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2] 사랑의 편지(계 1:4-8)
[요한계시록강해2] 사랑의 편지(계 1:4-8)
  • 김상학 목사
  • 승인 2019.02.1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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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장 4-8절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김상학 목사
▲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들어가는 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받는다는 것은 참 설레는 일입니다. 요즘과 같은 컴퓨터 시대에 손 편지는 그 의미가 더 배가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편지를 쓴 사람의 마음을 알기에 나타나는 현상 일 겁니다. 물론 뜯어보기 무서운 편지도 있지요. 이별을 고한다던지, 돈을 요구하는 편지라면 보기 싫을 겁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이 요한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대할 때, 어려운 책, 무서운 책이라는 선입관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끝까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편지입니다. 모든 편견을 벗어 버리고 설렘으로 메시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1. 수신 :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먼저 4절에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한다.”고 말합니다.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란 소아시아지역에 있는, 지금의 터키 지역에 있는 교회들로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아,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를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 편지를 도미티안 황제(AD 81-96)에 의해서 밧모 섬에 유배되었을 때 썼습니다(계 1:9).

도미티안 황제는 로마의 모든 박해자 중에 가장 무섭게 박해한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에 황제 숭배사상이 있었지만 도미티안은 황제를 넘어 자신을 하나님으로 자칭했습니다. 당연히 기독교인들은 이에 거부했고, 그로 인한 대가를 죽음으로써 치러야 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로마는 기독교인들을 로마를 전복하려는 비밀 정치조직이라고 여겼고, 사회 질서 체제를 흔드는 반 사회적 조직, 반 제국적 세력으로 여겨 불 같은 박해를 AD. 300년까지 이어나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밧모 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은 주님의 뜻을 물었을 것이고, 주님은 계시하셨던 게지요. 이 계시의 말씀을 편지로써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무슨 내용을 썼을지 짐작할 수 있겠죠? 불같은 박해 상황에서 신앙의 갈등을 갖는 이들에 대하여 위로와 격려, 소망의 메시지를 담아 보냄으로써 저들을 견고하게 세우고자 한 것이지요. 

그런데 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일곱이란 수가 완전수, 충만한 수라는 사실입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과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일곱 교회라 함은 비록 세상에서는 불완전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완전하게 여기며, 완전하게 만드셔서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사용하실 주님의 몸이란 사실이지요. 일곱 교회는 일차적으로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의 소아시아의 해당 교회를 지칭하며, 이차적으로는 그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세대, 모든 교회를 뜻하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까지도 그 대상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요한 계시록이 그 당대에만 제한된 것이라고 하면서 더 이상 우리의 메시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이 계시록이 자기에게만 주어졌고 자기만 풀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단 사이비 집단의 사기 수법이지요. 

그러나 성경은 분명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라고 하시면서 "알파와 오메가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지금 오메가의 때에 살고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를 기대와 설렘으로 읽고 듣고 지켜야 할 줄 믿습니다. 

 

2. 발신자 : 성삼위 하나님

요한은 편지의 발신자를 성삼위 하나님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성삼위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말하기에 자칫하면 하나님을 세 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삼신론), 삼위일체란 3위격이 있어 각각 고유의 사역을 담당하면서 서로 상호 교제, 침투하면서 나타나는 결코 나뉠 수 없는 신비한 절대자입니다. 보이는 위격 뒤에는 보이지 않는 두 위격이 함께 거하고 계신 게지요. 

4b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에도 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지칭됩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장차 오실 이”는 원문 상 “오고 계시는 이”로 번역함이 더 정확합니다. 이는 예수님은 단순히 미래적 존재로만 계신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관여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 속에 역동적으로 침투하고 계시는 미래적 힘이라는 뜻이지요. 

