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한국교회에 주는 집행유예?
부패한 한국교회에 주는 집행유예?
  • 이진섭 교수
  • 승인 2018.07.11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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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요셉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요셉

 

양적 성장 vs. 질적 성장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이만큼 성장했으니, 이제는 질적 성장을 해야 할 때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한국교회의 잘못된 모습과 문제를 고민할 때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다. 언뜻 들으면 이 말은 교회 개혁을 주장하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좀 다르다.

일반 사회의 조직, 예컨대 어떤 기업이 ‘외형’을 먼저 키운 후 나중에 내실을 기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있다. 이익을 사원들에게 적절히 분배하거나 사원들의 복리후생에 사용하기보다는 재투자에 몰두하여 우선 회사의 외형을 키운 후, 외형이 일정 규모에 도달했을 때 기업의 내실을 다지는 식이다. 더 큰 미래를 위해 현실의 어려움을 잠시 참고 나가자는 논리다. 논리 자체는 그렇듯 하지만, 사실 이런 논리에는 허점과 함정이 많다. 약자인 사원의 희생으로 회사를 키운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내실 없이 무조건 외형을 키우다가 무너지는 경우도 있고(한국은 IMF 때 이런 경험을 많이 했다), 큰 후에 내실을 채운다며 내실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있다(고정비를 가볍게 한다는 명목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한 경우가 그런 예이다). 일반 조직과 기업의 경우에도 이런 논리를 사용하는 걸 조심해야 한다.

교회의 경우는 더 그렇다.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다. 단순히 헌금 규모로 교회의 잘 됨을 측량할 수도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된 거룩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자체다. 개념부터 질적 변화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다. 질적으로 변화되지 않은, 다시 말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지 않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교회가 커진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다움과 본질을 잃은 거다. 외형이 커진 것이 아니라, 타락한 모습이다. 교회는 질적 변화(성장)가 없으면 양적 성장도 없다. 불량품만 잔뜩 생산한 공장이 결국 파산하는 것처럼, 교회에 질적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양적으로 성장한 것은 타락으로 파산하게 되는 표시가 될 뿐이다.

질적 성장 없는 양적 성장은 타락의 증거이다. 한국교회에는 이런 표시와 증거들이 널브러져 있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양적 성장은 했으니, 이제는 질적 성장을 할 때다.’라는 말은 교회의 본질을 은근히 왜곡하는 잘못된 말이다. 겉으로는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한국교회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교묘한 (한편으로는 매우 정치적인) 말이다. 이 말로 타락한 한국교회에 일종의 면죄부를 주거나 집행유예를 선고해서는 안 된다.

 

열매 맺음

바른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함을 강조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판단과 같은 결에 서 있다. 예수님은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다고 하신다(마 7:16).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다. 참 열매로 그들을 안다고 하신다(참조. 마 7:17-20). 예수께 연결되어 있는 자는 열매는 맺고, 붙어 있지 않는 자는 (곧, 참 과실을 맺지 못하는 자는) 결국 불에 던져 사를 것임을 지적하신다(참조. 요 15:1-6). 열매가 없다는 것은 그 뿌리와 나무 자체가 다른 거라고 말씀하신다.

바울이 말하는 바도 기본 정신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바울은 교회 성도의 삶이 새롭게 된 모습을 열매라고 한다. 그 열매의 대표적 모습을 보통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덕목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바울은 교회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모습을 볼 때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참조. 살전 1:2-3; 살후 1:3-4; 골 1:3-5 등). 골로새 교회를 향해 바울이 한 말은 그 대표적인 예다. 복음이 전파되어 온 천하에 열매를 맺는 것처럼 골로새 교회 너희에게도 복음이 전해져 열매를 맺는다고 말한다(골 1:6.).

이때 바울이 말하는 열매는 교인 수의 증가가 아니다. 교회 성도들의 삶의 모습, 즉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대표되는 성도의 삶을 말한다. 골로새 교회의 교인 숫자를 칭찬한 게 아니라 성도의 삶의 모습을 칭찬하며 감사한 것이다. 이런 삶의 열매가 없는 교회에 대해서 바울은 감사 기도를 드리지 못한다. (예컨대, 감사가 들어갈 자리에 감사가 없는 고후 1:3-7을 참조하라). 바울은 변화된 성도의 삶을 감사하며 그런 성도의 삶을 복음의 열매라고 생각한다. 바울이 말하는 열매는 ‘정량적 평가’가 아니라 ‘정성적 평가’이다. 바울에게 ‘양’은 ‘질’이 전제 될 때 고려될 뿐이다.

