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요셉 목사] 부르족 사람들 (3) - 차기 추장 비난슈
[권요셉 목사] 부르족 사람들 (3) - 차기 추장 비난슈
  • 권요셉 목사
  • 승인 2019.03.1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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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선교사의 치료적 글쓰기
어린이 예배 통역 중인 비난슈
▲어린이 예배 통역 중인 비난슈

 

교회에 도착하자 비난슈가 난간에 걸터앉아 나를 기다렸다. 내가 나타나자 비난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게 다가왔다.

“요셉. 지금 넌 여기에 와서는 안 돼.”

나는 다소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예배시간이잖아. 너도 통역 때문에 온 거 아냐?”

비난슈는 한숨을 쉬며 나를 끌고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

“지난 이틀 동안 총소리 못 들었어?”

“들었어. 멀리서 들렸어. 주바에서 전쟁이 났다는데?”

비난슈가 중요한 것을 말할 때는 눈을 똑바로 뜨고 검지손가락을 위로 치켜들며 말에 힘을 준다.

“멀지 않아. 2KM도 안 떨어진 곳이야. 금방 이쪽으로 밀려올 거야.”

“설마. 여기 뭐 가져갈 게 있다고.”

“이쪽으로 오는데 군인들 안 만났어?”

“만났지. 부족 입구에서 오수까르가 날 선교사라고 보증하니까 보내주던데?”

“잘 들어. 요셉. 오늘 예배하고 바로 남수단을 떠나. 최대한 빨리.”

방금 전까지 내가 아내에게 하던 말이었다.

“전쟁이 났어. 다른 선교사들은 모두 떠났어.”

그러나 아내는 아주 덤덤하게 말했다.

“예배 안가?”

 

아내의 물음에 대답할 말이 없어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교회로 왔다. 그런데 내 판단이 맞았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비난슈는 늘 정확했다. 부르족에서, 아니 어쩌면 남수단에서 가장 똑똑한 친구였다. 우리는 빨리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떠나라”고 말하는 비난슈에게 “그래, 빨리 떠날게”하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나는 비난슈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내가 내게 해준 말을 했다.

“예배 가자. 통역해야지.”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비난슈에게 소리쳤다.

“비난슈! 아브라함이 안 왔어. 네가 통역해줘야 해.”

비난슈는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예배당으로 달려갔다.

‘전쟁. 비난슈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작은 일이 아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머리에 온갖 생각이 들어왔다 나갔다. 간담이 서늘하다는 표현이 이런 걸까? 쫄린다는 표현은 정말 잘 만든 것 같다. 부족의 다른 교우들이 날 보고 있어서 웃으며 인사했지만 간이 계속 쪼이는 느낌이 들었다. 한숨이 계속 나왔다.

아내가 인도하는 어린이 예배가 끝나고 내가 어른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들어갔다. 예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고 교우들은 매우 진지하고 의미심장하게 예배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자마자 교우들은 급히 일어나 어딘가로 서둘러 이동했다. 보통은 예배가 끝나고 나서 성경공부를 하고 한 시간 이상 춤추며 노래하다가 돌아갔다. 그렇게 서둘러 돌아간 적은 없었다. 내가 당황해하자 비난슈가 나에게 다가와서 꼬옥 안아주었다.

“지금 집으로 가면 바로 짐 싸서 여길 빠져나가. 곧 군인들이 몰려들어 올 거야. 이건 우리 일이야. 넌 어서 빠져나가.”

비난슈는 사람들과 함께 어딘가로 달려가다가 뒤돌아보고 나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어서 가!”

나는 비난슈의 뒷모습을 보며 서둘러 집으로 갔다. 그러나 빠져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비난슈는 매우 독특한 천재였다. 부르족에서 유일하게 유창한 영어를 하는 부족민이었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아랍어만 쓰는데 비난슈는 젊은데도 불구하고 아랍어뿐 아니라 부족어도 유창하게 해 냈다. 그래서 원로들로부터도 신임이 매우 두터웠다. 차기 추장이라는 말이 들렸다. 그가 차기 추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총명함은 어릴 때부터 눈에 띄었다. 그의 총명함을 알아본 아버지는 가지고 있는 소들을 모두 팔아서 비난슈를 우간다로 보냈다. 우간다에서 6년 만에 초중고 과정을 모두 끝내고 우간다 최고의 의과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기로 약속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부족으로 돌아왔다. 부족으로 돌아와서는 묵묵히 낚시를 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나갔다.

