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 목사] 기도와 칼(마 26:36-56)
[라종렬 목사] 기도와 칼(마 26:36-56)
  • 라종렬 목사
  • 승인 2019.04.15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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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부활의 길 3

마태복음 26:36-56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strong>광양사랑의교회&nbsp; 라종렬 목사&nbsp;</strong>
▲광양사랑의교회 라종렬 목사 

마지막 만찬을 마치신 후에 예수님은 세 명의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로 가셔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감당하시기 위해 기도하시며 제자들에게도 요청하나 제자들은 동참하지 못합니다. 기도를 마치신 후에 유다가 무리들과 나타나 예수님을 붙잡자 제자 중 하나가 칼로 저항하자 이를 무마하시며 아버지의 뜻에 따르시겠다고 말씀하시니 제자들은 버리고 도망합니다.

겟세마네의 기도와 체포되는 장면을 함께 읽고 보니 24-25장에서 성전파괴에 대한 바른 이해와 재림을 바르게 이해하고 경성하며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열처녀, 달란트, 양과 염소의 비유가 다시금 큰 위로로 다가오면서, 이제 그렇게 준비해야 하는 삶에 있어 중요한 자세를 최종적으로 점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친히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나라의 방식과 로마의 방식이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25장의 비유에서 공통적으로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뉘었듯이 이제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두 갈래 길이 제시됩니다.

 

▲ 36-35절, 47, 55절, 예수님↔종교지도자들 : 기도↔ 칼과 몽치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가셔서 제자들에게 있을 곳을 말씀하신 후에 세 명의 제자(베드로,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가시면서 자신의 고민과 슬픔과 마음을 전하시며 함게 깨어 있도록 당부하신 후에 기도하러 가십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들과 함께 칼과 몽치를 무장하고 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함께 가야 할 제자들에게 자신과 함께 기도의 무기를 무장시키십니다. 이는 ‘깨어 있으라’는 의미가 경성하고 준비하는 모든 삶을 포함하는 의미로 보고 그것을 예수님은 기도라는 용어로 사용하시면서 또한 깨어 있으라는 용어도 병행해서 사용하십니다. 더불어 이 일은 한번이 아니라 종말을 살아가는 제자와 성도가 지속적으로 가져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을 것을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눅 21:36), 바울사도도 기도를 항상 힘쓰고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권합니다(골 4:2). 그것이 지금 당장 십자가를 앞에 두고 변함없이 무장해야 할 무기입니다.

이와 반대로 종교지도자들은 칼과 몽치를 무리들에게 무장시켜 보냅니다. 대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백성으로, 거룩한 하나님나라에 합당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갈 것을 몸소 보이며 가르쳐야 할 이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새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따라 살지 않고 그토록 싫어하는 로마의 방식을 닮아가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평화와 삶의 방식은 힘과 폭력을 통해 평화를 만들어 가는 제국주의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이 칼과 몽치로 대변됩니다. 더불어 무장하지 않은 예수님을 잡으러 온 이 무리들이 칼과 몽치를 들고 이 야심한 밤에 들이닥치는 형태는 철저하게 위협과 모욕을 주기 위한 간교한 목적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55절 말씀에 예수님은 이들이 강도를 잡는 것처럼 무장하고 온 의도를 이미 간파하고 계십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칼과 몽치로 무장하면서 하나님나라가 아닌 로마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살면서 기도한다고는 하지만 칼과 몽치 곧 돈이나 권력과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기도의 능력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그런 세상의 방식을 따라 너무도 자연스럽게 살아갑니다. 그 길이 좁은 길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찾는 넓은 길이기에 아무런 의심도 의식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로마제국이 폭력으로 지중해 세계를 장악하고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유대교 지도자들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폭력에의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주님이 우리에게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 최종적으로 다시한번 말씀하시는 하나님나라의 방식인 것입니다.

