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렬 목사] 주의 만찬과 제자들(마 27:17-35)
[라종렬 목사] 주의 만찬과 제자들(마 27:17-35)
  • 라종렬 목사
  • 승인 2019.04.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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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부활의 길 2

마태복음 27:17-35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strong>광양사랑의교회&nbsp; 라종렬 목사&nbsp;</strong>
▲광양사랑의교회 라종렬 목사

무교절 첫날 유월절 준비를 위하여 주님은 예비된 집을 찾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먹을 때에 제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을 말씀하시고 유다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이어 떡과 포도주를 자신의 몸과 피라 하시면서 나누십니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을 아시고 부활 후에 갈릴리로 먼저 가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본문에는 주의 만찬에 대한 준비와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제자들이 자신을 팔고 다 버릴 것에 대해 예순님께서 이미 아시면서도 적극적으로 주도해 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한 말씀 한 말씀 모두 비장함과 긍훌의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담겨진 마음을 함께 읽어 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 17-19절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는 어린 나귀를 가져오라셨는데, 이번에도 유월절을 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집을 예수님은 성안에 가서 찾아 요청하라 말씀하시고 제자들은 시키신 대로 합니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오후 6시 전에 저녁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유월절 음식만 하루가 시작되는 오후 6시 이후 저녁에 먹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소위 주의 만찬이라고 하는 식사는 저녁에 먹었습니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고 기억하게 하는 절기이면서 이는 곧 자신들의 정체성과 더불어 출애굽을 가능케 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상기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매년 이 절기는 유대인들에게 큰 명절이었습니다.

이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은 성 안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유월절 식사를 하게 될 집을 구하는 데 있어서 이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나귀를 구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주권적 선택과 요청에 의해서 택한 집을 구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제자들이 먼저 묻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순종하여 제자들이 유월절을 준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유월절을 준비시키면서 ‘내 때’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안에서 ‘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정적인 시점, 곧 성취의 때 또는 완성의 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제 본문에서는 이 때가 예수님의 죽음의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이 결정적으로 성취되는 사건으로 이해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그 ‘때’를 향한 순례중이십니다. 곧 십자가를 향한 여정이고 부활을 향한 여정입니다. 지금 당장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가시는 여정입니다. 주님의 마음에는 이미 당신이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실 것이라는 ‘때’를 알고 계셨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아가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유월절을 천구의 가족된 제자들과 함께 그것도 이제 배신하고 곧 흩어지게 될 제자들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부분들을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당신이 가야 할 그 길을 묵묵히 가고 계시며 택하신 자들을 초청하여 함께 가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런 제자들이 끝까지 자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거쳐가야 할 고비들이 있다는 것을 아직 제자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주님이 주권적으로 이 일을 주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천국 백성된 우리와 더불어 죽음에 유월한 곧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기억하며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때’를 아는 것과, 곧 아버지의 때를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크로노스의 혼돈 속 세상에서도 카이로스 곧 하나님의 시간을 따라 살아가는 주님, 그런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도 카이로스의 시간을 알고 의식하고 지향하며 순종하는 삶이 우리가 가야 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 20-25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유월절 만찬을 먹을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에 제자들이 근심하며 자신이 아닐까 두려움 가운데 묻습니다. 예수님은 예언된 대로 십자가의 길을 가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팔 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합니다. 이에 유다가 와서 예수님을 랍비라 부르면서 다른 제자들과 동일하게 묻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연약함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하여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여전한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다른 제자들도 자신이 없습니다. ‘나는 아니지요?’하는 질문 속에서는 제자들의 두려움과 더불어 주님이 말씀하신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니길 바랬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질문은 자신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기대와, 허영과 비본질적인 부분에 있던 자신들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가룟 유다는 직접적으로 예수님을 판 자이지만 제자들 역시도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흩어지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주님은 직접적으로 자신을 팔 유다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내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님의 마음 가운데에는 유다를 향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유다도 다른 제자들과 동일한 질문을 합니다. ‘나는 아니지요?’ 유다의 질문에 예수님은 간결하게 대답 하십니다. “네가 말하였도다”(25).

