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콘서트] 박대영 목사의 『디도여, 교회를 부탁하오』
[북콘서트] 박대영 목사의 『디도여, 교회를 부탁하오』
  • 윤지숙 기자
  • 승인 2019.02.2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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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에서 배우는 복음, 교회, 그리스도인
박대영 목사(광주소명교회·묵상과설교 책임편집장)/ 『디도여, 교회를 부탁하오』(두란노, 2018.11)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상황을 듣는 한 명의 목회자. 목회자의 가장 큰 영광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시달리면서 성화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교회와 성도들과 같이 늙어가고, 삶의 무게와 깊이가 담긴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담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탐욕스러운 목회자가 되어 교인들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

“나의 자유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 삶에 들어와서 시끄럽게도 하고, 신세도 지고, 갚기도 하고. 구체적인 상호작용이 있지 않으면. 젊잖게 화내면서 자기 꼬라지도 보여주고. 물질이나 정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공동체성이 해마다 강화되는 목회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디도여, 교회를 부탁하오』(두란노, 2018.11)의 저자 박대영 목사(광주소명교회·묵상과설교 책임편집장)의 말이다.

아카데미 성서의 길(원장 안진섭 목사)은 1월 22일 오전 10시 대전시 유성구 카페종에서 김관성 목사(행신침례교회)의 사회로 『디도여, 교회를 부탁하오』의 저자 박대영 목사를 초청해 북콘서트를 가졌다. 다음은 사회자와 저자의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사진 왼쪽 김관성 목사(행신침례교회), 오른쪽 김대영 목사(광주소명교회·<묵상과설교> 책임편집)

◇『디도여, 교회를 부탁하오』 를 쓰게 된 배경은?

목회를 하는 과정은 끊임없는 타협과 변화의 과정이다. 대화라고 불러도 좋겠다. 내가 생각하는 교회상과 현실에서 전개되는 교회상과의 대화요, 성경이 원리적으로 제시하는 교회상과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의 모습과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도 성도들과 디도서를 나눴다. 이번이 세 번째 교회개척이다. ‘교회를 개척하고 어떤 교회를 만들 것인가?’, ‘하나님은 어떤 교회를 원하실까?’, ‘목회를 제대로 하고 싶은데, 이전에 해왔던 방식으로 교회를 해도 될까?’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좋은 교회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찾아가 보려고 했고, 그분들의 고백이 담긴 책도 읽어 보았다. 부러웠지만 비현실적이었다.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지만, 그들처럼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말씀을 가지고 사역의 용례를 짚어보았다.

그런 나를 향해 디도서는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바울이 사역한 교회, 디도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마저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해 주어서 좋았다. 더 나아지길 기대하면서 애쓰는 수고와 애타는 마음이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우리가 잘한 만큼 좋은 교회가 되고 좋은 사역자가 된다고 말하지 않고, 구주 하나님과 구주 예수님의 복음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그걸 가능하게 하신다. 그 교회의 모습에 벅찼고, 그가 제시하는 목회자상이 멋져 디도서에 매료되어 성도들과 다시 디도서를 나눴다.

 

◇디도서의 핵심주제는 무엇인가?

지도자를 세우는 것과 올바른 가르침이다. 디도서는 지도자와 바른 교훈, 메신저와 메시지의 일치, 교회 안과 밖의 일치, 아는 것과 사는 것의 일치, 선한 일과 선한 삶이 많이 나온다. 특히 복음의 주도권, 복음이 교회를 만들어간다고 많이들 얘기하는데 복음이 사역자들을 결정하고, 말씀의 내용과 교회의 목표가 무엇인지, 그 방향성을 결정한다.

바울은 디도서에서 크게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한다. 첫째는, 지도자와 장로를 신중하게 세우는 일이다. 둘째는, 올바른 가르침을 전하는 일이다. 1장은 교회에서, 2장은 가정에서, 3장은 세상에서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말해 준다.

디도서는 1장 1-4절 수신자와 발신자 그리고 인사가 나타난다. 핵심구절은 1장 5절로, 디도에게 부탁한 두 가지 일 즉, 남은 일을 정리하고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라는 부탁이다. 1장 6-9절은 장로의 자격에 대해 언급한다. 1장 10절부터 3장 11절까지는 바울이 못다 해결하고 남겨둔 일, 그릇된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자들을 바로잡고, 또 공동체를 바른 가르침 위에 곧게 세우는 일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나서 3장 11-15절에 몇 가지 부탁을 하고 문안 인사를 나눈 후 축복하면서 편치를 마친다.

 

◇2000년 전의 그레데 교회와 한국교회가 유사한 점은?

부정직과 탐욕이다. 디도서에 언급되고 있는 지도자의 자격요건은 일반 사람들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당시 그레데 사람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 핵심이 자기 절제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한 것. 흥미롭게도 이단들의 가르침을 가지고 말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면서 그레데 사람들과 같이 한다고 지적을 한다.

