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11] “쾅! 쾅! 쾅!”(계 3:14-22)
[요한계시록강해11] “쾅! 쾅! 쾅!”(계 3:14-22)
  • 김상학 목사(안산 성경제일교회)
  • 승인 2019.07.1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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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들어가는 말

이번 설 명절에는 두 동생 모두 명절이 지난 후에야 올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외국으로, 또 하나는 회사 근무가 잡혀 있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계실 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 왔는데 이번에는 못 온다고 하니 마음이 허전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동생들을 더 챙기고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의 목회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온전히 흐르게 해야만 주일마다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변함없이 흐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럴 때에 주일마다 명절이 되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명절에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을 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 신앙의 성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습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주님의 모습이 나타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부족할지라도 회개하는 심령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가난한 자의 심령으로 주를 향할 때 주께서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1. 라오디게아 교회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하여 주님의 마음을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라오디게아 교회라고 하면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교회로 주님께서 토하여 버리겠다.”고 하신 교회입니다. 이처럼 가혹한 책망을 들은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뿐입니다.

주께서 ‘미지근하다’고 표현 하신 것은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지역적 특성과 관계가 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부요했지만 물이 부족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곳에서 물을 끌어와야 했는데 7~8Km 떨어진 북쪽 ‘히에라폴리스 온천’에서 뜨거운 물을 끌어왔고, 남동쪽으로 18km 떨어진 ‘골로새 계곡물’을 끌어다 식수로 사용했습니다. 긴 수로를 타고 라오디게아에 도착했을 즈음에 그 물은 뜨거운 물도, 차가운 물도 아닌 미지근한 물이 되었고, 수로를 타고 오면서 청정한 물은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도시의 특성을 아시는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미지근한 물’과 같다고 하시면서, 처음의 뜨거움, 처음의 그 차가움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에베소 교회에게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주신 원 복음은 뜨거운 것이었고, 또는 차가운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전달되는 과정에서, 또는 그 말씀을 받은 이들이 은혜에서 멀어져 도시 생활에 젖어 들면서 미지근하게 변질되었음을 지적하셨던 겁니다.

너무나 변질 되어서 토할 정도로 미식 거린다는 거지요. 이 정도 되면 토해야 합니다. 토하지 않으면 괴롭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참고 계시는 겁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아버지 마음이지요. 탕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아버지 마음 말입니다(눅 15:11-32).

 

2. 왜 변질되었나?

도대체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미지근해졌을까요?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도 모르게 그 도시의 환경에 젖은 겁니다. 라오디게아는 ‘부자 도시’입니다. AD 17년의 지진에 소아시아의 많은 도시들이 무너졌고, 이때에 로마 황제의 도움을 받아 도시들이 재건되었습니다. 그리고 AD 60년에도 지진 피해가 있었는데 라오디게아는 황제의 도움을 받지 않습니다. 라오디게아는 홀로 재건할 만큼 재정이 충분하다는 것이지요. 정말 부요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부요의 정신적 마인드가 교회에 흘러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서도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는 흔히 세상 사람들이 ‘자수성가(自手成家)’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몰라서 그런다지만 교회가 자수성가를 운운한다면, 이는 정말 주님을 견디지 못하게 하는 막말인 게지요. 주님이 토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주님이 토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 부요함에 젖어 ‘가난한 심령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가 부자로 살든지, 가난하게 살든지 그 심령은 가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게지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못 산다’는 고백입니다.

은혜를 갈구하고 또 갈구해도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아예 주님 안으로 들어가서 살겠다고 하는 고백이지요. 결국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는 거만한 마음과 대조되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주님은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다는 고백, 그리고 주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고백, 심령이 가난한 자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교회로 하여금 천국의 은혜를 누리게 하고 싶으신 게지요.

 

3. 주님의 처방전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치부를 다 드러내시고 그에 따른 처방전을 주셨습니다.

17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도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부자라고 착각하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부자가 아니라 오히려 곤고하고, 가난하고, 가련하고, 눈 멀고, 벌거벗었다고 말씀합니다. 사실상 그들이 자랑하는 것들이 수치를 가져다주고 지옥 불을 더 뜨겁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게지요. 그렇기에 주님은 라오디게아식으로 전심으로 주를 찾으라고 권하셨습니다.

18절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일반적으로 ‘금’은 사람들에게 부요의 대명사입니다. 라오디게아는 금이 많았던 도시였습니다. 주전 1세기에 이 도시에 살던 유대인들이 약 9kg의 금을 예루살렘 성전에 성전세로 보내려다가 몰수된 사건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 그런 금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지요. 그 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로 연단한 금, 즉 고난 가운데서도 주의 은혜로 살겠다는 ‘정금 같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도 귀하다.”

