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 목사] 지도자들의 죄 1 _ 위선(僞善)과 교만(마 23:1-12)
[라종렬 목사] 지도자들의 죄 1 _ 위선(僞善)과 교만(마 23:1-12)
  • 라종렬 목사
  • 승인 2019.04.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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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3장 1-12절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라종렬 목사
광양사랑의교회  라종렬 목사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낭독하는 말씀은 행하고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또한 참된 랍비(선생)와 아버지(지도자)는 한 분이심을 가르치시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7절 예수님은 우리에게 언행심사가 일치하는 삶을 살라하십니다. - 위선과 신실함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도전에 응하시면서 그들의 문제가 드러 났는데 예수님은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제자들을 향하여 모세의 자리에 앉은 이들을 경계하며 가져야 할 삶의 자세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켜야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않고, 자기들은 지키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무거운 규례를 안겨주고, 그리고 헛된 명예욕으로 옷과 자리와 칭호를 탐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의 자리’를 율법에 대한 해석과 가르침으로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따릅니다. 왜냐하면 이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율법에 대한 해석과 가르침이라기 보다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이나 낭독하는 것이나 전수해 주는 역할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르침이나 성경 해석이라고 할 경우에는 그것을 행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오해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앞서 예수님은 그들의 가르침을 누룩으로 비유하며 조심하라면서 신랄하게 비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잘못된 성경 해석을 가진 이들의 가르침을 행한다는 것은 결국 그들처럼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못하고 잘못된 행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자리와 이들이 ‘말하는 바’는 율법 그 자체를 낭독하고 전수해 준 말씀으로 봐야 합니다. 이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예수님께서 재해석해주시고 성취하신대로 잘 지켜 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따르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들의 행위인데, 여기서 행위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율법을 해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율법에 대한 해석과 구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왜곡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 무엇보다 지금 성경을 잘 안다 하면서도 예언하신 약속대로 오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들이 가진 율법은 행하고 지켜야 하지만 그들의 위선적인 행위는 본받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의 위선적 행위는 첫째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누구보다 율법을 잘 알고 잘 지키고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둘째 이들은 무거운 짐 곧 율법을 지켜야 하는 규례들을 엄격하게 심지어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짐을 지워서 지킬 수 없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지우고 자신들은 손하나 까딱하지 않는 즉 전혀 그 법을 지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들의 행위는 위선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면서 결국엔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판단합니다. 이들의 위선은 자리에 대한 욕심과 사람들의 인기(명예)를 얻기 위해서 연연해 합니다.

삶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말씀은 공허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낸 말씀의 설교가 아니면 아무런 능력도 변화도 감동도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은 멍에가 가볍다고 말씀하시며 와서 배우라 하시는 것은 그 법의 제정 자체가 사랑에 기인하고, 또 당신이 친히 그 말씀을 따라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셨으며, 무엇보다 그 말씀을 따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타락 이후 인류의 위선의 죄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를 미혹하고 넘어지게 하는 심각한 죄악입니다. 모든 시대마다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언행일치되지 않고, 사람들을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보다 무거운 규례로 법의 정신보다 외식에 치우치고 그 법이 사람보다 위에 있고, 살리는 법이 아니라 죽이게 하는 법을 제정하여 굴레를 씌우며 신앙의 자유가 아니라 멍에로 다시 율법주의로 회기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역시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오해하고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명예욕이 극에 달한 모습이 연일 인구에 회자되는 것을 봅니다. 소금의 삶이 빛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오히려 맛을 잃은 소금의 모습이 세상에 비춰지니 세상보다 더 타락하고 탐욕적이고 명예를 탐하는 무리로 득실대는 이기적 집단이요 사회악철머 보여지는 교회 공동체를 바라보면 그 가운데 있는 우리들이 무엇을 붙잡고 버려야 할지 분명해 집니다.

이제도 다시금 언행심사가 일치된 삶으로 모든 위선을 버리고 겸손히 주 하나님 앞에서 행하며 투명하게 살아가고 헛된 탐욕을 버릴 수 있길 원합니다.

