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14]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예수”(계 5:1-14)
[요한계시록강해14]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예수”(계 5:1-14)
  • 김상학 목사
  • 승인 2019.08.18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들어가는 말

어느 용하다고 소문난 점집에 크리스천 고객이 20%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중에는 교회의 중직자도 있는 것 같아 주님의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이런 곳을 찾는 이유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요행수를 찾고자 함이겠지요. 그러나 인생의 생사화복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다시 원 상태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망하기로 결정된 사단의 종을 찾아가다니요. 이는 십자가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지요.

4장에서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 앞에서의 예배를 살폈습니다. 즉 성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이었습니다. 이제 5장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 조명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비교할 때 조금도 빠지는 없이 동등하게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요한이 보고 있는 그 환상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1. 하나님의 계획

요한은 5장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일곱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가 들려 있는 것을 소개합니다(5:1).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두루마리는 “반드시 속히 될 일”(1:1; 1:19; 4:1)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 두루마리는 안팎으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가감 없이 행하실 완전한 책이라는 의미입니다(cf, 겔 2:10).

또한 그 두루마리가 오른손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강한 능력과 주권으로 이 책에 기록된 것을 이루신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보여 주시기 전에는 인간이 절대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그 일곱 인을 뗄 자는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아무도 없었습니다(2-3절).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예언서를 내놓은 여러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는 자기가 인을 떼는 자로 자처하고 나선 이들도 있었습니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억지로 풀다가 멸망한 게지요. 이제 우리는 두루마리를 취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인을 뗄 자

4, 5절을 함께 읽을까요?

4-5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요한은 인을 뗄 자가 없다는 사실에 크게 울었습니다(4절). 그때에 장로 중의 한 사람이 “유대지파, 다윗의 뿌리가 그 인을 뗄 것이라”고 요한에게 말합니다.

“유대지파의 사자”란 창세기 49장 9절에서 야곱이 그의 아들 유다를 축복한 내용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야곱은 유다를 향해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라고 축복했지요.

또한 “다윗의 뿌리”는 이사야 11장 1, 10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에서 가져왔습니다. 이는 유다지파, 다윗의 가문을 통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사실과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치 사자와 같이 부활 승리하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인을 떼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겁니다.

6절은 인을 떼기에 합당한 분이 어떤 분인지 소개합니다.

6절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은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양이 일찍 죽임을 당했다”는 표현은 유월절 어린양의 이미지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 것이지요.

‘일곱 뿔’은 ‘전능’을 상징합니다.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능력이지요. ‘일곱 눈’은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써 성령을 의미하며 동시에 모든 것을 꿰뚫어 아는 통찰력을 뜻합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어린 양은 다름 아닌 성자 하나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찬송받기에 합당하신 성삼위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보는 게지요.

그 어린 양이 나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셨습니다. 어린 양은 승리한 사자의 모습으로 일곱 뿔의 권세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는 일곱 눈, 즉 성령님과 함께 그 인봉을 떼시면서 새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밧모 섬의 요한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받은 모든 성도들이 얼마나 고무되었을지 짐작이 됩니까? 이는 기대와 흥분으로 주를 바라보게 하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새 창조의 종말적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거기에서 한없는 위로와 소망과 미래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야. 그래 다시 시작하는거야!” 할렐루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두루마리의 인을 뗄 자격이 있습니다. 천사도, 장로도, 그 어느 누구도 그 인을 뗄 수 없습니다. 오직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어린 양의 실체가 밝혀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보좌 앞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 만군의 천사들, 그리고 모든 만물이 1부, 2부, 3부로 다 함께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대 서사시의 서곡이 울려 퍼지는 겁니다. 그 찬양을 들어볼까요?

 

3. 새 노래

먼저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의 찬양입니다.

9-10절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그들은 먼저 어린 양이 두루마리의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찬양하였습니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그 인봉을 뗄 자가 없었는데 보좌 앞의 어린 양이 그 인봉을 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어린 양이 곧 예수 그리스도, 곧 성자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둘째, 그들은 어린 양의 구속사역을 찬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써 대가를 치르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나라를 이루게 하셨고, 제사장이 되어 땅 위에서 다스리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벧전 2:9).

