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식 작가] #33.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김재식 작가] #33.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김재식 작가
  • 승인 2019.04.14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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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보는 불행속 그때 그 말씀들 8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는 동안 참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다른 환자와 보호자를 감동시키는 정성 어린 가족도 있었고, 지쳐서인지 학대에 가까운 폭언과 구박을 하는 가족도 보았습니다. 병원생활이 길어지는 것이 나도 때때로 무서워집니다. 아내가 투병을 잘해줄지, 내가 그 시간 동안 잘 견뎌낼지도 불안합니다. 혹은 우리 두 사람이 다 잘 버틴다 해도 세 아이들은 또 괜찮을지, 병원비 마련이나 살림들은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불안이 몰려오곤 했습니다.

 

마땅히 쉴 곳이 없는 병원 내부, 복도 한쪽 벽에 있는 모뎀에 노트북을 연결하고 병상일기를 적곤 했던 소파들, 병실과 복도만 들락거리다 병이 났던 2009년의 추석이 기억납니다.
▲마땅히 쉴 곳이 없는 병원 내부, 복도 한쪽 벽에 있는 모뎀에 노트북을 연결하고 병상일기를 적곤 했던 소파들, 병실과 복도만 들락거리다 병이 났던 2009년의 추석이 기억납니다.

 

추석 날 옆 침대의 아버지와 딸의 다급한 상황을 간신히 넘기고 나니 몸도 마음도 지치고 뜬금없이 인도로 가고 싶었습니다. 서러움과 답답함이 묘하게 섞여서 몰려오는 쓸쓸함이 만만치 않고 쉬 물러갈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견딜 수 없어 휴대폰 메모 기능에 그 마음을 풀었습니다. 하소연하듯...

 

[갠지스 강가로 가고 싶다/ 산 사람 죽은 사람들과 함께 계단을 내려가/ 갠지스 강에 몸을 담고 싶다// 찌든 마음도 내려 보내고/ 고단함에 너덜해진 육신의 찌꺼기도 씻어 보낼 수 있다면/ 탁한 물이면 어떻고 냄새나면 어떠랴// 푹 들어갔다 나올 땐/ 그분이 요단강에서 나올 때처럼/ 하늘이 열렸으면 좋겠다// 수증기처럼 가벼워져서/ 하늘로 날아가고 싶다 자유롭게/ 형체도 없이 무게도 없어졌으면 좋겠다]

 

간밤엔 아내의 뇨 검사에서 피가 섞여 나온다고 하더니 아침엔 소변이 아예 안 나왔습니다. 찌꺼기로 막힌 호스를 쥐어짜내다가 무리하게 호스를 잡아당겼나봅니다. 요도에 상처가 났는지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안 좋은 기분은 더 안 좋은 일을 부른다더니, 이래저래 속상하고 찌뿌듯한 몸도 짜증나고 며칠이나 감기지 못한 아내의 머리가 자꾸 거슬렸습니다.

 

! 오늘은 머리 감고 목욕하자! 당신을 새삥 환자로 만들어주겠다! 음하하하!" 아내에게 큰소리를 쳤습니다. 사고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오후 재활운동을 마치자마자 아내를 샤워실로 데려가 3단으로 접는 플라스틱 침대에 누였습니다. 혼자 힘으로 낑낑 환자복을 벗기고 머리 감기고 뒤집어가며 씻겼습니다. 아기를 목욕시키는 것도 서투른 남자에게는 어른, 그것도 몸도 세우지 못하고 앉지도 뒤집지도 못하는 사람을 혼자 씻기는 건 정말 힘듭니다.

 

낑낑거리며 끝났다고 옷을 입히는데, 이상하게 뻘건 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집니다. 자세히 보니 피입니다. 이미 떨어진 피가 군데군데 모여서 퍼지고 있고, 당황한 나는 얼른 대충 입히고 침대로 데려와 눕혔습니다. 자세히 보니 엉덩이 두 군데나 살이 벌어져 찢어지고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아마 욕창이 채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뒤집고 씻기다가 살이 터진 것 같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반복하며 내 머리를 쥐어박는데 아내는 "괜찮다, 괜찮다" 합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내가 미워 못 견디겠습니다. 시간 되어 들이닥친 저녁밥을 떠먹이다가 결국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1년이 넘도록 아내를 목욕시켜오면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종일 쌓인 힘겨운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병원생활과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아이들, 지쳐가는 내 체력, 쌓인 피로감으로 많이 속상했었나봅니다,

 

"당신 혹시라도 다음 세상에 갈 때는 나 꼭 좀 데려가줘, 끌고라도 가줘.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재미없다." 말해놓고 생각하니 참 쓸데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보호자도 되고 능숙한 보호자도 될 수 있을까요? 마음고생 자체를 견디는 것만도 내게는 버거운데, 몸으로 시시각각 닥치는 구체적인 간병업무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또 다른 차원의 현실입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긴 오르막길 같은...

