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8)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8)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6.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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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까다로운 욥기 34:29~30을 해석해봅니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5) 보응의 집행은 하나님의 자유

엘리후의 설명 중 욥기 34:29~32은 히브리어 원문 표현이 난해해 여러 번역본들 간에 차이가 있다. 다양하게 번역된다면 그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진의를 밝히는 것은 가치가 있다. 그래서 욥기 34:29~32을 해석해보려 한다. 분량이 다소 복잡하고 길기 때문에 이번 회와 다음 회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혹 아래의 해석하는 과정이 너무 어렵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냥 넘어가시고 마지막 결론부만 읽어보셔도 좋을 듯하다. 이제 욥기 34:29~32의 해석을 시작해보자.

 

[본문연구] 욥기 34:29~30은 무슨 의미일까?

바로 전 단락인 욥기 34:26~28에서 엘리후는 약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시고 악한 권세자들을 심판하신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29절에서는 설사 하나님께서 약자들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으셔도 다른 이가 뭐라고 지적할 수 없단다.

“주께서 침묵하신다고 누가 그를 정죄하며 그가 얼굴을 가리신다면 누가 그를 뵈올 수 있으랴 그는 민족에게나 인류에게나 동일하시니”(욥 34:29).

그리고 30절은 26~28절에 이어지는 하나님께서 권세자들을 심판하시는 이유에 대한 설명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는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 백성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욥 34:30).

여기에서 의문이 발생한다. 26~28절은 하나님께서 권세자들을 심판하시는 이유이고 30절은 그 이유에 대한 최종 설명이다. 그런데 중간에 끼인 29절은 전후 문맥과 호응하지 않는다. 29절은 하나님께서 권세자들을 심판하지 않고 가만히 놔두시더라도 인간이 왈가왈부 할 수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개역개정>에서는 30절의 시작을 “이는”이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29절의 이유를 30절이 설명하고 있는 듯 번역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을 인정하는 29절은 악한 권세자들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심판이라는 30절과 의미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히브리어 원문을 살펴보며 본문의 의미를 파악해보자. 다음은 29절이다.

29절은 ‘그가 침묵한다고 누가 정죄하랴? 또한 그가 얼굴을 숨긴다면 누가 그를 볼 수 있으랴? 민족이나 사람이나 모두 (그럴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는 <개역개정> 번역과 같은 의미이다. 전반부의 네 단어인 ‘והוא ישקט ומי ירשע(그가 침묵한다고 누가 정죄하랴?)’와 그 다음 네 단어인 ‘ויסתר פנים ומי ישורנו(그가 얼굴을 숨긴다면 누가 그를 볼 수 있으랴?)’는 평행법으로 동일한 의미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렇게 평행법으로 완성된 구문 뒤에 남은 마지막 세 단어는 문법적인 완전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30절도 주어와 목적어가 분명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동사가 없어 불완전한 문장이다. 30절을 살펴보자.

이처럼 29절 후반부와 30절은 번역하기 까다롭다. 그래서 여러 번역본들이 문맥의 흐름에 따라 30절에 동사를 부여하여 문장을 완성시켰다. 욥기 34:30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확인해보자.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임의로 사용한 동사에 밑줄을 그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개역개정> “이는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 백성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의 집> “불경건한 사람이 왕이 되는 것을 막고 백성을 올무들에 빠뜨리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공동번역개정> “불경스런 자를 백성의 통치자로 세우셨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비뚤어졌기 때문이 아니겠소?”

<새번역>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왕으로 삼아서 고집 센 민족과 백성을 다스리게하신들, 누가 하나님께 항의할 수 있겠습니까?”

<개역개정>과 <말씀의 집>의 번역은 같은 의미이다. 2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권세자들을 치신다. 이 내용의 뜻을 살려 30절의 ‘왕(מלך)’, ‘사람(אדם)’, ‘불경건한(חנף)’을 연결하여 하나님께서 불경건한 사람이 왕이 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를 살린 것이다.

그리고 28절에는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이 내용을 이어받아 ‘올무들(ממקשי)’, ‘백성(עם)’을 연결하여 백성들이 올무에 빠지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들은 모두 앞에 있는 26~28절과 같은 맥락으로 30절을 번역하였다. 26~28절과 30절을 연결시켜 읽으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전 절인 29절이다. 중간에 있는 29절이 이야기의 흐름을 해친다. 위 번역들의 26~28절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불경한 사람이 권세를 가져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중간에 29절은 하나님께서 악한 권세자들을 심판하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죄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29절만 따로 보면 충분히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30절에서 다시 하나님께서 권세자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를 말한다면 논지의 흐름이 분명히 어색하다.

