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 17] “누가 견딜 수 있을까?”(계 6:12-17)
[요한계시록강해 17] “누가 견딜 수 있을까?”(계 6:12-17)
  • 김상학 목사
  • 승인 2019.09.1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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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안산 성경제일교회 김상학 목사


1. 들어가는 말

시에라리온에 다녀온 뒤, 저는 그 나라의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그 나라는 내전이 끝난 지 이제 15년입니다. 그때 반군은 어린 소년들을 잡아 마약을 먹이고 전쟁에 투입했습니다. 십 대 소년병들은 마약에 취해 사람들을 마구 죽였습니다. 그때 반군들의 악랄한 전략이 손 발목 자르기였는데 이 일에 소년병들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런데 내전이 끝나면서 이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정부에서도 방치하고, 집에서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들이 지금 30대가 되었을 것인데 상당수가 강도에 연루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겁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선교사가 얼마나 위험한 곳에서 사역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요. 더군다나 코노는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는 곳으로서 내전의 중심지였었습니다. 

김경중 선교사의 말로는 교회 안에도 미혼모, 사생아가 너무나도 많답니다. 누가 그랬을까요? 전쟁의 후유증이 만연되어있는 나라이다 보니 나라의 대통령이 미성년자 강간죄를 종신형에 처할 것이라는 법령을 공포 할 정도입니다. 이런 일들은 교인이라고 해서, 사역자라고 해서 피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서 사는 한 이런 환난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환난 속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살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에 십자가가 오버랩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로 말미암은 미소에 눈물 겨운 도전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난 가운데 있다 보면 자칫 불법의 사람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선악과처럼 보이는 겁니다. 악을 행해서라도 잘 살고 보자는 식이지요.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잠시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심판이 임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먹자마자 쓰디쓴 맛을 봐야 했던 게지요. 

천상의 제단 아래 순교한 성도들도 이 일을 위하여 함께 기도할 것입니다. 그 환난 속에서 신실한 성도들은 조속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를 기도하겠죠? 그리고 그 환난에 굴복하지 않고 인내하며 믿음을 지킬 때 하나님의 때에 홀연히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위로가, 악인들에게는 형벌이 주어질 것입니다. 


2. 진노의 큰 날

오늘 본문은 여섯째 인을 떼심으로 보인 환상입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 제단 아래에서 기도하던 순교자들의 기도에 대하여 잠시 동안 쉬라 하였는데 그다음으로 나타난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나타난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준비하고 계심을 보여 주신 게지요. 


12-14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와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이런 자연재해를 만나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 끝난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일본 후쿠시마 지진이라든가, 쓰촨성 지진이 그럴 것입니다. 실제 요한계시록 당대의 사람들은 이런 지진을 맛보았던 사람들입니다. 폼페이와 같은 도시는 아예 화산재에 묻혀 버렸습니다. 이 말씀을 받은 이들은 그때의 상황을 떠올릴 것입니다. 땅이 갈라지고 흔들리고, 화산폭발의 굉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덮었을 것입니다. 용암 덩어리가 날아들면서 흐르는 모습은 땅이 녹아 없어지는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들은 지구 종말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때 폼페이에 거하던 모든 사람이 어떻게든지 살고자 하였지만, 모두가 화산재에 묻혀 버리고 말지요.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을 보면 시기적으로 앞선 사건이지만 어쩌면 성경의 이 장면을 그대로 연출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15-16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땅의 권세자가 이 사태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대 주재인 양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했지만, 이제 진정한 대 주재이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태가 되니 그들도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인 줄 스스로 인정합니다.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견딜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적자, 즉 교회를 핍박하던 자들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인 게지요. 

어떤 주석가는 당대의 이런 심판을 보고 요한계시록은 그때 다 성취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실 여섯째 인을 뗄 때 나타나는 그림은 구약의 여러 본문에서 표현되었던 것을 가져온 것입니다. 

12절은 사 50:3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와 같지요? 

14절은 사 34:4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에서 가져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5절은 사 2:19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의 그림을 연상케 합니다.

