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6] 죽음이 생명이다(계 2:8-11)
[요한계시록강해6] 죽음이 생명이다(계 2:8-11)
  • 김상학 목사(안산 성경제일교회)
  • 승인 2019.05.1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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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들어가는 말

저는 이번 8년차 정기검진을 받으면서 나는 죽었다라는 사실을 또 한 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암에 대해서는 깨끗했지만, 수술 후 찾아온 2차적 문제 앞에 무력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치아 손상이나, 콩팥 손상은 이미 알고 있었던 문제이지만 Vitamin B12 결핍이 복병으로 도사리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Vitamin B12의 결핍은 악성 빈혈이 되어 신경계 손상으로 인한 사지 마비, 정신 이상, 치매를 가져오고 생명까지도 앗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번 검진에서 Vitamin B12수치가 전혀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놀란 의사는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의 주사제를 처방했습니다.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해야 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탄은 성도의 신앙을 변질시키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해 옵니다. 건강을 해치는 일도 그 중에 한 가지이겠지요. 경제적인 문제, 재난의 문제 등도 사탄이 주로 사용하는 도구들입니다. 이런 시험은 성도가 주님 품에 안길 때까지 계속해서 밀려옵니다. 불같은 환난이 동서남북에서 밀어 닥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이 그 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서머나 도시 환경을 살펴볼까요?
 
1. 하나님은 어디에?
서머나는 에베소에서 북으로 56km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구 10만 명의 아름다운 항구도시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시아의 장신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가 자랑하는 도시답게 황제를 숭배하는 일에 앞장 선 도시였습니다. 경쟁적으로 충성을 서약했고 황제 숭배 신전을 가장 먼저 유치함으로 황제의 혜택을 톡톡히 누린 도시입니다.
이런 환경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떠했을까요? 로마인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일에도 경쟁적으로 열심을 내었습니다. 따라서 서머나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환난과 궁핍, 그리고 죽음을 각오한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서머나에서는 황제는 나의 주라고 외치며 인사를 나누었답니다. 특히 물건을 살 때 내 주여라고 외치지 않으면 물건을 살 수 없었답니다. 황제 숭배로 똘똘 뭉친 도시였던 게지요.
그런데 서머나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의 자손을 자처하는 유대인이었습니다. 9절을 다 같이 읽어 볼까요?
9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AD 70년에 서머나로 이주해서 정착한 사람들입니다. 유대교는 로마와 타협을 잘하여 황제 숭배 제의 의무를 면제 받았고, 자신들만의 회당예배도 보장받았습니다. 워낙 유대교가 저항했던 역사를 알고 있었던 로마가 유화정책을 편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도 유대교에 허락한 그 유화정책의 혜택을 누리고자 했겠지요. 그리스도인들도 상당수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인들이 앞장서서 반대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부분 유대인들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 인해 자신들의 특혜, 또는 지위를 잃게 될까봐 철저하게 선을 그었던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와 다르다고 하면서 저들은 세상에 없어져야 할 불순한 집단이라고 선동했습니다. 그리고 황제 숭배에 참석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고발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예수님은 이 유대인들을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이 아니라는 거지요. 다시 말해서 저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겁니다. 바울도 로마서 228-29절에서 이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의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저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잔해하는 자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사탄의 회당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서머나 교회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절 상반절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주님은 주무시고 계시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이 주님의 백성을 이렇게 방치하고 계실 수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도 보호하지 않으시니 주님은 주무시거나, 죽으셨거나, 아예 계시지 않는 것이다.” 라고 떠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지켜보고 계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실까요?
 
