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1] 노승수, "정이철-서철원을 안셈과 피스카토에 비유한 적 없다."
[반론1] 노승수, "정이철-서철원을 안셈과 피스카토에 비유한 적 없다."
  • 노승수 목사
  • 승인 2019.02.1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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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믿음》 정이철 목사의 글에 대한 반론 (1)

-해당 글 계속되는 말바꿈, 현재 “관리자가 검토 중인 기사” 중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편집자 주] 정이철 목사는 2019년 1월 31일,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웹사이트 《바른믿음 》에 <노승수, 정이철-서철원을 안셈과 피스카토에 비유하였다.>는 제하의 글을 게시했다. 해당 글에는 성경과삶이야기 <울림>이 작년  2018년 10월 25일 작성한 노승수 목사_심리학의 핵심감정, 신학으로 다시 읽기>에 대한 기사글에 첨부한 사진을 사용했다. 하지만 정 목사는 <울림>에 사전동의도 구하지 않고, 출처표기없이 무단으로 사용한 저작권 침해와 노승수 목사에 대해 악의적인 기사를 작성한 것에 유감을 표하며 사진을 뺄 것을 고지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목사는 "이미 인터넷에 널려있는 사진 중에서 (노승수 목사의) 비교적 좋은 인상으로 잘 나온 사진을 사용했다. 법을 떠나 이미 다 공개돤 것이니, 인색하지 마시고 함께 사용하게 해 주시기 바란다. 더 본질적인 문제로 씨름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지금 컴 앞에 앉아 있지 않고, 스마트폰만 사용가능해 수정을 할 수 없다. <울림>이 노승수 목사의 책에 대해 홍보하는 글을 올림으로서 옹호 언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그러면서도 문제가 된 사진은 정 목사가 2월 1일 오후 12시 30분 경 <노 목사, 설 지나서 고소 및 민사배상 청구할 것이라 밝혀>라는 글을 작성해서 올렸을 때까지도 게시되어 있었고, 2월 2일이 오후가 되서야 삭제됐으며, 문제를 제기한 기자는 SNS에서 차단당했다. 그후 정 목사는 2월 11일 현재까지 노승수 목사에 대한 글을 색션까지 만들어 7차례 올리면서 비판을 하고 있다. 노승수 목사는2월 11일 오전 9시, 이에 대한 반론문을 <울림>에 보내왔다. 성경과삶이야기 <울림>은 노 목사의 반론문들을 검토 후 차례로 전문을 싣기로 했다.

사진은 오른쪽 바른믿음 정이철 목사(출처: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351), 오른쪽 노승수 목사
▲사진은 왼쪽 바른믿음 정이철 목사(출처: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351), 오른쪽 『핵심감정: 탐구편』(세움북스, 2018.9.)의 저자 노승수 목사

 

2019년 1월 31일자 <노승수, 정이철-서철원을 안셈과 피스카토에 비유하였다>(http://archive.fo/zKoLM)는 글에 대한 반론

정이철 목사는 2019년 1월 31일, 《바른믿음》(http://www.good-faith.net)에 “제보되었다.”면서, 마치 제가 “노승수, 정이철-서철원을 안셈과 피스카토에 비유하였다.”고 글을 올렸습니다. 이것은 허위사실입니다.

해당 글은 원래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359"라는 웹주소로 게시 되었습니다(스크린샷: http://archive.fo/zKoLM). 하지만 제가 정이철 목사에 대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경찰조사를 의뢰하자, 제목과 날짜 표기는 같으나 본 내용은 없어지고 하단에 2월 3일이라고 표기된 사과문이 잠시 게시됐습니다.

그마저도 “사실 확인을 위해 정이철 씨와 전화통화를 했다.”는 형사의 진술에 의거해 현재는 “관리자가 검토 중인 기사”라고만 표시되어 있습니다. 정이철 목사가 해당 글의 내용을 자꾸 바꾸기 때문에 반론 글을 작성하는 저로서는 대응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는 정 목사 스스로가 기본적으로 허위사실을 기재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정이철 목사는 이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저야 할 것입니다.

▲ 지난 1월 31일 《바른믿음》에 게시된 “노승수, 정이철-서철원을 안셈과 피스카토에 비유하였다.”는 글은 2월 11일 오후 12시 56분에는 '노승수'라는 색션에서 "관리자가 검토중인 기사"라고 되어 있지만, 오후 2시 2분 경에는 'NO S. S'로 바뀌어 있다.

