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4)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4)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5.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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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인간이 알아듣지 못한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2) 욥이 의롭지 못한 이유

엘리후는 욥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그가 했던 말을 인용한다.

8 그대는 실로 내가 듣는 데서 말하였고 나는 그대의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9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10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11 내 발에 차꼬를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욥 33:8~11)

엘리후는 욥이 자신을 변론하는데 사용한 용어와 개념인 ‘깨끗함’, ‘악인이 아님’, ‘순전함’, ‘불의가 없음’ 등을 지목했다. 그리고 이어서 10절의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와 11절의 “내 발에 차꼬를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라는 욥이 이전에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했다.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욥 13:24b).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욥 13:27).

그리고는 욥이 순전한 자신을 하나님께서 괜히 괴롭히신다고 한 것 자체가 의롭지 못하다고 하였다.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욥 33:12).

여기에서 언급한 의는 ‘צדק(쩨데크)’의 일차적 뜻인 ‘옳음’으로 사용되었다. 엘리후가 욥에게 아직 의에 대해 설명하는 구절은 아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의롭다는 오만방자한 욥의 태도가 옳지 않다고 지적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지존자이시기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만 인간이 알아듣지 못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했었다. 그에 대해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인간이 따질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부름에 일일이 답하실 의무가 없지만 그럼에도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말씀하셔도 인간은 알아듣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다.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인간에게 다양한 형태로 메시지를 전하신다는 예를 든다.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욥 33:14~16).

그렇게 경고하시는 이유는 그 사람을 잘못된 행실에서 돌이키고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의 죄로 멸망하기까지 방관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에서 돌이키도록 각자에게 다양한 형태로 주의를 주신다. 엘리후는 이런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욥 33:17).

엘리후는 하나님 앞에서 불손한 욥의 태도를 지적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고 주장하는 욥에게 하나님께서 다양한 형태로 메시지를 전하셔도 인간 편에서 받아들이지 않거나 무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까지가 엘리후 주장의 서론이다.

엘리후의 이야기를 여기까지 들은 시점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첨언하려 한다. 사적인 경험을 나누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엘리후의 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였다. 양해를 부탁드린다.

나는 초월적인 환상이나 꿈에 의한 메시지를 경험한 적이 없다. 가끔 꿈을 꾸기도 하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주위에 신앙인들 중에서 종종 그런 경험을 이야기하시는 분들을 접하기는 하였다.

꿈이나 환상은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이어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회 안에는 초월적인 경험을 영적이라고 부르며 주관적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신학이나 신앙을 가진 분들 중 일부는 초월적인 경험에 의지한 왜곡된 성경해석과 덕이 없는 삶의 결과들로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래서 신앙의 초월적 경험을 강조하는 분들을 대하는데 있어 일정 부분 경계의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런 경험을 이야기하시는 분들 중 삶을 통해 신앙을 증명하여 어느 정도 신뢰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초월적인 경험과 그에 따른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섣부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과 같은 초월적인 신앙의 경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하였다. 내가 옳지 못한 일을 반복할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여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옳지 않은 일을 어쩔 수없이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 사건이 어쩌다 한번뿐이라면 우연으로 취급하겠지만 인생 가운데 다양한 형태로 여러 번 경험하였다. 이는 나에게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신비한 경험이다.

한편 죄의 소욕을 참지 못하고 범죄 하기로 작정한 적도 간혹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해 뜻대로 되지 않고 계획이 어그러졌다. 그 순간에는 나름 최선을 다해 죄의 자리로 나아가려했지만 결국 여러 우연들이 겹쳐 좌절되고 말았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참 어이없고 부끄럽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며 하나님께서 간섭하셨다고 믿게 되었다. 믿게 되었다기보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들을 조목조목 따지기 낯부끄럽고 민망하기에 이 정도만 언급하겠다.

이러한 경험들은 자연현상이라고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고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절묘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역이라고 볼 수 있는 증거는 없다. 단지 나의 개인적인 입장일 뿐이다. 따라서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말을 믿든지 그렇지 않든지 적어도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하나님께서 나를 죄로부터 벗어나도록 하신 경고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라고 믿는다. 그분은 우리와 상관없는 높은 곳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 다양한 모습으로 밀접하게 관계하신다. 그 관계는 훈육을 위한 설득의 과정들이다.

이처럼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통치법칙을 만드시고 그에 따라 상벌을 주시는 통치자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인격적인 관계성을 가지고 간섭하신다고 설명한 것이다. 이어서 그는 인간에게 의를 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설명한다. 이제 엘리후 주장의 본론을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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