그레데 안에서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이 바울과 디도의 가르침(복음)을 왜곡하며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과 디도의 가르침과 권위가 도전받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토록 자신을 변호하는 것은 자신의 명예 때문이 아니요, 자신과 디도가 전한 복음이 도전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은 지도자를 향하여 대안적인 것을 제시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거짓은 그 메시지가 지향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부정직과 탐욕으로 메시지마저 왜곡시켜 버린다.

 

◇지도자에게 요구되어지는 가장 핵심적인 자질은?

메시지와 삶이 일치하는 삶일 것이다. 메시지(massage)와 메신저(messenger), 복음과 복음을 전하는 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교회와 그 교회를 낳은 복음 역시 불가분의 관계다.

메시지를 전할 때 처음 5분이 중요하다. 그 사람의 얼굴표정이나 목소리, 그 사람이 아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 믿는 바를 말하는 것인지. 자기 자신을 통과한 말인지를 알게 된다. 좋은 지도자는 정직하게 자신이 알고,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메시지로 던지게 된다. 그런 사람이면 말씀이 인카네이팅(성화) 되어있는 것이 않을까?

하지만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데 메시지가 잘 전달될 수 있는가? 염치와 체면을 중요시 하는 문화에서는 가능할 수는 있다. 그런데 삶을 엉망으로 사는데 메시지가 좋을 수 있는가? 외부 강의를 나갈 때, “(담임) 목사님이 너무 착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시는데, 말씀이 너무 준비가 안 돼서 소리 없이 죽어간다. 그 교회에 있는 것이 너무 답답한데도, 그 목사님께 교회를 떠나겠다고 못하겠다.”는 얘기를 들을 때 진짜 고민이 된다.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정체성은 세상과 선명하게 차별되어야 한다.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그 무엇. 성경에서 종은 두 가지. 노예이면서 하나님의 권위 있는 사람. 누구의 종인가가 중요하다. 시편 2편, 이사야 53장은 고난 받는 종과 메시야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 인물 속에 두 역설적인 인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종은 철저하게 주인에게만 매인 존재로, 주인에게만 복종한다. 바울 자신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자였다.

나를 통해 진짜 드러나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목회를 통해 내 영향력을 드러낼 것인가? 내가 믿는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드러낼 것인가? 분명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증인은 가장 강력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높임을 받는 ‘종님’이 아니라 죽기까지 하나님만을 섬기고 복종해야 하는 ‘종놈’이다.

 

◇책에서 ‘영생의 소망과 경건의 능력’을 강조한데 약간 뜬 구름 잡는 것이지 않는가?

바울은 구원을 가져오는 진정한 계시를 진리라고 부르고 있다. 진리가 무엇인가?(요 18:38) 진리를 안다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고, 복음을 아는 것이고, 왕으로서 그분이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를 아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영생과 구원의 길을 아는 것이다.

교인들이 가지는 경건의 능력은 첫째는 관계적 상상력, 두 번째는 마음이 연대라고 생각한다. 영생은 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도 생명이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영향을 주면서 살아간다. 오늘 나의 고난이 누군가의 실패를 채워주고, 많이 가지고 있으면, 나눌 수 있는 삶.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 마음을 연대하는 것이 경건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틈에서 교회와 세상에 생명력이 넘치고, 강한 연대를 갖게 한다.

야고보서 1장,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은 환난 중에도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되게 어려운 일이다), 나를 세상에 물들지 않게 분리시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자연스럽게 누리게 되면,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게 아니라, 더 누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실제 자기 것을 내어서 도와준다는 것은 엄청난 관계적 상상력과 연대가 있는 사람이다. 교회의 존재의 목표는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영생의 소망,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갖고 이 땅에서 믿음으로 진리를 따라 경건하게 살도록 돕는 것이다.

박대영 목사의 지인으로 북콘서트에서 특송을 맡은 편경열 목사 부자
▲박대영 목사의 지인으로 북콘서트에서 특송을 맡은 편경열 목사 부자

◇자본주의는 돈 없는 사람의 인성까지 파괴시켜 버린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좋은 마음으로 다갔지만, 오히려 성질이 좋지 않는 분들도 만나게 된다. 그들에게는 경제적인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가진 그런 우아함이 없다. 혹시 그런 일을 겪어 본적이 있는가?

교인들은 교회를 서치 할 때 자신을 받아주고 이해해줄만한 공동체를 찾는다. 그러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한 공동체를 찾게 된다. 하지만 우리내 사랑은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랑이다. 얼마간은 돌려받을 것을 계신하는 사랑이고, 이미 받은 것이 있어서 돌려주는 사랑이다.

