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식 작가] #29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겔 16:6)
[김재식 작가] #29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겔 16:6)
  • 김재식 작가
  • 승인 2019.03.1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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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보는 불행속의 그때 그 말씀들 4

* 지독한 어둠을 통과할 때는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혼자뿐인 것 같고 원망이 더 빠르게 나옵니다. 그러나 고비를 넘기고 지나서보면 붙들고 위기를 넘겨온 동아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되어 밤낮 동행하셨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그때 그 말씀들을 돌아보며 오늘 허리띠를 조입니다. 오늘은 언젠가 또 어느 날의 과거가 될 테니. - 쓴 사람의 덧글

"아들아, 아무래도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
"내가 일을 놓으면 당장 수입도 끊어지는데 갑자기 엄마 응급실이라도 갈 일 생기면 어쩌냐."
"…알았어요."

이건 애당초 선택이 가능한 부탁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협박에 가까운 족쇄였습니다. 달리 거절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괴로운 대화를 아들과 주고받아야만 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가족이나 연인과 기쁨을 같이 나누듯, 불행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도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발목을 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강원도 깊은 산속 기도원에 아내를 데려놓고 나는 주간에는 충주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강원도에 있는 장거리를 오가는 생활을 했습니다. 큰아이가 엄마를 잠시 돌보다가 군대 입대를 하게 되어 할 수 없이 겨울방학중인 초등학교 5학년짜리 막내딸에게 엄마 돌보는 일을 넘겼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기도원 집회를 하루 두 번씩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일을 막내딸은 잘도 견뎌주었습니다.

그러다 막내딸도 개학을 하는 바람에 서울에서 일하며 피아노를 배우던 둘째아들을 불러야만 했습니다. 나는 월요일에 충주로 가면 한 주간 일하고, 금요일 밤이면 차 트렁크에서 옷을 꺼내 주차장에서 갈아입고 작업복을 대신 그 트렁크에 넣고 세 시간을 달려 대관령을 넘어왔습니다. 그렇게 다섯 달을 계속 살았습니다.

엄마 곁을 지키던 둘째 아들 입에서 터져 나온 말... "미칠 것 같아요"

 

골방에서 신음했던 청춘, 둘째 아들은 '미칠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도 어이없는 짐을 짊어졌습니다. 그러다 군대를 자원입대했고 훈련을 마친 후 임관복을 입고 엄마를 찾아와 미안한 엄마의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골방에서 신음했던 청춘, 둘째 아들은 '미칠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도 어이없는 짐을 짊어졌습니다. 그러다 군대를 자원입대했고 훈련을 마친 후 임관복을 입고 엄마를 찾아와 미안한 엄마의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강릉으로 와서 버스를 갈아타고 기도원까지 온 아들은 무거운 얼굴이었습니다. '그 속인들 편할 리가 없지….'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나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두어 달 엄마 곁을 지키던 아이는 하루는 무거운 얼굴로 엄마에게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미칠 것 같아요…." 종일을 작은 방에 갇혀 엄마를 돌보는 게 너무 갑갑했던 모양입니다. 오죽하면 아픈 사람에게 털어놓았을까요.

마침 설 휴가를 맞은 김에 아이에게 며칠 바깥나들이를 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들은 내가 엄마를 지키는 동안 부산으로 가서 친구도 만나고 여행 삼아 다니겠다고 산속을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질기고 발목잡기 선수라고 했던가요?

설 연휴가 끝나기 전 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대로 부축을 받으면 거동이 가능하던 아내가 하룻밤 사이에 심한 두통에 구토를 하면서 완전 사지마비에 빠져 버렸습니다. 침대에 누운 채로 대소변을 받아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목을 가누지도 못해 밥을 먹일 때도 이불 서너 채를 등과 벽 사이에 넣고, 양쪽 겨드랑이에 베개를 끼워 지탱시키곤 간신히 몇 숟가락 먹였습니다.

결국 미안함을 무릅쓰고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내용은 '네가 바로 돌아와서 다시 엄마를 좀 보살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산에서 밤차를 타고 와서 새벽에 동해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아이는 2월의 강추위에 새파랗게 떨고 있었습니다. 데리러가는 내가 늦어지는 바람에 한참을 불도 없는 대합실에서 기다리느라 더 그랬답니다. 떨고 힘든 마음이 추위 때문 만이었을까요?

아이를 기도원 엄마 옆에 데려놓고 대소변 받고 기저귀를 바꾸는 방법과 밥 먹이는 요령도 인수인계하고 난 직장인 충주로 또 달려갔습니다. 몰려오는 피곤과 복받치는 서러움들을 꾹꾹 누르며... 돈이라도 좀 여유가 있다면 좋은 병원에 입원시켜 유급간병인을 두고 아이들을 이 결박에서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그야말로 생각으로만 담고 살아야했습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지만 둘째아이 때문에...’

그런 서글픔이 늘 가슴을 맴돌아 무력감에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영동고속도로는 핸들을 한 바퀴만 돌리면 모든 고통을 끝내 버릴 만한 높은 고가도로와 급한 경사 위치가 여러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둘째아이가 영상처럼 눈앞에 나타나 핸들을 돌리지 못하게 잡았습니다.

스무 살의 남자가 그 황금 같은 시기를 대학입학의 기회를 두 번, 세 번이나 포기하고 미루며, 작은 골방에 갇혀 산송장이 되어 버린 엄마의 대소변을 치우고 밥을 먹이며 버티는데, 남편이자 아빠인 내가 무책임하게 떠나버리면 그 아이는 무슨 심정으로 그 뒷일을 감당할까? 아무리 무정하게 떨치려 해도 나보다 더 억울할 둘째아이가 떠올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 조금만 더 버티자, 오늘은 아니다' 하며….

그 시기들, 마치 마취도 없이 메스로 살을 베는 수술을 당하는 고통을 도로 삼키며 살 때 계속 주문 외우듯 반복하던 성경구절이 있었습니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 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에스겔 16장 6절)

고대 근동에서는 바라지 않던 여자 아기가 태어나면 문 밖에 방치하곤 하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있었습니다. 그렇게 낳자마자 버려진 아기처럼 비참하였습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이스라엘)을 피투성이 인 채로 버려진 아기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도 나도 우리 아이들도 버려진 피투성이 아기입니다. 무엇하나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는 그런 비참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이어지는 말씀은 희망이고 복음이며 위로입니다. 그래서 붙잡고 의지했습니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내가 너를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에스겔 16:6-7절)

피투성이 아기가 살아났습니다. 들의 풀 같은 푸른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 아기가 꽃다운 아가씨가 되고 나중에 왕후도 되었습니다. ‘그러니...지금은 실패해도 괜찮아. 살림이 누추해도 괜찮아. 바닥을 기고 있는 중이라도  살아야해! 하나님은 늘 희망으로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시니까!’ 라고 속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 시기를 견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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