이외에도 우주적 심판의 묘사는 구약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 홍해에서의 구원과 심판, 여리고 성의 무너짐, 예루살렘의 멸망, 그리고 신약에 와서 대지진 등을 생각할 수 있지요. 오늘날 우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핵전쟁의 위기를 말하지만 사실 아무리 핵의 위력이 강하다 하더라도 심판 때에 나타나는 우주적 재앙에 비교하면 별거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핵전쟁으로 말미암은 우주적 재앙이 올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3. 누가 능히 서리요? 

이와 같은 진노의 큰 날이 이르니 땅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이 진노의 큰 날을 누가 능히 견딜 수 있는가?”입니다. 누가 하는 말인지 그 진원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우리가 아니라 그들입니다. 그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입니다. 15절에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들입니다. 맨 앞에 땅의라는 표현이 그들이 어디에 속한 사람들인지를 보여줍니다. 교회는 하늘에 속했지만, 그들은 땅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했고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들입니다. 천상의 성도들이 제단 아래에서 그들의 심판을 촉구했던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여리고 성의 백성들이 그 성과 함께 폭삭 망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늘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라합과 그의 가족이었지요. 

누가 능히 서리요?”

이런 환난을 견딜 자가 전혀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견디며 주의 일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이룹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순교하면 24 장로의 반열에, 144,000명의 대열 속에, 셀 수 없는 무리의 일원이 되어 주와 함께 거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땅의 사람들은 심판을 받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를 누릴 것입니다. 

누가 능히 설 것인가?”라는 땅의 사람들의 말에 함께 휩쓸리는 많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번에 시에라리온의 가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사역자를 상담하면서 시편 3편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다윗이 고백하듯이 다윗에게는 천만의 원수들이 에워싸고 있다고 할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들조차도 아버지를 대적하여 생명을 노렸고 아버지의 후궁들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동침했으니 참담한 상황이지요. 

그러나 다윗은 원수에게 원한을 품은 것도 아니요, 자기의 참담한 상황에 절망한 것도 아니요, 오직 구원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문제도 하나님께 기도했고, 자기의 참담한 상황도 하나님께 기도했지요. 그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사역자에게 천만번의 대적의 공격이 있어도 천만번 주를 바라보아야 함을 전했습니다. 그는 꿋꿋이 자기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이 저에게 더 힘을 주었겠지요. 

누가 능히 설 것인가?” 땅의 사람들은 설 수 없습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땅의 것에 매이지 마십시오. 

이번에 제 친구가 제게 선물했던 온열치료기가 갑자기 주문이 많이 들어왔답니다. 저는 그 주문이 많이 들어온 이유를 잘 압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치료기를 쓰는 사진을 어떤 사람에게 준 적이 있는데 그것이 소문나 버린 겁니다. 일반 적외선 뜸질 치료기가 아니라 제 배를 완전히 덮는 큰 치료기인데 그것을 배에 올려놓고 잠자는 사진을 보여 주었던 겁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지금은 암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지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 온열치료기를 사려고 줄을 섰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제가 말하는 진짜 중요한 것은 제쳐 놓았더군요. 온열치료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인한 뜨거움이라고 했는데, 온통 온열치료기에 몰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온열치료기를 쓰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야 그것이 백배 천배로 역사가 나는 것이지요. 


4. 나가는 말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극한 어려움을 당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본 것처럼 말하지요. 그렇지만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도 합니다. 2019년도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돈 문제, 자녀 문제, 관계의 문제, 일터의 문제, 정치 외교의 문제, 전쟁의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일어나서는 안 될 문제들이 즐비하게 줄을 섰습니다. 이런 문제에 안 걸린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 속에서 솟아날 구멍이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고난주간에 들어갑니다. 이 기간에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우리의 고난의 문제를 주께 아뢰었으면 합니다. 일 년 중 한 주간입니다. 새벽어둠을 깨우면서 예배당을 향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일이 중요합니다. “내일이 바로 솟아날 구멍이다라고 외치면서 출발해 보십시오. 그리고 부활주일의 예배와 연합예배의 은혜를 함께 누리는 주의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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