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9)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9)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6.2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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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까다로운 욥기 34:31~33을 해석해봅니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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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연구] 욥기 34:31~32은 무슨 의미인가?

31 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하였는가

(욥 34:31~32)

31~32절은 엘리후가 욥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욥 당신이 죄를 인정하고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알려달라고 그 악행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겠다고 회개했습니까?’ 이는 엘리후가 욥에게 회개를 촉구하거나 책망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먼저 31절 원문을 살펴보자.

<개역개정> 31절의 “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에서 ‘그대’는 엘리후가 욥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원문에는 3인칭 단수 의문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직역하면 ‘그가 하나님께 말했습니까?’ 또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말했습니까?’이다.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로 번역된 ③번 ‘נשאתי(나사티)’의 기본형은 ‘נשא(나사)’이다. BDB히브리어사전에 의하면 뜻이 ‘to lift, bear up, carry, take’이다. 이에 따라 ‘נשאתי(나사티)’를 가장 기본적인 뜻으로 직역하면 ‘내가 들어올렸다’이다.

그리고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로 번역된 ④번 ‘לא אחבל(로 에흐돌)’의 기본형은 ‘חבל(하발)’이고 부정사 ‘לא(로)’가 있다. BDB히브리어사전에 의하면 뜻이 ‘to bind’이다. 그러므로 ‘לא אחבל(로 에흐돌)’을 직역하면 ‘나는 묶지 않을 것이다’이다. 이에 따라 번역하면 31절은 다음과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어떤 사람이 내가 들어 올렸다고 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까?’

이 말은 무슨 뜻일까? 31절은 번역이 매우 어렵다. 그런데 31절 후반부를 보면 1인칭 화자가 말하는데 32절도 1인칭 화자가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따라서 31~32절이 하나의 의미 묶음이다. 때문에 31절을 해석하기에 앞서 32절의 원문도 함께 살펴보자. 32절의 원문은 “בלעדי אחזה אתה הרני אם־עול פעלתי לא אסיף”인데 단어 뜻과 함께 보면 다음과 같다.

<개역개정>의 32절은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라는 단정적인 의미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원문에는 ‘אם(임)’이라는 가정법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만약 내가 불의를 행했다면’이 보다 적절한 번역이다. 이에 따라 원문을 직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보는 것을 제외하고 당신이 내게 가르쳐주십시오. 만약 내가 불의를 행했다면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입니다.’

32절만 본다면 해석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던 31절이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욥기 34:31~32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원문에 번호로 표기한 ①~⑤의 다섯 부분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①번은 ‘האמר(헤아말)’에서 하나님께 말하고 있는 주어는 누구인가?

②번은 ‘האמר(헤아말)’의 의문형을 어떻게 번역했는가?

③번은 ‘נשאתי(나사티/내가 들어올렸다)’가 무슨 의미인가?

④번은 ‘לא אחבל(로 에흐돌/나는 묶지 않을 것이다)’가 무슨 의미인가?

⑤번은 ‘אם־עול(임 아벨)’의 가정법을 어떻게 번역했는가?

이상의 내용을 염두하고 다른 번역본들은 31~32절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확인해보자.

<개역한글> “①누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③징계를 받았사오니다시는 범죄치 아니하겠나이다 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⑤행하였으면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②한 자가 있느냐

<개역한글>은 하나님께 말하는 존재인 ①번을 3인칭의 ‘어떤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문사를 받아 ‘누가’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②번 의문사는 31~32절의 1인칭을 종속절로 두어 전체를 아우르는 형태로 번역되었다. ③번을 ‘벌을 받음’으로 ④번을 ‘범죄하지 않음’으로 번역하였다. ⑤번의 가정법은 살려 번역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때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개역개정> “①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③죄를 지었사오니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⑤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②하였는가

<개역개정>은 하나님께 말하는 사람인 ①번을 2인칭인 ‘그대’라고 하였다. 문맥에 따라 보면 엘리후가 욥을 ‘그대’라고 지칭한 것이다. ②번 의문사는 <개역한글>과 동일하게 31~32절의 1인칭을 종속절로 두어 전체를 아우르는 형태로 번역하였다. ③번을 ‘죄를 지음’으로 ④번을 ‘범죄하지 않음’으로 번역하였다. 또한 ⑤번의 가정법은 생략하고 평서법으로 번역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따라 <개역개정>은 엘리후가 욥에게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한 적이 없지 않았는가라고 질문한 내용이 되었다.

