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년 목사] 향기를 토하는 삶(아 2:8-14)
[김병년 목사] 향기를 토하는 삶(아 2:8-14)
  • 김병년 목사(다드림교회)
  • 승인 2019.03.3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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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30일 주일 설교

-모든 사랑은 갈급함을 낳는다.

-사람의 연합은 향기를 낸다. 
▲다드림교회 담임 김병년 목사
▲다드림교회 담임 김병년 목사

지난 한주동안 캐나다 밴쿠버 삼성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묵상에 대한 훈련을 잘 마치고 귀국하였습니다. 외부 집회를 갈수록 우리 성도들의 기도지원에 마음이 뿌듯합니다. 기도응답이라고 제가 확신하는 이유는 호텔에 머물며 조용히 혼자서 묵상할 수 있고, 순간순간 번뜩이는 통찰력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동역에 감사드립니다. 

밴쿠버에는 벌써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고 왔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고 가꾸는 밴쿠버 시민들과 캐나다인들의 인내를 보았습니다. 저런 태도가 하나님의 마음이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돌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종교적인 의무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회적인 의미로 인간을 사랑하고, 환경 보존을 위해서 자연을 사랑하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소명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그분을 사랑하는 방식일 뿐입니다.  

 

서론-우리의 소명은 오직 하나님 한분만 사랑하라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하나의 소명뿐이다. 한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방식이 이웃과 자연을 돌보는 삶으로 표현됩니다.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를 사랑함으로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배웁니다. 결혼하지 않은 미혼자들은 사람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물론 모두가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보존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결혼한 기혼자이든지, 결혼하지 않은 미혼자이든지 그 상태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나의 반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하면 나의 반쪽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주의해야합니다. 결혼하지 않으면 영원히 반쪽 인간이라는 말씀입니까?. 아니지요. 배우자가 없으면 반쪽인간입니까?. 아닙니다. 배우자가 없어도 온전한 인간입니다. 상당히 차별적이고, 은연중에 결혼이 미혼보다 낫다는 생각을 깔고 있는 단어입니다. 또 우리 문화에는 ‘결혼하지 않으면 어른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유교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어른 대접의 기준이 결혼입니다. 이런 견해는 창세기의 ‘돕는 베필’을 결혼관계로만 해석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미혼자들은 어른이 될 수 없습니까? 당연히 아니지요. 


제가 도착하였을 때 공항에 마중 나온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지난 주일 김준길 목사님이 설교를 잘하셨지요?”라고. 집사님이 대뜸 “목사님, 힘드실 것입니다”라고 응답하셨습니다. 후배가 설교를 잘해서 힘듭니다 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제가 힘든 이유는 아가서 설교를 거부하는 몇몇 형제들이 있어서라고 했습니다. 아가서 설교를 하고 난 뒤에 저를 비롯한 남자들이 힘들어 합니다. 오늘은 더 더욱 힘든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청소년들도 함께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이 아가서를 듣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도 들을 수 있는 아가서가 되어야 합니다.  

 

1. 사랑은 설레임을 토해냅니다(8-9절)

사랑을 하다가 보면 상당히 자주 우리들을 말을 회상하곤 합니다. 어제 한말과 지난 달 방문한 장소를 기억하고 추억합니다. 지금 다시 그 장소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형성하곤 합니다. 그래서 연인과 쌓은 추억이 많을수록 회상하는 것들이 늘어나고 새로운 기대를 합니다. 

우리가 읽은 아가서 2:8-9은 바로 이런 회상입니다. 이전에 남자가 한 말과 그 남자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8, 9절에는 두 번 다 ‘보라’로 시작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언덕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저 산을 넘어서 달려오는 연인을 보며 그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물리적으로 목소리를 듣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의 달려오는 몸’보다 먼저 ‘그의 소리’를 듣습니다. 얼마나 설레는지 아시겠지요. 연인이 산등성이를 타고 오는 모습과 작은 언덕을 뛰는 모습을 연인이 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그 남자가 이미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 구나”. 이미 도착한 연인의 문 앞에서 집안에 있는 여친이 나오기만을 기다립니다.  

달려오는 사람의 헐떡거림과 기다리는 사람의 설레임을 봅니다. 모든 사랑은 기다리는 자를 설레이게 합니다. 설레임은 너무 커서 보기도 전에 벌써 마음이 떨립니다. 달려오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둘 다 설레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하와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중매로 그녀를 아담에게로 인도합니다. 그때 아담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잠자다 일어난 아담은 하와를 보고 “아, 졸려 나 더 잘거야”라고 하지 않습니다. 감탄합니다. 인간이 쏟은 첫 번째 감탄이 바로 인간입니다. 

