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요셉 목사] 부르족 사람들 (8) - 첫 번째 유아세례 예정자, 요셉
[권요셉 목사] 부르족 사람들 (8) - 첫 번째 유아세례 예정자, 요셉
  • 권요셉 목사
  • 승인 2019.04.17 10: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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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선교사의 치료적 글쓰기
아루와의 아들 요셉 오로뇨
▲아루와의 아들 요셉 오로뇨

 

그날따라 윌리엄은 매우 해맑게 웃으며 내 걸음을 재촉했다.

“무슨 심방이길래 말도 안 해주고 데리고 가는 거야?”

윌리엄은 뭐가 신이 났는지 그저 해맑게 웃으며 나를 재촉했다. 장님인 윌리엄을 안내하는 꼬마 오꾸에로도 뭐가 신나는지 실실거리며 웃었다.

“오꾸에로. 넌 알고 있지? 무슨 일이야?”

내가 물어보자 오꾸에로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낄낄거렸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다.

오꾸에로와 윌리엄이 안내해준 곳은 아루와의 집이었다. 아루와는 교회에 몇 번 온 적이 있는 임산부였다. 초반에는 교회 일에 열심이었지만 출산일이 다가오자 교회에 오지 못했다. 그래서 종종 윌리엄과 함께 심방을 하곤 했었다.

 

“뭐야? 오늘 아루와 출산일이야?”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부르족에는 의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를 출산하면서 죽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건강하게 아이가 나왔다는 건 매우 기쁜 일이었다. 생명이 태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새 일꾼이 태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부르족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비의 제사장(레인메이커)을 부른다. 비의 제사장이 아이를 축복하러 오면 양이나 염소를 준비했다가 주게 되어 있다. 최근에는 부족 외부와 거래를 하면서 플라스틱 류의 탁자나 의자 등 염소보다 가치 있는 다른 물품들을 주기도 했다.

아루와의 출산 전에도 몇몇 교우가 출산을 했었는데 나를 부르지 않고 비의 제사장을 불렀다. 그 교우들의 입장에서는 부족의 다른 원로들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에 불가피했을 테지만 나는 나름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교회에서 출산하고 나를 부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아루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았다. 아루와는 아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다.

“그럼, 물론이지. 기도해야지.”

나는 아기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한동안 바라보며 감격에 젖었다. 그리고 아루와에게 물어보았다.

“아이의 이름은 무엇으로 했어?”

내가 아기의 이름을 물어보자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까르르 웃었다. 나는 그냥 분위기에 젖어 같이 웃으며 다시 물었다.

“왜들 그래? 이름을 또 이상하게 지은 거야? 내가 그랬잖아. 이름을 좀 가치 있게 지으라고. 의미 있는 이름을 지으라고 했잖아. 웃긴 이름 짓지 말고.”

그러자 윌리엄이 내게 말해주었다.

“매우 의미 있는 이름으로 지었어요. 정말 깜짝 놀랄 이름으로.”

나는 답답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축복기도 해야 하니까 빨리 말해줘. 발음이 어려운 건가?”

내가 물어보자 윌리엄이 다시 말해주었다.

“매우 쉬운 발음이에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알았으니까, 뭔데? 이름이.”

윌리엄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유어네임.”

뭐? 난 처음에는 유어네임이 영어가 아니라 아랍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랍어로 유어네임이 뭐였지?’하고 계속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유어네임은 영어였다.

“이름이 ‘유어네임’이야?”

그러자 또 까르르 웃었다.

“요셉이요. 목사님의 이름을 따서.”

윌리엄은 웃음을 참으며 말해주었다.

“내 이름? 하지만 이름은 태어날 때 있었던 가중 중요한 사건으로 짓잖아.”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루와가 말했다.

“매우 중요한 사건. 목사님이 우리에게 왔잖아요. 처음에는 ‘카니샤(교회)’라고 지으려고 했는데 그것보다 목사님 이름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아서요.”

 

나는 아기 요셉을 바라보았다. 축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매우 흐믓한 마음으로 축복기도를 하려고 하자 윌리엄이 불쑥 끼어들었다.

“유아세례도 받을 겁니다.”

“뭐? 아루와가 유아세례를 알아?”

내가 되묻자 윌리엄이 대답했다.

“제가 알잖아요. 목사님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가르쳐 줬지요. 어린 아기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제가 아루와에게 가르쳐 주었어요. 유아세례를 받으라고요.”

요셉은 그렇게 부르족의 첫 유아세례 예정자가 되었다. 비의 제사장의 권력이 가득했던 당시의 부르족에서 아기에게 유아세례를 주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나는 아루와의 결정이 무엇인지 느꼈다. 아루와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의 결정에 대해 기쁨을 가득히 안고 요셉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이 아이가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게 해 주시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 주시고, 부모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게 하소서.”

축복기도가 끝나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려고 하자 아루와는 내게 플라스틱 대야 몇 개를 주려고 준비했다. 부족민들에게 플라스틱 제품은 염소와도 바꿀 수 없는 매우 가치 있는 물건들이었다. 받을 수가 없었다.

“내게는 이미 많아. 오히려 내가 선물을 줘야지. 오늘은 갑자기 와서 아무것도 준비를 못 했네. 다음에 올 때 내가 선물을 준비해 올게.”

부르족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는 집에서 쉬었다. 그 뒤로 내가 종종 아루와를 보러 왔다. 아니, 요셉을 보러 왔다. 아루와는 교회에 오지 못했다.

 

요셉이 태어나고 두 달 뒤, 전쟁이 났다. 전쟁이 발발한 첫 주 주일 예배에 아루와가 요셉을 안고 왔다.

“목사님. 요셉을 데리고 가요. 전쟁이 났어요. 가실 때 요셉을 데리고 가요.”

“한국에 남수단 아기를 데리고 가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법적인 문제가 있어. 가능하지 않아.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아. 걱정하지 마. 올해 성탄절에는 요셉이 유아세례도 받아야지.”

아루와는 여전히 불안한 얼굴이었지만 내가 잘 안심시켰다. 그리고 전쟁이 난 후 두 번째 주일에는 아루와가 교회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이 난 후 세 번째 주일이 오기 전에 우리는 아루와와 요셉을 만나지 못하고 남수단을 탈출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종종 요셉을 위해 기도한다.

“요셉이가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게 해 주시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 주시고, 부모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게 하소서.”

그리고 홀로 상상해본다. 전쟁이 나지 않았다면 부르족에서 처음으로 유아세례가 행해졌을 어느 날을.

“주 예수를 믿는 아루와의 아들 요셉 오로뇨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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