이것은 그를 배신자로 규정하시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그것은 네 말이다’ 혹은 ‘네가 잘 알것 아니냐’ 정도의 유보적 의미일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유다는 이미 자신이 예수님을 팔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 자신을 마음을 숨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숨겼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돌이키지 않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주님은 우리의 속사람을 보실 수 있기에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애써 사람들을 속이면 주님도 모를 것이라고 착각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주님의 면전에 있음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적어도 아직 끝이 아니라면 지금 주님은 우리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한 주님의 싸인을 듣고도 우리가 결단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팔 자로, 파는 자들 중의 하나로 언제고 우리도 그런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 앞에서 투명하지 않다면 말로 나는 아니지요?라고 묻고 있는데 그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을 가리기 위한 가식에 불과합니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건가요?

 

▲ 26-30절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마시라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면서 이것이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어 잔을 들어서 기도하시고 마시라 하시며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먹는 날까지 이제부터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식후에 찬미하면서 감람산으로 이동합니다.

출애굽의 유월절과 오병이어의 축사에 이어서 이제 만찬에서 떡과 잔을 나누는 것은 결국 오래전부터 계획한 주님을 제물로 드리는 일이 이제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떡을 떼고 잔을 나누시면서 이것이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언약된 피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만 우리는 주님이 목숨을 내어 두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 새 생명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떡과 포도주를 먹는 곳에 유다도 그리고 주님을 떠날 다른 제자들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주님은 당신을 팔고 떠날 제자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고 계신 것입니다. 팔고 떠난 인간이 사는 길은 주님이 떼어주신 그 몸과 잔을 먹고 마셔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 떡과 잔은 일차적으로는 우리 주님과 주님의 생명을 바친 죽음을 상징하지만, 더 나아가 이것은 주님의 말씀과 새 생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피가 생명의 상징이라면 피 흘림은 죽음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바쳐 하고자 하신 일은 다른 이들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살과 피를 먹고마신다는 것은 예수적 존재로의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맹세하신 29-30절 말씀은 이후 교회에서 진행되는 성례와 천국에서 벌어질 잔치를 모두다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교회에서 진행된 성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세례와 성찬의 의식은 기억과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 곧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일은 우리가 구원을 받고 새 생명을 얻고 새 피조물로서 새 이스라엘로서 천국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합니다. 그래서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새 언약백성이 된 우리들은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눈 가족으로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 31-35절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늘 반에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에 대해 예고하십니다. 목자를 쳐서 양 떼를 흩어 버리는 예언을 따른 것임을 밝힙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번에도 베드로는 자신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에 대해서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 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동일하게 자신들의 신념을 고백합니다.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사건은 당대 이스라엘에게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이러한 주님에 대한 이해가 불가하기에 결국 주님을 버리고 갈릴리로 떠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모두다 주를 버릴 지라도 자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베드로를 향하여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을 예고하십니다. 베드로는 여전히 자신감 충만하여 베드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더욱 구체적인 시간까지 언급하시면서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고백이 현실이 되는 것은 훨씬 후에 주님을 알아가는 것이 무르익을 때 그제서야 말과 행동과 마음이 일치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바른 자세는 자기 스스로의 자신감에 차 있기보다는 자신의 자신감 마저도 부인하고(참조 16:24) 철저히 예수님께 의존하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베드로처럼 호언장담하지만 이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도 예고하십니다.

“베드로는 하늘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평상시에 애써 유지하고 있던 자기 정체성이 위기 앞에서 얼마나 속절없이 무너지던가. 하지만 두려워할 것은 없다. 예수가 이미 그런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니 말입니다. 희망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김기석목사님의 <마태와 함께 예수를 따라>에서 발췌

 

▲ 기도

유월절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유월절 어린양이신 주님을 통해 우리를 살려 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크로노스(혼돈)의 때를 따라 살지 않고 카이로스(하나님의 시간)를 따라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때를 딸아간 주님의 여정을 기억합니다. 언제고 우리도 주님을 팔 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있을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속마음까지 아시는 주님이 헤아려 주시옵소서.

주께서 허락하신 몸과 피를 통해서 우리가 새 생명을 얻었고 새 사람 되게 하셨으니 더욱 주의 만찬을 잘 되새기고
날마다 생명을 전할 수 있길 원합니다. 잘못된 신념으로 자신만만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겸손하게 임할 수 있길 원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 이제 잘못된 신념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주님의 인도하심과 주관하심을 믿으며 이 길 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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