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요셉 목사] 부르족 사람들 (9) - 현대적 삶에 대한 욕망, 오투부라
[권요셉 목사] 부르족 사람들 (9) - 현대적 삶에 대한 욕망, 오투부라
  • 권요셉 목사
  • 승인 2019.05.0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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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선교사의 치유적 글쓰기
부르족에서 낙시창을 들고 있는 오투부라
▲부르족에서 창을 들고 있는 오투부라

오투부라는 다른 부족민 같지 않게 매우 깔끔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고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먼저 나를 찾아왔다.

“나는 부르족 외부를 많이 경험했어. 우간다도 갔다 왔지. 영어도 할 줄 알아.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어. 약간의 돈만 준다면.”

부르족에서 유일하게 내게 정기적인 돈을 요구한 사람이었다. 썩 유창한 영어도 아니었는데, 아니 솔직히 매우 부족한 영어였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영어 실력을 최대한 높여 자찬했다.

오투부라는 오래전 부르족을 떠나 남수단의 수도인 주바와 우간다에 갔다가 결국 아무 수확도 없이 부르족에 돌아왔다. 우리가 부르족에 왔다는 말을 듣고 돌아온 건지, 부르족으로 돌아왔는데 마침 우리가 있었던 건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나는 이런 식으로 거래하듯이 접근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도, 신뢰하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부르족 출신이었고 많은 가족들이 여전히 부르족에 있었기 때문에 성장하기를 기다리며 지켜보았다.

그는 "교회 일을 할 테니 돈을 달라."고 했지만 나는 그가 믿음직하지 않아서 바로 교회 일을 맡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 달에 약 2만원 가량의 돈을 주고 예하의 영어 공부를 돕도록 하고 지켜보았다. 그러나 역시 예상한 대로 매우 불성실했고 돈을 받으면 바로 옷을 사거나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신 날이면 사람들과 싸워서 다치기도 했다. 말없이 약속을 깨는 일도 부지기수였고 끊임없이 나의 물건들을 탐냈다. 실제로 오투부라만 왔다 가면 여러 물건들이 종종 없어지기도 했다. 오투부라의 짓이 확실했지만 증거가 없어서 말할 수는 없었다.

 

한번은 자기가 "매우 아프니 급히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디가 아픈데?”

나는 그에게 더 이상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넌 모르는 병이야.”

그는 끊임없이 나를 속이려고 시도했다. 도대체가 이런 말로 날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병에 대해서라면 내가 너보다 많이 알아. 무슨 병인데?”

아마도 그는 아무 병이나 댄 것 같았다.

“말라리아야.”

하지만 나는 이미 말라리아와 장티푸스를 수도 없이 앓았다.

“말라리야? 말라리야라면 나도 이미 5번은 넘게 앓았어.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말라리야를 앓았다고?”

“말라리야는 고열을 동반하는데 너는 지금 열이 나지 않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난 지금 열이 있어.”

“그리고 말라리야는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아.”

 

결국 오투부라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그는 나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면서 돈만 주면 된다고 나를 배려하듯이 말했지만 내가 굳이 차를 태워서 병원으로 함께 갔다. 병원에서 말라리아 검사를 위해 피를 뽑는데 오투부라가 나를 못 들어오게 했다. 하지만 내가 굳이 같이 들어갔다.

검사 결과 말라리아는 아니었고 약간의 설사가 있었다. 의사도 상황을 눈치챘는지 오투부라를 나무랐다. 결국 오투부라는 자신이 원하던 돈을 얻지 못하고 설사약만을 들고 돌아갔다.

 

그가 스스로 교회학교 일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돈을 주지 않자 교회 일에 게을렀고 심지어 자기 부족을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가 부르족 출신이라는 것을 창피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외부에서는 다른 큰 부족 이름을 대곤 했다. 그래서 부르족에 가족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외부 마을 사람들 집에 얹혀사는 것을 선호했다.

