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요셉 목사] 부르족 사람들 (2) - 장님 전도사 윌리엄
[권요셉 목사] 부르족 사람들 (2) - 장님 전도사 윌리엄
  • 권요셉 목사
  • 승인 2019.03.09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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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선교사의 치료적 글쓰기
부르족에서의 첫 예배에 함께 한 윌리엄
부르족에서의 첫 예배에 함께 한 장님 전도사 윌리엄

 

처음에 남수단에 들어갔을 때, 7개의 부족을 돌아다니며 선교사나 교회가 있는지 확인했다.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있었지만 차를 세워두고 몇 시간씩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도 있었다. 7개의 부족을 다니다보니 대충 길이 난 것을 보고도 사람이 사는 마을로 이어지는지, 그냥 다니는 길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7개의 부족을 방문하는 동안 한 군데도 마음을 주기 어려웠다. 어떤 부족은 너무 난폭해보였고 어떤 부족은 강이나 개울이 너무 멀어서 교회 개척지로 적당해보이지 않았다.

8번째 부족을 찾기 위해 토릿이라고 불리는 마을을 지나가던 길이었다. 전기나 수도는 없지만 두 개의 우물이 있고 강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마을 입구에 교회도 보였다. 그 교회 앞을 지나가는데 한 남자가 교회 앞에 앉아 있었다.

“죄송하지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혹시 이 주변 부족 중에 복음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부족이 있나요?”

내가 물어보자 그 남자가 나를 쳐다보았는데 눈동자가 하얀 색이었다.

헉.

잠시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는데 그 남자는 그걸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장님이었다.

 

“선교사인가요?”

그 남자는 매우 단호하면서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네. 선교사입니다.”

“있습니다.”

그 남자는 대답하면서 내 팔을 더듬어 잡았다.

“나의 부족입니다. 그곳에 복음을 전해주세요.”

“여기서 얼마나 걸리지요?”

“하루 종일 가야합니다.”

“차가 있어요. 차를 타면요?”

“차를 가져가면 두 시간 정도면 입구에는 도착할 수 있습니다. 입구부터 또 하루 종일 걸어야 부족 전체를 볼 수 있어요.”

“여기 교회가 있는데 왜 이 교회에서 그곳으로 선교사를 파견하지 않지요?”

“토릿 인구가 4만이 넘어요. 교회 오는 사람은 고작 100 명입니다. 이곳에도 할 일이 많지요. 미국인 선교사가 있지만 나의 부족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그 부족은 복음이 전혀 안 들어갔는데 당신은 어떻게 교회에 있어요?”

“보시다시피 저는 장님입니다. 열병을 앓아서 아버지가 저를 고치려고 소에 실어서 부족 밖으로 나왔어요. 그 때 선교사님을 만났어요. 열병은 고쳤지만 눈이 멀었죠. 그 뒤로 아버지는 죽고 저는 부족으로 돌아가지 못해요. 눈이 멀었으니까요. 선교사님은 바쁘고요. 저의 부족에 복음을 전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것이 윌리엄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윌리엄은 나에게 그의 부족, 부르족을 소개해주었다.

윌리엄은 장님이었지만 매우 총명한 사람이었다. 미국인 선교사와 살았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는지 영어는 잘 하지 못했다. 내가 아랍어로 말하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윌리엄은 부르족에 사람을 보내서 나를 안내할 사람을 불렀다. 이틀이 지나서야 ‘비난슈’라는 젊은 사람이 나를 부르족으로 안내하기 위해 토릿으로 내려왔다. 영어와 아랍어가 동시에 능숙한 사람이었다. 부르족의 부족민은 9,000명이었다. 윌리엄은 비난슈가 유일하게 영어가 가능한 부르족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비난슈의 안내로 부르족에 들어갔다. 부르족은 조와 수수 농사를 짓는 매우 평화로운 부족이었다. 부족 깊이까지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추장만 만났다. 추장은 다짜고짜 내게 부족에 우물을 파달라고 했다. 나는 내가 부족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면 파주겠다고 했다. 추장은 그건 자기의 권한이 아니고 제사장에게 허락을 받거나 원로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어쨌든 그 때, 나는 이 8번째 부족을 내 평생의 사역지로 마음에 결정했다.

