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30)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30)
  • 황대원 목사
  • 승인 2019.07.0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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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후의 두 번째 이야기를 정리합니다.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팟캐스트 타브의 '바이블코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황대원 목사

(6) 욥은 철저히 감찰 받아야한다

엘리후는 욥에게 하던 말을 멈추고 다시 청중들에게 이야기한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욥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지 알지 않느냐고 묻는다.

“슬기로운 자와 내 말을 듣는 지혜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내게 말하기를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욥 34:34~35).

엘리후의 설명을 들어보니 어떠한가? 여러분이 지혜 있는 사람이 되어 엘리후의 질문에 답하길 바란다. 욥은 진정한 지혜자인가? 욥은 의인인가?

 

[본문연구]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욥 34:36)의 의미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בחן)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욥 34:36).

엘리후가 한 위의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엘리후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시험’을 욥이 현재 받고 있는 고난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욥이 지금 받고 있는 고난을 계속 받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시험’으로 번역된 ‘בחן(바한)’은 구약성경에서 대게 ‘감찰’ 또는 ‘분별’ 등으로 번역되었다.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בחן)하시고”(시 11:5a).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감찰(בחן)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렘 11:20a).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בחן)하시고”(대상 29:17a).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בחן)하나니”(욥 34:3).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시험’은 욥의 고난을 가리키기보다 하나님께서 욥의 마음을 살피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엘리후는 욥이 악인과 다를 바 없는 말들을 했기 때문에 철저하게 조사받기를 원한다고 한 것이다.

현시대의 교회에서 ‘시험’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하나는 연단을 목적으로 하는 훈련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기준을 평가하기 위한 테스트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욥이 겪는 시련은 연단을 위한 훈련도 평가받기 위한 테스트도 아니다. 엘리후에 의하면 욥의 시련은 욥이 가진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בחן(바한)’은 ‘감찰’이라는 번역과 개념이 보다 적합하다.

 

[본문연구]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다’(욥 34:37)의 의미

“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욥 34:37).

엘리후는 욥이 철저하게 조사받기를 원한다고 한 뒤 위와 같이 말했다. 여기에서 ‘그’는 욥을 가리킨다. 그런데 욥이 죄를 짓고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께 부정적인 말을 많이 했다고 지적했다. ‘욥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했다’는 말은 여태까지 엘리후가 욥의 주장을 지적했기 때문에 이해가 된다. 그런데 ‘우리와 어울리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먼저 ‘우리’가 누구인지 생각해보자. 욥기 34:34~37은 엘리후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엘리후와 욥의 문제점을 아는 지혜자들을 가리킨다.

이어서 그들이 욥과 ‘어울렸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어울려”로 번역된 “בין(바인)”은 BDB히브리어사전에 의하면 뜻이 ‘between, among, in the midst of’이다. 이에 따르면 “בין(바인)”은 ‘우리 가운데서’ 또는 ‘우리 사이에서’라는 뜻이다. <개역개정>의 “우리와 어울려”는 친목의 의미가 부여된 의역이다.

그렇다면 ‘손뼉을 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손뼉을 치며”로 번역된 ‘ספק(사파크)’는 구약성경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용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ספק) 언약하였음이라”(사 2:6b).

②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ספק)”(렘 31:19b).

③ “그가 그 토한 것에서 뒹굴므로(ספק) 조롱거리가 되리로다”(렘 48:26b).

④ “모든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너를 향하여 박수치며(ספק)”(애 2:15a).

여기에서 ①번은 언약을 맺을 시에 의기투합한 상황을 ‘손을 잡아’로 표현한 것이다. ②번은 스스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볼기를 ‘손으로 때린’ 것이다. ③번은 토사물에 ‘손을 접촉’하였다는 의미이다. ④번은 문맥상 빈정거리며 ‘손뼉을 마주치는 행위’이다.

이상의 용례들을 살펴보면 “ספק(사파크)”는 단순히 박수를 치는 행위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손을 사용하여 무언가를 접촉하거나 타격하는 등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37절의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는 현대인이 생각할 수 있는 하이파이브나 박수를 치는 기쁨과 화합의 의미가 아니다.

전후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사람들 가운데서 다른 이들을 가격하는 행위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욥이 엘리후와 지혜자들을 공격한다는 뜻이다. <공동번역개정>은 이러한 의미로 “우리에게 주먹을 휘두르고”라고 번역하였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거역하기까지 하며 우리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하느님께 마구 입을 놀리는 사람이다”(욥 34:37 공동번역개정).

따라서 37절의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는 욥의 주장이 엘리후를 비롯한 지혜자들 사이에서 충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7) 엘리후의 두 번째 이야기 전체 정리

엘리후의 두 번째 이야기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길어졌다. 엘리후의 두 번째 이야기에는 해석이 쉽지 않은 구절이 연속해서 있는데 기존의 번역들에는 그 뜻이 정확하게 담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존 번역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본문의 진의를 제시하려니 설명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양해를 바란다.

지난 2회에서 지엽적인 부분을 확대해서 보았기에 엘리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체적인 주제의 흐름을 놓칠 수도 있다. 그래서 엘리후가 두 번째로 한 말의 요점을 정리해보겠다.

욥은 원고가 되어 하나님을 피고인으로 세우고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자신이 의로움에도 부당하게 억압받고 있다고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고 고소했다. 이에 엘리후가 하나님의 변호인으로 나섰다. 그러면서 배심원인 다수의 지혜자들에게 판단을 요청하며 변론을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행하지 않으시고 공의로운 분이시며 보응으로 세상을 다스릴 자격과 능력이 있으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보응을 집행하실 때 권세자들이 심판 받는 이유는 그들이 백성을 억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사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잘못하신다고 말할 권리나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부당하다는 욥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이처럼 두 번째 설명을 통해 하나님의 변호를 마친 엘리후는 욥이 스스로 주장하는 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다음 시간에는 욥의 세 번째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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