나이가 나보다 20살 가까이 어렸지만 내가 자기를 친구로 대해주기를 원했다. 물론 나는 좋았다.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친구로 대했으니까. 그래도 윌리엄이나 비난슈 그리고 여러 부르족 사람들은 친구처럼 대하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었다. 그러나 오투부라는 친구라고 하면서 나를 하대하는 느낌도 들었고 짜증도 자주 냈다. 특히 원하는 돈이 나오지 않을 때는 화를 내기도 했다. 나에게서 돈이 나오지 않자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도 부족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그를 못 본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부르족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 있는 미국인 선교사가 나를 "보고 싶다."고 연락을 취해왔다. 영어가 부족한지라 미국인 선교사들과의 교류가 달갑지 않았지만 먼저 취해온 연락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그 미국인 선교사의 집을 방문했다. 우리 집으로 부르기에는 우리 집은 너무 아프리카 적이었다. 손님이 들어와 앉아 있을 방이 없었다.

미국인 선교사의 집은 제법 규모가 있었다. 방이 언뜻 본 것만 6개 정도였다. 일하는 사람들이 수명이었다. 넓은 정원과 전기, 수도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 미국인 선교사는 나를 접대실로 안내하고 “찰스”라고 크게 외쳤다. 그러니까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쟁반에 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오투부라였다.

오투부라는 매우 자긍심 있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나도 눈웃음을 보여 주었지만 우리 둘의 웃음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나 이렇게 좋은 집에 살아”라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 미국인 선교사에게는 나에게 보인 적 없는 깍듯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마치 중세시대 유럽 귀족을 대하는 하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표정은 매우 자랑스러워 보였다. 그 뒤로 한동안은 그를 볼 수 없었다.

 

전쟁이 난 첫날, 놀랍게도 오투부라가 찾아왔다.

“요셉, 이야기 들었어? 전쟁이 났어.”

나는 처음에는 전쟁 사실을 아내와 예하에게 숨겼기 때문에 오투부라를 조심시켰다.

“쉿. 그 이야기는 일단 하지 않는 게 좋겠어.”

그러나 오투부라는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집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나에게 물었다.

“탈출 안 할 거야?”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단호했다.

“안 해.”

오투부라는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탈출할 거면 나에게 말해. 도와줄 테니.”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나중에 우리가 탈출을 결정하고 나서 주우간다한국대사관에서 보내준 경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오투부라가 나타났다. 그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내게 말했다.

“전쟁을 겪은 외국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나는 자존심이 조금 상했다. 최소한 오투부라 앞에서는 더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난 돌아와. 전쟁이 끝나면 돌아올 거야.”

그러나 오투부라는 비웃듯이 웃었다.

“크크크 요셉. 그건 지켜보면 알겠지. 포격을 경험하고 사람 죽는 걸 봤는데 돌아올 수 있는 외국인은 없어. 난 본 적이 없어.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갈 데가 없어서 있는 거지. 누구나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아. 부르족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야. 비행기나 차가 없어서 못 나갈 뿐이지.”

“그건 지켜보면 알겠지.”

“그래. 지켜보면 알겠지. 넌 한국으로 가면 여길 더 무서워하게 될 거야. 나도 떠날 거야. 난 케냐로 갈 거야.”

“그래 그 길을 축복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그래. 크크크크.”

그의 특이한 웃음은 기분 나빴다. 오투부라는 부르족에서 내게 나쁜 기억을 심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돌아가지 못했고 전쟁이 끝난다 할지라도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직도 길가에 뿌려진 시체에 대한 시각적 충격과 포격과 총격 속에서 두근거리던 심장의 느낌이 생생하다. 그 현장을 떠올리면 여전히 그 소리와 장면들이 먼저 떠오른다. 애석하게도 오투부라가 나보다 더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이것을 알고 있었겠지.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사춘기 때 전쟁을 경험한 청년이 자신의 이득과 생존을 위해 내게 그렇게 반응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윌리엄과 전화 통화가 되던 때, 나는 윌리엄에게 넌지시 오투부라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오투부라 소식은 알아?”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뭐? 이야기라니? 확실한 것은 아니고? 나에게는 케냐로 간다고 했는데?”

“네, 케냐로 갔어요. 하지만 여기서 케냐로 걸어가는 길은 반군으로 가득해요. 살아서 지나가기 힘들어요. 그리고 케냐에 있는 지인에게 연락해봤는데 도착을 안 했다고 해요.”

그의 생존 여부는 모른다. 그에게 미안하다. 살아 있어서 만나게 된다면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를 이해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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