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식 작가] #26. 모든 육체는 풀의꽃과 같고(벧전 1:24-25)
[김재식 작가] #26. 모든 육체는 풀의꽃과 같고(벧전 1:24-25)
  • 김재식 작가
  • 승인 2019.03.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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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보는 고난속 동행한 말씀들

 

모든 육체는 풀의 꽃과 같고'

 

"……."

200859, 막내 딸아이 12살 생일날 아침, "이번 생일 선물은 뭘 해줘야 하지?" 묻는 내 말에 아내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들만 둘이고 여자라고는 아내뿐이라 조금은 사납던 집에 와준 딸아이라 편애를 내놓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 딸아이의 생일이라 들뜬 날, 아내는 대답도 못할 만큼 혼자 아팠습니다. 입을 다문 채...

 

"저녁에 맛있는 외식을 시켜주는 걸로 할까? 피자나 뭐 그런~"

"나 목이 아프네."

"약국 가서 약 좀 사먹어! 병 키워서 애먹이지 말고~"

"……팔도 저리다."

"이따가 어떻게 할지 생각하면 전화해 줘!"

 

그렇게 아내와 따로국밥처럼 어긋나는 대화를 하고 집을 나와 일터로 갔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종일 전화가 없었습니다. 퇴근 후 돌아온 집, 아침보다 더 절절 매는 표정으로 목과 팔을 주무르고 끙끙거리는 아내를 보며 걱정보다는 짜증이 앞서서 나왔습니다.

 

"병원이라도 가보지, 왜 그러고 버텨."

 

내 목소리엔 약간의 짜증이 섞였습니다. 말도 없이 이부자리 깔고 돌아누워 있는 아내를 향해. 하루 종일 일하고 쌓인 피로가 그렇게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말을 날렸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무엇이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아내의 그 통증이 장차 재산이고 집이고 모든 것을 날려버릴 줄 몰랐고, 아이들의 장래마저 폭풍에 휘말려 세상을 떠돌게 하는 시작점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연애할 때 아내에게 세상의 남정네들이 흔하게 해대는 공수표를 예외 없이 날렸습니다. “매년 결혼기념일엔 여행을 데리고 가주겠어! 푸하하하~“ 그러나 그 약속은 결혼 후 딱 두 번인가만 지켜지고 진짜 공수표가 되었습니다.

 

1988년 9월 3일 종로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한 결혼식 때 아내
▲1988년 9월 3일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한 결혼식 때 아내

 

"우와~~ 누구세요?"

"탤런트 같다! 진짜 이쁘다!"

 

아내는 평소에 워낙 화장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조금만 했는데도 너무 달라보였습니다. 뽀얀 뺨, 짙은 눈썹, 빨간 입술, 초가을의 푸른 하늘과 너무도 어울리는 맑은 신부였습니다. 평소에 자주 보던 사람들도 달라진 느낌에 칭찬 반 놀림 반으로 탄성을 질렀습니다.

 

사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무슨 큰 철학이나 독신주의가 아니라 내 처지와 내 능력을 감안한 결심이었습니다. 죽자 살자 돈을 모으는 성격도 못되고 아무리 해도 버는 일에 의욕이 생기지 않고 다른데 정신이 팔리니, 나 같은 사람이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면 그 가족이 얼마나 위태로울까? 단지 그 불안한 이유로.

 

그러나 요리조리 피하던 그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도망치던 난 아내를 만나면서 그 결심이 깨졌습니다. 처음 단 둘이 만난 자리에서 3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눈 끝 무렵에 나는 아내에게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나랑 결혼해줘!"

 

당연히 아내는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가 없어 당황도하고 그렇다고 거절의 말도 못하며 주저하였습니다. "그럼 난 다시는 당신을 안 만날래. 내가 서른 가까운 나이에 스무살 막 넘은 사회 초년생 아가씨를 연애나 하자고 만나는 건 좀 양심에 걸려서."

 

그렇게 헤어진 다음 날, 같은 직장 1층에 근무하던 아내는 2층 내 사무실로 쳐들어왔고 마침 아무도 없는 상황이라 문을 닫고 내게 항의를 하였습니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결혼해달란다고 기다렸다는 듯 바로 예! 하나요? 너무 하잖아요?"

 

그리고 두 번째 바깥에서 만난 자리에서 아내는 결혼을 승낙했습니다. 단 두 번째 만남에서! 대신 난 결혼기념일에는 여행을 데려가겠다고 달콤한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고... 4개월 가까이 아내는 계속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검사와 치료, 입원과 또 검사, 그러는 중이었습니다. '올해 결혼기념일은 아내와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속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그동안 부려만 먹은 게 너무 미안해서, 몇 달째 통증과 싸우느라 온통 회색빛 우울증이 걸려버린 아내가 딱해서 위로를 할 겸.

 

 

극심한 두통과 구토로 살이 15킬로 이상 빠져가던 중... 희귀난치병 진단 직전의 아내
▲극심한 두통과 구토로 살이 15킬로 이상 빠져가던 중... 희귀난치병 진단 직전의 아내

 

며칠 입원해서 MRI와 피 검사, 다른 검사를 한 신경과 과장님이 가족을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가족을 한 명 더 데리고 오라고 하지?' 좀 궁금했지만 뭐 으레 병원들이 하는 절차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둘째 아들을 동행해서 의사 선생님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형광등이 비추는 벽면에 사진들을 걸어놓고, 컴퓨터모니터에는 머릿속을 보여주는 MRI 화면을 띄워놓고 선생님은 이런 저런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척수종양 같습니다. 악성인지 양성인지 우리 설비로는 구분을 못하겠네요. 4대 종합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수술을 해야 한다면 목 척수 속이라 그곳 밖에 못하기 때문에."

 

멍해진 머리와 후들거리는 두 다리, 과장실을 나와 주저앉아 말이 없어진 내게 둘째 아이는 위로를 했습니다. "양성일 수도 있다잖아요. 기운을 내요 아버지!"

 

결혼 20주년 기념일?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어? 사람들이 부여하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것 뿐...’ 이라며 떠날 수 없게 된 상황을 애써 달래보지만 잘 안됩니다. 자꾸만 아내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초가을의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기 위해 정원을 걷던 20년 전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집니다.

 

나중에 아내는 희귀난치병으로 밝혀지고, 그 진단서에는 발병일이 적혔습니다. 200859! 하늘의 선물이라고 기뻐했던 딸아이의 생일날이 그 자리에 못 박듯 새겨졌고, 그 진단을 통보 받은 날은 아내와 결혼한 20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마치 지금까지 계속 주기만 한 귀한 선물의 값을 하늘이 받아가기로 작정한 듯.

 

사람이 사는 일생은 그렇게 행운과 불행이 교대로 온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 손의 안과 등처럼 한 몸으로 붙어 있음도 뼈저리게 느껴야 했습니다. 성경의 어느 구절들이 머릿속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폐쇄된 어느 시골 역을 통과하는 비둘기호처럼 천천히.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베드로전서 1장 24~25절)

 

아름다운 아내의 기억들이 풀의 꽃이었을까? 그 꽃이 시들고 마르는데 내가 얼마나 원인이 되었을까? 그런 자책이 몰려왔습니다. 198893일 결혼, 고생길을 걸어와서 도착한 200893, 결혼 20주년 기념일에 이런 결과를 아내에게 전해야하다니 미안해서 말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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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식 작가의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위즈덤하우스, 2013)는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곁에서 남편이 써내려 간 6년 동안의 일기를 모은 에세이로 살아 있는 지금 시간이 기적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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