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는 지렁이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 나는 지렁이 같은 존재입니다!
  • 박진기 기자
  • 승인 2018.07.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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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실한 여정
새물결플러스 김요한 대표/ 『지렁이의 기도』
새물결플러스 김요한 대표/ 『지렁이의 기도』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자신의 기도를 일컬어 '지렁이의 기도'라 말한다. 이유는 그 자신의 기도는 늘 ‘하나님, 저는 벌레요(시22:6),지렁이 같은 놈입니다(사 41:14).’라는 어투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흔히 기도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추상적인 이미지가 있다. 교회 예배당에 앉아 무릎 꿇고 어딘가를 향해 하염없이 우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필자는 저자의 자라온 환경을 다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적은 나이인 필자와 신앙의 선배 되는 저자와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면 PK(Pastor Kids) 곧 ‘목사 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름 석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늘 필자를 괴롭게 하였었다. 어쩌면 이 꼬리표로 인해 필자는 여전히 삐딱해 있는지도 모른다. ‘목사 아들’이었기에 늘 보고 자라온 모습과 장소는 교회였다. 그렇기에 필자에게 교회는 더 애틋한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생각하고 이상적으로 꿈꾸는 방향과 다른 교회의 모습을 보면 울분에 가득 차 있었다. 늘 보아왔던 울며 기도하던 성도들의 모습은 필자가 회심하기 이전까지는 낯선 이방인의 모습이었다. 방학이면 매일 저녁 예배에 나아가 예배당에 앉아 있었지만 기도가 되지 않았고 기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열심히 기도하는 성도의 모습이 낯선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기도가 되지 않고, 기도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하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저자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 저는 벌레요, 지렁이 같은 놈입니다.’라는 고백이 있기보다 늘 하나님께 ‘하나님, 그래서 이거는요? 하나님, 그래서요. 그래서요..?’라는 어쩌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나 실상 하나님 앞에 무례한 질문만을 늘 해왔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 기도임을 저자는 줄곧 말한다. 우리의 기도와 간구 안에 일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모습을 여실히 담아내는 저자의 진솔한 고백들은 필자로 하여금 가슴 한가운데 묻어 두었던 무언가 끄집어 올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앞전에 말한 하나님을 향하여 던졌던 질문 ‘하나님, 그래서 이거는요? 하나님, 그래서요. 그래서요..?’라는 질문 안에는 차마 말할 수 조차 없는 ‘목사 아들’만의 고민이 절실히 담겨 있었다.

어느 누구도 ‘목사 아들’의 고민을 들으려 하지 않았기에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갔었다. 어쩌면 필자의 방황은 ‘내가 누구인지’알고 싶은 고민을 갖던 때부터였던 것 같다. 집 안에서 길 밖으로 겉돌기 시작 하던 그 때였다. 그래서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늘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외로웠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콤하다는 주제 아래 서술 된 예화는 필자로 하여금 가슴 한 가운데 묻어 두었던 그 무엇이 하나님 앞에 돌아왔던 그 시절 그 모습임을 회상하도록 하였다.

정확히 18살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고 지난 날잘못이 필름처럼 지나갔었다. 스쳐 지나가는 필름 속에 늘 보이던 모습이 있음을 기억한다. 부족한 아들을 위해 밤낮으로 울며 기도하시던 어머니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싸며 어머니를 보호하시던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늘 고민에 둘러 싸여 외로워하던 필자에게는 늘 어머니의 기도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방황하던 지난 날들을 “나는 외모를 보지 않고 너의 중심을 늘 보았다”는 세미한 음성을 들은 후에야 믿기 힘들 정도로 필자의 모습은 변하게 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었는지 생각해 본다면 ‘기도’의 힘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인내가 쓰고 열매가 달콤한 이유는 그 간의 오랜 기도가 맺은 열매이기 때문이다.

마치 오랜 노동 후에야 먹는 밥이 제일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책 속의 권사님은 그의 어머니의 구원을 위해 오랜 시간 기도하였지만 더딘 응답 때문에 좌절하고 포기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하나님께서는 권사님의 어머니를 병상을 통해서라도 만나셨고 위로하셨다. 실제로 필자가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라는 것을 하였을 때 그 때 그 날은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아들 한 명을 놓고 40일을 작정하며 기도하시던 그 마지막 날이셨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이것은 단지 ‘우연’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기도’의 힘을 맛보아 알게 된 사람이라면 이것이 단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일하심 곧 언약에 기초한 신실하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실한 여정

페리코레시스라는 말의 뜻은 본래 삼위일체의 세 위격의 교제와 영광을 뜻한다. 저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러한 사역을 상호 침투·내재라 명명(命名)하였다. 어째서 기도가 페리코레스시적인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놓지 않고 이 책을 읽어나갔었던 것 같다. 책을 덮을 때 쯤에 여미어 오는 가슴 한 켠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제와 영광이 말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라는 감동을 받았다. 왜냐하면 내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내 마음 안에 들어온 것일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것은 기필코 삼위 하나님의 상호 침투·내재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 책은 “지금 이 시간에도 기도하고 싶은 내적 소원에 반해 막상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또한 과연 기도해서 뭐가 달라질지에 대해 의심하고 고민하는 분”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마포삼열전집을 내기까지 여실히 고민하였던 가장 큰 이유, 마애란 여사의 20여년 간의 기도에 대한 응답의 도구로 그가 사용되기를 원했던 것처럼 그 역시 이 책을 읽은 또한 읽어 나갈 수 많은 독자들에게 응답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 없이 많은 기도를 해 보아도 지금 당장 우리 모두의 고민은 같을 것이다. 과연 기도의 응답이 있었는지 혹은 없었던 것인지 말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저자가 진술한 그대로 기도를 수렴하시는 것도 응답이며 거절하시는 것도 응답이다. 특히 거절하심 안에는 우리의 기도보다 더 큰 뜻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있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필자의 간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사실이기에 공감하며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의 응답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여야 할까? 이 대목에서 저자가 비유한 ‘지표수’와 ‘암반수’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둘 다 같은 물이지만 다른 물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H₂O라는 원소를 지닌 물이라는 것에는 동일하지만 이 물이 발원하는 근원지의 깊이는 다르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의 성도들이 ‘지표수’의 깊이 까지는 동일하게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암반수’의 깊이 까지 가는 성도는 극소수라 한다.

