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1)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1)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5.0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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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바스의 마지막 주장과 그에 대한 욥의 답변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3) 엘리바스의 최후통첩

욥이 자기가 의롭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자 엘리바스는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그는 욥의 잘못을 열거한다.

4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욥 22:4~9)

엘리바스는 욥이 겪고 있는 고난이 그가 유죄인 증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네게 잘못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너를 재앙으로 심문하시겠니?’라는 의미로 4절을 말했다. 그러면서 욥의 죄상을 밝힌다.

엘리바스가 지적한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불법적인 사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구체적인 욥의 범죄사실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욥에게 불법적인 혐의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구체적인 불법사안은 아니더라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내용을 나열했다. 그는 욥에게 법적인 문제가 아닌 도덕적인 결격사유도 의롭지 못한 근거라고 추궁한 것이다.

그리고 엘리바스는 욥에게 겸손하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잘못이 있다고 말하면 그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비롯해서 친구들이 모두 욥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느니 인정하라는 말이다.

29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30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

(욥 22:29~30)

여기에서 30절의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는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부분이다. 29절에서 엘리바스는 욥에게 겸손히 친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신의 불의를 인정하라고 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욥을 구원해주실 것이란다. 그런데 30절에서는 설사 죄가 있더라도 구원하실테지만 “네 손의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것이라고 단서를 제시한 듯하다.

30절 자체만 읽어보면 전반부와 후반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전반부에서는 ‘네가 겸손히 죄를 자백하면 죄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거야’라고 말하고 바로 이어 후반부에서는 ‘네가 죄에서 돌이켜 완전히 회개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어’라는 듯 보인다. 이는 우리가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를 죄가 없는 상태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는 엘리바스가 ‘네 손바닥의 깨끗함 정도만으로도’라는 의미로 사용한 표현이다. 손은 신체 중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작은 손이 깨끗한 정도만 즉 다른 이의 충고를 받아들인 겸손함 정도의 적은 의라도 있다면 그 점을 보고 하나님께서 용납해주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엘리바스는 만약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겸비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설득한다. 이는 그가 최후통첩으로 욥에게 전한 말이다. 이제 욥의 최후변론을 들어보자.

 

5. 욥의 최후변론

(1) 욥의 자기 확신

욥기 26장으로 욥과 세 친구들은 변론을 마친다. 27장부터는 욥의 최후 진술에 해당한다. 27:1의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라는 말은 기존의 대화에서 벗어나 공식적인 진술을 시작한다는 표현이다(이는 에스라성경대학원의 수업 중 문은미 교수에게 배운 내용이다). 욥의 최후 진술에는 그의 신학적 주제가 다 담겨 있다. 자신은 진실만을 말한다며 욥은 세 친구들에게 너희는 의롭지 않고 내가 의롭다고 말한다. 다음은 힘주어 말하는 욥의 외침이다.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צדק)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내 공의(צדקה)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욥 27:5~6).

여기에서 ‘옳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צדק(쩨데크)’이고 ‘공의’는 ‘צדקה(쩨다카)’이다. <개역개정> 성경은 다른 두 개의 단어로 번역하였지만 욥은 ‘צדק(쩨데크)’를 기본형으로 하는 같은 개념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므로 둘 다 ‘의’라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욥은 자신이 의롭지 않다는 세 친구들에게 오히려 너희가 의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않겠다고 했다. 욥은 자기 행위로 인해 자신이 의롭다고 확신에 차 있다.

 

(2) 욥의 보응의 신학

이전에 욥의 주장을 통해 그가 세 친구들처럼 보응의 신학을 가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욥의 최후변론에는 그가 보응의 신학을 가지고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구절이 있다. 한번 확인해 보자.

1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2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

3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불행이 아니겠느냐

4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욥 31:1~4)

욥은 자신이 음욕으로 다른 여성을 보지 않는다고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을 자긍한다. 그러면서 자신처럼 의로워야지 하나님께서 보상을 내려주실 것이고 반대로 불의하면 환난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4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관찰하고 계시듯이 인간들의 삶을 모두 살펴보신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욥이 보응의 신학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욥과 친구들은 대화를 세 번이나 주고 받았다. 엘리바스는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를 할 때에는 검사처럼 욥에게 죄를 인정하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욥도 최후변론을 하듯 자신이 결백한 이유를 제시한다. 다음 회는 욥과 세 친구들의 대화의 마지막 시간이다. 욥의 최후변론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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