한번은 땅에 무엇인가를 쓰기에,

“뭘 쓰는 거야?”

하고 물었더니,

“미분.”

이라고 대답했다.

“응?”

나는 단어 뜻을 알지 못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되물었다.

“미분? 수학의 그 미분?”

“응.”

“교재도 없이 땅에다가 미분을 풀어?”

“내가 만든 문제야.”

“문제를 만들어서 풀어?”

“재밌어. 선생님은 의사가 되라고 했지만 난 수학이 재밌었어.”

난 비난슈를 공부시키고 싶어서 "우간다 의과대학을 보내주겠다."고 제안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비난슈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고마워. 요셉. 그런데 내 가족이 30명이야. 가족을 두고 나 혼자 가는 건 의미가 없어. 수학만큼 낚시도 재밌어. 내가 우간다에 6년 동안 있으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뭔지 알아? 아침에 눈을 떴는데 텔레비전 소리가 나는 거야. 여기서는 아침에 무슨 소리가 제일 먼저 들리지?”

“개 짖는 소리.”

“하하하하.”

내가 원하는 답을 하자 비난슈는 매우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개 짓는 소리. 새 우는 소리. 우간다에서는 이 소리가 안 들려. 텔레비전 소리. 시장에서 물건 파는 소리가 들리지. 게다가 우간다에서는 공부 끝나고 돌아오면 집에 아무도 없어. 그건 정말 무서워.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지금 여기 부르족에서는 일 끝나고 오면 30 명이 날 반겨준다고.”

비난슈와는 성경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윌리엄처럼 성경을 많이 알거나 신앙이 깊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추장이 된다면 교회에 매우 큰 유익을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난 아내가 둘이야. 넌 아내가 하나여야 한다고 말하지. 나도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여기는 아내가 열 명인 사람도 있어. 14살만 되어도 임신을 하지. 그 14살 아이를 임신시킨 게 누구인지도 몰라. 지금 이건 뭔가 잘못 됐지. 나도 네가 가르치는 세상이 부르족에 나타났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내가 아내가 둘인 게 창피하지는 않아. 날 이해하지?”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비난슈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 오래 있어. 원로들이 죽을 때쯤엔 하나님이 원하는 부족이 될 거야. 하지만 원로들이 살아 있을 동안은 안 돼.”

 

전쟁이 발발하고 비난슈가 나에게 "남수단을 떠나라."고 말했을 때, 그가 전쟁 전에 나에게 했던 이런 말들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최소한 나는 그와 함께 만들어갈 미래의 부르족에 매우 큰 소망을 품었었다.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그가 나에게 어서 탈출하라고 했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남수단의 상황을 모르는 건지, 정말 죽기라도 하려는 건지 떠날 마음이 없었다. 목요일은 주일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우리는 목요일을 주일학교 주중모임으로 정했지만 요일에 대한 개념이 없는 부르족 아이들은 우리가 교회에 오는 요일을 몰랐다. 그래서 매일 교회에 와서 우리를 기다렸다.

전쟁이 발발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총성은 점점 치열해졌다. 그리고 목요일이 되었다. 아내는 주일학교 주중모임 준비를 하고 교회로 향했다. 아이들을 향한 아내의 열정과 아이들이 아내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는지를 잘 알기에 나는 아내를 말릴 수가 없었다. 그저 아무 일이 안 일어나길 기도할 뿐이었다.

우리가 교회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잔뜩 모여 있었다. 비록 전투가 밤에만 일어난다지만 어쨌든 전쟁 중이었다. 교회 건물 지붕이 뜯겨 있었다. 의자며 지푸라기와 대나무로 만든 벽이며 모두 부서져 있었다.

“뭐야, 이거 왜이래?”

아내가 묻자 아이들은 군인들이 그랬다고 대답해주었다. 아내는 군인들을 욕하며 투덜거렸다.

“아니, 군인들이 국민들 지켜줄 생각은 안하고 정말. 자, 얘들아 모여.”

아내가 음악을 틀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모여들었다. 음악에 맞춰 노래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요셉씨. 통역 필요한데 비난슈가 안 왔어. 빨리 불러.”