니체가 말한 정신의 ‘부재 상태, 천박성’을 보이는 사람은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일과 기대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사람, 또는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인과율을 벗어난 것에 대해 ‘급히’ 분을 내게 된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만나는 사람은 그들이 알 수 없는 역사를 가지고 그들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을 다 이해할 수 없고, 그들을 충분히 돕기란 쉽지 않다. 그들은 지도자가 할 수 없는 요구를 쉴 새 없이 할 것이고, 도무지 만족이란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할 것이고, 염치와 체면과 상식을 뭉게 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그들은 내내 지도자의 참을성을 시험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급히 분노했다가는 그들의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무엇보다 분노를 통해서는 이루려고 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뜸하고 신앙이 침체기에 있을 때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워 반응하게 된다. 따라서 급히 분을 내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지켜야 한다. 더 큰 권위 앞에 순종하는 일상을 보낼 때 자기감정과 설익은 판단에 기대어 분노하지 않을 수 있다. 자기중심성이 강한 사람에게는 하나님 사랑은 있을지 몰라도 이웃 사랑은 없다. 이웃 사랑이 아닌 하나님 사랑을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받아 주실까?

 

◇목사님이 생각하는 ‘복음이 살아있는 교회’란 어떤 교회인가?

복음이 얼마나 미쁘고 신뢰할 만한 하나님의 이야기인지를 충분히 청중들에게 호소하지 않으면, 강단에서 선포하는 것들은 다만 ‘착하게 살자’는 윤리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은혜 없이는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없다. 은혜 없이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좇아 이 세상을 거스르며 살 수 없다.

그래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이 복음이, 이 구원의 진리가 얼마나 미쁜 말씀인지를 성도들에게 잘 보여 주는 일이다. 잘 가르쳐 주는 일이다. 이것을 깨달을 때부터 본격적인 신앙이 시작된다.

그런데 절망적인 인간에게 소망을 주신 하나님의 복음이 아니라, 인간이 기호와 바람을 채워 주는 소비자 복음, 자본주의식 복음이 강단을 점령했다. 디도는 담대함과 굳셈이 필요할 만큼 그레데는 복음에 역행하는 도시였다. 그러나 디도는 어떤 반대를 무릎쓰고라도 담대하게, 지속적으로, 확신을 가지고, 복음과 복음의 교훈에 합당한 삶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구원은 인격이 바뀌고 삶이 바뀌는 문제다. 삶은 엉망이어도 이 신분을 얻었으니 구원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착각이다. 목회자로서의 제 마음은 못하는 것까지 다 채워주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만큼, 에너지가 되는 만큼. 너의 먼 이웃을 사랑하라. 줘서 그 마음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눈앞에서 결과를 빼내려고 하지 않으면 덜 상처받고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왼쪽부터 김관성 목사, 박대영 목사, 아카데미 성서의 길 원장 안진섭 목사

한편, 박대영 목사는 자신을 ‘옮겨 잇는 자’(translator)로 불리기를 원한다. 특히 하늘의 하나님의 말씀을 땅에 사는 우리 인간의 말로 잘 옮겨 주는 말씀의 종으로 살고 싶어한다. 그는 연세대학교와 영국 Capernwray Bible School, London Bible College에서 해석학과 구약을 공부했다. 영국에서 공부와 사역을 병행하는 중, 20세기 가장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 가운데 한 분인 프란시스 쉐퍼가 세운 국제장로교단(IPC)에서 안수를 받았다. 묵상잡지인 성서유니온의 <매일성경> 편집장(2000-2001, 2007-2013)을 역임했으며, 그간 강북광야교회, 광주참누리교회, 광주소명교회를 개척하고, 영국에 있을 때는 레딩한인교회를 담임하여 사역했다.

또한 존 파이퍼의 『하나님을 기뻐하라』(생명의말씀사), 적용주석시리즈 『로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야고보서』와 Exploring the Old & New Testament Series 6권 가운데 5권을 번역하는 등 모두 22권의 신학과 신앙에 관한 책을 번역했으며, 저서로는 『묵상의 여정』(성서유니온선교회, 2013)과 『나만의 성경』(선율, 2016)이 있고, 『요한복음 강해 1, 2, 3권』(두란노서원), 『디도여, 교회를 부탁하오』(두란노서원,2018)』가 있다.  

그외 고향 광주에서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위한 배움의 장인 <아카데미 숨과 쉼>을 운영하며, 유럽과 미국, 상해와 뉴질랜드 코스타(KOSTA)와 <성서한국>에서 강사로 섬기고 있으며, 현재는 <매일성경>의 자매지로 목회자와 리더들을 위한 묵상 잡지인 <묵상과 설교>의 편집장(2013-현재)으로 있으면서 <광주소명교회>의 책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아카데미 성서의 길(원장 안진섭 목사)은 1월 22일 오전 10시 대전시 유성구 카페종에서 김관성 목사(행신침례교회)의 사회로 『디도여, 교회를 부탁하오』의 저자 박대영 목사를 초청해 북콘서트를 가졌다.
▲아카데미 성서의 길은 1월 22일 오전 10시 대전시 유성구 카페종에서 김관성 목사(행신침례교회)의 사회로 『디도여, 교회를 부탁하오』의 저자 박대영 목사를 초청해 북콘서트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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