<새번역> “①욥 어른은 하나님께 ③죄를 고백하고서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약속하신 적이 있으십니까?잘못이 무엇인지를 일러 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시면서, 다시는 악한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②약속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새번역>은 하나님께 말하는 사람인 ①번을 <개역개정>과 같이 욥으로 보았다. 또한 31절과 32절을 반복법으로 이해한 것도 동일하다. 그래서 ②번 의문사를 31절과 32절에 모두 적용하였다. ③번을 ‘죄를 고백하다’로 ④번을 ‘죄를 짓지 않다’로 번역하였다. ⑤번의 가정법은 의역을 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욥이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점을 깨우칠 수 있도록 간구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공동번역개정> “①그런 사람치고 누가 하느님께 자백하여 이렇게 ②말하겠소? "③실수를 ⑤했다면, ④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분명히 가르쳐주십시오. ⑤잘못했다면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공동번역개정>은 원문의 인칭과 문법과 어순을 가급적 살려 번역하려고 노력하였다. 하나님께 말하는 사람인 ①번을 3인칭으로 번역하였고 ②번 의문사를 31절에 한정시켜 한 문장으로 했다. 31절 후반부와 32절의 1인칭 화자의 내용은 삽입절로 인용하였다. 또한 ⑤번의 가정법도 살려 번역하였다. <공동번역개정>은 31절과 32절을 의미적으로 연결하여 이해하였다. 그래서 ③번을 ‘실수하다’로 ④번을 ‘실수하지 않음’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다보니 32절의 가정법이 31절에도 적용되어 ‘실수를 했다면’으로 번역되었다.

이상으로 각 번역본들을 살펴보았다. 이제 바른 해석을 위해 ①~⑤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리해보자.

①번 인칭에 대한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다.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31~32절을 엘리후가 욥에게 한 말로 이해했다. 그러나 원문에 따라 3인칭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본문은 엘리후가 29~30절의 이유로 일반적인 예를 든 것이다.

②번 의문사에 대한 문제는 네 번역본이 모두 일치한다. 31절 후반부에서 32절로 이어지는 1인칭 화자의 내용을 31절 의문사가 있는 ‘하나님께 말했습니까?’의 종속절로 보았다. 이에 동의한다.

⑤번 가정법에 대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32절 원문에는 가정법이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개역개정>이나 <새번역>처럼 31절과 32절이 반복법 혹은 평행법으로 본문을 해석하여 가정법을 생략하는 것은 옳지 않다.

네 번역본들의 ③번 ‘נשאתי(나사티)’와 ④번 ‘לא אחבל(로 에흐돌)’의 번역은 다르지만 의미가 통한다. 네 번역본 모두 31절과 32절을 연결하여 의미를 살리는 번역을 하였기 때문이다. ③번 ‘נשאתי(내가 들어올렸다)’와 ④번 ‘לא אחבל(나는 묶지 않을 것이다)’는 단어의 뜻만으로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쉽지 않다. 때문에 위의 네 번역본들은 모두 31절과 32절을 반복법으로 보고 32절의 뜻으로 ③번과 ④번을 번역하였다. 반복법이라 함은 31절의 내용을 32절에서 다시 반복한 구조라는 말이다.

31절의 이해하기 어려운 두 단어를 32절의 의미로 대체하였다. 그래서 31절의 ③번 ‘נשאתי(나사티)’를 ‘벌을 받음’ 혹은 ‘죄를 지음’ 등의 의미로, ④번 ‘לא אחבל(로 에흐돌)’을 ‘더 이상 죄짓지 않겠다’는 의미로 번역하였다. 이는 비단 한글번역본만의 상황이 아니다. 신뢰할만한 영문번역본들도 동일한 맥락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 번역들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다. ③번 ‘נשאתי(나사티)’와 ④번 ‘לא אחבל(로 에흐돌)’이 지닌 고유한 뜻과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다수의 번역본들이 위와 같이 ③번과 ④번을 번역했기에 조심스러운 마음이 크지만 나는 31~32절이 반복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단어의 뜻이 다르다. ③번 ‘נשאתי(내가 들어올렸다)’와 ④번 ‘לא אחבל(나는 묶지 않을 것이다)’는 분명 고유한 뜻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현대인의 입장에서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는 한 단어가 하나의 뜻만 가지지 않고 다중의 의미를 지닌 고대어이다. 그렇더라도 대게 그 뜻이 핵심의미와 연계성을 가지고 파생된다. 그런데 ③번 ‘נשאתי(내가 들어올렸다)’는 뜻과 ‘벌을 받음’이나 ‘죄를 지음’은 너무 동떨어졌다. 또한 ④번 ‘לא אחבל(나는 묶지 않을 것이다)’도 ‘더 이상 죄짓지 않겠다’라는 뜻과 연계성을 찾기 힘들다.

둘째, 31절은 평서문이고 32절은 가정법을 사용했다. 따라서 문법적으로 31절과 32절은 다르다. 반복법으로 보기 힘들다. 때문에 본문은 기존의 번역본이 가진 의미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에 다른 해석과 번역을 제안하겠다.

31~32절은 29~30절을 이어받은 문장이다. 그 이유는 31절의 시작이 접속사 ‘כי(키)’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כי(키)’는 많은 경우 이유를 나타내는 ‘왜냐하면’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그 뜻으로 쓰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31절이 접속사로 29~30절과 연계된 문장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29~30절을 다시 확인해보자. ‘하나님께서 불경건한 사람이 왕이 되어 백성들을 옭아매는 것에 침묵하실지라도 누가 정죄할 수 있을까?’하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내용 다음에 접속사 ‘왜냐하면’이라는 뜻을 지닌 ‘כי(키)’를 사용하였다면 이어지는 내용은 무엇일까? 아마 하나님을 정죄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이유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진행시킨 후 31~32절을 보자. 원문을 직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왜냐하면 ①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제가 ③들어 올렸으니(נשא)묶지(חבל) 않을 것입니다. 제가 보는 것을 제외하고 당신이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⑤만약 제가 불의를 행했다면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②말했습니까?”(욥 34:31~32, 사역).

