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예수의 죽음] 첫째마당: 죽음과 기억(2)
[나사렛 예수의 죽음] 첫째마당: 죽음과 기억(2)
  • 김인철 목사(예슈야성서연구원)
  • 승인 2019.09.0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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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원문 대조와 네러티브 읽기의 유익을 설명하고 있는 김인철 목사(예슈아 성서연구원 대표)
▲예슈아 성서연구원 대표 김인철 목사 

 

IV. 기억의 상품화

상업주의는 기억을 왜곡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댄 브라운이 쓴 소설 <다빈치 코드>는2003년 3월 출간된 후 40주 연속 뉴욕 타임즈 베스트 셀러였고, 세계 각국에서 5,000만부 이상 판매되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으면서 소설 못지 않은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해서 자녀를 두었으며, 프랑스로 건너간 막달라 마리아가 아들을 메로빙거 왕가의 일원이 되게 했고, 이들 혈통을 없애려는 오푸스 데이라는 모임과 그들을 보호하려는 시온 수도회가 암투를 벌인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보다 먼저 출간된 <성혈과 성배(Holy Blood, Holy Grail)>와 표절 시비가 붙었으나, 법정에서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다빈치 코드>와 <성혈과 성배>는 내용상 유사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성혈과 성배>가 인용했고, 프랑스 국립 박물관에서 실제로 발견된 메로빙거 왕조의 비밀문서는 가짜였다는 것이다.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3인조 중 하나였던 필립 드 셰리시는, 인세 문제로 주범 피에르 플랑타르30)와 다툰 끝에1979년 그 문서가 날조된 것임을 폭로했다.

<성혈과 성배>의 저자는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님을 알고도 출간했으며, BBC 방송은 1979년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방송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나중에 플랑타르 자신도 스스로를 메로빙거의 왕으로 둔갑시켰으며, 시온 수도회는 바로 자신들이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댄 브라운은 마치 이 이야기가 확인된 사실인 것처럼 꾸미고 있다.31) 전형적인 팩션 소설인 <다빈치 코드>는 일반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음모 이론, 스릴러, 영지주의, 신비주의, 선정성 등을 버무려 예수의 죽음 기억을 상품화하는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이 자극적인 문화 콘텐츠의 소비자가 되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다큐멘터리 영화 장르로까지 확산되었다.32) 2007년 디스커버리 채널은 영화 제작자 제임스 캐머런과 심차 자코보비치 감독이 만든 영화 <예수 가족의 무덤(The Jesus Family Tomb)>을 방영했다.33) 1980년 예루살렘 근교 탈피옷의 한 주택 지하 공간에서 발견된 10개의 유골함이 예수의 가족 것이라는 주장을 담은 것이다. 직접 발굴에 참여 했던 요세프 가트 박사의 미망인인 루스 가트 여사는 남편이 생전에 그 무덤이 예수 가족의 것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탈피오트 무덤에서 발견된 10개의 유골단지 가운데에서 `요셉의 아들 예수' `마리아' `요세' `마리암네’라는 이름에 주목한다. 여기서 마리아는 예수의 모친, 요세는 예수의 형제, 마리암네는 예수의 아내였던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여러 이유에서 예수 가족의 무덤이었을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1세기에 가장 흔한 이름 중 여섯 번째였고, 당시 여성 중 21%가 마리아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예수라는 이름이 새겨진 유골함에서는 DNA가 추출되지 않았다. 따라서 유골함의 주인인 예수와 마리암네가 부부관계였는지 증명할 수 없다.34) 그리고 예수라는 이름이 적힌 유골함은 초라한 형색이어서, 과연 예수의 제자들이 메시야로 믿던 스승을 그런 유골함에 모셨을지도 의문이다.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이름도 기독교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 더구나 제임스 캐머런은 2002년 골동품 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야고보 유골함>이 이곳에 있다가 도굴되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야고보 유골함에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비록 2012년 이스라엘 법정은 <예수의 동생>이라는 문구가 위조임을 확증할 수 없다고 최종 판결했지만, 이스라엘 유물청은 <예수의 동생>이라는 문구가 명백히 2000년대에 추가로 새겨졌다고 판단했다.35)