한편 <공동번역개정>에는 30절이 뜬금없이 의문문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 이유는 29절과 연결하여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공동번역개정>은 29절 후반부의 ‘민족이나(ועל־גוי)’, ‘사람이나(ועל־אדם)’, ‘다함께(יחד)’가 완전한 문장이 아닌 점을 살렸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29 그가 입을 열지 않으신다고 누가 시비를 하며 그가 얼굴을 내놓지 않으신다고 누가 비난하겠소? 그가 민족과 개인을 감시하면서도

30 불경스런 자를 백성의 통치자로 세우셨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비뚤어졌기 때문이 아니겠소?

(욥 34:29~30 공동번역개정)

<공동번역개정>은 29절 후반부를 30절과 연결시켰다. 그래서 ‘올무들(ממקשי)’, ‘백성(עם)’을 연결하여 백성의 마음이 옳지 못하였기 때문에 ‘왕(מלך)’, ‘사람(אדם)’, ‘불경건한(חנף)’을 한데 묶어 하나님께서 개인이나 민족을 일일이 다스리시는 중에 불경건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셨다고 번역하였다. 이는 처음 살펴본 <개역개정>과 <말씀의 집> 번역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새번역>도 29절과 30절을 연결하여 번역하였다.

29 그러나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하여, 누가 감히 하나님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숨으신다고 하여, 누가 그분을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30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왕으로 삼아서 고집 센 민족과 백성을 다스리게 하신들, 누가 하나님께 항의할 수 있겠습니까?

(욥 34:29~30 새번역)

<새번역>은 29절 후반부와 30절 미완성 구문을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그래서 29절 후반부의 ‘민족이나(ועל־גוי)’, ‘사람이나(ועל־אדם)’, ‘다함께(יחד)’가 30절에서 함께 의미를 살리는데 주력하여 번역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완고한 민족을 벌하시기 위해 불경건한 왕을 세우셨다는 의미가 되었다. 이 또한 <개역개정>과 <말씀의 집> 번역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공동번역개정>과 <새번역>은 29~30절을 연결하여 29절만 이질적인 의미로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 두 번역본은 잘못한 백성을 벌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불경건한 왕을 세우셨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은 번역이다.

왜냐하면 이전 문맥은 백성을 핍박하는 불경건한 권세자들의 심판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바로 전 26~28절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듣고 하나님께서 권세자들을 심판하신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갑자기 이 부분에서만 심판의 대상이 권세자가 아니라 백성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태껏 언급한 상황을 정리해보겠다.

첫째, 30절을 26~28절과 의미적으로 연결시키면 중간에 있는 29절이 어색해진다. 29절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26~28절과 29~30절을 구분해야한다.

둘째, 30절 자체는 동사가 없어 해석이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문에 없는 동사를 함부로 추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위 번역본들에서 살펴보았듯이 삽입한 동사에 따라 뜻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없는 동사를 사용하여 의미를 부여한다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고 볼 수 없다.

셋째, 엘리후는 34장에서 하나님의 보응에 대해 설명한다. 그 중 하나님께서 백성을 괴롭히는 불경건한 권세자를 심판하신다고 이야기하는 중이다.

첫째와 둘째 경우를 고려하면 30절을 29절에 종속시키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동사가 없는 30절을 29절의 의미 속에 집어넣고 셋째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불경건한 사람이 왕이 되어 백성들을 옭아매는 것에 침묵하시거나 얼굴을 숨기실지라도 개인이나 민족이나 누가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욥 34:29~30, 사역).

기존의 번역 성경들을 봐도 원문을 해석하려해도 본문의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오랜 고민과 연구 끝에 위 번역이 욥기 34:29~30 원문이 말하고자하는 내용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기존의 번역들과 동떨어진 결과를 갑자기 제시하면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 같아 기존 번역들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때문에 설명이 길어졌다. 양해를 바란다. 다음 시간에는 이어지는 31~32절을 살펴보고 욥기 34:29~32의 의미를 함께 정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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