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6)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6)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3.1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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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2장이 욥을 의인으로 소개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제2장 욥은 의인인가?

1. 욥기 해석의 출발점

욥기를 해석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나는 욥기 1~2장 즉 서론의 욥을 의인으로 볼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욥기 1~2장에서부터 욥을 의인이라고 전제한다면 욥기는 의인에게 닥친 고난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론에서 제시한 욥이 의인이 아니라면 의인의 고난이라는 관점에서 욥기를 바라볼 수 없다. 그렇다면 욥기는 다른 주제를 다루는 내용일 것이다.

때문에 욥이 의인이라는 전제하에 욥기를 읽어나가는 것과 욥이 의인이 아니라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읽어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해석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처럼 고난 받기 이전, 즉 서론에서 소개된 욥이 의인이냐 아니냐는 욥기해석에 있어서 전혀 다른 출발점을 갖는다. 과연 욥은 고난 받기 이전부터 의인이었을까? 아닐까?

고난 받기 이전부터 욥이 의인이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다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욥기 1~2장의 시점에서 욥은 아직 의인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고난 받기 이전의 욥을 의인으로 보는 근거와 그 근거들의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나는 신학을 공부하며 사람들이 신학을 크게 두 가지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느꼈다. 첫째, 학문적 탐구의 영역 중 한 분야로써의 신학이다. 이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써 종교를 두고 그중 성서를 경전으로 둔 기독교의 신에 대한 연구이다. 둘째, 성경을 진리의 공리로 인정하고 신앙을 토대로 한 신학이다. 이는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일하심에 대한 연구이다.

나는 두 번째 입장을 가진다. 때문에 두 번째 입장의 사람들을 신앙 안에 형제로 여긴다. 그런데 어떤 진리에 대한 내용을 나누는데 있어 첫 번째 입장의 사람들과는 서로 깊은 내용까지 논의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반면 두 번째 입장의 사람들 중에는 진리의 투사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본인들이 정립하거나 추구하는 신학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강한 공격성향을 보인다.

역사상 교회가 이단들로부터 많은 어려움들을 겪었기에 진리를 사수하려는 그들의 충성심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 중 누가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함부로 장담할 수 없다. 또한 상대방에게 분명한 오류가 있다면 지적하여 선을 그어버리거나 즉각적인 교정을 요구하기보다 상대방이 깨우치기까지 이끌어줄 수 있는 배려심을 넓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주제넘게 이와 같은 말을 하는 이유는 이 글을 읽을 주 독자들이 두 번째 신학적 입장을 취하는 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욥이 의인이었다는 해석이 오랫동안 견고하게 자리 잡았다. 때문에 욥이 의인이 아니었다는 본인의 주장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더라도 너무 과격한 입장을 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노파심에서 한 말이다. 혹 본인이 제시하는 내용 가운데 문제점이 있다면 그저 한 부족한 사람의 제안 정도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2. 서론의 욥이 의인이라는 주장과 반론

앞에서 언급했듯이 처음부터 욥을 의인이라고 단정하고 욥기를 읽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욥기 1~2장을 읽고 욥이 의인이라고 생각할까? 그 이유는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보인다. 이제 욥을 의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네 가지 근거를 차례로 살펴보겠다. 그러면서 그 내용들로 욥을 의인으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이유를 함께 설명하겠다.