또한 라오디게아의 목자들은 흑양의 털로 짠 모직을 개발했습니다. 그들은 고급스런 모직 패션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벌거벗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후면 곧 벗고 불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가련한 사람들인 게지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이 입혀 주시는 흰옷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 하나님 잔치의 예복을 입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한 가지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말씀 중에 ‘안약’이 나옵니다. 이 ‘안약’ 역시 라오디게아의 자랑거리였습니다. 라오디게아에는 의술학교가 있어서 의사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안과는 라오디게아 의술학교의 특성화된 분야였습니다. 이곳에서 제조된 안연고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 약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안약으로 눈을 치료 받으면 무엇하냐?”고 반문 하시는 겁니다. “정작 봐야 할 주님을 못 보는 장님”이라는 거지요. 정말 중요한 안약은 의술학교의 안약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안약을 발라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금, 흰옷, 안약 모두 라오디게아스러운 단어들입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을 콕 집어서 그 자랑이 라오디게아를 미지근하게 했고, 주님을 메스껍게 하고, 토악질 나게 했으니, 그것을 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원천적 은혜, 다시 말해서 온천수와 같은 뜨거운 은혜, 계곡 폭포수의 차가운 은혜를 붙잡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주시는 부요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4. 사랑으로 문을 두드리는 예수 그리스도

주님은 토악질 나는 라오디게아를 참으셨습니다. 과연 주님이십니다. 그 토악질을 어떻게 참습니까? 사랑하니까 참을 수 있습니다.

19-20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 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은 그런 라오디게아를 사랑하신답니다. 그래서 토하여 버리지 않고, 책망하고 꾸짖고 회초리로 치시는 거랍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식사하고 싶답니다. 주객이 전도된 꼴 아닙니까?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이 머리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문밖에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세상 부요에 젖어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대로 가다가는 분명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토하여 내치고 싶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문을 두드리시는 겁니다. 토하여 내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더러운 라오디게아를 회개시키고 함께 식사하고 싶으시다는 겁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21절을 보면, 만일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에게는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시겠답니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습니까? 토하여 내칠 자와 함께 식사하는 것도 과분한데,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을 영광을 주시겠다니요. 이는 세상을 심판할 권세를 주시겠다는 겁니다. 완전한 지위 회복이지요.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쾅! 쾅! 쾅! 쾅! 쾅! 두드리는 것은 착각의 잠에서 깨어나라는 것이지요. “미지근한 것은 나의 복음이 아니다 나의 복음은 원래 뜨거운 것이다. 그리고 정신 나도록 차가운 것이다.”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너희들은 부요한 것이 아니라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고 내가 주는 의의 흰옷을 입어야 한다. 정금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주님을 똑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고 다급하게 외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서두에서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분”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이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굉장히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주님은 주께서 하신 말씀에 대하여 언제나 아멘이신 분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다면 지시는 겁니다. 부활하신다면 부활하신다는 게지요. 주님의 삶으로 다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에 대하여 반드시 아멘이신 분입니다. 그리고 더 강조하기를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3중 강조입니다.

다시 말해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겁니다. 게다가 ‘창조의 근본’이시라고 했는데, 이는 성자 하나님으로써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함께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란 뜻입니다. 이 창조가 말씀으로 된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게지요.

토하여 내치고 싶을 정도로 괴롭지만 그 백성을 위한 구원 사역, 십자가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창조의 시작이신 예수님이 이제 재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이 일에 아멘이신 주님입니다. 이 일에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십니다. 우리의 모습이 라오디게아 교회 못지않더라도 쾅!쾅!쾅!쾅!쾅!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고 문을 열면 주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원초적인 뜨겁고도 시원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 순간 세상 물결에 젖어 버리고 맙니다. 곧 나는 부요하다. 살만 하다 하면 뜨거웠던 믿음이 식어버리게 되고, 냉철했던 판단도 흐려져서 미지근하게 되고 맙니다. 서두에 아버지의 마음이 내게 흘렀어도 여전히 그 마음으로 형제를 대하지 못했던 모습과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의 형제자매에게 다하지 못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은 어느덧 미지근하게 되었다는 게지요.

주님이 메스꺼워할 존재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다시금 아버지의 마음을 그리게 되었고 그 마음으로 동생들의 마음을 헤아린 게지요. 그리고 그 마음으로 목회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이 명절에 제게 주신 은혜입니다.

오늘 쾅!쾅!쾅!쾅!쾅! 두드리시는 주의 음성을 들으셨습니까? 그 소리를 듣는 여러분이 진정 복된 자요. 주님의 잔치에서 함께 먹고 마실 주의 백성들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주의 은혜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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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학 목사는 백석신학교와 백석신학연구원을 졸업하고 안산 성경제일교회를 개척하여 23년째 섬기고 있다. 목회 10년차에 안산전도학교를 설립하였고 미자립교회 네트워크를 통해 안산시 복음화에 힘썼다. 목회 15년차, 교회 분열의 시련기를 거치면서 "암 발병과 함께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기도하던 중, 한국교회의 교회성장운동의 폐단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성경강해설교학(MA) 과정을 거쳐 현재 일반대학원 신약신학(Th.M)을 전공하며 후반기 목회의 사역에 기쁨으로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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