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식 작가] #34.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
[김재식 작가] #34.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
  • 김재식 작가
  • 승인 2019.04.1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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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보는 불행속 그때 그말씀들 9

"여기가 ㅇㅇㅇ씨 자리인가요?"

", 그런데요. 누구신지?..."

"안녕하세요! 저 환우회 '울보'인데요"

", '울보'!"

 

그렇게 불쑥 병실로 들어선 그녀는 아주 오랜 경력자(?)만 하는 문병 노하우를 알고 있었습니다. 컵라면을 종류별로 담은 큰 비닐봉지를 들고, 나이 드신 어르신과 함께 왔습니다. 참 반갑고, 고마운 그 사람은 우리에게 정말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초면이었습니다.

 

"집에 내려갔다가 또 재발하면 어쩌지요?"

"그럼 또 응급실로 오세요."

"다른 치료법이나 약은 없나요?"

"지금으로서는 별 방법이 없어요."

 

두 번째인가 재발하여 입원했을 때, 또 재발할까봐 두려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습니다. 재발하면 응급실로 오는 걸 몰라서 물어본 것이 아니었는데..., 한 번은 주치의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혈장교환술이라는 치료법이 있기는 한데, 비용은 좀 넉넉해요?"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미 통장은 바닥나고, 빚으로 녹초가 된 지경이라 솔직히 여유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주치 의사는 '한 번에 80만 원씩 여러 번 들어가야 하는데'라고 혼잣소리로 말하더니 그냥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곤 다시는 말 꺼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퇴원할 때 발급받은 의무기록지를 보니 그 날짜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담당 레지던트의 소견 - 보호자들이 비용 부담하기 힘들어 혈장교환을 포기함.’

 

'아니, 꼭 필요하고, 하면 분명 좋아질 치료라면 해보자고 말이라도 했어야하지 않나?' 정말 억울하였습니다. 여유가 넉넉하지 않다고만 했을 뿐, 못한다는 말도 안 했는데, 시도도 해보지 않고 보호자가 아예 포기했다고 적다니...

 

그런 상태에서 환우회에 답답한 심정을 계속 올리고 있었는데 집사람의 상태를 본 그녀가(그때 닉네임이 '울보') 연락을 해왔습니다. 자기도 2년 넘게 전신이 마비되어 거동도 못하며 침대 생활을 했는데 지금은 일할 정도로 회복되었다면서 증상이나 상태가 많이 비슷하니 자기가 치료받은 병원으로 꼭 옮겨서 항암주사치료를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얼마나 간곡하고 진지하게 말을 하는지 처음엔 흘려듣다가 점점 신뢰가 갔습니다. 지푸라기가 동아줄이 된 것입니다.

 

혹시나 하고 삼성병원 담당선생님께 그 치료를 좀 해줄 수 없는지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한 마디로 "!"였습니다. 그 항암주사제는 백혈병과 악성류머티스성 외에는 보험적용도 안 해주며, 만약 개인이 비용을 다 부담한다고 해도 이 병원에서는 윤리위원회에서 허락해줘야만 가능하답니다. 포기했던 것은 설사 허가가 나도 자기는 주사제의 부작용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다며 돌려서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유턴하게 해 주신 의사선생님. 원래 다른 전공이었는데 고교 담임선생님이 걸린 다발성경화증 소식을 듣고 유학까지 가서 배워 전공을 바꾸신 분, 스승과 사제의 깊은 정이 우리 가정에까지 도움을 가져왔습니다. (중앙일보 기사 자료)
▲절망에서 희망으로 유턴하게 해 주신 의사선생님. 원래 다른 전공이었는데 고교 담임선생님이 걸린 다발성경화증 소식을 듣고 유학까지 가서 배워 전공을 바꾸신 분, 스승과 사제의 깊은 정이 우리 가정에까지 도움을 가져왔습니다. (중앙일보 기사 자료)

 

그런데 옮겨온 일산 국립암센터에서는 그 치료를 해주십니다. 나중에 어느 의료지에 기고하신 의사선생님의 글을 보고야 알았습니다. 왜 그렇게 다른 병원 의사들이 책임문제와 위험하다고 기피하는지, 그런데도 그 위험하고 비싼 비용의 항암주사 치료법을 아내 담당선생님은 왜 감수하며 사용하시는지를.

 

온갖 약과 치료를 다 해보고도 듣지 않아 절망하고 있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이 치료법을 의사의 의무상, 또 동시에 자신의 양심상 포기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결심을 하고, 까다로운 뒷관리를 하면서, 이곳 의사 선생님은 치료를 강행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옮겨온 병원에서 정말 혹독한 치료를 받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멀어져 갔습니다. 누군들 안 그럴까요? 긴 병에는 자식도 효자가 되기 어렵다는데 하물며 남들이야, 강남에 있을 때는 계속 문병도 오고 관심을 가지던 사람들도 일산이라는 반대편 먼 거리로 오고 나서는 하나 둘씩 뜸해지더니 발이 끊어졌습니다.

 

그렇게 외로워하던 날에 우리를 이 병원으로 옮기게 한 그분이 문병을 온 것입니다. 많이 놀랐습니다. 걷는 모습이 약간 불안할 뿐 전혀 사지마비로 몇 년을 보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내보다 나이가 어리다면서 대뜸 아내를 언니라고 불렀습니다. 힘내고 치료하면 자기처럼 회복되어서 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며 기운 내라며.

 

"세상에는 빚을 갚는 길이 두 가지가 있나봅니다. 하나는 직접 돌려주는 방법, 또 하나는 다른 곳으로 흐르게 하는 방법, 그렇지 않으면 잘 모르는 남에게서 선의로 오는 도움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녀(울보님)는 교회를 다니는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직접 대놓고 들은 적도 없고 주위 분에게서도 못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 늘 입에 달고 사는 저나 오빠 세분이 모두 목사인 아내보다 더 말씀의 본질에 가깝게 살아가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생명이 바람 앞의 촛불 같은 비관적인 시기에도 두려움이나 절망에 빠지지도 않고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미신에 가까운 과한 집착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비용과 시간을 내어가며 낭패한 상황에 빠진 남을 돕기 위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동분서주합니다. 자기 돈을 써가면서까지 그럽니다. 성경의 이 말씀을 이미 실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이도 없고, 또 자기만을 위하여 죽는 이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 로마서 147,8]

 

누군가가 혈연관계도 이익관계도 아닌데 이렇게 정성으로 낫기를 빌어주는 분이 있다면 어떻게 포기하겠습니까? 진정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신세는 갚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때마다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세워 일으킵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합니다.

 

"울보님, 용감한 유리공주님! 같은 병을 가지고도 길이 되어주고, 늘 격려해주신 마음을 꼭 갚겠어요. 병에 지지 않고 사는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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