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14)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14)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4.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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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장에서 욥이 한 말의 의미를 알아봅니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2. 보응의 신학

(1) 자신의 탄생을 부정하는 욥

욥기 2장 마지막에 욥의 세 친구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이름은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다. 그들은 욥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그런데 욥의 상황이 너무 처참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긴 침묵을 깨고 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내용이 욥기 3장인데 1절을 보면 욥이 3장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하게 알려준다. 욥기저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욥 3:1).

욥은 고난이 오기 이전부터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삶의 모든 영역을 주관하신다고 믿었다. 그런데 욥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재앙을 당했다. 욥은 자신에게 닥친 재앙 때문에 화가 나서 하나님께 불손한 말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했다. 그는 존경받을만한 신앙인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3장을 보면 변화가 엿보인다. 욥기 1~2장의 욥이라고 보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내뱉기 시작한다.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며 자기 생을 부정한 것이다. 3장 전체가 욥이 자신의 생을 부정하는 내용인데 그 중 자신의 출생을 부정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나는 내용을 한 구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욥 3:11).

이 구절은 별다른 해석이 필요 없을 만큼 명료하다. 욥은 자신이 사산되었다면 차라리 좋았겠다고 말했다. 왜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을까? 생일을 저주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욥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출생을 부정한 이유는 현재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욥은 감히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라고 자신의 생을 부정하며 우회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다. 욥은 불만을 표출하던 중 인간에게 닥친 곤궁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라고 지목하기도 한다.

하나님에게 둘러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욥 3:23).

욥은 자신에게 임한 재앙의 원인이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그러나 감히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못하고 자신의 생을 부정하며 간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하나님에게 둘러싸여 길이 아득하다’는 말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갇혀 어쩔 수 없이 막막한 현실을 맞이했다는 의미이다. ‘빛을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생명을 주셨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생명을 주셨지만 곤궁으로 가두셔서 힘들게 하신다는 원망의 표현이다.

모든 재산을 잃은 상황도 어마어마한데 자녀를 하루아침에 모두 잃었으니 욥의 이러한 반응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끔찍한 질병의 고통까지 겪고 있는 욥을 다른 이가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그가 어떠한 불평과 분노를 표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나는 감히 욥이 당한 시련만큼 겪진 못했지만 자신의 생을 부정하는 욥의 한탄을 이해한다. 욥기 3장을 보면 욥이 하나님께 불만을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2장에서 볼 수 없었던 욥의 진심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으로 욥기 3장에서 욥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확인하여 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세 친구들 중 하나인 엘리바스가 하나님께 불만을 은근히 드러낸 욥에게 한 말을 확인해보겠다. 계속해서 함께 해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이 말하려는 초점에서는 약간 벗어나지만 욥기에서 함께 나누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본문해석이나 주제를 [본문연구]라는 이름으로 첨가하려 한다. 원고 분량에 맞추어 중간 중간에 배치하려 하니 욥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한다.

 

[본문연구]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욥 2:4)의 의미

욥은 사탄의 첫 번째 공격으로 자녀와 재산을 모두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런 욥을 칭찬하시자 사탄은 욥을 두 번째로 공격하기 위해 속담 같은 비유를 하나 드는데 그 말이 바로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이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욥 2:4).

이는 등가교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탄은 욥이 첫 번째 피해를 받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신앙을 버릴 줄 알았다. 그러나 욥의 반응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자 첫 번째 피해가 그의 신앙을 무너뜨리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욥에게 더 큰 타격을 가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사탄이 생각한 더 큰 타격은 욥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위해 사탄은 하나님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라는 말로 동등한 가치로 대가를 치루기 전에는 그의 진심을 아직 알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본문연구] 왜 욥을 공격하려는 사탄의 요구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을까?

이 질문의 답은 욥기의 핵심내용을 담고 있다. 질문에 답하기 전에 사탄이 왜 욥을 공격하려는지 이유를 먼저 알아야한다. 사탄이 욥에게 피해를 주려는 이유는 욥이 낙담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앙을 버리도록 하려는 것이다.

사탄의 이러한 도전은 욥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가 믿기로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사탄의 이러한 도전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탄의 그런 요구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직접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야고보의 말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13b).

이처럼 사람을 시험하는 주체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사탄이다. 이 점도 욥기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할 중요한 사실 중 하나이다. 여하튼 사람을 공격하며 시험하는 존재는 사탄인데 하나님께서 그 일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가한 시련을 통해 욥에게 있는 자기 의가 드러나기를 기다리셨다. 그래서 욥 자신의 의가 아닌 대속물에 의한 의가 구원에 이르는 의임을 깨닫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계략을 인간의 구원을 이루는데 이용하는 경륜을 가지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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