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6)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6)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5.2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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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후가 설명하는 인간의 의의 회복에 대해 들어봅니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우리는 지난 회에 엘리후가 예로 든 어떤 사람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였다. 그 사람은 병상에서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대속물을 발견하시고 그 사람이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명령하신다. 그 사실을 하나님의 사역자 중 하나가 그 사람에게 전해주었다. 과연 엘리후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계속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5 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

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צדקה)를 회복시키시느니라

(욥 33:25~26)

대속물에 의해 하나님의 구원 명령이 떨어지자 죽어가던 사람에게 육신의 회복이 이루어진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된다. 26절의 “공의”는 ‘צדקה(쩨다카)’를 번역한 결과이다. 즉 의를 가리킨다.

그런데 “그의 공의”라고 하여 의의 소유자로 ‘그’를 지칭하였다. 의의 소유자인 그는 누구일까? 그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그’는 앞에서 언급된 죽어가던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한 ‘그의 의’는 그 사람이 지니고 있던 인간의 의이다. 이러한 견해를 따른다면 엘리후가 말하고자하는 의의 개념은 인간이 원래 지니고 있다가 상실한 의를 하나님께서 회복시키는 것이 된다.

둘째, ‘그’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의 의’는 하나님의 의이다. 이 견해를 따른다면 처음에는 인간에게 의가 없다가 대속물을 통한 하나님의 의가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가 인간을 가리키는지 하나님을 가리키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가 누구인지에 따라 인간에게 적용되는 의의 주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연 엘리후는 누구를 가리키며 ‘그의 의’라고 말했을까?

 

문법적으로는 ‘그’가 하나님이신지 그 사람인지 둘 다 가능성이 열려있어서 단언하기 힘들다. 그러나 나는 ‘그’가 하나님을 가리키고 ‘그의 의’는 하나님의 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죽어가던 사람에게 의가 있었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엘리후는 어떤 사람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의에 대해 일절의 언급이 없다. 오히려 19절에서 그가 ‘징계’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정황상 그 사람은 의인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욥 33:19).

둘째, 죽어가던 그 사람이 구원받은 원인은 대속물에 의해서이다. 따라서 ‘그의 의’는 그 사람의 의라기보다 대속물에 의한 의이다. 의의 근원은 대속물이다. 그 대속물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사람에게 의의 가치가 없음은 분명하다.

셋째, 이사야서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실 때 하나님의 ‘צדקה(쩨다카)’에 의지하셨다. 그런데 욥기 33:26도 인간의 구원에 대한 ‘צדקה(쩨다카)’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구원에 있어서 ‘צדקה(쩨다카)’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צדקה)를 스스로 의지하사”(사 59:16).

넷째, 26절의 “기도”와 ‘그의 얼굴을 본다’는 제사의식과 연관 있는 용어와 개념이다. 제사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의를 회복한다기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의를 부여한다는 의미가 자연스럽다.

다섯째, 본문에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느니라”의 주어는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그의 의’가 인간의 의이거나 하나님의 의이거나 상관없이 그 의를 회복하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26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의를 부여하신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와 같은 본문이 말하는 메시지의 흐름에 따라 본다면 ‘그의 의’는 인간보다 하나님에게 무게가 더 실린다.

‘그의 의’가 하나님의 의라는 사실을 지지하는 번역 성경이 몇몇 있다. 그 중 원문 직역에 충실하다고 알려진 영문번역본 NAS도 ‘그의 의’를 하나님의 의로 번역하였다. “His righteousness(그의 의)”에서 ‘His’를 대문자로 하여 ‘그’를 하나님으로 지목하였다.

“Then he will pray to God, and He will accept him, That he may see His face with joy, And He may restore His righteousness to man.”(Job 33:26 NAS).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그의 의’는 하나님의 의이다. 따라서 엘리후는 대속물을 통한 하나님의 의가 인간에게 주어진다고 말한 것이다. 이 설명을 통해 욥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인정하시는 의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 의를 부여받고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일을 찬양한다.

27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범죄하여 옳은 것을 그르쳤으나 내게 무익하였구나

28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욥 33:27~28)

여기에서 “내게 무익하였구나”라는 번역은 적절하지 않다. “내게 무익하였구나”로 번역된 “ולא־שוה לי”는 직역하면 ‘그는 나에게 똑같이 하지 않았다’ 정도이다. 그러므로 27절은 그 사람이 옳지 않게 행했지만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갚지 않으셨다는 의미이다. 엘리후의 말을 계속해서 들어보자.

29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욥 33:29~30)

“재삼”은 두 번 세 번이라는 뜻이다. 30절에서 “그들의 영혼을”이라고 3인칭 복수형으로 번역되었는데 원문은 3인칭 단수형이다. 즉 ‘그의 영혼을’이 맞는 표현이다. “그들에게”는 히브리어 원문에는 없는 표현이다. 번역자가 “그들의 영혼을”이라고 번역하고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의역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 대한 예를 ‘그들’이라고 일반화시켜 확장시킨 것이 아니다.

19절부터 이어진 어떤 사람에 대한 설명을 30절까지 이어서 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후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 다가가는 징계를 받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방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그러한 징계를 반복하기도 하신다.

엘리후는 질병으로 고통 받다가 회복된 사람에 대한 비유와 설명을 마치고 욥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한다. 엘리후는 자신의 말을 듣고도 욥이 반론을 제기한다면 욥이 의롭다고 인정하겠노라고 말한다.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대를 의롭다 하리니 그대는 말하라 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그대를 가르치리라”(욥 33:32~33).

엘리후가 여기에서 의를 언급한 것은 욥기 33:13~30의 비유가 욥이 이해하지 못했던 의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엘리후가 도발적인 언사를 했지만 욥은 반박할 수 없었다. 엘리후가 설명한 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5) 엘리후의 첫 번째 이야기 정리

엘리후는 욥기 33:12과 33:32에서 ‘욥의 의’를 언급했다. 그 사이에 한 예를 드는데 이것이 엘리후 말의 핵심이자 욥기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어떤 사람이 심한 질병으로 고통 받다가 죽음의 위기에까지 이르렀다. 그 사람이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일꾼 중 하나가 중요한 사실을 그에게 전해준다. 그 사실은 하나님께서 속전을 얻으셨기 때문에 멸망에 이르지 않아도 된다는 구원의 소식이다. 그때 하나님과 그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며 그에게 의가 주어진다.

그 의는 그 사람이 이룩한 의가 아니다. 속전에 의해 하나님께로부터 출현하여 인간이 부여받은 <구원의 근간으로써의 의>이다.

의가 회복된 사람은 다른 이들 앞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찬양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시기 위해 이러한 일들을 반복하기도 하신다. 이것이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경륜이다. 엘리후는 이러한 신앙의 신비를 설명하였다. 이상으로 엘리후의 첫 번째 설명을 마치고 다음 시간에는 두 번째 이야기를 들어보자. 계속해서 함께 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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