또한 기사의 내용에서도 ‘노승수가’라고 지칭하던 호칭을 ‘노 목사로, 그리고 NO. S. S로 바뀌었다. 또한 여러 차례 다른 글들을 올리면서도 계속해서 각 글의 내용들을 다른 표현들로 바꾸고, 바꾸고 하면서 읽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사건의 발단과 경과

사건의 발단인 된 윤모 목사의 2017년 4월 28일 자신의 SNS 계정(https://www.facebook.com/youngsangyoon72/posts/1520894147943655)에 올린 <(4)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죄와의 관련성>라는 제하의 “#안셈과_피스카토(Johannes Piscator)는 "예수님의 능동적 순종은 그 자신 개인에게 필요한 것(necessarium requisitum personale)이고 우리 신자들에게 직접 속죄적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속죄적 유익은 오직 그의 수난과 죽으심이 성취하셨다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저는 결단코 정이철 목사와 서철원 박사를 ‘안셈과 피스카토’로 비유한 일이 없습니다.

윤모 목사가 2017년 4월 28일 자신의 SNS에 게시한 글 갈무리
▲윤모 목사가 2017년 4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갈무리

저는 2017년 12월 15일에 시무했던 K교회 카페 “이중 칭의에 대한 각기 다른 사용법에 관하여..”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지금 이 글은 해당 카페에 없습니다. 제가 그 교회를 사임하고 나온 후 카페 관리자가 바뀌었습니다. 현재는 제 개인 블러그 https://lewisnoh.tistory.com/61에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정이철 목사는 그 내용을 가져와서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로서”라고 했다며, 윤 목사 대신 저를 타켓으로 삼고 “이단”이라고 단정 짓고 있습니다.

그보다 앞서 정이철 목사는 《바른믿음》 1월 25일자에 <손성은 목사가 서철원 박사의 성화론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354)라는 제목으로 글을 실었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손 목사가 2018년 6월 11일 SNS에 게시한 글에 대한 제보자의 질문에 정 목사가 답변한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또한 1월 27일에는 고경태 목사<손성은 목사의 무례한 포스팅과 무책임한 뒷담화에 대한 유감>(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356)이라는 제목으로 “서철원 박사의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에 대해 (손성은 목사가) 맹목적으로 비아냥 투로 비판했다.”며, “무책임한 비판은 학도의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고까지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손모 목사가 페이스북 <개혁파 목사와 목회 개혁주의 성경해석>에서 활동한 것은 2016년 2016년 6월 29일의 게시 글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분의 개인의 SNS에 게시 된 것은 저는 모르는 사실일 뿐 아니라, <개혁파 목사와 목회 개혁주의 성경해석>에서의 일이 아닙니다.  

2월 1일 정이철 목사<노 목사, 설 지나서 고소 및 민사배상 청구할 것이라 밝혀>(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360)라는 제목으로 저에 관한 또 다른 글을 올렸습니다. 바로 이 글에 2월 2일 ‘에이구’라는 분이 쓴 댓글에는 “손OO가 대장이고 그 밑에 노승수와 윤OO이라고 하는 자들이 모여서 끄적거리는데요....지들이 신학의 정상에 있는 줄 안다니까요. 참... 언젠가 한번 임자를 만나리라... 생각했었는데, 정이철 목사님에게 한방에 가버리셨네요...혹시 염려되어서 말하는데요.... 절대로 윤OO이라는 언급하시면 안 됩니다. 그 새끼는 똘끼가 있는 놈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요. 똘끼 있는 윤OO 그 새끼를 언급하면 안되요... 똘끼있는 병신은 철저하게 개무시하는 것이 좋아여... 홧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른믿음》2월 1일자에 정이철 목사가 작성한 <노 목사, 설 지나서 고소 및 민사배상 청구할 것이라 밝혀>(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360)라는 글 하단에는 바로 다음 날인 2월 2일 오전 9시 25분경 ‘에이구’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의 윤모 목사와 손모 목사, 그리고 노승수 목사를 비방하는 댓글이 달려있다.

‘에이구’라는 분이 정이철 목사가 언급한 제보자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저를 윤 목사와 손 목사와 엮어서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는 손 목사에 관련한 기사가 아래와 같이 게재되고 4일 후 저에 대한 이단 시비 기사가 게재됩니다. 공교롭게도 '에이구'라는 닉네임의 댓글이 말하는 대로 정 목사의 비판 글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반 론

먼저 정이철 목사에게 묻고 싶은 것은 “누가 정이철 목사에게 이단을 판단할 권한을 주었는지?”입니다. 또한 “이단 규정이 정이철 목사 개인의 몫인가?”하는 것입니다. 각 교단의 신학부와 이단대책위원회 그리고 교수님들의 신학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한 공교회적인 판단이어야 합니다.