부르족 사람들은 ‘비’를 신으로 섬겼다. 비가 내리고 나면 싹이 트기 때문에 비가 생명을 준다고 믿었다. 부르족 외의 외부 세계를 경험한 사람은 윌리엄과 비난슈 뿐이었다. 윌리엄은 국제선교단체 AIM의 선교사를 통해 하나님을 믿었고 비난슈는 우간다에 가서 천주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복음을 아는 사람이 없는 부족이었다.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부족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열 명 남짓의 천주교를 믿는다고 말한 사람이 더 있었다. 20여 년 전에 이곳을 거쳐 간 미국인 신부가 있었다고 했다. 두 달을 머무르다가 병에 걸려서 나갔다고 했다. 천주교 신부가 두 달 정도 머무르고 열 명 남짓의 천주교인이 생겼으니 종교심이 강한 부족임에 틀림없다.)

부르족에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윌리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윌리엄은 매우 진실하고 신실하게 나의 일을 도와주었다.

 

제일 먼저, 윌리엄은 내가 부족에 정착할 수 있도록 추장과 원로들과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윌리엄이 먼저 자기의 신앙고백을 원로들 앞에서 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선교사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쉽게 설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원로들은 비를 신으로 믿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 비를 만든 신을 믿고 있다고 나를 소개했다. 그랬더니 원로 중 한명이 이슬람의 신이냐고 물었다.

남수단은 북쪽 아랍계에 지배를 당했던 역사가 있어서 나이가 많은 원로들은 이슬람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다. 나는 이슬람과 다른 신이라고 설명하고 절대 해를 끼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 한 원로는 부족에 정착하게 허락해준다면 내가 부족에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원로들이 태양과 비를 피해서 회의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원로들은 서로 여러 의견들을 냈다. 나와의 대화는 아랍어로 했지만 그들끼리의 대화는 부족어를 사용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윌리엄이 중간 중간에 끼어들어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대변해주었고 결과적으로 부족에 정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부르족 원로들 앞에서 가족의 정착을 허락받기 위해 브리핑하는 권요셉 목사
부르족 원로들 앞에서 가족의 정착을 허락받기 위해 브리핑하는 권요셉 목사

 

윌리엄이 여러 가지로 나를 도와주었다고 해서 그의 신앙이 신실했던 것은 아니었다. 윌리엄은 지속적으로 나에게 부족 제사장에게 가서 인사해야한다고 독촉했다.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웃옷을 벗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인사하러 가겠다고 했지만 목사가 비의 제사장에게 무릎을 꿇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고민이 되었다. 후에 복음이 전해지고 교우들이 생긴다면 비의 제사장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윌리엄에게는 언젠가 가겠다고 하면서 약속을 계속 미뤘다.

한번은 윌리엄에게 부족으로 들어가서 살면서 함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윌리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부족에서 장님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 토릿에서는 선교사님도 도와주시고 교우들도 도와주지요. 옆에서 성경을 읽어주는 것을 들을 수도 있어요. 아이들이 제 주변으로 모여들면 성경 이야기를 해 줄 수도 있지요. 하지만 부족으로 들어가면 저는 아무것도 못해요. 부족의 삶은 농사와 사냥 그리고 낚시가 전부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나 나는 윌리엄을 전도사로 세워서 교회를 세우는 데 도움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만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성경을 꼼꼼히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엄이 먼저 내게 제안했다.

“선교사님! 만약에 제가 부족에 들어간다면 제가 머물 수 있는 집을 하나 지어줄 수 있나요?”

“물론, 물론이지.”(집을 하나 짓는 데 약 10만원이 들었다.)

“그러면 제가 부족으로 들어가서 전도사 역할을 하지요.”

윌리엄이 부족으로 들어오겠다는 말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좀 더 견고하게 일하고 싶었다.

“좋아. 정말 고마워. 하지만 나는 네가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점자를 배웠으면 좋겠어. 부족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간다에 가서 점자를 배워오는 건 어때? 돈은 내가 지원해줄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정말 고맙지요. 하지만 저는 다른 나라를 가본 적이 없어서 무서워요. 우간다는 어렵고 주바(남수단 수도)에 가면 무료로 점자를 가르쳐주는 곳이 있습니다. 예전에 미국인 선교사님 따라서 가본 적이 있어요. 선교사님이 저를 그곳에 데려다 주시면 거기서 배우지요. 아마 기숙사 비용이 한 달에 50달러(6만원) 정도 할 겁니다. 그 정도만 지원해주신다면 빨리 점자를 배워서 올게요. 저도 제가 직접 성경을 읽고 싶어요. 누가 들려주기만 하는 거 말고요.”