 

8-12절 예수님은 우리에게 겸손히 섬기며 자기를 낮추는 자로 살라하십니다. - 교만과 겸손

아예 예수님은 랍비나 선생, 아버지나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하십니다. 우리의 랍비(선생)와 아버지(지도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겸손히 섬기는 자로 사는 것이 기본입니다.

랍비(선생)는 가르치는 자입니다. 랍비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교육과 과정을 거친 자라야 그 칭호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랍비가 되면 상당한 존경과 권위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가르치는 자의 소임을 착각하여 군림하는 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칭호들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듣다 보면 처음엔 겸손하다가도 어느새 칭호가 사람을 변질시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처음에 조심스러운 겸손과 마음이 흐트러져 어느새 무엇이든 가르치려 들고 배우거나 듣는 일에는 둔하여 교만해 지는 것을 봅니다.

아버지(지도자)라는 칭호는 육신의 아버지이기 보다는 랍비나 선생들을 부를 때 쓰는 호칭입니다. 되도록이면 아예 쓰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서 이러한 호칭을 부득이하게 사용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칭함을 받는 이들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자기를 낮추는 자라야 합니다. 이 일은 한번만 결단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지위와 책임이 더 가중 될수록 더더욱 심각하게 경계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잠시라도 깨어있지 못하면 권력과 명예의 유혹에 넘어져서 공동체의 중심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추앙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아니라 지도자 한 사람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자리를 자신이 탐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는 섬기는 자, 자기를 낮추는 겸손함을 가진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 공동체, 곧 교회 공동체는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면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 겸손한 무리들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의 중심은 어떤 지도자 한 사람, 유력한 자 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경우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교회의 중심, 머리, 주인은 우리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좋아하고 사랑하고 칭찬하고 존경할 수 있어도 그를 신격화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지도자는 지도자 대로 이러한 유혹을 경계해야하고, 성도 또한 이러한 신격화를 엄격하게 배재하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엄히 다스려 이러한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권력이라도 인간은 금새 그 권력의 맛에 취해 망하는 길로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부정한 수단을 동원하는 사람들, 스스로 우상이 되려는 사람들, 그리고 대중의 환호를 즐기는 이들로 인해 한국 기독교는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을 비추며 남을 위해 살아가는 그리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곳곳에 묵묵히 살아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소속된 공동체 어디서든 그런 이들로 인해 공동체가 더욱 든든히 세워질 수 있음을 기억하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낮아지는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반면교사 삼을 수 있는 말씀 주심 감사합니다. 교만하고 위선 가득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음은 이미 우리 가운데 이들 못지 않은 위선과 교만이 우리의 삶의 자리에 익숙하게 자리잡음 때문인 줄 압니다. 

주님! 나의 위선과 교만을 분명하게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나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길 원하옵고 그래서 언행심사가 일치되는 온전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되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사람을 신격화 하는 어리석은 짓을 행치 않으며, 자고하며 가르치려하고 교만히 행하는 일이 혹여라도 깊은 곳에서 유혹하고 불쑥거릴 때에 성령께서 이 모든 탐욕을 물리쳐 이길 수 있도록 힘과 능력과 지혜로 함께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바르게 알고 믿고 행하는 신실하고 온전하신 주님을 따르렵니다.

외식과 권위주의와 율법주의, 위선과 교만 등등 모든 명예와 권세를 내려 놓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겸손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마태복음 23장 12절  ⓒ라종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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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사랑의교회 담임인 라종렬 목사는 성서유니온선교회 순천지부 위원이자 <매일성경> 큐티지의 집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혼자 책을 읽기보다는 ‘함께 읽기’를 권면하며 매월 여수, 순천, 광양지역 목회자들 15명과의 책사랑(冊舍廊), 매주 10여명의 목회자들과 금요수공회(金曜修共會), 매주 두 시간 일반인들과의 ‘슬로레’(Slore=Slow Reading) 등의 독서모임을 통해 다문다독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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