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17)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17)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4.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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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스스로 자신을 의롭다고 한 말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3. 나는 의롭다 vs 너는 의롭지 않다

(1) 자신이 의롭다고 믿는 욥

우리는 지난 회에서 하나님의 잘못을 지적하며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는 욥의 주장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런 주장 가운데 하나님에 비해 자신이 의롭다는 내용이 있다. 욥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자신을 핍박하시는 하나님은 불의하시다는 내용이고 두 번째는 자신이 의롭다는 내용이다.

욥은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욥은 자신이 의롭다고 어떻게 말했을까? 욥은 6:9에서 하나님을 잔혹하신 분으로 묘사한 후 바로 이어 자신의 순전함을 어필한다. 확인해보자.

9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욥 6:9~10)

욥은 현재 자신이 고통 가운데 있지만 일말의 기쁨이 있다고 한다. 그 기쁨은 자신이 “거룩하신 이”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켰기 때문에 오는 만족에서 기인한다. 자신이 비록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럽지만 하나님 앞에서 책잡힐만한 잘못이 없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는 기쁘다고 말한 것이다. 위 구절을 보면 욥은 자신에게 문제가 없음을 자긍하며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계속해서 욥이 스스로 의롭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확인해보자. 욥은 자신의 허물을 지적하는 친구들에게 자신은 죄가 없다고 항변한다. 그리고 오히려 친구들에게 죄가 있으니 회개하라고 역으로 지적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한다. 다음은 욥의 말이다.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욥 6:29).

이는 욥이 자신이 의롭다고 처음으로 언급한 구절이다. 욥이 의인이라고 전제한다면 욥기 6:29의 “나의 의가 건재하니”라는 말은 참된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욥이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한 점은 욥이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욥이 자신을 의롭다고 한 말을 한 구절 더 살펴보자.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욥 12:4).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나’는 욥 자신을 가리킨다. 이는 자신이 하나님께 묻고 들은 대로 행하는 순종적인 신앙인임을 강조한 표현이다. “의롭고 온전한 자”도 욥이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이다. 욥은 자신이 의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모욕 받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과 관계하는 존재였는데 자기에게 닥친 재앙으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죄인으로 취급받고 있다고 넋두리하고 있다.

이런 말을 듣고 두 번째 친구인 빌닷이 격분하며 등장한다. 다음 시간에는 빌닷의 말을 들어보려 한다. 계속해서 함께 해주시기 바란다.

 

[본문연구]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욥 10:15)의 해석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욥 10:15).

이 구절에서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는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한 욥의 고백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했다면 착각이다. 왜냐하면 그 전에 한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이라는 말로 자신이 의롭다고 하여도 고개를 들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욥은 자신이 고개를 들 수 없는 이유를 두 가지 제시한다. 하나는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이고 다른 하나는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이다. 여기에서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다는 말이 자기 내면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라면 앞부분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가정한 것과 호응하지 않는다. 또한 이어지는 자신의 환난을 자기가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과도 어색한 관계성을 가진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내가 악하면 화로다! 나는 의롭다. 머리를 들 수 없다. 가득한 수치와 고통을 보아라’(욥 10:15, 사역).

<개역개정> 번역본의 “내 속에”는 의역의 산물이다. 또한 “부끄러움”이라는 표현도 자기고백적인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라는 번역은 욥이 자신의 내면의 죄를 고백한다고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욥기 10:15의 내용의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만일 내가 악하다면 나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의롭지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많고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욥 10:15, 사역).

여기에서 욥에게 가득한 수치스러운 일과 고통은 바로 자신에게 닥친 현실의 고난들을 가리킨다. 욥은 보응의 신학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내가 의로울지라도”라는 말은 자신의 의로움을 전제하고 있다. 자신의 안에 있는 죄를 고백하는 사람이 “내가 의로울지라도”라고 한다면 너무도 부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욥이 고개를 들지 못한 이유는 자기 내면의 죄성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고난의 현실이 보응 신학의 틀 안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욥기 10:15의 의미가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새번역> “내가 죄를 짓기만 하면 주께서는 가차 없이 내게 고통을 주시지만, 내가 올바른 일을 한다고 해서 주께서 나를 믿어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나는 수치를 가득 덮어쓰고서, 고통을 몸으로 겪고 있습니다.”

<공동번역개정> “악을 행하였다면 앙화를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하여도 머리를 쳐들 수 없는 일, 아, 진저리쳐지도록 당한 이 수모가 지긋지긋하도록 괴롭습니다.”

<말씀의 집> “만일 제가 악하면 제게 화이나, 제가 의롭더라도 제가 제 머리를 들지 못하니 이는 제가 수치를 배불리 먹고 제 괴로움을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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