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11)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11)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3.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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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9:25의 "나의 대속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일까?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3) ‘나의 대속자’는 누구인가?(욥 19:25)

욥을 의인이라고 볼 수 있는 신앙고백이 또 있다. 바로 욥기 19:25인데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케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 19:25).

이 구절에서 욥이 “나의 대속자”라고 언급했다. “나의 대속자”가 혹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일까? 그렇다면 욥이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대속을 믿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고백은 구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중요한 예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으로 이 시점의 욥을 의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욥이 고난 받기 이전부터 의인이라는 근거구절이 된다. 과연 “나의 대속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 전후 문맥을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욥은 육체의 질병으로 인해 죽음이 멀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욥 17:1).

때문에 죽음을 각오한 것 같은 표현도 서슴치 않는다.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욥 17:15~16).

그런 임박한 죽음에 대한 표현이 계속 이어지며 욥기 19:20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뿐이로구나”(19:20).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다는 말은 자신의 앙상한 몰골을 묘사한 것이다. 신체의 변화로 죽음을 직감한 욥은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 때문이라고 지목하며 친구들에게 하소연한다.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욥 19:21).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에 관한 내용이 책에 기록되어 지워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욥 19:23~24).

욥은 이 말을 왜 한 것일까? 욥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죽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에 대한 혐의가 벗겨지고 무죄로 판명나길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억울한 내용이 잊혀 지지 않고 기록되기를 바란 것이다.

25절의 “나의 대속자”는 이같이 말하는 와중에 나온 표현이다. ‘대속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גאל(고엘)’이다. ‘גאל(고엘)’은 구약성경에 상당히 많이 쓰인 단어로 ‘대속자’ 혹은 ‘보수자’의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대속자’라는 번역에 크게 문제가 있지는 않다. 그래서 “나의 대속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시키는 분들이 있다.

예수님께서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b)라고 말씀하셨듯이 성경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과 언약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기록 목적에 따른 해석이 바른 본문해석임이 분명하다. 구약성경의 많은 부분이 우리를 진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이끌고 있다. 어떤 부분은 직접적으로 그분을 예표하거나 예언하고 있다. 또 어떤 부분은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성경 전체에서 그리스도를 이끌어내려는 충성스러운 해석자들을 신앙의 형제라고 여긴다. 그런데 충성스러운 해석들 가운데 무리한 해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내용을 그리스도께로 연결시키는 해석들이다. 본문이 지닌 주제를 모두 그리스도께로 수렴시키다보니 본문의 진의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혹은 본문의 의미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본문의 의미를 벗어난 경우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살펴보고 있는 욥기 19:25이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억울하게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대속자”가 계시다고 말했는데 이를 나중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대속’은 죄의 대가를 다른 이가 대신 치루는 개념이다. 따라서 욥의 유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욥은 자신이 결백하다고 흔들림 없이 확고하다. 무죄를 주장하는 자가 대속자를 필요로 한다면 이는 자기모순 아닌가? 그러므로 욥이 말한 “나의 대속자”를 예수 그리스도까지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계속해서 25절 이후 욥의 말을 살펴보자.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욥 19:26~27).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수사적인 표현이다.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는 말을 통해서는 욥이 인간의 죽음을 영혼과 육신의 분리로 이해했음을 알 수 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본다는 말을 반복 강조했는데 이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한 가지는 욥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감격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욥이 그토록 신앙하던 하나님과 감동의 만남을 갖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의 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해석이다. 반면 다른 해석은 욥이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억울하게 악인과도 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떳떳하다는 의미이다.

이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옳다. 욥이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27절)는 자신이 하나님과 대면하게 되면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으로 나아가지 않겠다는 말이다. 욥이 하나님을 앙망하며 대면하는 것이라면 기쁨과 감격의 표현을 사용하지 자신이 하나님을 낯선 사람 대하듯 하지 않겠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바로 전에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21절)라고 하나님을 원망하던 사람이 돌연 하나님을 만나 감격한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욥이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앙금이 있지만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대하겠다는 의미가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그렇다면 욥은 자신이 오히려 하나님을 관용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7절 마지막에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도 욥이 자신의 결백이 드러나지 않을 것에 대한 불안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대속자가 계시니 안심하고 있는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면하는 욥의 신앙태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욥은 자신이 죽더라도 자신의 정당함이 영원히 남겨져 결국 결백이 드러나길 바란다. 그리고 사후에 하나님과 대면하더라도 자신은 당당히 그 앞에 설 수 있을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감추고 대하겠다는 자신의 넓은 아량을 자긍하고 있다.

그렇다면 25절의 “나의 대속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욥이 말한 “나의 대속자”는 지난 회에서 말한 초월적인 자신의 증인과 중보자와 유사하다. 이를 욥기 16:19의 “나의 증인”, “나의 중보자”와 동일선상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문맥의 흐름상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은 무리이다. “나의 대속자”가 하나님이시라면 땅위에 설 대속자에 대해 말하자마자 죽은 후에 하나님을 만날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억지스럽다.

이에 대해 욥이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육신 혹은 재림하실 성자하나님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은 매우 큰 신학적인 비약이다. 욥기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던 메시아사상을 ‘גאל(고엘)’이라는 용어 하나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욥이 언급한 “나의 대속자”는 자신의 생애에서 결백을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죽은 이후에라도 누군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강한 자기 결백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여기까지 3회에 걸쳐 욥을 의인이라고 볼 수 있는 구절을 살펴보았다. 한편 욥기에는 ‘지혜장’으로 불리우는 욥기 28장이 있다. 욥이 지혜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에 붙은 별명이다. 욥이 참 지혜에 대해 언급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지닌 가진 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의인이었다는 추정도 가능해진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욥이 지혜에 대해 설명한 욥기 28장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계속해서 함께 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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