사랑은 우리로 설렘을 토해냅니다. 퇴근시간의 즐거움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교 후에 돌아오는 자식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에는 오면 뭘 먹일까 상상합니다. 아이가 심드렁하게 와도 엄마를 만나면 자녀의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퇴근하는 분들을 보십시오. 퇴근이 즐거우십니까?. 혹시 퇴근 후가 더 괴로운 사람, 퇴근 후가 더 외로운 사람들은 허전한 마음 때문이 아닙니까. 사랑의 관계로 채우지 못한 마음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관계를 통하여 이런 단란한 행복을 찾습니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관계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행복을 잘 누리지 못합니다. 이미 관계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면 하나님과 관계를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롬 1:21).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합니다. 은혜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이 바로 감사입니다. 은혜라는 헬라어가 감사라는 뜻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거저 받았다는 뜻이지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들은 생명을 거저 받았습니다. 공기를 거저 받았습니다. 각종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받았습니다. ‘거저’. 십자가도 거저 받았습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은혜 받은 사실을 알 때 감사합니다. 감사는 은혜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 때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에 설렘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즐거움과 사람을 반기는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은혜 받은 것을 사랑이라고 하지요. 이 사랑의 마음에서 기다림이 나옵니다.  


2. 향기를 토하는 봄 들녘에서 열매 맺는 가을 들녘으로 나아가길 소망하게 합니다(10-13a).  

이 연인이 기대하는 바가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은 남자가 여자에게 한 말로 자신의 바램을 드러냅니다.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라 가자”. 어디로 갑니까?. 어디로 가길 원합니까?. 여자는 겨우내 집안에 있었습니다.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거쳤고”. 이스라엘의 겨울은 10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입니다. 우기라고 합니다. 이 우기에 내리는 비를 게셈이라고 합니다. 겨울 비가 그쳤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봄이 오면 꽃이 핍니다. 포도나무에 가지치기를 합니다. 12절에 새가 ‘노래하고’로 번역한 단어(자미르)는 가지치기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포도나무는 싹이 나기 전에 먼저 가지치기를 합니다. 비둘기 소리가 들립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멧비둘기는 봄의 전령사입니다”(김구원 교수님의 책, p157). 비둘기는 봄이 되면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철새입니다. 

13절에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초봄에 열매를 맺는 파게를 말합니다(류모세 인용). 가가난한 사람들이나 나그네들이 배고픔을 채울 수 있는 첫 열매입니다. 겨울이 끝나고 춘궁기에 먹을 수 있는 양식이 바로 무화과 열매 파게입니다. 봄의 향기가 토하는 곳으로 나아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 설렘은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곳으로, 향기가 넘치는 곳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자연을 가장 아름답게 묘사한 노래”라고 했습니다(롤란드 머피 인용. p140). 자연이 가장 아름답게 회복된 곳이 어디일까요? 에덴동산이지요. 타락하지 않는 곳, 사랑으로 충만하고 생명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마음에 이 동산으로 가려는 마음이 충만하길 바랍니다. 그곳, 새소리가 들리고, 꽃이 피어 향기를 발하는 그곳으로 나가는 삶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봄의 향기는 열매를 맺기 위한 출발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일 년에 다섯 번 열매를 맺습니다. 이 다섯 번 중에 첫 번째 열리는 열매를 파게라고 합니다. 포도나무도 꽃을 먼저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즉 봄이 왔다는 소리입니다. 포도나무에 꽃이 피어야 유실수가 열매를 맺습니다. 봄의 향기가 넘치는 곳마다 가을에 맺힐 열매를 소망합니다. 
봄의 향기에만 취하는 농부는 없습니다. 가을 추수를 소망하며 씨를 뿌립니다. 봄에 씨를 뿌리는 것은 가을에 거두기 위함입니다. 봄의 향기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다드림 성도 여러분, 봄처럼 먼저 씨를 뿌리길 바랍니다. 삶에 신앙의 열매가 맺기를 바라는 자들은 씨를 뿌립니다. 우리 중에는 묵상을 하지 않는 이들이 상당합니다. 소그룹에서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나누는 것보다 우리들의 관계를 더 편하게 해야한다고. 서로의 관계에 사귐을 위해서 그런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도 똑같은 모습이라면 이제는 맘에 씨를 뿌려야 할 때입니다.   

예배 시간에 늦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배에 늦는 것은 신학도 아닙니다. 변명일 뿐입니다. 생활 습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자기의 죄성입니다. 이런 완고함은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가을에 열매를 거두고 싶습니까. 이 봄부터 씨를 뿌리십시오. 예배드리는 자세를 바꾸시고, 말씀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러면 가을에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이 봄의 향기에 취하지 않고 가을들판을 기다리는 설렘입니다. 

