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4] 보고 싶어요(계 1:12-20)
[요한계시록강해4] 보고 싶어요(계 1:12-20)
  • 김상학 목사
  • 승인 2019.04.14 2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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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들어가는 말

아주 오래전에 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여러 성도들과 함께 교회 승합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졌습니다. 자세히 보니 까마귀 같은 새들이 하늘을 덮고 있었고, 얼마 후에 불덩어리가 떨어지면서 새들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땅에서도 불이 솟구쳤습니다.

얼마 후에 손 하나가 나타나 하늘에 핏물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글씨를 썼는데 나는 그 글씨를 보면서도 그것을 해독할 수 없었습니다. ‘저 글씨가 무슨 뜻일까?’ 답답해할 때에 누군가 내 곁에 와서 ‘하나님의 때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내가 운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차에서 내려 운전대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운전대의 문에 종말을 알리는 큰 포스터 같은 것을 붙여 놓아 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문을 열지 못하도록 봉해 놓은 겁니다. 나는 그 포스터를 찢고 운전대에 앉아 자동차를 운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한동안 멍하니 그 꿈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잊어버릴까 하여 제가 보고 있었던 그 공과 책 여백에 그 꿈을 새겨놓았습니다. 저는 그리고 얼마 후에 신학교의 문을 두드렸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목회자로의 부르심을 받았고 목회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꿈은 “지체하지 말라!”고 하는 강력한 부르심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과 저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가늠하곤 합니다. 물론 말씀과 기도로써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지만, 꿈은 그 하나님의 뜻을 한 번 더 묵상하게 하고 견고하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이 본 환상입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꿈과 환상이 다른 면이 있지만, 영적 현상이라는 면에서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환난의 때에 자기 본 사실로써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고 모든 교회들에도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할 수 있는 은혜를 전해 주었습니다. 살펴볼까요?

 

1. 인자와 같은 이

요한이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은 후에 그 음성을 알아보려고 몸을 돌이켰는데 거기에서 “일곱 금 촛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인자 같은 이에 대하여 그림 언어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3-16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이 본문을 읽고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는 다분히 다니엘이 이상 중에 보았던 ‘인자 같은 이’와 겹치는 그림입니다.

단 7: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다니엘이 보았던 메시아의 그림을 요한도 동일하게 보았던 것입니다. 그림 언어를 그대로 화폭에 옮겨 놓으면 이 모습은 영락없이 제사장과 왕, 그리고 선지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자 같은 이’는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발에 끌리는 옷과 가슴의 금띠를 띤 예수님은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양털같이 흰 머리털과 불 꽃 같은 눈,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과 같은 발, 많은 물소리와 같은 음성, 그리고 오른손의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시는 모습에서는 보좌에서 호령하는 왕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좌우의 날 선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의 모습이지요. 제사장, 왕, 선지자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과 같았지요. 어둠을 물리치는 메시아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을 때,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본문 17절을 보세요.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요한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죽은 자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바울도 그가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을 때, 죽은 자처럼 엎드러졌지요. 주님의 모습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하여 엎드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했던 사울도, 주님의 은혜를 전하는 사도라 할지라도 죽은 자처럼 엎드러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였던 것입니다(고전 15:31). 이와 같은 은혜로 살아야 우리는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제사장이요, 왕이요,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심으로, 우리는 이 환난의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오른손

요한이 죽은 자처럼 엎드러졌을 때, 예수님은 그의 오른손을 요한에게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17b 절 “두려워하지 말라.”

밧모 섬에 유배된 요한은 모든 것에 제한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죽은 자와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그는 또 한 번 죽은 자처럼 엎드러졌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오른손을 얹으시고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는 음성에 한없는 담대함을 갖게 되었지요.

“오른손”은 단순히 왼손의 짝이 아닙니다. 오른손이란 유대적 사고에 ‘권능과 능력’입니다. 주의 오른손을 당할 자가 있을까요? 그 오른손이 요한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17c–18절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알파와 오메가는 바울이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선포한 로마서 11장 36절의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창조부터 심판까지 모든 과정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지요. 그런데 그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세토록 살아계시며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습니다. 마귀의 사망 권세를 이기신 겁니다.

이런 예수님을 어느 누가 맞설 수 있을까요? 로마의 황제인들 맞설 수 있겠습니까? 로마의 수많은 신과 그 우상의 제사장들이 맞설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철학과 사상이 예수님의 좌우의 날 선 검과 같은 말씀을 당해 낼 수 있겠습니까?

고후 10: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제가 간혹 간증했지요. 내게 회개의 영이 임하고 죄의 사슬이 끊어져 한없는 자유를 찬송할 때가 있었지요. 그때 마귀가 이를 갈며 떠나면서 “다시 올 것이다.”라고 하는 말에 크게 두려워하였는데, 나의 오른편에서 예수님이 “두려워 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한다.”는 말씀에 다시는 두려워하지 않았지요. 제게 사탄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저는 늘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내게 죽음의 병이 왔어도 담대히 맞섰고, 지금도 그 말씀은 내게 여전히 기도의 줄이 됩니다. 그때 그 주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제가 보았던 예수님의 모습보다 더 생생하게 본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유배지 밧모 섬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주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의 오른손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우리 주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앞에 담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꿈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담대하게 행할 일

하나님께서 밧모 섬에 유배된 요한을 담대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19절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주님은 주님이 보여주신 것,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 그리고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기록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 것은 20절의 “주님의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있는 일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장차 될 일은 모든 마귀 권세를 멸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 계시록의 전체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일곱 교회에 전해질 것입니다. 물론 그 일곱 교회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를 말하는 것이지요.

자칫 밧모 섬에서 “나의 사명이 여기에서 끝났구나!”라고 생각할 뻔했는데, 밧모 섬에서의 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사역이 시작되었던 게지요. 마치 모든 사도의 사역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을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밧모 섬에서의 사역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의 모든 사역을 통틀어서 이렇게 주님과 깊은 교제 속에 있을 수 있었을까요? 생생한 꿈, 환상, 계시로 함께 하시는데, 그 밧모 섬이 유배지가 아니라 은혜 충만한 기도원 아니었을까요? 곧 하나님 나라인 셈이지요. 예수님과 함께했던 때에도 변화 산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했었는데, 이는 마치 밧모 섬이 변화 산처럼 변화된 것 아닙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그 밧모 섬의 하나님 나라를 누린 게지요.

 

나가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 보기를 간절히 사모하여 주님이 주시는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꿈과 환상, 그리고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닥친 밧모 섬과 같은 환경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이 밧모 섬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요한이 보았던 주님을 늘 바라보고, 그 말씀을 읽고 또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면 마침내 그 주님의 모습이 우리 눈에 환하게 보일 것입니다. 주의 오른손이 우리 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나를, 가정을, 직장을, 교회를 붙잡고 계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은 일곱 교회, 다시 말해 모든 교회, 다시 말해서 모든 성도를 붙잡으시고, 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밧모 섬과 같은 환경을 주께 의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요한이 보았던 주님을 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고백할 때에 주의 오른손이 우리를 붙잡으시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날마다 충만케 하시는 은혜로 모든 마귀 권세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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