 

▲39-43절, 48-51절, 예수님 ↔ 유다 : 하나님의 원대로 ↔ 자신의 원대로

예수님은 매우 고민하고 슬퍼하시며 죽게 된 마음을 제자들에게도 표현하시면서 깨어 있으라 하시고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길 바라나 그럴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길 바라시면서 세 차례 기도하십니다. 하지만 한 순간도 제자들은 함께하지 못합니다.

유다는 예수를 파는 자들과 군호를 짜고 예수님을 랍비라 부르며 문안하고 입맞추면서 오는데, 예수님은 그를 친구라 부르시면서 무엇을 하러 왔든지 행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어 잡습니다.

겟세마네 기도에서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신을 쳐 복종시키며 십자가를 지라 하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쳐 복종시켜 변화되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이 기도에 동참하여 깨 있길 바라셨지만 제자들은 한번도 이 명령과 테스트에 동참하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주님이 최종 실기 시험을 보시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 시험을 통과하지 결국 다 도망간 제자들은 부활후에 갈릴리 호숫가에서 다시금 주님이 최종 구술 시험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는 나와 함께 기어 있으라는 것이었는데 그 때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입니다. 결국 깨어 있음과 기도 그리고 사랑은 같은 맥락의 의미를 지닌 질문입니다.

대제사장들에게 은 삼십을 받고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던 유다(26:14-15)는, 그런 마음을 아시는 주님으로부터 여러차례 돌이킬 기회와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주님의 몸과 죽음을 상징하는 성찬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갑니다. 자신이 원하던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신념이 흔들리게 되자 그는 결국 대제사장에게 가서 자신의 욕심을 드러내고 결국 무리들과 함께 자신의 원을 이루기 위해 칼과 몽치를 들고 오게 된 것입니다.

존경과 화해와 사랑의 표현인 입맞춤(제자들이 예수님께 입맞춤한 예가 다른 어디에도 없습니다)을 유다는 정 반대의 의도로 결국 자신의 욕망을 숨기는 가식적인 형태로 진행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고치거나 변경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급기야 예수님께서 그를 친구라 부르시면서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시면서 마지막까지 주신 회개의 기회도 철저하게 외면합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는 결국 우리 자신의 원대로 되도록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나를 변화시켜 순종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한 두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종말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경성하고 준비하며 거룩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 평생의 삶의 여정에서 쉬지 말아야 할 기도입니다.

유다는 지금 주님을 오래도록 따르면서도 결국 자신의 생각과 신념의 한계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것이 흔들리려고 하자 결국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우리를 향하신 거룩하시고 긍휼에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고 사랑하시는 그분의 인도를 따라 주어진 기회들 속에서 충성되이 누리며 좋은 열매 맺어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천국 백성 곧 제자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 45, 46절, 51-56절 예수님 ↔ 제자 : 칼집과 충성 ↔ 칼과 배신

기도하신 후에 주님은 때가 되었으니 일어나 함께 가자 하십니다. 이에 파는 자가 가까이 와서 만납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을 잡자 함께한 제자 중의 하나(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말고)의 귀를 칩니다. 이에 예수님은 칼을 도로 칼집에 넣으라 하시며 칼을 가지는 자 칼로 망한다 하십니다. 예수님은 능히 이들을 제압할 수 있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님을 아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길을 택하십니다. 이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갑니다.