 

부흥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국교회에는 희한한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성도의 삶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신자로 등록한 사람들의 숫자만을, 그것도 단순한 숫자의 증가를 ‘열매’로 인식하는 습관이 생겼다. 개척 교회가 열매를 맺었다는 말은 곧 등록하고 나오는 교인 숫자로 인식되었고, 선교사들이 열매를 맺었다는 말은 곧 복음을 전하여 생긴 신자들의 숫자로 판단되었다. 교인수를 크게 늘리지 못한 개척교회 목사나 선교지 선교사는 열매 맺는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는, 능력 없고 초라한 인물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숫자에 목을 매고 숫자에 울고 우는 분위기가 은근히 마련되었다. 메가 처치 현상은 이런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대주주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는 ‘부흥’이란 단어의 뉘앙스 변화에 잘 나타난다. 교회에 다니는 우리는 부흥이란 말을 들으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몰리는 장면을 자연스레 연상한다. 숫자의 엄청난 증가가 곧 부흥이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이것이 부흥의 참 의미는 아니다. ‘부흥’(復興)이라는 말은 쇠퇴한 것을 다시 일어나게 한다는 뜻이다. 새롭게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다. 영어로는 revival인데, 이는 ‘다시 살게 하다’는 뜻을 가진 revive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회복하는 것, 생명을 제공하여 다시 살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이런 ‘부흥’의 의미를 잘 알려준다(하박국 3장). 선지자는 여호와께 기도하며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합 3:2b)라고 기도한다. 우리는 이런 기도를 종종 오해한다. 엄청난 사람이 교회로 모여들어 메가 처치가 되는 꿈을 꾼다. 청년부도 늘고, 장년부도 늘어 큰 예배당을 지어 지역의 유지가 되는 교회를 꿈꾼다. 하지만 하박국이 기도한 내용은 그게 아니다.

하박국은 유다 백성의 죄와 타락을 보고 고민하며 하나님께 묻는다. 이런 엉터리 모습을 왜 보고만 계십니까?(참조. 합 1:2-4) 여호와의 답은 놀랍다. 걱정마라. 내가 포악한 바벨론 나라로 유다를 쳐 멸망하겠다(합 1:5-11). 선지자는 놀란다. 아니, 유다 백성이 문제라고 더 포악하고 악한 사람들로 유다를 치시다니요?(합 1:12-17) 선지자는 하나님께 묻고 강변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가지신 계획과 섭리에 설득된다. 악한 유다 뿐 아니라 더 악한 바벨론도 결국 모두 치신다. 심판하신다. 하지만 유다가 고통을 당하면서 새롭게 될 것이다. 유대 백성을 새롭게 하시려고 바벨론을 사용하신다(하박국 2장).

하박국은 그제야 여호와의 뜻을 따라 기도한다.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합 3:2b)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들어 이제 유다를 치시는 것에 공감하는 기도이다. 유다를 멸망함으로 백성을 새롭게 해달라는 기도다. 그래서 그는 이 기도의 앞뒤에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합 3:2a)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 3:2c) 유다 나라를 멸망하시되,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결국 그들을 새롭게 해달라는 간구다. 그래서 선지자는 자기 기도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장식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부흥은 엄청난 양적 팽창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을 새롭게 바로 잡아 생명을 넣는 일이다. 교회의 부흥은 타락한 교회가 새롭게 되는 것이지, 타락한 교회와 교인의 수를 늘리는 게 아니다. 타락한 교회에게 ‘양적 성장’이라는 면죄부를 준 채 ‘질적 성장’이라는 집행유예 기간을 선고하는 게 아니다. 교회의 부흥은 진짜 그런 게 아니다. 잘못된 걸 고백하여 허물고 새롭게 바른 것을 짓는 거다.

 

복음과 열매

복음은 전파되는 곳에 열매를 맺게 한다. 복음이 진정 전파되면, 열매를 맺는다. 바울은 이점을 명확히 말한다(골 1:6). 복음이 제대로 전파되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등장한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모습이 나타나고(참조. 살전 1:2-3; 살후 1:3-4 등), 교회가 사람들에게 칭송 받으며(참조. 행 2:47),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된다(참조. 엡 1:6, 12, 14 등).

우리시대는 복음이 제대로 전파되지 못하는 시대이다. 그러기에 진정한 변화가 잘 안보이고, 부흥이 잘 일어나지 않으며, 진정한 성장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양적 성장’이라고 치부했던 많은 경우는 타락과 부패의 증상과 표지로 판명 날 뿐이다. 사람들은 그런 말에 속지만, 하나님은 그런 허세와 눈속임에 속지 않으신다.

우리 앞에 놓인 숙제가 있다. 복음을 온전히 깨달아 바르게 전파하여 참 열매가 맺히도록 해야 한다. 질적 변화가 전제된 참된 성장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진정한 부흥, 곧 새 생명을 불어 넣는 일에 힘써야 한다. 성경·삶·사역을 꿈꾸며 지향해야 할 바가 바로 이점이다. 진정한 부흥을 내다보며, 참 복음이 알찬 열매를 맺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이진섭 교수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www.ezra.ac.kr], 성경삶사역연구소 소장[www.BibleMinist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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