만일 제가 정이철 목사가 주장하는 데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문장을 썼다고 한다면, 저는 제가 속한 시찰회와 노회, 교단의 지도와 치리를 따를 것입니다. 정이철 목사는 타 교단 분이신대도, 어떤 교단적 절차도 없이 저에 대해 사사로이 “이단”이라고 정죄할 자격이 있습니까? 저는 얼마든지 제가 쓴 글에 대해 노회나 총회가 물어 오신다면,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정상적 장로교회의 목사인 저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정이철 목사의 신학이 의심스럽습니다. 또한 정이철 목사가 《바른믿음》에 저에 관련해서 7차례(2019년 1월 31일~2월 11일 현재까지)에 걸친 글을 게시했기에 저 역시 연속되는 반박문을 통해서 그의 신학을 추적함과 동시에 개혁교회의 보편적 교리 중 하나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변호하고자 합니다.

다음은 정이철 목사가 《바른믿음》에 게시한 2019년 1월 31일자 <노승수, 정이철-서철원을 안셈과 피스카토에 비유하였다>(http://archive.fo/zKoLM)라는 기사에 대한 반론의 전문입니다.

 

[반론1]

1607년 라 로쉘(La Rochelle) 총회는 피스카토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부인하는 것이 개혁주의 고백서 밖에 떨어진다고 결론내리고 그에 따라 5년 후 모든 목사들로 하여금 서명을 하게 한 결정문에 나타난 표현의 다른 표현입니다. 모든 목사가 서명한 문서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의 위치에서 대신하여서, 도덕법과 의식법에 순종하셨으며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순종이 따라서 우리에게 전가된다, 그리고 우리의 칭의는 죄 사함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동적 의로움의 전가로도 이루어진다.(John Quick, Synodicon in Gallia Reformata, volume 1 (London: T. Parkhurst and J. Robinson, 1692), 348. 총회 결정은 265를 보라)”

이 문서들에서 표현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의 위치에서 대신하여서”는 그리스도가 구원받아야 할 참 사람의 위치에서 그와 같은 율법의 순종을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여러 차례 해명하였으나 계속 되는 곡해는 심히 유감입니다. 제가 이미 여러 차례 오해의 소지가 있으나 그런 뜻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표현이 잘못되지는 않았으나 “자기 스스로를 구원해야 할 존재”라고 이해하신 분이 계시다면,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의 위치에서 대신하여서” 율법의 요구에 순종하신 것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종류의 표현은 루터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두 종류의 의”라는 논문에서 그리스도의 위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와 형벌을 짊어지셨고, 우리를 위해 그것들을 정복하면서도 마치 자신을 위해 그것들을 정복하는 것처럼 행하셨습니다. 그분과 우리의 관계로 말하자면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과 주님이 될 능력을 지니고 계셨지만 그렇게 하시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로마서 15:1, 3에 기록된 바와 같이 우리 종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존 딜렌버거 편, 루터저작선, 133.).

바빙크는 이것을 “그의 성육신과 그가 사람이 된 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바빙크, 개혁교의학 3권, 464)라고 썼습니다. 이를 두고 “이단”이라고 한다면 어불성설입니다. 이미 몇 차례 정이철 목사에게도 “이런 논지로 쓴 글”이라고 밝혔음에도 그는 계속되는 곡해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반론2]

정이철 목사는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로서 그가 이루신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 곧 행위언약에 대한 성취인 것이죠.”라고 했던 저의 문장을 인용해서, “아담이 율법에 순종하지 못함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된 것처럼 주장하며 그리스도도 모든 율법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가 결정되어지는 운명을 가지고 오셨다.”(정이철 목사의 주장)고 주장한다면서 이것이 “무서운 이단사상”(정이철 목사의 주장)이라고 정죄했습니다. 저의 의도와 문맥과는 상관없이 정이철 목사가 말을 바꿔서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런데도 정 목사는 뒷받침할 어떤 논거도 없이 “무서운 이단사상”이라고 단정적하며, 이런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좋습니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도 이단이 될 수 있습니다. 벌코프의 표현을 토시하나 안 빼고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은혜 언약을 소개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능동적이고 동시에 수동적인 순종을 통하여, 행위언약이 규정한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했고 실제로 충족시키셨다.”(벌코프, 조직신학, 504).