예수님의 무기는 기도이셨고,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기도의 능력으로 무장하길 바라셨습니다. 겟세마네의 세 차례의 기도 후의 모습은 이전에 고민하고 슬퍼하시면서 심히 죽게 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담담하게 때를 맞이하고 십자가를 향해 가시기 위해서 잡는 자들을 맞이 하고 계십니다. 더불어 품은 칼을 꺼내 무리를 공격하는 제자를 향하여서 칼집에 넣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제압할 칼을 휘두를 수 있지만 그것을 칼집에 넣어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당신에게 이들을 제압할 능력이 있으나 아버지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부터 사랑과 긍휼로 그리고 오래참으심으로 행하신 방법을 따라 사랑의 아들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그 방식을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방식대로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따르시는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제자 곧 칼을 휘두른 제자도 오래도록 주님을 따른 제자였습니다. 다른 성경에서 이를 베드로라고 말합니다. 지금 겟세마네에 다른 여러 제자들이 있지만 특히 세 제자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뒤에 두 사람은 어머니 통해서 주님의 좌우편에 앉을 것을 창탁했던 이들입니다.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이 세 제자를 비롯하여 도망간 다른 제자들도 이미 그들이 품은 칼을 숨기지 못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내고 맙니다. 예수님은 칼을 쓸 수 있었지만 드러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셨지만, 제자들은 결국 품은 칼을 드러내 공격하고 만 것입니다. 이 또한 철저하게 로마의 방식입니다.

기도란 아버지의 뜻을 수용하는 과정입니다. 나의 원함을 아뢸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은 더 명확해졌고, 주님의 태도는 더 분명해졌습니다. 기꺼이 죽음의 고난까지라도 받아들이시겠다는 순종의 모습은 더 온전해졌습니다. 기도의 시간은 점차 자신이 부정 되며 사라져가는 시간이요, 아버지의 뜻이 점점 명확해지며 나를 지배해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누룩처럼 겨자씨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은 칼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폭력이 아니라 자기 희생과 섬김을 통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그 헌신과 인내로 세워가는 나라가 하나님나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칼을 칼집에 넣으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기도를 통해서 어떻게 이러한 십자가를 담담하게 질 수 있었는지 몸소 보여주시고 제자들을 향하여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신실하게 순종하시면서 가야 하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고 곧잘 무디어지지 않은 날카로운 칼을 우리의 언행심사를 통해서 불쑥불쑥 드러냅니다. 주님께 의뢰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안의 칼과 알량한 힘으로 폭력을 휘두를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 중에 그리고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 가족과 이웃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서 이런 칼을 쉽게 휘두릅니다. 그것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한다는 것을 또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더 많이 알고, 더 오래되고, 더 잘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오히려 더 칼이 날카로운 경우가 많습니다.

작은 자들을 향하여, 소자를 향하여 주님이 배려하시고 사랑하시고 품으셨던 그 모습을 기억하고 지금 우리의 언행심사에 드러난 칼을 칼집에 넣고 상처가 아니라 고치는 말, 분열이 아니라 싸매는 말,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 넘어지게 하는 말이 아니라 세우는 말, 그래서 우리의 언행심사가 하나님나라의 그 사랑의 언행심사로 점철되어 가는 배신이 아니라 충성된 길로 행할 수 있길 원합니다.

 

▲ 기도

신실하시며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면서 걸어가신 그 길을 생각하며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따라가야 할 그 기도와 십자가의 길을 주님처럼 그렇게 갈 수 있길 원합니다. 잠시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었던 제자들의 모습이 결국 나의 모습인 것도 고백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사명을 맡기신 주님의 뜻을 되새기며 나의 욕망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나를 쳐 복종시키는 충성된 종이길 원합니다.

칼과 몽치와 폭력과 힘이 아니라 자기 부인과 기도 그리고 사랑의 능력으로 나와 가정과 세상을 변화시켜 나아가는 자세 늘 잊지 않고 행하게 하옵소서. 기도하고 받은 줄 믿고 나아가는 믿음도 주시옵고 내 안에 품은 칼을 버리고 고치고 싸매고 살리고 세우는 사랑의 언행심하고 점철된 인생이게 하옵소서. 종말을 살아가는 이 십자가의 여정이 결코 한 두번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는 다는 것을 기억하고 늘 깨어 기도하며 인내로 경주해 나아갈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뜻을 바로 깨달아 온전히 순종하게 하옵소서. 겟세마네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기도와 십자가를 향한 그 신실하신 순종과 충성을 보며 그렇게 이루신 은혜를 감사하며 그 길이 우리가 따라 걸어가야 할 길임을 알고 오늘도 한 걸음씩 그 길로 행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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