그리고 탈피옷 무덤에서 발견된 유골함 중에 <마태>라는 이름이 새겨진 것도 있었다. 그곳이 예수 가족의 무덤이었다면, 마태라는 이름의 인물이 왜 함께 매장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초기에 무덤을 발견했던 바르 일란 대학교 고고학과 아모스 클로너 교수는 예수의 가족이 나사렛에서 살다가 베들레헴에 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탈피옷에 무덤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가트 박사와 함께 탈피오트 무덤 발굴에 참여했던 시몬 깁슨 박사와 미국 듀크대에서 유대학을 가르치는 에릭 마이어스 교수도 탈피오트 무덤이 예수와 관련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깁슨 박사는 가트 박사가 자신에게 그 무덤이 한 번도 예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카메론과 심차 자코보비치는 댄 브라운처럼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부부 관계였다는 전제를 가지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V. 기억의 미래

현대 사회에서 기억은 가장 인간다운 행위에 속한다. 기계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총아인 스마트 폰은 인공 지능과 연계되어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대신 기억해준다. 길을 찾아가거나 연락처를 찾거나 음악을 듣고 싶을 때도 명령만 내리면 된다. 기계가 대신 기억해주기 때문에 뇌에 저장해둘 필요가 없다.

아마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뇌 구조는 아날로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것과 분명히 다를 것이다. 떠올림과 망각을 반복하면서 기억을 업데이트 하지 않아서 뇌가 퇴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의 미래는 밝다고 볼 수 있다. 기억을 사용해서 인간다움을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인간다운 것이 가장 미래적인 것이다. 어쨌거나 기억은 종교를 살아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경전 암송과 베껴 쓰기, 종교력에 따른 축일 지키기, 성지 순례 등의 기억 행위가 모든 종교에서 발견되는 이유이다. 기독교 또한 사순절 행사, 성찬 예식, 성지 순례 등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 행위로 생명력을 이어간다.

하지만 미래가 반드시 밝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관습은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관습은 집단적 기억을 공유하는 틀인데, 그것이 사고의 틀마저 제한하기 쉽다. 오래 전 관습이 만들어지던 시대의 틀 안에서 사고하도록 강요하는 경우이다. 단적인 예로 성지 순례의 하이라이트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들 수 있다.36) 순례자들은 제 1처 빌라도의 사형 선고 기념 교회에서부터 매 처에 세워진 기념 교회들을 방문하며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한다.37) 

그리스도가 짚었다는 바위가 있는 제 5처와, 그리스도가 무릎을 꿇어 넘어졌다는 바위가 있는 제 9처는 항상 인기가 높다. 물론 비아 돌로로사 길이 시작되는 채찍 교회는 언제나 순례자들로 북적이면서도 비장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만약 비아 돌로로사 출발 지점인 제 1처와 제 2처가 역사적 실재와 거리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비아 돌로로사 상당 부분의 수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을 것이다.

비아 돌로로사는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 병영인 안토니오 요새에서 심문한 뒤 사형을 언도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전제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체포되던 밤부터 이튿날 정오 무렵 사형 언도를 받기까지 숨가쁘게 진행되었던 과정을 시뮬레이션 해보면, 안토니오 요새보다는 헤롯의 왕궁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고고학자 시몬 깁슨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빌라도의 선고가 헤롯 왕궁에서 행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38) 

헤롯 왕궁은 꼭 같이 생긴 두 개의 건물이 뜰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헤롯 안디바가 빌라도에게 건물 한 채를 내주어 무교절 기간 동안 머무르게 했을 개연성이 있다. 그렇기에 최초로 그리스도가 빌라도에게 끌려 왔을 때 관할지를 따져 헤롯에게로 즉시 보냈고, 헤롯은 잠시 심문한 뒤 다시 그를 빌라도에게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빌라도가 헤롯의 왕궁에 머무르지 않고 안토니오 요새에 머물렀다면 그 모든 일들이 짧은 시간에 일어나기에 시간적으로 충분하지 않다. 흥미롭게도 복음서는 그리스도가 정죄 되던 날 있었던 특이한 일에 대해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고 기록했다.39)

