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요셉 목사]부르족 사람들 (10) - 부르족의 청소년들
[권요셉 목사]부르족 사람들 (10) - 부르족의 청소년들
  • 권요셉 목사
  • 승인 2019.05.1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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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선교사의 치유적 글쓰기
첫 청소년부 멤버들. 왼쪽부터 자발, 우냐마, 요르단, 오포, 잉어테, 리조, 오롱
▲첫 청소년부 멤버들. 왼쪽부터 자발, 우냐마, 요르단, 오포, 잉어테, 리조, 오롱

아내는 어린이 예배와 영어학교를 맡아서 진행했다. 나는 청년과 장년을 위한 예배와 교육을 맡았다. 그리고 장년들을 중심으로 구제 사역을 진행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정신 없고 바빴다. 그런데 비난슈가 내게 프로그램을 하나 추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청년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연령이 있어. 우린 그냥 작은 청년들이라고 부르는데, 지금 작은 청년들은 청년 모임에도 못 들어오고 어린이 모임에도 못가거든. 작은 청년들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주면 좋겠어.”

그러고보니 청소년부가 없었다. 그렇게 비난슈의 제안으로 청소년부가 생겼다.

청소년들은 부르족에서도 골칫거리였다. 어른들은 어린이 취급했지만 자기들은 충분히 어른 몫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낚시와 사냥을 따라갔다가 낚시와 사냥을 망쳐놓곤 했다. 교회에서 청소년 모임을 만드는 것은 부족 어른들에게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첫 청소년부 모임에 십여 명의 청소년들이 왔다. 대부분은 소년들이었는데 소녀들도 몇 명이 왔다. 그 중에는 갓난아기를 안고 온 소녀들도 있었다. 나는 아기를 안고 온 한 소녀에게 물었다.

“동생이니?”

그러나 놀랍게도 그 소녀의 입에서는 황당한 대답이 나왔다.

“내 아이인데요?”

나는 말 할을 잃었다. 고작 14~1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그 옆의 소녀도 아기를 안고 있어서 물었다.

“이 아기는 누구니?”

다행히 그 아기는 동생이었다. 같은 또래인데 누구는 동생을 안고 있고 누구는 딸을 안고 있었다. 병이 있어서 배가 나온 줄 알고 물었는데 임신했다고 대답한 소녀도 있었다.

소년들은 키득키득 웃었다. 무언가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그러자 아기를 안고 있는 소녀들이 소년들을 째려보며 가서 어깨를 때렸다. 소년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 키득거렸다. 영락없이 한국의 중학생들의 모습이었다. 난감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 중에는 자발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자발은 장난기가 없고 묵직한 표정을 갖고 있었다. 다른 소년들이 철없이 떠들고 놀 때 자발은 내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아내가 어린이 예배를 할 때에도 자발은 예배에 참석해서 어린이들을 조용히 시키며 아내의 말을 듣도록 유도했다. 가끔 어린이들이 걷잡을 수 없이 떠들 때는 막대기를 들고 와서 조용히 시키기도 했다.

 

청소년들을 향해서 내가

“너희들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뭐지?”

하고 묻자 다들

“사냥이요.”

라고 대답했다. 낚시나 농사보다는 사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부르족에서 직업이라고 해 봐야 사냥과 낚시, 그리고 농사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직업을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아니, 직업 말고 하고 싶은 거. 달리기라거나. 수영이라거나. 아니면 악기 연주라거나 뭐 노는 거라도.”

소년들은 저마다 키득거리며 수영과 달리기를 주로 말했다. 기타나 북을 연주하고 싶다고 하는 소년도 있었다. 키가 제일 작은 잉어테는 내 차를 가리키며 차를 타보고 싶다고 했다. (잉어테의 부탁대로 모임 후에 청소년들을 차에 태우고 한바퀴 돌아주었다. 다들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다.)

그러자 키가 제일 큰 요르단은 차를 운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다들 꺄르륵 웃으며 자지러졌다. 소년들의 말을 듣던 자발이 가만히 입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잘 들리지 않아서 자발에게 물었다.

“자발, 넌 뭘 하고 싶어?”

그러자 자발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나는 자발의 대답이 좋았다.

“왜지?”

하지만 이유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들 목사님을 보잖아요. 조용히 시킬 수도 있고.”

나는 자발의 생각을 조금 바꿔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발, 가르치는 건 조용히 시키고 주목받는 게 아니야. 가르치는 건 내가 갖고 있는 걸 누군가에게 주는 거야. 가르치는 사람은 오히려 나중에는 사라져야 해. 배운 사람이 다시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게. 가르치는 사람은 계속 가르치는 자리에 남아 있으면 안 돼. 배우는 사람이 주인공이야. 가르치는 사람이 보조하는 거야. 배우는 사람이 더 중요해. 그런 생각이 없으면 가르치면 안 돼.”

