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요셉 목사] 부르족 사람들(1)- 강철 여인 과헤나
[권요셉 목사] 부르족 사람들(1)- 강철 여인 과헤나
  • 권요셉 목사
  • 승인 2019.03.0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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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선교사의 치료적 글쓰기
부족민들에게 나눠줄 만다지를 만들고 있는 예하, 과헤나, 과헤나의 큰딸
▲부족민들에게 나눠줄 만다지를 만들고 있는 예하, 과헤나, 과헤나의 큰딸

 

전쟁이 발발한 지 9일째.

계란이 떨어졌다. 집에는 옥수수가루와 약간의 밀가루, 그리고 전쟁 발발 전에 단기팀이 주고 간 김치 말고는 요리할 수 있는 재료가 없었다.

“요셉씨, 혹시 계란을 구할 수 있을까?”

“한번 나가볼게. 절대 나오지 말고 집에 있어.”

아내와 예하만 있었다면 불안했겠지만 과헤나가 같이 있어서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계란을 구하러 밖으로 나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사람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요셉, 빨리 들어가!”

사람들은 나에게 소리쳤다.

‘이런 대낮에 전투가 벌어질 리는 없는데?’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마을 입구를 바라보았다. 흙먼지가 일었다. 장갑차 소리가 났다.

‘헉. 이건. 심상치 않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빨리 방으로 들어가!”

내가 소리치자 아내와 과헤나가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반군들이 오고 있어.”

나는 다급하게 말했지만 과헤나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대낮에?”

과헤나가 의아해하며 묻자마자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탕, 탕, 탕.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아내와 예하는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과헤나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는 밖으로 나가려는 과헤나를 붙잡았다.

“미쳤어? 저 소리 안 들려? 어딜 나가려고 해?”

과헤나는 굳게 잡은 내 손을 내리며 덤덤히 말했다.

“집에 4명의 아이들이 있어. 아이들이 울고 있을 거야. 그러면 군인들이 주목하게 돼.

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걱정 마. 나는 이것보다 더 치열한 전쟁도 겪었으니까. 나는 포복으로 가는 것도 알아.”

과헤나는 덤덤히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4명의 아이들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아버지가 없었다. 그녀를 막는 것은 곧 4명의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의미했다. 그 아이들 중에는 예하와 동갑네기 친구도 있었다. 먹먹했다. 총성의 크기를 보아서는 도저히 살아서 지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을 예상했지만 나는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과헤나가 나가고 문을 닫자마자 총성은 더 치열해졌고 포성까지 들렸다. 그녀가 죽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과헤나는 우리가 아프리카의 삶에 적응하도록 도와주었던 여인이다. 그녀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옥수수가루와 밀가루를 구매하는 방법, 돼지고기나 양고기를 사먹는 방법, 아프리카식으로 빨래하는 방법, 흙바닥을 청소하는 방법, 아프리카 음식을 만드는 방법. 모두 과헤나가 알려주었다.

과헤나는 단 한 번도 나를 속인 적이 없었다. 남수단 부르족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냄비, 그릇, 프라이팬 등 모든 것을 우간다나 남수단의 수도인 주바에서 구매해 와야 했다. 이런 것들을 구매하기 위해 우간다나 남수단의 수도 주바를 갈 때면 과헤나에게 집을 맡기고 갔다. 단 한 번도 물건이 없어지거나 의심이 갈만한 일이 발생한 적이 없다. 언제나 정직했다.

처음에 부르족에 들어갔을 때, 부르족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도망갔다. 얼굴이 하얀 사람들이 왔으니 귀신이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냥 숨는 정도가 아니라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탕을 건네주면서 호감을 샀다. 사탕 덕분에 우리는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사탕을 처음 맛본 부르족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탕을 먹은 사람들은 사탕 막대기를 모았다. 그들은 사탕을 사랑했다. 그러나 부족민은 많았고 사탕을 계속 공급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고민에 빠졌을 때 과헤나가 ‘만다지’라고 불리는 부르족의 도너츠를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과헤나 덕분에 만다지를 만들어 부르족에 보급했다. 사탕과 만다지는 우리가 부르족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는 그저 밀가루를 공급했고, 과헤나가 600명 분량의 만다지를 만들어냈다.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만다지를 만들어냈다. 강철 같은 체력이었다.