③번 ‘들어 올리다’는 뜻의 ‘נשא(나사)’는 물리적인 현상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들어 올리다’는 뜻에서 파생하여 ‘용납하다’ 또는 ‘취하다’ 등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나를 용납하여(נשא) 말하게 하라”(욥 21:3a).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자가 속히 나를 취하시리로다(נשא)”(욥 32:22b 개역한글).

여기에서 ‘נשא(나사)’가 가진 파생된 의미들을 일일이 확인해볼 수는 없지만 두 용례를 보면 ‘נשא(나사)’가 ‘받아들이다’라는 확장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받아들인다는 말일까? 그것은 29~30절에서 제기된 하나님의 침묵을 가리킨다.

④번 ‘묶다’는 뜻을 지닌 ‘חבל(하발)’은 ‘쇠하다’ 또는 ‘볼모로 잡다’ 등의 의미로 쓰였다.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חבל)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욥 17:1).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חבל)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욥 22:6).

이를 통해 ‘חבל(하발)’이 ‘결박하다’ 즉 ‘제한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제한한다는 말일까? 그것은 29~30절의 주제인 하나님의 자유 즉 그의 주권을 가리킨다.

이 두 단어의 뜻을 반영해 전체적인 의미를 살리는데 주력하여 31~32절을 번역해 보겠다. 이전 문맥과 함께 이어서 봐야 의미가 보다 잘 드러나기에 지난 회에서 번역했던 29~30절과 함께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괄호의 내용은 원문에는 없지만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해 보았다.

29~30 하나님께서 불경건한 사람이 왕이 되어 백성들을 옭아매는 것에 침묵하시거나 얼굴을 숨기실지라도 개인이나 민족이나 누가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31~32 누가 하나님께 “제가 (하나님께서 침묵하실지라도) 받아들였으니 (하나님의 주권을) 제한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께서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오. 만약 제가 (하나님께) 불의를 행했다면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까?

(욥 34:29~32, 사역)

이상으로 29~32절의 해석을 마치겠다. 욥기 전체에 비하면 지엽적인 부분의 해석에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엘리후의 말이 욥기 주제의 핵심을 담고 있기에 가벼이 지나칠 수 없다. 또한 본문을 해석하는데 여러 어려움이 겹쳐 있어 설명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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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이 무슨 말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워 어쩔수 없이 주제넘게 번역을 해보았다. 위에서 살펴본 개인적인 번역은 본문의 의미를 드러내려 최선을 다했지만 어디까지나 제안임을 밝힌다. 어학에 뛰어난 고수 분들께서 이 부분의 번역을 정리해주시길 기대해본다. 어찌되었든 이상의 이유로 욥기 34:29~32은 다음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29~30 하나님께서 불경건한 사람이 왕이 되어 백성들을 옭아매는 것에 침묵하시거나 얼굴을 숨기실지라도 개인이나 민족이나 누가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31~32 누가 하나님께 “제가 받아들였으니 제한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께서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오. 만약 제가 불의를 행했다면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까?

(욥 34:29~32, 사역)

엘리후는 보응을 집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유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자유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다. 설사 주권자의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겸손하게 지혜를 구하는 사람조차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응을 제대로 실행하시지 않는다고 따지는 욥을 질책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엘리후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께서 그대가 거절한다고 하여 그대의 뜻대로 속전(שלם)을 치르겠느냐 그러면 그대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그대는 아는 대로 말하라”(욥 34:33).

여기에서 “그대”는 욥을 가리킨다. “속전”으로 번역된 ‘שלם(살람)’은 레위기에서 동일한 대가로 보상한다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짐승을 쳐 죽인 자는 짐승으로 갚을 것이며(שלם)”(레 24:18).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שלם)”(레 24:21a).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대가 거절한다고 하여 그대의 뜻대로 속전을 치르겠느냐”라는 부분을 번역하면 ‘당신이 거부하였기 때문에 그가 당신에게 갚아야한단 말입니까?’정도 일 것이다. ‘속전’은 대개 히브리어 ‘כפר(코페르)’를 번역한 결과이다. 위 구절에서 “속전”은 해석상 신학적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조금 과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33절은 욥이 하나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께 보상을 요구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욥은 하나님께 무엇을 거부했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갚아주기를 원한 것일까? 욥은 도덕적인 온전함과 율법준수로 의를 추구했다. 그 의로 하나님께 나아가려 했다. 그리고 설사 잘못이 있다면 자신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엘리후는 이러한 욥의 생각을 들추어냈다. 욥은 엘리후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다소 무겁고 길었던 본문연구를 마쳤다. 다음 시간에는 엘리후의 두 번째 이야기를 요점정리하려 한다. 계속해서 함께 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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