2. 서머나 교회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9절 말씀을 다시 읽어 볼까요? 9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에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주님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은 사탄의 회당이라고 하신 반면에 서머나 교회를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주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자처하는 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귀할까요? 주님의 생명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저들은 주님의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니 부요한 자가 틀림없습니다. 요한 312절의 말씀이 이를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의 서신인 요한삼서도 요한계시록과 비슷한 시기에 쓰였습니다. 요한이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는 가이오도 박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가이오와 함께 했던 형제들이 요한에게 와서 가이오가 박해 가운데에서도 진리 안에 행함을 보고한 것 같습니다(요삼 1:3). 사도의 눈에, 아니 예수님의 눈에 박해 가운데서도 진리를 지키는 가이오처럼 사랑스런 자가 있을까요? 가이오의 상황은 진리를 지킴으로 환난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범사에 많은 환난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건강도 해칠 수 있는 혹독한 매질을 당할 수도 있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그 충성된 상태를 끝까지 잘 유지하도록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혼이 잘 되는 것이고, 범사가 잘 되는 것이며, 강건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현재 상황은 환난과 궁핍이지만, 잘 이기고 있는 그 자체가 부요한 것임을 역설적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10절에 그 부요의 실체를 말씀하셨습니다.
10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주님은 현재도 환난 중에 있는 서머나 교회에 대하여 장차에도 받을 고난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귀가 몇 사람을 옥에 던져 넣고 십 일 동안 환난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상황도 환난인데 앞으로도 더 받아야 할 환난이 있다니 산 넘어 산입니다. 그런데 십 일 동안의 환난이랍니다. 이 역시도 하나님의 계획하신 시간입니다. 이는 짧은 시간 일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 충만해질 때까지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끝이 있는 환난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10절 하반절에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끝까지 충성해서 받는 생명의 관,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부요라는 것이지요. 이제 그 의미가 선명해 졌나요? 서머나 교회의 초대 감독인 폴리갑이 이를 잘 대변해 줍니다.
 
3. 생명의 면류관을 쓸 자
서머나 교회는 폴리갑이 당하는 화형을 장차 받을 환난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AD 155년경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 11명과 함께 로마에 의해 화형으로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로마는 그에게 예수를 부인하고 황제를 신으로 인정하라고 명령했지만 폴리갑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나는 86년 동안 그리스도를 섬겨 왔지만 그분은 한 번도 나에게 해를 끼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나를 불로 위협하고 있지만 그 불은 한 시간 정도 타다가 꺼지게 마련이요. 그러나 경건치 못한 자들에게는 심판의 불, 영원한 형벌의 불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고 있소. , 왜 지체하고 있소?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폴리갑에게 환난은 환난이 되지 못했고, 궁핍은 궁핍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부요를 누리면서 자신의 몸을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의 부요는 바로 생명의 관, 다시 말해서 영원한 생명이었던 것입니다.
 
11절도 생명의 부요를 말씀합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둘째 사망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아니한 사탄의 회당에 속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죽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죽음이 곧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환난 가운데서도 배도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하는 자는 생명의 관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서머나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은 분명 서머나 교인들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책망할 것이 없는 교회로 견고히 섰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주어진 말씀임을 또한 명심해야 합니다.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들이란 복수형은 오늘날 우리 교회도 포함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시공을 초월한 우주적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또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무렵에 주어질 최종 환난까지도 잘 견뎌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면류관보다 가장 아름다운 관이 생명의 면류관 아닐까요? 우리 교회도 저를 비롯하여 몇 사람이 시험을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잘 이기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믿음으로 잘 이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나가는 말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은 8절에서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관을 받는 하나님 나라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의 수여자다운 모습 아닙니까?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약속을 이루실 유일한 분입니다.
 
서머나의 로마시민들이 황제 숭배와 함께 잠시 누리는 부요는 부요가 아닙니다. 그들과 공생하는 유대교인들이 누리는 부요 역시 진정한 부요가 아니지요. 로마는 물론이거니와 공생하는 유대인들은 둘째 사망으로 인해 영원한 지옥 환난을 당할 것이니 그들이야 말로 절대적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는 자들입니다. 진정한 부요는 죽기까지 충성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생명의 관,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진정한 부요인 게지요. 끝까지 믿음을 지켜 충성하는 주의 성도들이 되어 생명의 관을 누리길 축원합니다.
 
그런데 장래에 누릴 생명의 관보다 더 급한 것이 있죠? 지금의 당하는 환난을 이길 수 있어야죠? 저는 죽도록 충성하라라고 하시는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서 제게 적용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또는 나는 죽었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활 생명이 역사 합니다. 본문에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고 했지요? 그래서 나는 주여 나는 십 일 동안 죽으러 갑니다.”라고 선포하며 나아갑니다. 수술대에 올랐더니 5-6시간 수술한다고 하더군요. “주여 나는 5-6시간 동안 죽었습니다. 주님의 생명으로 함께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지요. 저는 내시경을 할 때마다 그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저는 5분 동안 죽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내시경의 렌즈가 내 소화기관 여기저기를 꾹꾹 압박할 때마다 묘한 생명의 기운을 느낍니다.
 
내가 살았다고 하는 순간 온갖 죽음의 사자들이 덤벼듭니다. 그러나 내가 죽었다고 하면 죽음의 사자는 떠나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또한 그것이 바로 생명의 관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라고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 앞에 죽으면 죽으리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결단으로써 날마다 생명의 면류관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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