나는 아이 한 명을 보내서 비난슈를 불러오게 했다. 곧 비난슈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요셉. 내가 가라고 했지.”

“낮에는 괜찮아.”

내 말을 듣고, 비난슈가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아내가 비난슈를 불렀다.

“비난슈! 빨리 와! 통역!”

비난슈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는 특유의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열심히 통역했다.

 

목요일을 무사히 보내고 주일이 돌아왔다. 토요일 밤에 제법 무거운 전투가 벌어졌다. 아침에 사람들이 찾아와 우리보고 어서 탈출하라고 했다. 외국인들은 당연히 다 빠져나갔고 차가 있는 남수단 사람들도 남수단을 빠져나간다고 했다. 남수단을 탈출하는 행렬이 백만이 넘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주일예배 준비를 했다.

“전쟁 중인데 누가 교회 오겠어. 어제 진숙 씨는 자느라 못 들었겠지만 어젯밤은 장난 아니었어.”

“그러니까 사람들은 더 교회로 오겠지.”

“안 와. 누가 와? 전쟁 중에.”

“그럼, 목사가 예배를 안가? 나중에 부족민들한테 뭐라고 하게?”

할 말이 없었다. 아내 말이 모두 맞는 것 같았다.

‘교회에 아무도 안 와 있는 걸 보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나는 속으로 투덜대며 교회로 향했다. 그런데, 교회에 교우들이 가득 와 있었다.

“거봐. 다 와 있잖아.”

그 장면은 감동이었다. 아내는 당당히 교회로 들어갔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어려운 환경에도 교회에 온 교우들이 대견했다.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 기대도 없었는데 전쟁 중에 교회로 모인 교인들을 보며 내 마음이 뜨거워졌다. 아드레날린인지 도파민인지 모를 어떤 화학물질이 내 뒤통수를 덮었다. 온 몸이 짜릿했다. 그 때만큼은 진심으로 ‘여기서 이 사람들을 위해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비난슈는 아랫입술을 이빨로 물고 웃으며 나에게 와서 나를 안아주었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내일은 정말 큰 전투가 벌어져. 오늘 가야돼.”

나는 비난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비난슈의 말을 듣기에는 마음이 이미 너무 뜨거워져 있었다. 나는 설교를 끝내고 성도들 앞에서 약속했다.

“지금은 전쟁 중이고 외국인들은 모두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떠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곳에 있겠습니다. 주님이 이 자리에 우리와 있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춤을 췄다. 그동안 가르쳐준 찬양을 불렀다. 돌아가면서 나와서 나를 안았다. 나는 정말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했다.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예배였다.

그러나 그 다음날, 전쟁은 정말 걷잡을 수 없이 치열해졌다.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들었다. 집 바로 옆에서 폭탄이 터졌다. 마을 사람들이 죽었다. 비명이 들렸다. 처음으로 아내가 불안해하는 것을 보았다. 그 담대하던 아내가 무너지는 것을 보자 ‘내가 결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탈출을 강행했다.

나는 부족민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작별인사도 못한 채 탈출했다.

“저는 떠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곳에 있겠습니다. 주님이 이 자리에 우리와 있습니다.”

내 마지막 설교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거짓말이 되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몇 개월 후, 남수단에서 전화가 왔다.

‘누구지?’

남수단에서 오는 전화는 아무리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무조건, 어떻게든 받았다.

“요셉.”

비난슈였다.

“어떻게 전화했어? 전화가 안 될 텐데.”

“윌리엄에게 네 한국 전화번호 들었어. 너에게 전화하려고 토릿까지 내려왔어.”

“미안해. 인사도 못하고 나왔어.”

“아니야. 넌 괜찮지?”

“응. 괜찮아.”

“그럼, 됐어.”

“뭐, 필요한 거 없어?”

비난슈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매우 단호하게 그러면서도 따뜻하게 말했다.

“이젠 우리 일이야. 여기는 신경 쓰지 마. 잘 있다니 됐어.”

그것이 비난슈와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유일한 부르족 사람.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줬던 유일한 부르족 사람. 차기 부르족 추장. 비난슈. 살아 있어라. 꼭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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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요셉 목사는 서울예술대학교(극작과)와 경기대학교(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학 석사와 명지대학교 아랍지역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총회 소속 목사로, 현재 인천 더함공동체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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