정이철 목사는 이 개혁파의 설명을 정면으로 반박했는데, 이에 대한 해명이나 답변을 저의 소속 교단 총회(합신)와 정이철 목사 소속 교단 총회(합동) 앞에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기사는 접하시는 각 장로교 교단 총회와 신학위원회에 저와 정이철 목사의 신학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어주시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반론3]

정이철 목사<고경태, 능동순종 의 등 한국교회의 '의'에 대해 담론에 대해>(스크린샷: http://archive.fo/9E1Nl; 원글 http://m.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364)라는 기사에 댓글을 썼는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정이철 목사의 주장=“언제, 어떻게 쓴 저의 글이 이렇게 읽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의 율법준수(능동순종)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저와 서 박사님이 박대하는 것은 율법의 의를 취득하여 자신과 우리를 의롭게하여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만들기 위해 예수님의 율법준수(능동순종)가 필요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율법을 준수하셨습니다. 범죄하여 율법의 정죄를 받은 우리들을 구속하는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예수께서도 스스로 율법 아래에서 태어나셨고, 하나님이 정하신 모든 율법의 내용과 과정을 순종하시면서 거치셨습니다.

정이철 목사<고경태, 능동순종 의 등 한국교회의 '의'에 대해 담론에 대해>(스크린샷: http://archive.fo/9E1Nl; 원글 http://m.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364)라는 기사에 쓴 댓글

정이철 목사두 번째 문장에서 ‘능동적인 순종’을 두 가지 의미로 설명합니다. 첫 문장에서는 통상 개혁파에서 말하는 율법의 요구에 대한 순종을 얼핏 말하는데, 이것도 여태껏 해온 정이철 목사의 주장과는 상반된 것입니다.

어쨌든 그 다음 문장에 “저와 서 박사님이 반대하는 것은 율법의 의를 취득하여 자신과 우리를 의롭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을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의 율법준수(능동순종)가 필요했다는 주장”(정이철 목사의 주장)이라고 썼는데요. 아마도 이것이 정이철 목사가 그간 해온 능동적 순종에 대한 주장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개혁파는 누구도 ‘능동적 순종’을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종의 행위에 대한 극한 혐오를 보이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발달이 되었던 ‘이중 칭의’에 관한 제 블로그 글에서 제가 레퍼런스를 달아 둔 곳은 칼뱅의 ‘믿음과 그 후에 이어지는 행위’에 관한 [기독교 강요 3권 17장 8-10절]의 진술입니다. 그런데 정이철 목사는 저를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이 부분은 읽어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칼뱅은 어떤 입장에서 아래와 같은 글을 썼는지 사실 궁금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를 반대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행위에 부분적인 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행위들을 절대적으로 완전한 것으로 인정하선다고 믿는다(칼뱅, Inst. 3. 17. 10.).”

 

[반론4]

이번 사태의 발단은 정이철 목사는 제가 "서철원 박사의 신학에 대해 제가 무례했다."고 지적하며, "사과하라."는 종용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말 그런지 정이철 목사가 쓴 <예수님이 율법의 의를 전가했다는 신학은 비성경적 기사>(http://archive.fo/tyxRX) 라는 글의 내용 중에서 서철원 박사의 ‘창조경륜’(1) 강연 녹취의 일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이 행위언약, 은혜언약을 공식화한 것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예수 믿어 죄 용서 받고,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킴으로서 의를 얻어 우리가 전수받는다는, 이 두 가지 방식의 신학이 우리 안에 박혀 있어요.

바빙크가 쓴 <교회교의학>의 내용이 벌코프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벌코프가 조직신학을 전개할 때에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히 지켰으므로 그 의를 우리가 전가 받는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의를 전가한다고 할 때, 그 의는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켜서 얻은 의이고, 그 의를 우리가 전가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사상이 우리 속에 뿌리박혀 있어요.