사탕을 나눠주는 예하
▲사탕을 나눠주는 예하

과헤나가 없는 우리 가족의 부르족의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만큼 과헤나는 우리와 가장 가깝게 지냈다.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우리 가족은 집 안에서 최대한 바닥에 낮게 자리 잡고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주변에서 비명소리가 계속 들렸다. 총성과 포성보다 집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가 더 무서웠다.

우리는 총성과 포성이 멎고도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에서 사람들의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일어날 마음을 가졌다.

‘이제 끝났나?’

통곡소리. 통곡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나가볼 테니 여기서 움직이지 마.”

아내와 예하에게 말하고 일어나자 아내도 일어나 요리 재료를 펼쳤다.

“아직 움직이지 말라고.”

내가 짜증스럽게 말하자 아내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배고파.”

 

하긴. 문밖으로만 안 나오면 될 일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부산하게 여기 저기 널려 있는 시체들을 치웠다. 그리고 빗자루로 바닥의 피들을 쓸었다. 매우 익숙하고 덤덤하게 움직였다. 치우는 자들은 치우고 통곡하는 자들은 통곡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드는 사람이 치우는 것 같았다. 이 모습을 예하가 볼까봐 두려웠다. 집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예하는 아직 방안에 있는 것 같았다. 혹시라도 밖을 볼까봐 문을 굳게 닫았다.

계란을 파는 옆집의 쿠바이가 사람들을 도와서 시체를 치우고 있었다.

“아, 요셉. 괜찮아? 너희 식구들은?”

“응, 괜찮아. 너희 식구들은?”

“우리 식구들도 모두 괜찮아.”

계란을 살 수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헤나가 걱정이 되었다.

‘저 시체들 중에 과헤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전투가 한창이었던 길거리가 무서워서 과헤나의 집에까지 가서 생존 여부를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과헤나의 집까지 가는 동안 아내와 예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우려가 되었다. 결국 나는 계란을 구하지도, 과헤나의 생사를 확인하지도 못하고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내는 부침개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부침개를 보고 군침이 돌았다. 과헤나가 살아있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부침개를 먹었다.

“아, 다 하면 먹어!”

아내가 와락 짜증을 냈다.

 

일상.

음식 하나로 짜증을 낼 수 있는 일상. 방금 전까지 죽을 뻔 했는데 우리는 부침개 하나로 금방 일상을 찾았다.

‘과헤나는 살아 있을까?’

무거운 바위를 가슴 한쪽에 올려놓고 부침개를 먹으며 꾸역꾸역 일상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날 밤은 총격도 포격도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구멍으로 살펴보니 과헤나였다.

“과헤나!”

나는 어느 때보다도 반갑게 과헤나를 반겼다.

“살아 있네? 아이들은?”

“요셉. 내가 가서 조용히 시켰지. 아이들은 엄마가 있으면 살 수 있어.”

“아니, 너는 어떻게 무사히 간 거야? 총과 포가 엄청나게 빗발쳤는데.”

“내가 말했잖아. 이렇게 자세를 낮추고 포복으로 가면 총은 잘 안 맞아.”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내와 인사를 나누고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단단한 여인이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내가 가장 단단한 여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를 만난 뒤로 아내의 순위가 밀렸다. 강함이 감동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녀를 보고 알았다.

 

전쟁이 너무 치열해져서 결국 우리가 남수단을 탈출해야겠다고 결정했을 때, 과헤나에게 우리가 살던 집과 모든 물건들을 지켜달라고 맡겼다. 우리 집은 허름한 지푸라기 담을 한 아프리카식 집이었지만 방 안에는 부족 사람들은 절대로 누릴 수 없는 온갖 종류의 옷과 신발, 태양열 충전 도구 등 가치 있는 것들이 가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의 물건들을 노렸지만 내가 집의 모든 물품들을 부족민들을 위해 써달라고 말할 때까지 과헤나는 철저하게 집 안의 물건들을 지켜냈다.

그녀는 2018년 8월까지 살아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 뒤로는 연락이 끊겼다. 부르족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단연 과헤나이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가장 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우리가 떠날 때까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가 뿌린 씨앗이 언젠가 그녀와 그녀 가정에서 싹을 틔우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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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요셉 목사는 서울예술대학교(극작과)와 경기대학교(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학 석사와 명지대학교 아랍지역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총회 소속 목사로, 현재 인천 더함공동체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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