이로써 우리는 구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이란 단순히 죄를 용서받은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요, 그 나라의 제사장이 되어 이 땅을 다스리는 자로 세움을 입는 것입니다. 이는 처음에 아담에게 주어졌던 그 신분입니다.

아담에게 에덴동산이 주어졌고, 제사장의 신분으로써 그 땅을 다스렸지요.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류가 죄를 범하여 그 지위를 상실했다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원래의 지위로 회복된 것입니다.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 앞의 천사들과 이십사 장로들의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시죠? 맞지요? 우리가 주님을 전심으로 찬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 찬양은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의 찬양에 대한 천만 천사들의 화답송입니다.

12절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찬양하니, 천만 천사가 화합하는 찬양을 드린 게지요. 그들이 찬양한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속성들입니다. 그런데 이 천사들의 찬양이 다윗의 감사기도에서도 발견됩니다.

대상 29:11-12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과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는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천만천사가 예수 그리스도께 올려드린 찬양은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찬양과 동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뜻이지요. 당연히 찬양을 받으셔야 하겠지요?

세 번째 찬양은 모든 만물의 대 합창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온 우주만물의 찬양이지요. 대 자연의 향연입니다. 들어볼까요?

13-14절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천만천사의 찬양에 이어 온 우주 만물도 “맞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멘!”을 외친 게지요. 와~ 굉장하지 않습니까? 제가 설악산의 대승폭포를 보고 하나님의 솜씨를 찬양하니 어떤 분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았냐고 하더군요. 만약 그 자리에 이과수폭포를 본 분이 있었다면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았다고 한 분도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국내 폭포만 본 저로서는 기죽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이 어우러져 어린 양과 사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 하는 것을 믿음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와~ 이는 정말 엄청난 것입니다. 이 엄청난 찬양의 대 향연 앞에 처음 1부 찬양단이었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아멘하며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14절).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박수로 영광 돌립시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우리를 구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일곱 눈으로 살피시면서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면서 그리고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그 속성으로 우리의 승리를 위해 일하시고 계시기에 더더욱 찬양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알아요. 근데 찬송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다지 와 닿지는 않네요.’라는 독백이 올라오지 않나요? 찬양을 하긴 하지만 임팩트가 없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에게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요? 8절은 우리의 실존적 기도를 들으시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8절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는데 이것이 곧 성도의 기도라는 거지요. 금 대접에 성도의 기도가 채워졌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아주 소중히 여기신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 올려지면,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으로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이지요. 그러니 당연 성도는 모든 원수 마귀로부터 승리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나가는 말

서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를 찾을 일이 아니지요. 또는 황제우상을 섬길 일도 아닙니다. 웅장하기로 소문난 제우스 신상이나, 아데미 여신을 따를 일도 아니지요. 오늘날로 말하면 사람이 만들어 세워놓은 신상을 따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족하지요? 그렇습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계획인 새 창조 역사의 인을 떼시는 분이요, 우리를 구속하신 분이요.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 천만천사, 모든 우주 만물이 찬양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중에 우리 교회는 모든 우주만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서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기도를 받으시고 모든 필요에 풍성한 대로 우리의 쓸 것을 채우실 줄 믿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주님의 부요함으로, 주님의 지혜로, 힘과 능력으로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도록 응답하실 것입니다. 오직 예수,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리는 주의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진정한 찬송의 주인공이 되길 축원합니다.


  •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18-1 401-51호(예관동, 비즈헬프)
  • 대표전화 : 010-7551-3091
  • 팩스 : 0540-284-309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지숙
  • 법인명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제호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03
  • 등록일 : 2018-06-15
  • 발행일 : 2018-07-01
  • 발행인 : 윤지숙
  • 편집인 : 윤지숙
  •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경과삶이야기 <울림>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oshuayoon72@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