왜냐하면 ‘암반수’의 깊이 까지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응답이 더디다고 느껴지며 지금의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우리는 대개 많은 경우가 기도를 하지 않겠노라 결심하고 하나님께 입을 닫게 되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에 저자가 사용한 예화는 그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간단명료하게 전해 주었는데 특히 고난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인용했던 윌터스트로프와 김병년 목사(다드림교회 담임)의 자녀와 아내를 잃은 고통에 대한 대목은 읽는 이로 하여금 울며 회개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필자는 『지렁이의 기도』라는 기도에 관한 책 속에서 길면서도 짧은 인생을 보았다. 고통과 아픔이라는 특이한 상황은 누구나 살면서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이한 상황 속에서 필자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며 가르치려 하는 것이 아닌 함께 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윌터스트로프와 김병년 목사의 이야기는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이들이 하나님께 침묵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또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무엇인지 다시금 묵상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곧 그 어떤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이들을 포기하지 않으시며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여러 가지의 상황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여정은 외로운 것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실한 여정이라 할 수 있다.

 

기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상호 침투·내재의 사역은 우리의 내적인 영역과 외적인 영역을 완전히 뒤바꿔 놓으시는 사역이다.

세 위격간의 ‘교통하심’을 통해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우리 안에 ‘내재’해 계신 성령을 통해 우리는 내면에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정사와 권세자들 즉 악의 세력에 대해 저항할 수 있게 되었다.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 바로 ‘기도’라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논리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기도의 모범이 되셨고 제자들을 통해 기도를 알려주셨기에 주기도문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 이 세 문장이 저자가 정의하는 기도의 신학이다. 그 어떤 사변적인 이론으로 뒤섞인 신학이 아닌 성서에 기록 된 그대로이며 경험되어지는 것이라는 사실 속에서 기도에 대한 공부가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기도하지 않는 것일까? 라는 질문은 먼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예상해 보았으나 저자의 책 속에서 필자가 예상한 답을 써내려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었다. 바로 바쁘다는 핑계 때문에 기도를 안하지 않나 싶은 것이었다. 일 전에 기도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보았던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책은 읽다가 덮었던 것 같다. 굉장히 공감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은 이상하리만 큼 신비적이었다. 그래서 재미없었던 것이다.

『지렁이의 기도』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저자에 대한 신뢰도 기여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사변적인 것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엑기스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엑기스는 기도를 하지 않는 이유가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 하였다. 또한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적인 사역을 몰랐으며 알아도 무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스스로 하나님께 기도할 ‘의지’를 버렸던 것이다.

 

갈무리하며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회복할 필요성을 느껴야한다. 또한 이러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만이 이 책을 통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된다. 책을 펼쳤다면 혹은 덮어간다면 이미 독자는 삼위 하나님의 상호 침투·내재의 사역을 경험하거나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회복은 의지에서 그쳐야할까? 당연한 답이겠지만 저자의 삶의 방식이 우리의 삶의 방식이 되도록 기도의 공부가 지속되어야하는 회복의 필요성까지 나아가야한다.

일전에 저자는 『상식이 통하는 목사』(새물결플러스, 2017)라는 책을 통해 교회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반지성주의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기도에 부족함을 염려하며 저술한다는 것을 줄 곧 이야기해왔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실한 여정이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필요하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이미’한국교회는 타락했다며 염려하고 있는 실정에 타락하지 않은 교회가 있다는 것을 보일 힘은 ‘기도’에 있기 때문이다.

과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교회가 중심이 되어 기도운동이 일어났었던 것처럼 다시금 교회가 중심이 되어 기도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 운동 안에는 저자가 그토록 간구하며 권면하던 반지성주의가 해결되어져야한다. 그래야만 신사도와 제3의 물결과 같은 한 쪽으로 치우쳐진 모습으로서의 교회가 아닌 삼위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가 임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한 곡의 찬양 가사가 떠오른다. ‘교회가 교회되게 하소서~예배가 예배되게 하소서’ 필자는 다음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사람과 순전히 기도의 방법론이 아닌 정말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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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신문 성경과삶이야기 <울림>의 멤버인 박진기 전도사는 왕십리 모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총신대에서 M.Div를 하고 있다. 학생 때부터 각종 알바를 섭렵하며 강한 생활력을 보이면서,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특히 다년간 대학 도서관에서 일을 하며 틈틈이 읽어온 독서량도 상당하며, 한 번 말을 꺼내면 좀처럼 쉬지 않는 달변이기도 하다. <울림>의 기자로 어떤 글들을 쏟아 낼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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