없고, 사자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목숨부터 내놓아야 한다고 이윤호 교수님은 말합니다. 그에게 무언가를 시키려고 하면 으르렁거리기부터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자에겐 자유를 향한 열망이 있습니다.

사자의 정신은 “아니오”를 분명히 표현하며, “I will, 나는 하고자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정신입니다. 그렇지만 용과의 두려운 일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신이 더 이상 주인 또는 신이라고 부르기를 마다하는 그 거대한 용의 정체는 무엇인가?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 그것이 그 거대한 용의 이름이다. 그러나 사자의 정신은 나는 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비늘 짐승인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가 정신이 가는 길을 금빛도 찬란하게 가로막는다. 그 비늘 하나하나에는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명령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이들 비늘에는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치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고 용 가운데서 가장 힘이 센 그 용은 “모든 사물의 가치는 내게서 찬란하게 빛난다고 거들먹거린다. 가치는 이미 모두 창조되어 있다. 창조된 일체의 가치, 내가 바로 그것이다. 진정 ‘나는 하고자 한다는 요구는 더 이상 용납될 수가 없다.”

“용이 하는 말이다. 형제들이여, 무엇 때문에 정신에게 사자가 필요한가? 짐을 질 수 있는 짐승, 체념하는 마음 그리고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짐승이 되는 것만으로는 왜 만족하지 못하는가? 새로운 가치의 창조, 사자라도 아직은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 그것을 사자의 힘은 해낸다. 형제들이여, 자유를 쟁취하고 의무에 대해서조차도 경건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자가 필요하다.”

용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는 사자의 시도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슬프게도 사자는 용과 격렬하게 싸우다 지쳐갑니다. 사자는 낙타처럼 삶을 사막으로 만들진 않지만, 그의 삶 역시 웃고 즐길 만한 것은 아닙니다. 사자는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에 내몰린 병사와 같습니다. 사자는 용에게 의무에 대해 싫다고 말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많이 알지 못합니다.

용으로부터 자유를 찾아왔지만,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릅니다. 여전히 법과 제도, 시스템과 도덕, 종교적 명령이라는 천년 정신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지만, 안타깝게도 분노와 비판으로 으르렁대기만 하는 냉소주의에 머물고 맙니다.

마지막 단계의 인간 정신인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나 말해보라. 형제들이여. 사자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어린아이는 해낼 수 있는가? 왜 강탈을 일삼는 사자는 이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는가?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그렇다.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의욕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 나 너희에게 정신의 세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노라. 어떻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가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는 “얼룩소”라고 불리는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어린아이는 죄의식이나 편견 없이 자유롭고, 잘 잊을 줄 알아 늘 새롭게 관계할 줄 아는 것은 물론이고, 규칙을 스스로 창조하며 놀이하듯 살되 혼자서도 즐기며, 어떤 어려움도 반길 줄 아는 긍정의 에너지를 가졌습니다. “I am,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야!”라며 놀이하는 정신입니다.

어린아이는 도덕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도덕을 갖고 있지도 않는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용이 나타난다면 용은 어린아이의 장난감이 됩니다. 설령 의무를 강요하는 용을 만난다고 해도 으르렁대지 않고 웃음으로 응대합니다. 진정 용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사자가 아니라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야말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 독일어로는 ‘위버멘쉬’(übermensch), 인간을 넘어선 인간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니체가 말한 인간의 정신 중에 어느 단계에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은 도대체 무엇이고,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게는 도덕과 종교적인 명령들이 무거운 짐입니다. 사람들의 평가와 제 속의 당위성이라는 이중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걸 니체를 통해서도 다시금 발견합니다.

그리고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매순간 묻고 답하는 중입니다. 낙타로 머물지 않고 사자의 포효하는 단계로, 어린아이의 놀이하는 삶으로 올 한해 꾸준히 발전해가기를 소망합니다.

 

<니체의 책 읽기 길라잡이>

*백승영 교수님은 니체를 읽기 위해 우선적으로 읽을 필수적인 세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먼저, 니체의 철학적 자서전인 『이 사람을 보라』, 두 번째는 니체 자신이 “요약된 내 철학”이라고 말한 니체철학의 정수인 『우상의 황혼』과 세 번째는 『도덕의 계보』 로, 『선악의 저편』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소개한 사상을 논문형식으로 니체의 사유들을 집대성한 책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술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바그너의 경우』」를, 종교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안티크리스트』를, 그리고 좋은 니체 개론서를 찾아 읽기를 권합니다.

*김응교 교수님은 한 권의 책으로 니체를 읽으려는 분들께 고명섭 기자의 『니체극장』(고명섭, 김영사, 2012)을 초강추합니다. 출생에서 죽음까지, 니체의 인생 궤적을 따라가며 써내려간 니체 평전의 결정판이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두께지만, 니체의 중심사상을 이해하기 원하신다면, ‘니체, 신이 죽은 시대를 말하다’ 라는 제목으로 2014년에 EBS <인문학 특강>으로 방영된 내용이 토대인 이진우 교수님의 『니체의 인생강의』(Humanist, 2015)도 좋습니다.

*단행본 원작을 읽을 분이라면, 민음사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장희창 옮김)도 번역이 잘 되었다고 합니다.

*니체에 푹 빠져 살고 싶은 분이라면, 책세상 출판사가 내놓은 「니체 전집」 21권도 훌륭합니다. 니체관련 저작출판의 결정판으로, 니체정본으로 평가받는 독일 발터 데 그루이터사가 펴낸 '니체비평전집'을 완역한 데다 그동안 번역된 적이 없던 니체의 유고집이 12권이나 포함되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대표작은 재번역까지 했다고 합니다.


  •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18-1 401-51호(예관동, 비즈헬프)
  • 대표전화 : 010-7551-3091
  • 팩스 : 0540-284-309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지숙
  • 법인명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제호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03
  • 등록일 : 2018-06-15
  • 발행일 : 2018-07-01
  • 발행인 : 윤지숙
  • 편집인 : 윤지숙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oshuayoon72@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