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요?
  • 박진기 기자
  • 승인 2018.07.01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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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만 하던 나를 늘 기다려주시던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요?

나는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동안의 삶을 뒤돌아 볼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누군가 내게 물색 없이 “하나님을 왜 원망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어린 시절부터 내게 주어진 어려운 환경 탓도 한 몫을 한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하나는 저주이며 다른 하나는 말 그대로 탄식하는 원망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일에는 감사가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원망’은 언제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 곧 도망가고 싶은 그 순간에 불일 듯 일어났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모시기 전과 후,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된 나의 본성이 아닐까?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던 터라 늘 교회 선생님 혹은 전도사님이나 목사님께 묻고 싶었던 질문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은근히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마음속에 꽁꽁 싸매두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소위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상,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그리고 지금 내가 걷는 ‘신학’이라는 길 위에서 이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물론 이 길은 결코 인간인 나의 의지로 가는 것이 아님을 안다.

하나님을 향한 저주를 일삼던 나의 모습은 청소년기 안에 얽혀 있다. 가정의 어려움, 교회에 대한 부적응, 아버지의 연약함, 어머니의 고생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인 요소들은 나를 늘 불만 많은 놈으로 인식되게 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향해 저주할 일들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사실 이 모든 것은 환경문제고, 내 성격 탓일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때는 왜 그렇게도 하나님이 싫었는지 모르겠다. 교회에서 밥 먹듯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말을 들어왔고, 그 말은 아직까지도 내 주변을 맴돈다.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는 잠언 기자의 격언이 있다(잠 26:2). 이 구절의 바로 앞 구절은 “까닭 없는 저주를 하는 이가 미련한 자”라고 말해준다. 시편기자는 “미련한 자는 어리석게도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는 이”라고 한다(시 14:1). 어쩌면, 그 말 그대로 아직도 나는 미련한 자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을 향해 저주를 일삼던 사람에서 하나님께 영락 없이 매달리며 때로는 원망도 하는 어린 아이로 하나님을 향해 엎드리며 살고 있다.

이틀 전, SNS에 접속하니 ‘1년 전 오늘’의 글이 올라와 어떤 일을 떠올리게 됐다. 그 때는 하나님을 크게 원망했었다. 어떤 불순한 한 사람으로 인해 부모님이 당하신 고난과 마음의 아픔을 겪으셨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군대에서 21개월을 보내고 있던 터라 부모님께는 실제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글이 보이지자 마자 황급히 나의 오른손은 나도 모르게 ‘게시물 삭제하기’를 눌러버렸다. 무언가 감추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향해 저주를 일삼았던 나의 세치 혀에 대한 부끄러움과 그 사람을 향해 퍼붓고 싶지만 퍼 붓지 못한 원색적인 욕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퍼부은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정확히 1년 전, 부모님께서 당하신 고난과 그 아픔을 해결하던 날. 감사와 동시에 찾아왔던 하나님께 했던 원망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남겨주었다. ‘탄식하지 않는 입술이 어찌 정직한 입술이라 말 할 수 있으랴?’는 개인의 신앙고백이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를 생각해본다. 그는 정말로 원망 없이 살다 갔을까? 어쩌면 우리가 읽는 성경의 모호한 번역이 모든 글을 평범하게 보도록 하는 착각을 하게 한 것은 아닐까?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가 마지막 외쳤던 외마디 음성,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것. 이것은 어쩌면 하나님을 향한 원망 섞인 짜증이었을 것 같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 된 내게 원망이라는 본성을 남겨두셨다. 원망마저 없다면 당신께로 나아오지 않을 것 같기에 그리 하신 것 같다. 더 이상 하나님을 향해 저주하며 내게 마주한 큰 일에서 도망하고 싶지 않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사명을 겸허히 받아들이시며 외치셨던 외마디 음성 속에서 나는 그 길 너머 나를 기다리시는 것만 같은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을 향해 탄식했다. “하나님, 저 좀 살려주세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저주가 아닌 탄식이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에 평안이 찾아온다. 샬롬... 오늘도 주의 평안이 모든 이들 마음 가운데 살포시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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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신문 성경과삶이야기 <울림>의 멤버인 박진기 전도사는 왕십리성은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총신대에서 M.Div를 하고 있다. 학생 때부터 각종 알바를 섭렵하며 강한 생활력을 보이면서,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특히 다년간 대학 도서관에서 일을 하며 틈틈이 읽어온 독서량도 상당하며, 한 번 말을 꺼내면 좀처럼 쉬지 않는 달변이기도 하다. <울림>의 기자로 어떤 글들을 쏟아 낼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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