(1) 욥에 대한 총평

욥기 저자는 욥이 누구인지 소개하며 글을 시작한다. 저자가 주인공을 소개한다면 주인공이 누구인지 파악하는데 이보다 중요한 정보는 없을 것이다. 욥이 의인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 내용은 욥기 1:1~5이다. 이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한 부분씩 살펴보도록 하자. 첫 부분은 욥에 대한 총평에 해당하는 욥기 1:1이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이는 욥기의 저자(욥 1:1)와 하나님께서(욥 1:8; 2:3) 직접 하신 말씀이다. 그러하기에 이 평가는 의심의 여지없는 진실이다. 여기에서 욥에 대해 네 가지 수식어를 사용한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이다. 욥을 설명하는 이 네 가지 표현을 얼핏 보면 욥이 의인이라고 생각할만하다. 그러나 이 평가들이 욥을 의인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의를 도덕적 가치로 이해한다. 도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의인은 온전하고 정직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의인에 대한 묘사에 ‘온전’과 ‘정직’이 사용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제1장 의란 무엇인가?>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도덕적인 충족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의미 이상의 내용을 지니고 있다. 성경에서 의는 인간의 구원에 있어 하나님 앞에서의 충족을 의미한다. 때문에 온전하고 정직하다는 표현만으로는 의롭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하나님을 경외함’도 의인에 대한 부연설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경외’로 번역된 ‘ירא(야래)’는 일반적으로 두려워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ירא(야래)’의 대상이 하나님을 가리키면 ‘경외’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하나님을 대상으로 한 ‘ירא(야래)’를 우리는 온전한 신앙과 동일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ירא)한다는 표현이 100% 온전한 신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을 두 군데만 확인해보겠다.

첫 번째로 살펴볼 내용은 열왕기서이다. 열왕기하 17장을 보면 앗수르 왕이 북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수도인 사마리아에 여러 민족들을 이주시켰다. 이주민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자 여호와께서 몇몇을 징벌하셨다. 이에 이주민들은 여호와를 경외하였다. 그러면서도 각기 자신들의 신들도 함께 섬겼다.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ירא)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왕하 17:33).

이를 통해 우리는 ‘ירא(야래)’가 하나님에 대한 존경과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만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ירא(야래)’한다고 해도 그것이 온전한 신앙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살펴볼 내용은 요나서이다. 요나가 탄 배가 폭풍으로 인해 위기에 놓이자 요나가 자신이 원인이라고 일행들에게 고백한다. 일행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자 파도가 잠잠해졌다. 그러자 배에 탄 사람들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였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ירא)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욘 1:16).

여기에 쓰인 “두려워하여”가 ‘ירא(야래)’이다. 이 구절을 보면 배에 타고 있던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여호와께 온전한 신앙인으로 선 것이 아니다. 단지 요나가 섬기는 신인 여호와를 두려워했을 뿐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대상으로 한 ‘ירא(야래)’라고 할지라도 온전한 신앙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나님을 경외함’이라는 수식은 분명 욥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을 의인의 증거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곧 의인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한편, ‘악에서 떠났다’는 평가 자체는 욥이 의인이라는 가능성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악’의 반대 개념이 ‘선’이긴 하지만 성경 몇몇 곳에서는 ‘악’의 반대 개념으로 ‘의’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에서 떠났다’는 표현은 의의 범주에 이르렀다는 간접적인 언급일 수 있다. 그러나 ‘악에서 떠났다’는 말로 욥이 의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일 뿐 욥이 의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로는 부족하다.

또한 제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의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구원의 근간으로써의 의'는 인간의 입장에서 수동적인 의미가 크다. 그런데 ‘악에서 떠났다’는 평가는 문법적으로만 본다면 능동적인 표현이다. 때문에 ‘악에서 떠났다’는 말을 욥이 의인이라는 간접설명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악에서 떠났다’는 말이 의에 대한 간접설명이라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주도성으로 표현되는 '도덕적인 충족으로써의 의'에 대한 의미에 머무를 것이다.

욥을 수식하고 있는 위의 네 가지 표현은 욥이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훌륭한 인물임을 알려준다. 그렇지만 욥기 1:1의 평가로 욥을 의인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욥기 전체에는 ‘의’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욥기의 저자가 욥기 1:1에서 욥을 의인으로 소개하고 싶었다면 ‘צדק(쩨데크)’를 사용하는 것이 여러 단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확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를 단순히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다.

구약성경에서 의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구원의 근간에 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단어를 저자가 필요할 때 사용하지 않고 간접적인 표현으로 대체했다는 생각은 추측에 불과하다. 욥이 실제로 의인인데 서론에서 욥을 묘사할 때 ‘צדק(쩨데크)’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보는 건 적어도 본문이 제공하는 정보를 넘어서는 관점임이 분명하다.

다음 시간에는 욥기 1:2~3에 있는 욥의 소유를 소개한 의미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계속해서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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