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7)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7)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6.0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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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보응에 대한 엘리후의 입장을 들어보자.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3. 엘리후의 두 번째 설명 : 하나님의 보응

(1) 지혜 자들에게 판단을 요청

욥기 34장은 엘리후의 네 번의 설명 중 두 번째 부분이다. 첫 번째 33장의 설명은 욥 개인에게 한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혜 있는 자들”과 “지식 있는 자들”의 복수의 대상에게 이야기한다.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욥 34:2).

엘리후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경청하여 정의와 선에 대해 알아볼 것을 요청한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시시비비를 가려보자고 논지를 공론화한 것이다. 엘리후가 청중으로 염두 한 사람은 그의 변론을 듣고 있는 우리이다. 엘리후는 먼저 욥이 한 주장의 요점을 이야기한다. 그 내용은 자신이 옳고 하나님께서는 그르다는 것이다.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욥 34:5~6).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욥의 주장은 분명하다. ‘나는 의롭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의롭지 않다고 하셨다. 나는 정당한데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내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공격하셨다.’ 엘리후는 이처럼 하나님을 비방하는 욥이 어떻게 옳을 수 있느냐고 고발하였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부정하셨다는 욥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엘리후는 하나님을 비방한 욥이 악인과 다를 바 없다고 강하게 질책한다.

 

(2) 하나님께서 보응을 행하실 자격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는 욥의 주장에 대해 하나님을 변호한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말한 대로 악을 행하셨거나 불의하지 않으시다. 오히려 그분은 공의로우셔서 선을 행하면 복을 주시고 악을 행하면 심판하시는 보응의 질서로 세상을 다스리신다.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욥 34:11~12).

엘리후도 욥과 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보응의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엘리후도 욥이나 세 친구들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보응은 정의구현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보응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진리에 대해 욥과 세 친구들과 엘리후는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욥과 세 친구들의 보응에 대한 이해와 엘리후의 이해에는 차이점이 있다. 그 내용은 엘리후가 네 번째 이야기에서 설명한다. 따라서 이후 엘리후의 네 번째 설명을 살펴보며 그 차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여하튼 엘리후는 두 번째 설명에서 하나님께서 보응으로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보응에 대해 설명한다.

먼저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보응으로 세상을 통치하실 자격이 있는 분임을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창조주이시다. 인간도 그의 창조물 중 하나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에 주권자이시다. 그는 모든 생명의 주관자로서 뜻대로 할 수 있는 분이시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상을 그에게 맡겼느냐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욥 34:13~15).

그런데 욥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정의롭지 않으시다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살아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정의롭지 않은 폭군이시라면 모두 그분의 통치 아래에서 고통 끝에 죽어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그렇기에 욥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전능하고 은혜로운 분을 욥이 정죄했다. 다음은 욥을 책망하는 내용 중 한 구절이다.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가 정죄하겠느냐”(욥 34:17).

그리고 이어서 감히 하나님께 맞설 수 있는 급도 되지 않는다고 욥을 부끄럽게 한다. 그 내용은 욥기 34:18인데 <개역개정>의 번역은 의미상 오역으로 보인다.

“그는 왕에게라도 무용지물이라 하시며 지도자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욥 34:18).

<개역개정>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신 분이시기에 왕이나 지도자들조차 가치 없이 취급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일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이 구절은 바른 번역이 아니다. 18절의 히브리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18절은 의문문이다. 첫 번째 단어인 “אמר(아말/말하다)” 앞에 접두어 “ה(하)”를 사용하여 의문형으로 표현하였다. 직역해보면 ‘왕에게 무가치하다고 귀족들에게 악하다고 말하겠느냐?’ 또는 ‘왕에게 무가치한 자라고 귀족들에게 악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정도이다.

본문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문맥을 살펴보면 엘리후는 욥에게 17절에서 하나님을 정죄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18절에서 왕이나 귀족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질문했다. 따라서 엘리후는 욥에게 왕이나 귀족들에게조차 부정적인 말을 하지 못하면서 감히 하나님을 정죄할 수 있느냐고 빈정거린 것이다.

계속해서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보응으로 세상을 통치할 자격이 되시는 분이라는 설명을 이어간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위고하에 따라 차별대우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공정하게 보응을 실현하신다.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욥 34:19).

엘리후가 말한 보응의 자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창조주이기에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 따라서 보응의 원리에 대한 입법과 집행이 가능하시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운 분이시다. 그러므로 보응이 바르게 적용된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공정하신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신분의 높음이나 낮음에 상관없이 보응을 공평하게 구현하신다. 엘리후는 보응의 자격에 대한 설명에 이어 하나님의 능력을 이야기한다.

 

(3) 하나님께서 보응을 행하실 능력

엘리후는 하나님께서는 보응을 바로 실현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임을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한 분이시기에 자객을 동원하지 않아도 악인의 생명을 직접 거둘 수 있으시다.

“그들은 한밤중에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사라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거함을 당하느니라”(욥 34:20).

그리고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신다. 악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곳은 없다. 모든 이들을 완전히 감찰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보응을 완벽하게 이루실 수 있다.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행악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느니라”(욥 34:21~22).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을 판단하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권세자의 악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를 심판하기 위해 특별한 조사를 따로 할 필요가 없으시다.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욥 34:23).

엘리후가 말한 보응을 완전히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주권자이시기에 악인을 직접 심판하실 수 있으시다. 이는 하나님에 의한 보응의 집행은 실패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이 선악 간에 행하는 일을 완전히 파악하신다. 그러므로 오류가 없는 적절한 보응의 집행이 가능하시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지식과 완전한 지혜를 가지고 계신다.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판결하신다.

 

(4) 하나님께서 보응을 행하시는 이유

이어서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세력 있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바른 길에서 떠나 불의를 행하기 때문이다. 그 불의는 세력 있는 자들이 자기 힘을 가지고 약자들을 괴롭힌 것이다. 때문에 약자들은 울부짖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탄원을 들으신다.

26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눈앞에서 치심은

27 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깨달아 알지 못함이라

28 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하게 하며 빈궁한 사람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욥 34:26~28)

“그들”은 세력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보응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이유는 백성들을 위해서이다. 악한 권력자들이 백성들을 핍박하기에 하나님께서 보응으로 정의를 구현하신다. 그래서 권세자들을 임의로 교체하신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보응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오늘은 보응에 필요한 자격, 능력, 이유에 대해 확인해보았다. 다음 시간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보응에 대한 엘리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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