 

그러나 어쩌지요? 두 눈을 멀쩡하게 뜨고 나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곁을 둘러보아도 정말 교대해줄 사람 한명도 없이 단 둘뿐인 상황입니다. 그 중 멀쩡한 한 사람인 내가 자리를 피해 도망 가버리면? 남은 한 사람인 아내는 병원을 나가는 건 고사하고 제자리에서 돌아눕지도 못하고 통곡할게 빤하니...

 

지하실에 재활치료실이 있었습니다. 날마다 시간을 맞추어 내려갔다가 돌아와서 잠시 누워 쉬다가 또 내려가서 데리고 올라오고, 그렇게 건물 안에서 낮이 가고 밤이 오고,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지하실에 재활치료실이 있었습니다. 날마다 시간을 맞추어 내려갔다가 돌아와서 잠시 누워 쉬다가 또 내려가서 데리고 올라오고, 그렇게 건물 안에서 낮이 가고 밤이 오고,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해방되는 길, 눈 딱 감고 며칠만 내버려두면...'

 

추석 이튿날 두 아이들이 충주에서 출발해 용인에 있는 병원에 왔습니다. 많이 반가웠고 무엇이든 먹이고 싶어서 이것저것 사다가 먹였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사흘 뒤 장인어른이 또 병원으로 왔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온 날부터 3일 내내 집사람과 나는 교대로 감기 몸살을 앓았고, 집사람은 아이들이 돌아가기 전부터도 재발 증상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또 다시 아내의 난치병이 재발했습니다. 벌써 7번째. 결국은 구급차를 타고 서울로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얼마 전 죽어도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욕하고 속으로 다짐하고 떠났던 미운 병원 응급실을 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응급실 거쳐 또 중환자실, 이틀 뒤 일반병동으로 옮겨졌습니다. 간신히 심해지던 증상이 줄어드나 했더니 이번에는 당뇨수치가 상승! 몇 번이나 입원하는 동안에도 아직 한 번도 맞지 않았던 인슐린 주사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스테로이드 주사는 반응이 지나친 지 얼굴이 붓고 가렵고 피부가 벗겨지면서 벌겋게 피어올랐습니다.

 

아내가 사소한 일로 자꾸 눈물 흘리고 슬퍼하는 소리를 해서 나도 한마디 해버린 게 결국 맞불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면 속에서 막 치밀어 오르는 속삭임이 있습니다. 내 속에 녹음기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야 이제 그만두지? 낫지도 않을 걸 뭘 그리 계속 버텨? 차라리 빨리 끝이 나는 게 온 가족들이 다 해방이 되는 길이야! 그냥 눈 딱 감고 며칠만 내버려두면 간단하게 끝날걸...'

 

악마가 내 속에 들어왔나 봅니다. 힘들 때마다 스치듯 지나갔던 나쁜 생각들이 또 몰려옵니다. 그럼 나는 아이들, 특히 이 순간도 혼자 방에서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버티는 중1 막내 딸아이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또 같은 결심을 반복합니다. '한 번만 더, 딱 하루만 더 견뎌보자'라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한복음 2118)

 

베드로는 주님과 똑같은 형태, 똑같은 방법으로 십자가에 달릴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스스로 거꾸로 달리기를 요구하여 거꾸로 달려 죽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젊어서는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맘대로 다니며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성숙하여서는 나나 남들이 원치 않았지만 닥치는 생활을 살기도 하고 더 성숙하면 스스로 순종하며 가야할 삶, 그 길을 가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은 한 발 더 나간 듯 보이는 고백을 했습니다."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4절) 이 탄식은 신약성경의 1/3 이상을 기록했으며,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교회를 개척했으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있는 사도바울이 한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25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자기에 대하여 완전히 절망에 빠졌던 바울은 즉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힘입는 이 길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자신에 대하여 완전히 절망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의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실 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주여, 저도 이 사망의 삶에서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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