나는 윌리엄을 주바의 무료 점자학교에 데려다주었다. 무료 점자학교는 성공회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윌리엄을 부탁하고 한 달 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사 주고 만약을 대비해서 전화를 충전해주고 비상금으로 100달러(12만원)를 쥐어주고 토릿으로 돌아왔다.

매우 뿌듯한 마음으로 부족 교회의 미래를 꿈꾸며 잠들었다.

 

그리고 주바에서 토릿으로 돌아온 그날,

첫 총성이 울렸다.

탕!

꽤 먼 거리였다. 한 발이 아니었다.

타타타타타탕.

나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아내와 예하는 깊이 잠든 것 같았다. 그리고 윌리엄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교사님, 여기 큰일 났어요. 전쟁이 났어요. 무서워요.”

“여기도, 여기도 총소리가 멀리서 나고 있어.”

“여기는 대포 소리도 나요. 헬기 소리도 나고, 바로 옆 건물이 포탄에 맞은 거 같아요.”

“너는? 너 있는 건물은?”

“저는 아직은 괜찮은데, 바로 옆에서 포탄이 터져요.”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그 뒤로 며칠간 주바와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윌리엄이 죽었을까봐 매우 걱정되었다.

‘만약에 죽었다면?’

내가 죽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냈어. 주바로. 내가 보내지 않았다면. 서둘지 않았다면. 며칠만 늦게 보냈다면.’

 

윌리엄의 안부가 심히 걱정되는 가운데 전쟁은 계속 되었다. 아내는 부족민들 걱정에 탈출을 미뤘지만 내가 탈출을 미룬 가장 큰 이유는 윌리엄이었다. 윌리엄을 내가 주바로 보냈다는 생각에 그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탈출하는 것이 영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이 점점 치열해지자 결국 우리 가족은 탈출하기로 결정하고 구조비행기를 요청했다. 바로 그때, 약속이나 한 듯이 다시 주바에 있는 윌리엄과 전화 연결이 되었다.

“아, 연결이 되었군요. 선교사님.”

“아... 윌리엄.”

“거기는 어때요?”

“윌리엄. 나는 여기를 탈출하기로 결정했어.”

“네? 저는 어쩌지요?”

“...”

“저는 여기서 계속 공부할까요?”

“모르겠어.”

“네?”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여기로 내려올 수 있나?”

“아.. 길이 다 막혔어요. 아무데로도 갈 수 없어요. 저 어떻게 해요?”

“미안해. 내가 널 거기로 보냈어.”

“아니에요. 선교사님은 저를 우간다로 보내려고 했지요. 제가 여기로 왔잖아요.”

“그래도 미안해. 조금만 버티고 있어봐. 내가 일단 나갔다가, 나가서 우간다에 있다가 돌아올게. 주바 통장 계좌번호 알지? 내가 거기로 돈 보내줄 테니까 점자 공부하고 있어. 우간다에 있다가 돌아올게. 한 달이면 전쟁 끝나지 않겠어? 끝나면 바로 돌아올게. 그 때까지 점자 잘 배우고 있어. 돌아와서 부족에 교회 잘 세워보자.”

“아... 알았어요. 그러면 일단 점자 공부하고 있을게요. 잘 다녀오세요.”

그에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리는 우간다로 탈출했지만 전쟁이 3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유엔의 발표와 함께 외교부에서는 우리에게 귀국 명령을 내렸다.

귀국 후 약 2년 동안 윌리엄에게 계속 돈을 보냈지만 현재는 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의 남수단 금융 제재조치로 돈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이다. 윌리엄은 토릿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제 점자로 성경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부르족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더 이상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도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지키지 못한 죄책감이 크다.

고마워. 그리고 정말 미안해. 윌리엄.

언젠가 윌리엄이 부르족의 전도사로 들어가는 날이 오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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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요셉 목사는 서울예술대학교(극작과)와 경기대학교(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학 석사와 명지대학교 아랍지역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총회 소속 목사로, 현재 인천 더함공동체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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