그러자 소년들은 꺄르르 웃었다. 자발은 환한 웃음을 보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청소년부 모임은 매우 활발해졌고 소년과 소녀들을 점점 늘었다. 나중에는 70여명의 청소년들이 모였다. 인원이 늘었지만 질문과 대답이 활발했고 소그룹 성경공부 등 많은 의미 있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했다. 자체 성가대도 만들어졌다.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는 청소년부 내에서 연애감정을 표현하는 소년 소녀들이 보였고, 때를 틈타 종종 일종의 성교육도 진행했다. 성경적 사랑에 대해서도 가르쳤다. 한국의 결혼 풍습과 성경 속 사랑 이야기도 소개했다. 나와 아내의 사랑 이야기와 야곱과 라헬의 이야기는 매우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소녀들을 임신시키는 부족 어른들의 성적 인식을 대놓고 비판하기는 어려웠다. 부족의 문화이기 때문에 비판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성경과 나의 사랑 이야기를 소개해주는 정도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반향이 있었다.

어쩌면 부르족에서 우리가 가장 필요한 대상은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빠르게 수용하고 가장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대상들이었다.

 

전쟁이 난 후 첫 예배 때, 청소년부에서 키가 가장 큰 요르단이 내게 와서 대뜸 돈을 달라고 했다. 나는 용도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에 쓰려고 하지?”

“술을 살 거예요. 그래서 되팔면 돈이 될 거예요.”

“그래? 술을 어디에서 살 건데?”

“그건 제가 경로를 다 알아요. 전쟁 때는 잘 지키지도 않아요. 제가 술을 사올 수 있어요. 전쟁 때는 술을 먹는다고요. 다들 그래요. 전 추장 오로모도 지난 전쟁 때 다 술 팔아서 부자가 됐다고요.”

나는 결국 거절하고 돌아섰지만 요르단은 계속 내게 술장사를 할 돈을 지원해달라고 메달렸다. 나는 그저 따끔하게 혼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이곳에 계속 남아서 요르단을 바르게 가르칠 생각뿐이었다.

전쟁이 난 지 두 번째 주일이 되었을 때에도 요르단은 계속 나에게 돈을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여전히 그를 무시했다. 이 날은 분위기가 워낙 험해서 청소년부 모임을 갖지 않았다. 그러자 늘 얌전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우냐마가 내게 물었다.

“떠나요?”

나는 이때만 해도 진심으로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되물었다.

“왜 내가 떠날 거라고 생각하지?”

그러자 우냐마가 대답했다.

“가르치는 사람은 사라져야 한다고 하셔서.”

나는 우냐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한참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자발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나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우냐마에게 다소 감동했다. 그리고 미소지으며 우냐마에게 대답해주었다.

“너희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때, 그때 우리가 떠날 거야. 아직은 아냐. 아직 너희가 누굴 가르칠 수는 없잖아?”

내 대답을 들은 우냐마는 갑자기 얼굴이 밝아지며 뛰어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주에 우리는 떠났다. 우냐마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어디 우냐마 뿐이랴. 청소년부 모임을 주도했던 기특한 녀석들. 자발, 잉어테, 요르단, 리조, 오롱, 오포, 오뇨로, 오롱오, 오넬로, 지도, 오루와, 세빗, 오틴, 구디오, 이나마, 둘리오, 오꾸에로, 릴리조. 대나무와 야자나무로 만든 교회에서 나를 기다리며 모여 있을 것만 같은 70여명의 소년 소녀들.

그들의 비밀스런 연애를 지켜보며 혼자 키득거렸던 날들. 그들이 새롭게 만들어갈 부르족의 미래를 기대하며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날들. 함께 운전하고, 특송을 위해 춤을 준비하고, 숲속에서 어른들 몰래 숨겨놨던 빵을 먹고, 기분이라며 염소를 잡아 함께 요리해서 먹었던 날들. 이제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날들.

의도하지 않은, 수도 없이 많은 거짓말들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나와 아내를 힘들게 한다.

얼마 전, 아내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부르족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를 원망할까?”

하지만 나는 아내와 생각이 달랐다.

“아니, 아닐 거야. 우리가 마지막 약속을 못 지키기는 했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좋은 추억들을 그 사람들도 다 갖고 있을 테니까. 우리는 열심히 사랑했고 그 사람들도 그걸 알지.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악하게 한 게 없으니까. 그 사람들은 어쨌든 우리에게 받은 것만 기억할 거야. 실제로도 그랬고. 제대로 된 작별을 못해서 아쉬운 거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었냐고 묻는다면 다들 좋게 기억하고 있을 거야.”

내 말을 듣더니 아내 마음이 다소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 그렇겠네. 그 생각은 못했네.”

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약속을 못 지킨 것에 대해서 미안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부르족 사람들에 대해서 소개했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부르족 사람들이 있지만 그 모든 삶을 이야기하자면 평생을 해야 할 것이다. 나머지 부르족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내 일기장에 하기로 하고 다음 편부터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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