4C절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성령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일곱”의 의미를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완전”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수이지요. 의심할 여지없이 성령을 의미합니다. 어떤 이는 이 일곱 영을 이사야서에서 그 근거를 찾더군요. 이사야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와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는 오실 메시야에 대한 말씀인데, 그 영이 모두 일곱 가지 영이라고 본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완전하신 성령님을 의미한다고 파악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5절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순종하신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천상에서 이 세상 모든 왕들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이는 성삼위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역을 보여 주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의 사역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지를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도 요한이 성삼위 하나님의 속성을 전하면서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습니다. 도미티안 황제의 극렬한 박해 가운데, 편지를 받은 성도들은 과거에도 역사하셨고, 현재에도 역사하시며, 미래의 소망을 보이시는 성부, 일곱 영으로써 완전하신 성령, 부활 승리하셔서 모든 왕들의 통치자가 되신 성자가 함께 하신다는 사실 앞에 은혜와 평강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때의 전승을 따르면, 순교를 당하면서도 찬송을 불렀다는 것이지요. 

지금 어떤 난제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이 있다면 본문의 성삼위 하나님으로 인하여 은혜와 평강을 누리길 축원합니다. 주님은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3.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사도요한은 5절 하반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상기시킨 후에,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상기할 때, 처음 고려해야 할 것은 “왜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가?”입니다. 그 답은 5절 하반절에 있는 “우리를 사랑하사”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사랑 때문에”라는 겁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요한복음에도 나타나지요?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독생자를 주신 이유가 오직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의 값을 치르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속죄제의 제물이 되셨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는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고, 모두가 하나님께 직고할 수 있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를 대신하는 제사장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았던 죄가 없어짐으로 모두가 하나님 나라와 제사장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12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의 그 아들의 지위가 주어졌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 앞에 어찌 영광과 능력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 함께 큰 소리로 선포합시다.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 제사장,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4.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런 은혜를 받았으면 근심도 없고, 슬픔도 없는 하나님 나라이어야 하는데 불같은 박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두려움 속에 숨어 지내야만 했습니다. 이 상황이라면 공공연하게 “이게 뭐야!”라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때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계시의 하이라이트를 선포합니다. 

7절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여기서 “구름을 타고 온다”는 의미는 다니엘서 7장 13절에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고 묘사한 부분을 인용한 것이지요. 이것은 손오공의 오색구름이 아닙니다. 이 의미는 “구름과 함께 오신다.” 입니다. 히브리 사상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 또는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6: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마태복음 17:5에서도 변형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대화하는 가운데 홀연히 빛난 구름이 덮이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지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구름과 함께 임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구원과 심판의 완성을 위하여 오십니다. 이때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본 답니다(cf. 마24:26-27). 그리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한답니다(마 24:30). 무슨 뜻입니까? 이 날에 믿는 자는 구원의 완성의 날이요, 주를 뵈옵는 날이지만, 반면에 모든 적 그리스도들은 심판의 날이라는 사실이지요.

결국 로마의 황제를 비롯한 모든 “적 그리스도”들은 애곡하며 통곡하며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순교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보게 되거나, 살아 있는 자들은 승리를 맛보며 주를 뵙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 모든 성도에게 희망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 날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할 때가 바로 그날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를 뵈옵는 날이 되는 것이지요. 살아있는 성도들은 주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이 세상에서의 승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나가는 말

사도요한은 8절에서 하나님을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전능한 자”라고 소개합니다. “알파”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문자이고, “오메가”는 마지막 문자입니다. 시작과 끝이라는 의미이지요. 하나님은 창조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심판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마무리 할 것입니다. 시작이 있었으니 반드시 끝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결국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 다시 말해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인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통제하시며 다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우리 교회의 알파와 오메가이시기도 하구요. 모든 만물의 알파와 오메가 이십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이 믿음으로 불같은 박해를 이겼고, 또는 순교로써 주님 품에 안겼고 주님을 뵈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난제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반드시 뵙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이 사랑의 편지를 오늘날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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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학 목사는 백석신학교와 백석신학연구원을 졸업하고 안산 성경제일교회를 개척하여 23년째 섬기고 있다. 목회 10년차에 안산전도학교를 설립하였고 미자립교회 네트워크를 통해 안산시 복음화에 힘썼다. 목회 15년차, 교회 분열의 시련기를 거치면서 "암 발병과 함께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기도하던 중, 한국교회의 교회성장운동의 폐단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성경강해설교학(MA) 과정을 거쳐 현재 일반대학원 신약신학(Th.M)을 전공하며 후반기 목회의 사역에 기쁨으로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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