헤롯이 빌라도에게 왕궁 일부를 사용하게 했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구나 빌라도가 심문 장소 밖에 모여 있는 군중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며 협상을 시도했는데,[40] 폐쇄된 구조인 안토니오 요새보다는 야트막한 담장으로 둘러 싸인 헤롯 왕궁이 훨씬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헤롯 왕궁은 가야바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따라서 가야바의 집에서 그리스도를 밤샘 심문하고, 새벽에 성전 안 산헤드린 방에서 정죄한 다음 헤롯 왕궁으로 바로 끌고 갔을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헤롯 왕궁에서 빌라도에게 사형 언도를 받은 사실이 입증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시대에 비아 돌로로사 코스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믿음과 전통적 순례 방식이 2000년 동안이나 섞여 내려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통적 순례 코스를 바꾸면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믿음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41) 

그런데 비아 돌로로사 외에도 이스라엘에 있는 저명한 성지들은 전통적 관습에 따랐을 뿐, 학문적 검증을 거쳤다고 보기 어려운 곳이 많다. 여기에 ‘성지 순례’와 ‘성지 답사’ 사이에 간격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 둘 사이의 간격을 얼마나 좁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즉, 이성적 접근을 허용하면서도 신앙적 감격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디지털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기억을 새롭게 업데이트 하면서도 파일이 없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기억의 미래는 기억을 전승하는 자에게 달려 있다. 나사렛 예수의 죽음을 새삼스럽게 다루는 이유도 기억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왜곡과 상품화를 경계하면서도 관습의 굴레에서 자유롭도록 기억을 재창조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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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30) 플랑타르는 반유대주의자, 나치동조자, 사기 혐의가 있는 정신분열 환자였다.

31) 신성욱, 다빈치 코드가 뭐길래? 생명의 말씀사, 2006년, 49-51쪽.

32) 상업 영화이기는 하지만, 한글창제의 배경을 보여주려 했던 영화 <나랏말싸미>는 세종 대왕보다 신미 스님을 더 부각시켰다는 이유로 학계와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팩션이 흥행의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33) 영화는 책으로도 만들어 졌다. 심차 자코보비치, 찰스 펠리그리노 지음, 강주헌 옮김, 예담, 2007년.

34) 카메론이 마리암네의 것으로 주장한 유골함의 ‘마리아메노우 마라’를 최근 많은 학자들은 ‘마리아메 카이 마라(마리암네와 마르타)’로 읽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그 유골함은 두 모녀 두 의 것이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의 본명이 ‘마리암네’였다는 주장은 4세기에 씌어진 ‘빌립행전’을 근거로 한 것인데, 막달라 마리아를 마리암네로 부른 사람은 2세기의 교부 히폴리투스 한 사람 뿐이었다(시몬 깁슨 지음, 지음, 강주헌 옮김, 예루살렘의 예수, 청림출판, 2010년, 248-51쪽)

35) 이스라엘 유물청은 과학적 판단을, 대법원은 정치적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36) ‘슬픔의 길’ 혹은 ‘고난의 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빌라도로부터 사형 언도를 받았던 곳에서부터 시신을 안치했던 무덤에 이르는 너비 2m 길이1.5km의 길을 가리킨다.

37) 제1처 빌라도 선고 교회, 제 2처 채찍 교회, 제 3처 첫 번째로 넘어진 곳, 제 4처 모친 마리아를 만난 곳, 제 5처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진 곳, 제 6처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준 곳, 제 7처 두 번째로 넘어진 곳, 8처 예루살렘의 딸들을 위로한 곳, 9처 세 번째로 넘어진 곳, 10처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옷 벗긴 곳, 11처 못 박힌 곳, 12처 십자가에서 운명한 곳, 13처 제자들이 시신을 내린 곳, 14처 시신을 안치한 무덤(10처부터 14처까지는 성묘교회 내에 들어 있다).

38) 시몬 깁슨, 앞의 책, 139-56쪽.

39) 눅 23:12.

40) 요 19:4-6.

41) 같은 원리를 ‘창조 신앙’에도 적용할 수 있다. 보수적 신자들은 창조 과학자들이 제공하는 바 지구의 역사가 1만년 안팎이라는 소위 ‘젊은 지구 이론’에 천착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창조신앙’과 ‘창조 과학 모델’이 한데 섞여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으면서도, 젊은 지구 이론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 자세한 것을 알기 원하면 존 H. 왈튼 저, 김 인철 역,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 그리심, 2011년을 읽어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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