향기를 토하는 봄의 들녘으로 나가 그 들녘에서 기쁨을 누리십시오.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봄의 향기에만 취하지 마시고 가을의 열매를 기대하십시오. 

 

3. 봄의 향기 속에 연인들은 사랑을 토해냅니다(13b-14).  
 
사실 우리가 누리는 설렘은 겨울에서 봄으로, 봄의 향기에서 가을의 열매로 가득찹니다. 이 모든 설렘은 무대장치일 뿐입니다. 정작 연인이 기대하는 바는 연인의 만남에 있습니다. 겨우네 집안에 있던 연인을 “일어나라, 가자”고 초청합니다. 

겨울이 지나는 동안 연인은 외출하지 않았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인은 집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녀의 집은 높은 바위틈, 은밀한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집을 짓고 사는 비둘기처럼 그녀의 집도 그러합니다. “비둘기는 높은 바위와 절벽에 둥지를 틉니다. 원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포프의 말 인용). 이 여인은 자신을 노출하기 어려워합니다. 두려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로부터 여자는 이런 말을 듣기 원합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13절b). “어여쁜 자야”.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14절은 더욱 간절합니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이 고백을 하는 남자는 왕 솔로몬입니다. 이것이 시적인 장치입니다. 그러나 진정성 있는 고백입니다. 남자에게 그 연인인 여자는 아름답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가 듣기에 너무도 부드럽습니다. 얼굴은 너무나 예쁩니다. 직접 만나기를 원한다.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14절). 얼굴은 매력적이고, 목소리는 매혹적입니다. 

사랑하는 일에는 누구나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두려움이요. 어려움입니다. 내가매번 예배를 마치며 부르는 노랫말을 믿으십니까? 느낌보다 먼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라는 이 말을 믿으십니까. 4:7에는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눈으로 보면 저는 허물투성이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아내를 온전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저도 집에 가면 아내에게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고 나오기도 합니다. 저도 제 자신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거부하는 것이 죄입니다. 마치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을 감아주셔서 우리가 이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장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눈을 뜨고, 우리를 알고, 우리의 모든 삶을 보시면서도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가자,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이것이 하나님이 내 얼굴을 보고, 내 삶을 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까라마 조프의 형제들에 조시마 장로님이 나옵니다. “지옥이란 사랑하지 못하는 자의 고통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지 못 하는 자의 고통이 지옥입니다. 

자신에 갇혀 살아가는 이들이여!.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기가 두려워서 자신의 영역에서 안전하게 사는 이들이여!. 이 봄에 리더들의 초청에 응하시어 소그룹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이전에 손 내밀었다가 상처를 입었다면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그 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향기를 토합니다. 이 향기는 사람의 냄새입니다. 이 향기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시는 그분을 바라는 우리들의 갈망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사랑한다, 너의 목소리는 매력적이다, 나의 얼굴은 너무 아름답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찬양 – 구원자 예수; 구원의 향기를 품으시는 예수님 

지난 몇 주 전에 이 찬양을 성가대에서 불렀습니다. 그날 이후에 한 형제가 부르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가사와 노래가 너무 좋다고 합니다. 저는 그 형제를 위해서 늘 기도했습니다. 형제는 스스로 믿음을 갖지 않고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 형제입니다. 그는 예배 때에 찬송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찬송만 하면 낙서를 합니다. 그러나 이 찬송을 한 이후로부터 언제나 노래합니다. 저는 그 형제를 보며 늘 기도했습니다. “주여, 저 입에서 찬송하게 하소서”라고. 주님이 응답을 주셨습니다. 형제가 그리스도를 찬양을 통하여 고백하는 중입니다. 찬양은 그분을 얼굴과 얼굴로 마주하도록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오직 그분만 높이고 그분만 사랑하고, 그분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향기가 그 인생에 가득하길 바랍니다. 

나는 나만 생각했었는데  나를 위해 주님 불렀는데 
매 자국 선명하신 주님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나의 이름 잊지 않으셨네 
가슴 메어지듯 그 음성 나를 부르시네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부족해도 가난해도 아파시는 할 때도
사랑한다 내가 너를 원한다  
나는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이다.

내가 이해 받기를 바랬고 내가 위로 받기 원했는데 
못자국 선명하신 주님 나를 위해 
십자가 위의 고통 중에도 내 이름 가슴에 안으셨네 
녹아내릴 듯한 그 눈길 내게 말하시네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부족해도 가난해도 아파시는 할 때도 
사랑한다 내가 너를 원한다. 
나는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이다.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부족해도 가난해도 아파시는 할 때도 
사랑한다 내가 너를 원하다 
나는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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