벌코프라는 이름이 마음에 와 닿지 않으면, 박형용 박사님을 생각해 보세요. 박형용 박사님이 벌코프 책을 번역해서 그렇게 가르치셨잖아요. 개혁파 신학 전통에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켰다!' 그리고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했다!' 그래서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 '죄는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고, 의롭다 하심은 율법을 지켜서' 얻은 것으로 다들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성하고 성취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율법 조문들을 다 지켜서 의를 얻었다는 것이 아니고, 율법의 요구 즉 죄를 범함으로, 죄를 지음으로서 그 죄 값을 갚으라는 율법의 요구를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다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했기 때문에 계명에 따르는 죄 값을 갚으라는 요구가 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심으로 죄 값을 지불하라는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습니다.

율법 조문을 다 지켜서 의를 얻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의를 전가하였다고 할 때, 그 의는 율법을 지켜서 우리에게 전가해 준 의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다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죄 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다 준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성취하셨습니다. 피 흘리심으로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성취하셨습니다.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받은 의는 그리스도가 피 흘리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심, 죄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죄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다 지키셔서, 율법의 조문들을 다 지키셔서 의를 얻으시고 ... 이런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성경을 읽어봐도 바울의 사상에 그런 것은 없어요.

그런 신학관점은 없습니다. 새 관점은 틀렸습니다. 신학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지요. 창조 경륜부터 여러분들이 강의를 듣고 난 후에는 좀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철원 박사께서 행위언약을 부정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정이철 목사“아담이 율법에 순종하지 못함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된 것처럼 주장하며 그리스도도 모든 율법을 지키느냐 못지키느냐가 결정되어지는 운명을 가지고 오셨다.”라고 워딩해 오신 것은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정이철 목사는 명백하게 종교개혁 전통의 행위 언약 교리와 거기서 발생하는 그리스도의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 분명한 해명을 요구합니다.

사실 이단 문제, 특히 신학적 문제를 다루려면 적어도 자기 입장이 분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이철 목사는 저에게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을 주장한다.”며, “이단”으로 정죄해 놓고는, 최근 슬그머니 기사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정이철 목사가 2016년 11월 26일 작성한 글을 보면, "우리에게 전가된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율법의 요구대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얻으신 의이지, 결코 예수님이 율법의 모든 조항들을 다 지키심으로 얻은 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http://archive.fo/iKsh7).

그런데 저에 대한 이단 공격을 하는 중에는 “하나님의 모든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와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공로를 전가 받음으로 완전한 칭의를 얻고 형벌에서 면제된다고 믿는다.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것”이라고 슬그머니 말을 또 바꾸었습니다. 그러고는 제가 마치 "능동적 순종만을 강조"하며 "율법주의적인 주장을 한다."고 호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주장을 한 일이 없습니다.

또한 정이철 목사“그리고 저는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얻으신 의를 우리에게 전하셨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아무리 지켜도 의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흠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셨던 삶과 신앙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고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무엇이 옳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하고 있습니다.(정이철 목사의 주장)

유모 목사가 2017년 10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 정이철 목사가 답변한 내용이다.
▲유모 씨가 2017년 10월 6일 자신의 SNS에 쓴 글에 정이철 목사가 답변한 내용이다.

정말 묻고 싶습니다. 무엇이 옳을까요? 정이철 목사가 자신의 율법의 제2용도에 국한한 이해를 수정하지 않은 채로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과 수동적인 순종이 하나의 순종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율법의 제3용도에 대한 이해가 생기지 않으며, 자연히 율법과 무관한 자동 성화론을 주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이철 목사의 주장과 달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8장 5항]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셨고, 또한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단번에 바치셨다. 그는 이렇게 하심으로 성부의 공의를 충분히 만족시키셨으며,(롬 3:25, 5:19, 엡 5:2, 히 9:14,16,10:14)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화목을 이루셨을 뿐 아니라, 그에게 주신(골 1:20, 단 9:24,26, 요 17:2, 엡 1:11,14, 히 9:12,15) 모든 백성을 위하여 천국의 영원한 기업도 얻으셨다.

스프라울(R.C. Sproul)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8장 5항] 해설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에 첫 번째 언급해야 할 것은 그의 완전한 순종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오로지 십자가 위에서 제물로서 죽으신 것을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에수님의 삶은 그의 죽음만큼이나 우리 구원에 중요하다.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으로 태어났고 모든 점에서 자신을 율법에 복종시켰다”(스프라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3577)

정이철 목사는 자신의 견해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일반적인 장로교회 목사들의 신학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게 되기를 바라고 이단 타령 그만하고 자신 신학부터 가다듬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번 일을 통해서 이렇게라도 그의 신학이 변화된다면 참으로 기쁘며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그가 보인 처사들은 참으로 민망하며 다시 한 번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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